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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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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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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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7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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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6막) 태동이 시작되고 욕이 솟아오른다 (2)

DUMMY

“그래, 좋아.”


“.......뭐?”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에두의 대답. 캄포와 치체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굳이 이런 어둡고 외딴곳으로 에두를 불러낸 것은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 에두가 격한 반응을 보일 경우를 대비한 방책. 그러나 에두의 반응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고 느슨했다.


“알겠다고, 씨발럼들아. 내가 뭐 좋아서 이 좆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줄 아냐?”


“하지만....... 대장님이 널 임명하셨을 때 순순히 받아들였잖아?”


아직도 그때의 광경과, 그 상황에서 느꼈던 굴욕감과 수치심이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치체였다. 하지만 거친 욕설과 함께 에두의 입에서 튀어나온 진실은 치체의 예상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뭔 개소리야? 순순? 내가 미쳤다고 순순히 그년 따까리가 될 거 같았냐? 그날 점호 끝나고 바로 그년한테 쳐들어갔지. 계속해서 깽판치면 당연히 기수대표고 뭐고 바로 짤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씨발......”

잠시 말을 끊고 입술을 씹으며 애꿎은 땅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에두. 그의 동기들은 그 행동에서부터 에두가 그날 엘라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년이 내 목을 찍어 누르면서 그랬어. 내가 원한다면, 자기한테 한 방 먹였을 때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약속은 유효하다고. 다만 그 기회는 무제한으로 제공해줄 테니까, 그때까진 자기 말대로 하라고. 그래서 씨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언젠간 그년한테 꼭 한 방 먹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그러니 이 좆같은 대표 따윌 계속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이제 와서 기수대표를 내려놓겠다고? 그럼 대장님의 명령을 어기는 거 아냐?”


어둠에 반쯤 잠식당하긴 했지만, 캄포의 얼굴이 의문으로 일그러져있었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씨발, 어차피 기수대표 따위 지금 있으나마나잖아? 그년도 별말 없고, 나도 좆도 상관 안 하니까. 진짜로 몰라서 냅두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나 좆 돼보라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니들이 나서서 뭐라고 씨부리면 그년도 슬슬 정신 차릴 거 아냐. 야, 씨발 오히려 내가 부탁한다. 사퇴든 뭐든 해줄 테니까, 니들도 그년한테 말 좀 잘해봐.”


에두의 말에, 캄포와 치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예상보다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긴 했지만, 서로가 입을 맞춰야 하는 이런 상황이 마냥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여러모로 최악인 분위기 흐름을 되도록 빠르게 종식시켜야 한다는 건 캄포와 치체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삼은 것이 바로 기수대표의 사퇴였다. 에두를 희생양으로, 훈련생도 간의 부서진 결속을 표면적으로나마 다시 되찾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에두 본인이 흔쾌히 길을 터주었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





“.......흐음.”


이제 막 야간구보가 끝난 참이었던지라 캄포와 치체의 몸에선 땀냄새와 흙냄새가 뒤얽혀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턱과 시선이 긴장으로 굳어있는 이유는 이런 무례한 차림으로 엘라를 찾아온 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엘라의 호출을 받고 급하게 불려온 참이었으니까.


“.......”


별 내용이 적혀있지도 않은 종이 한 장. 그리고 그 종이를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는 엘라의 먹색 눈동자. 캄포와 치체는 이미 5분 전에 그녀에게 경례를 올리고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끔찍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는 집무실의 시간은 그들에겐 마치 5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아까 씨발이가 왔었어.”

마침내 엘라가 종이를 내려놓고 두 생도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러나 캄포와 치체는 그녀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기수대표 그만둔다고 하더라고.”


“.......”


“근데 걔는 나한테 죽빵먹일 기회만 보는 놈이지, 이런 생각을 할 만한 놈은 못 되거든? 그래서 줘팼, 아니, 캐물었더니 너네 둘 이름이 나오더라.”


캄포와 치체는 숨을 삼킨다. 이미 구보로 인한 근육통과 물집의 통증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치체였다.


“대장님, 대장님이 직접 임명하신 중대장의 사퇴를 논하는 것이 어떻게 보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두아르도 렐라바는 기수대표로서의 직무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장님의 명령을 전파하기만 할 뿐, 다른 생도들과 전혀 융합되지 못하며 훈련과정 또한-”


“그러니까, 지금 너넨 지휘관이 임명한 상급자를 몰아내려는 거지?”


