영웅과 살인자
하이에의 케르베로스 대대가 이번 체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대전 당시 정예부대 돌격대 출신 피셔(1부에 등장 인물들 중 가장 전투력이 뛰어난 인물. 교사 출신인데 돌격대에서 싸우며 무수한 전공을 올렸다. 한스 파이퍼와 아는 사이.)덕분이었다.
40대 초반에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은 피셔는 굳은 표정으로 바르크만을 관찰했다.
'동부전선 출신 정예병 그 놈이군...'
세계대전 때도 전쟁이라는 참극 속에선 지극히 평범하던 인간도 온갖 추접한 짓을 저지르기 마련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헤롤트 특임대 또한 1940년 3월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을 것 이고, 집행유예 형을 받거나 처벌을 받으면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것 이었다. 하지만 바르크만 저 새끼는 그와 다른 부류의 생물체였다.
한편, 루크(민간인을 사살하여 집행유예형을 받았으며, 집행유예 부대에 있었을 당시 하이에의 동료. 하이에가 SS에 가게 되면서 직접 슈코르체니에게 루크를 추천하였다.)는 흥미로운 눈으로 바르크만을 바라보았다.
'무기 빼고 붙으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하이에가 걸어왔고 케르베로스 대대원들은 모두 경례를 취했다.
"쉬게."
하이에는 포박당한 헤롤트 특임대에게 말했다.
"귀관들은 독일 제국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리하여 총리 각하의 명에 따라 전원 집행유예 형을 받게 될 것 이다."
라우리 퇴르니를 포함한 케르베로스 대원들이 하이에를 쳐다보았다. 하이에가 말을 이었다.
"조만간 국가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중요한 전투가 있을 것 이다. 목숨을 바쳐 싸우고 독일 제국을 위하여 헌신하라."
하이에가 말을 마치고 뚜벅뚜벅 차로 걸어갔다. 그 때, 라우리 퇴르니가 하이에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바르크만 저 녀석도 집행유예 형을 받습니까?"
하이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전선에 인력이 부족해서 병사 한 명이라도 더 긁어 모아야 하네."
퇴르니가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이에를 바라보자 하이에가 말했다.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고 상부 방침일세."
하지만 애초에 헤롤트 특임대에 관하여 서류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은 것은 전부 하이에가 한 일이었다. 히틀러가 승인을 했다 치더라도 히틀러는 이 서류를 제대로 읽어볼 시간도 없었을 것 이다. 결국 헤롤트 특임대를 전원 집행유예 부대에 보내는 것은 순전히 하이에의 결정이었던 것 이다. 퇴르니가 말했다.
"저 놈 새끼는 살려두면 안됩니다. 사형시켜야 합니다! 그냥 여기서..."
"독일 제국에는 병사가 넉넉하지 않네. 더군다나 저 정도로 전투력이 뛰어난 병사는 말일세! 담배 있나?"
그 때, 피셔가 자신의 홀스터에서 권총을 껴내고는 바르크만의 머리를 겨누었다. 케르베로스 대대원들이 모드 피셔를 만류했다.
"그...그만두십시오!!!"
"안됩니다!!"
바르크만은 자신의 머리에 총이 겨눠진 상황에서도 시커먼 수염 사이로 흰 이빨을 보이며 웃을 뿐 이었다. 입은 웃고 있었음에도 바르크만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멀어져 가는 하이에를 노려보고 있었다.
"흐어...허어..."
그러자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하이에가 피셔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총 내려놓게."
피셔가 말했다.
"이 자는 숨이 붙어있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고한 사람을 살인할 것 입니다. 크리스쳔으로서 저는 이 자를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하이에가 담배를 꺼내들자 옆에 있던 병사가 황급히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ㅡ
하이에가 담배를 한모금 마시고 내쉰 다음 말했다.
"크리스천에게 살인이 허락되나?"
피셔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어둔 상태로 말했다.
"제 영혼은 오래전에 신에게 버려졌습니다."
피셔는 세계대전 당시에 수 많은 전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자신이 살인자라고 생각했으며 극심한 ptsd를 겪었던 것 이다. 하이에가 담배를 한모금 더 마시고 내뱉은 다음 피셔에게 말했다.
"총 내려놓게."
피셔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하이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바르크만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총을 내리고는 자신의 홀스터 안에 집어넣었다. 하이에는 다시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그 때, 바르크만이 마치 폐 속에서 썩은 공기가 끓어오르는 듯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 두개골에 총알을 박아라!"
인간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흰 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바르크만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증오를 내뱉었다.
"나를 죽이는게 좋을거다! 내 심장이 고동치고 혈관을 따라 피가 솟구치고 내 폐가 숨을 내뱉는한 남은 일생을 네 놈을 사냥하게 될 것 이다! 속기수가 타자를 치고 도축업자는 고기를 도축하듯 나는 네 놈을 죽일 것 이다!!"
하이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바르크만이 말했다.
"나를 죽이지도 않고 반병신 고자 새끼로 만들 셈이군! 남은 평생을 굴욕을 느끼며 다른 죄수들처럼 순응하고 고분고분해질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어떤 감옥이나 형벌도 나를 구속하지는 못할 것 이다...나는 내가 죽을때까지 이 세상에 저주를 내뱉고 임산부의 배를 가를거다!"
라우리 퇴르니가 생각했다.
'죽일 것 이라는 의지를 말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죽이게 될 것 이라고 말하고 있군...'
라우리 퇴르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홀스터 쪽으로 손을 갖다댔다. 모든 본능이 저 저주받을 생명체를 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퇴르니는 갈등했다.