여전히 색조가 없는 엘라의 목소리. 그러나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캄포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전시였다면 즉결처형에 해당하는 불복종. 하지만 이번 훈련과정이 평화롭게, 그리고 예정대로 진행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평화? 예정?”

다시 한 번 말을 끊으며 엘라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느새 그녀의 새빨간 입가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캄포와 치체는 그 미소에서 측정할 수 없는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 훈련은 평화롭지 못한가 보네? 그리고 예정이라고? 훈련예정을 누가 정하는데? 너네가 정해?”


“아닙니다.”


“근데 너네가 뭐라고 멋대로 판단하는데? 씨발이를 기수대표로 삼은 건 내 의지고 내 선택이야. 그거에 반기를 드는 건 너네 중대장에게 반역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반역한다는 거, 모르니?”


“대장님, 그게 아니라-”


“직무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기수대표의 직무라는 게 뭔데? 너네가 유치하게 귀족이니 평민이니 나뉘어서 싸울 때 중간에 껴서 중재하는 거? 꼬꼬마들 싸움 말리는 게 중대장 역할이야?”


“.......”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엘라가 분열된 생도들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에두와 생도들을 방치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을 대표로 세운 건 너네들이 판단하고 평가할 문제가 아냐. 왜냐고 묻는 건 더더욱 너희의 몫이 아니지. 내가 진짜로 죽빵을 맞을 때까지는 씨발이가 너네 중대장이고, 기수대표야. 너네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방향은 어떻게 기수대표를 갈아치우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씨발이를 기수대표로 삼았는지, 그걸 해석해내는 거다.”


“하지만-”


치체는 말을 잇지 못한다. 아주 익숙하고도 불쾌한 감각이 간만에 되돌아온 탓이었다. 역전된 시야, 거꾸로 처박힌 뺨에서 얼굴 전체로 번져나가는 통증. 뒤통수를 내리찍고 있는 전투화의 차가운 이질감 때문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지만, 엘라의 목소리가 한발 더 빨랐다.


“씨발이한테 위임시키고 직접적으로 손 안 대니까 내가 만만해 보이냐? 소풍 온 거 같애? 합동훈련이고 뭐고 싹 다 뒤집고 너네만 집중적으로 굴려줄까?”


“아, 아닙니다.......”


“자유롭게 풀어줄 때 잘해라. 전술훈련이니 경계임무니 돌려주니까 너네가 진짜 기사라도 된 거 같지? 미안한데, 난 너네 전원한테 계급장 달아줄 생각 처음부터 없었어. 귀족평민 신경 쓰기 전에 살아남을 생각 먼저 하는 게 도움이 될걸?”


“예.......? 그게 무슨 말씀.......”


치체와 마찬가지로 반대편 발아래 짓밟혀 있는 캄포. 그는 엘라의 말 속에서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느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아, 말 안 했던가?”


그리고

허리를 굽혀 그런 두 생도 사이로 자신의 걸쭉한 미소를 밀어 넣는 ‘광기의 꽃잎’.





“선전포고가 되면, 너네가 와르헨스톡을 향한 선발대가 될 거야.”





===============





“어, 언니!”


카논은 적갈색 시선을 돌려 자신을 ‘언니’라 칭하는 목소리를 찾는다. 다소 수척해진 그녀의 얼굴에 반가움의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고도, 오랜만이에요.”


예상치 못한 재회였지만, 두 여인이 나눈 것은 ‘군인’으로서의 악수였다. 서로를 향한 어투가 다소 경직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고도의 말에, 카논은 주의 깊은 시선으로 크게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은 마즈다힐의 최남단, 그것도 블라고슬로바와 인접한 국경지역이다. 마즈다힐이라는 지역이 아직 그녀에게 낯선 장소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유가 ‘시찰’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찾아온 로빈의 보좌라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냥 폐하 따라온 거죠, 뭐. 고도는요? 통합훈련 잘 되어가나요?”


경계심을 거둔 카논의 눈이 이번엔 고도의 전신을 빠르게 훑는다. 훈련이 끝난 직후였는지 로브 이곳저곳이 더럽혀지거나 마력에 그을린 흔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카논의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커다란 소매 아래로 아래 얼핏 보이는 조잡한 팔찌였다.


“뭐어, 이래저래 의견까지 받으면서 개선하고 있기는 한데, 실전 때까지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작계도 수정 중이라던데, 저는 그거까지는 모르겠고.”


“네에.......”


“아무튼 구경 다 하셨으면 너무 오래 있지 마요. 여기 새벽은 더럽게 추우니까.”


건성으로 손을 흔들고, 터덜터덜 숙소를 향해 걸음을 이어가는 고도. 카논은 그에 자신도 손을 마주 흔들어주면서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 ‘고도’가 남 걱정을 해주다니?

‘전투마법사’ 제르나비 고도는 몰라도, ‘인간’ 제르나비 고도라는 존재에 대한 카논의 첫인상을 되새겨본다면 이는 놀랄만한 변화였다. 피로 물든 길이 오히려 그녀를 부드럽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심경에 커다란 변화라도 생긴 것인가?

무엇이든, 카논은 고도의 걱정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해야 했다.


그녀는 단순히 주둔지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망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담’을 경호하기 위함이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폐하께서야말로 이 노기사의 고집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들리는 촛불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로빈의 검붉은 눈동자와 블라고슬로바의 대표기사, 쟝 자크 블린저의 옥색 시선이 마주하고 있었다.

이 만남은 어디까지나 로빈과 블린저 본인,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인원들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아무런 경호도, 병력도 없이 혼자서 카나반 병사들의 경계를 뚫고 찾아온 블린저의 모습이 이 비밀의 농도를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먼저 말씀드리자면, 선전포고는 꽃이 피자마자 하게 될 겁니다. 국경에서의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겠지만, 대표기사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와르헨스톡까지는 거의 무혈에 가까운 정도로 진출이 가능할 테죠.”


“예, 사실 그에 대해 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은커녕 눈썹조차 없는 노인의 인상은 작은 촛불 앞에서도 날카롭다. 그러나 로빈은 위축될 생각이 없었다.


“논의라뇨?”


“아시다시피, 블라고슬로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제국파와 반제국파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결사협회와 용병까지 동원된 소란 끝에 결론적으로는 반제국파의 득세라는 형태로 종결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제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도시들이 태반인 상황이지요. 그렇기에 제가 선전포고를 부탁드린 겁니다. 친제국파를 향한 응징이라는 형태이지요. 극단적이긴 하나, 가장 효과적으로 적이 누구이고 아군이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렇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담담한 노인의 목소리. 로빈의 눈썹이 크게 일렁인다.


“문제?”


“공격에 대한 정보가 샌 듯합니다.”


“.......뭐라고요? 어디서요?”


노인은 잠시 침묵했고, 로빈은 굳은 얼굴을 펴지 않은 채 그의 창백한 입술을 기다린다.


“그게 문제입니다. 공화국 측에서 새어나간 것인지, 아니면 블라고슬로바 내부에서 새어나간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쪽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그쪽도 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잠시만요, 우리 쪽에서요?”

가까워진 로빈의 숨결이 촛불의 그림자를 크게 뒤흔든다.

“이번 건은 저랑 의회, 그리고 지금 이곳에 주둔 중인 측근들 정도만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정보가 샜다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근거라면 간단합니다. 블라고슬로바 북부국경도시 몇몇이 갑자기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병력을?”


몸을 다시 뒤로 젖히긴 했으나 로빈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물론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목소리도 밝을 순 없었다.


“대규모 훈련이 계획된 것도 아니고, 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이 지금 병력을 움직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단 하나, 친제국파가 이쪽의 움직임을 꿰뚫어본 것이 아니라면.”


“.......”

로빈은 다시금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고 있는 것은, 단지 그와 노인 사이에 위치한 촛불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표기사님, 공화국은 나름대로 블라고슬로바와의 동맹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전포고도 어디까지나 대표기사님의 생각이었고, 요구였지만, 동맹을 위해서라면 잠시 침략전쟁이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상관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블라고슬로바는 동맹으로서 보여준 것이 뭡니까? 친제국파의 농간이었냐 아니냐는 제쳐두고, 전투 중에 우리를 돕기는커녕 뒤통수를 친 게 유일한 반응 아닙니까?”


“그건 아시다시피 저와 본국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동맹에 대한 제 생각을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요? 이제 와서 갑자기 불신의 씨앗을 툭 던져주고 가시는데, 제가 어떻게 당신을 믿습니까?”