'저 새끼가 핀란드에 올 일은 없을 것 이다...그래...핀란드에만 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저걸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퇴르니는 바르크만을 죽이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차마 자신의 상관인 하이에에게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등신같은!!! 왜 독일인 따위한테 거역하지 못하는가!'
그 때, 바르크만이 외쳤다.
"아!! 이제야 기억나는군!! 22년 전에 비슷한 인물을 보았지! 강철 호랑이인가 뭐시기인가..."
그 때, 하이에가 뚜벅뚜벅 바르크만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바르크만은 눈을 찌푸리고는 단어를 정확히 기억하려고 했다. 하이에는 바르크만에게로 손을 뻗었다.
"조심하십시오!"
구경하던 모든 이들은 순간 바르크만이 하이에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 때, 하이에가 왼손으로 바르크만의 어깨를 잡고는 으스러뜨릴듯이 힘을 주었다. 바르크만은 하이에를 바라보며 외쳤다.
"기억났다!! 그래!! 강철 사냥꾼 한스 파이퍼!"
바르크만이 하이에의 눈을 관찰하고는 외쳤다.
"온 세상을 잃어본 적이 있군! 나도 비슷해! 전쟁 영웅과 살인자! 어느 쪽이건 신의 저주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지!"
하이에가 말했다.
"지금 누가 사냥감인지 모르는군..."
바르크만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과학자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는 순순히 집행유예 부대로 끌려갔다.
한편, 한스 파이퍼는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군과 남부집단군으로부터 소식이 없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라마누잔한테는 왜 소식이 없지?'
한스의 사령부에 있는 전화기는 지멘스 사에서 특별 개발한 전화기로서, 공군 총 사령부, 육군 총 사령부 등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기였다. 하지만 오늘은 전선 소식을 제외하고는 전혀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4군 사령관으로 내려온 이후로 명령 체계라던가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육군참모본부 1부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공세 전에 참모 총장으로 복귀하는게 낫겠군...'
육군참모본부 1부, 그 중에서도 작전과는 가장 권한이 막강하고 육군참모본부의 중심적 위치였다. 육군참모총장으로 바로 복귀하는 것 보다는 작전과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복귀하는게 가장 적합한 루트일 것 이었다.
'조만간 히틀러에게 연락이 올테니 그 자리를 내게 달라고 하자!'
대놓고 육군 참모 총장 자리를 달라고 하는 것 보다는 그렇게 작전과에 있다가 자연스럽게 참모 총장으로 복귀하는게 나을 것 이었다.
그 때, 폴프 장군이 한스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한스가 반갑게 폴프를 맞이하며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속기사와 전화 교환수를 모두 내보내자, 폴프 장군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국쪽에서 활동하는 우리 쪽 스파이들이 MI6에 추적을 받고 있어서 이들이 무사히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현금을 지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한스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폴프 장군에게 거액의 수표를 써주었다.
"확실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한편 토마스, 헤르만, 페터 삼총사는 런던에서 MI6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다. 마침 저 쪽에 장례 행렬이 있었고 토마스 일행은 장례 행렬에 뒤섞여서 고개를 숙였다.
'좋았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못 따라올거다!'
유족이 성당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성당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느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
성당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그가 누군지 모른다!!!"
헤르만이 속으로 울부짖었다.
'왜 빨리 안 들어가는거야!!!'
'무슨 합스부르크도 아니고 장례식을 왜 이렇게 해!!!'
장례식 행렬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유언으로 합스부르크식 장례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장례를 치룬다고 하더라구요."
페터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저 쪽에서 MI6 요원들이 두리번거리면서 토마스 일행을 찾고 있었다.
'이크!!!'
유족이 외쳤다.
"30개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물리학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
"우리는 그런 자를 모른다!"
이제 MI6 요원들은 토마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MI6 요원 중에 한 명은 장례 행렬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토마스, 헤르만, 페터는 들키지 않도록 유족들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발!!!'
유족이 외쳤다.
"올리버, 가엾고 죄 많은 자 입니다."
트그덩
성당의 문이 열렸고, 관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토마스 일행 또한 행렬을 운구 행렬을 따라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MI6 요원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성당을 수색해!"
한창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데, MI6 요원들이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며 성당에 들어왔다. 유족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MI6 요원들이 해명했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잠시만 양해해 주십시오!"
MI6 요원들은 성당에 있는 모든 조문객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절차가 오래 걸렸고 유족들은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조문객들이 수군거렸다.
"장례식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원..."
"고인 분께서는 기뻐할걸세. 장례식 때 많은 관심을 받길 원하셨네."
그 때, MI6 요원 중에 한 명은 관에 놓여있는 90대 노인의 시신을 유심히 관찰했다.
"분장일 수도 있네! 이게 시신이 맞는지 확인해야 해!"
유족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장례식을 진행하던 신부가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난감해했다.
"어이쿠!!"
MI6 요원이 말했다.
"수색이 오래 걸릴테니 30분만 더 장례 절차를 지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신부님께서는 사제 둘에게 부축을 받으며 어딘가로 떠났다. 그 중 한 사제가 신부에게 말했다.
"지금 튈까?"
토마스, 헤르만, 페터는 몰래 성당에 잠입한 다음 장례식을 준비하던 신부와 사제 둘을 포박하고 그 옷을 훔쳐서 신부와 사제로 위장했던 것 이었다. 그렇게 토마스 일행은 성당을 몰래 빠져나간 다음, 인근 숲에 묻혀있는 현금과 위조 신분증을 찾아냈다. 이 현금은 한스 파이퍼가 사람을 시켜 보내준 것 이었다. 덕분에 토마스 일행은 영국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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