“제가 정말로 공화국의 적이었다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단둘이 된 순간, 폐하의 목이 떨어졌을 테니까.”


늦겨울 새벽의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한기였다.

그러나

로빈은 도리어 검집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탁자 위로 올려놓는다.


“원하신다면 지금 시험해보시죠?”


마침내 물리력으로 발현되어 팽팽하게 맞서는 두 인간의 영력. 어느 한쪽으로 힘의 무게가 치중되어있었다면 촛불은 곧바로 그 생명이 다했을 터지만, 오히려 그 팽팽함이 불씨의 생명을 아슬아슬하게 유지시켜주고 있었다. 카논이나 다른 근위기사가 근처에 있었다면 당장 검을 뽑고 들이닥쳤을 상황. 그러나 블린저가 먼저 영력을 거두면서 촛불은 다시 안정감을 되찾는다.


“.......폐하께서 측근들을 신뢰하시는 만큼, 저 또한 제게 목숨을 맡긴 자들과 움직이고 있습니다. 타국의 수장에게 침략을 의뢰한다는 행위는 그야말로 반역보다도 무거운 죄. 저희가 어떤 심정으로 이번 일을 계획했는지, 굳이 공감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침묵의 기사단.”


마찬가지로 적의를 거둔 로빈의 목소리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대제국동맹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폐하와 저는 신중해야 합니다. 폐하께서 믿고 있는 목소리가 회색의 그림자에 물들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빈은 이 노인이 어째서 새벽 중에, 그것도 수행원 하나 없이 혼자 타국의 국경초소로 찾아왔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계획을 변경하시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저와 폐하, 단둘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병력이 움직였다는 시점부터 계획의 의미가 흐려진 것 아닙니까? 마즈다힐 전투 당시 개입했던 던컨 시장의 토벌이라는 형태로 빠르게 와르헨스톡을 점령하는 게 중점이었잖습니까? 그런데 친제국세력이 미리 병력을 준비하고 국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화국에 대적하려 한다면, 오히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그래서 저흰 경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경로를?”


블라고슬로바 대표기사의 옥색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여전히 어둠만이 가득했지만, 노인의 목소리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신중함이 묻어있었다.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경로로 말이지요.”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38 Fenix11
    작성일
    17.02.27 07:31
    No. 1

    항상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7.03.01 20:57
    No. 2

    페닉스님 항상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evolutio..
    작성일
    17.02.28 23:41
    No. 3

    작가님... 이거 구상하시는데 몇년 걸리셨나요..? 한 번에 구상하시고 풀어가시는건가요, 아니면 그냥 그때 그때 구상과 동시에 풀어가시는건가요..
    물론 둘 모두이긴 하시겠지만 그렇다면 그 비율이 대충 어느 정도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세스퍼
    작성일
    17.03.01 21:00
    No. 4

    에볼루션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미흡한 글에 구상이랄게 뭐 있겠습니까만 ㅠ
    첫 상상은 168시간이란 글이 먼저였습니다. 그때 대충 세계관이나 중간시나리오, 엔딩을 생각해뒀는데, 아무래도 뻗어나가기가 어려운 거 같아서 따로 변수의 굴레란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말씀처럼 미리 계획해둔 막이 있고, 즉흥적으로 추가한 막도 있는데, 그 비율을 굳이 따져보면 8:2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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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7) +6 16.12.03 520 11 16쪽
261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6) +7 16.11.28 435 12 19쪽
260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5) +4 16.11.23 402 11 17쪽
259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4) +8 16.11.18 415 11 17쪽
258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3) +4 16.11.13 487 11 20쪽
257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2) +6 16.11.07 728 12 17쪽
256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1) +8 16.11.02 436 12 17쪽
255 (막간) 무게 +4 16.10.28 510 13 16쪽
254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1) +10 16.10.23 512 13 23쪽
253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0) +10 16.10.18 422 13 19쪽
252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9) +10 16.10.13 480 15 17쪽
251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8) +8 16.10.08 475 12 18쪽
250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7) +12 16.10.03 549 14 16쪽
249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6) +5 16.09.28 470 15 16쪽
248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5) +10 16.09.23 433 13 17쪽
247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4) +8 16.09.18 508 15 19쪽
246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3) +10 16.09.13 511 13 18쪽
245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2) +10 16.09.08 458 14 13쪽
244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 +7 16.09.03 511 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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