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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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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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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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2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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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4막) 다시 품은 목소리 (5)

DUMMY

마즈다성 내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 주축은 원정에 포함되지 못한 병사들과 기사들이었는데, 그들은 귀족들의 지원중단과 보급문제로 인하여 원정대의 규모가 제한을 받은 사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지나와 원정대의 승전소식이 들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의회에 대한 반감이 들뜬 분위기로 표출된 것이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들이 거침없이 거리로 뛰쳐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 대부분이 베르달 출신이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나가 노린 분위기 반전이 이런 거였나 봐요.”


환호의 중심, 성문 바로 아래에서 부인의 귀환을 기다리는 로빈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물론 어렵다고 생각했던 원정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지나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스며 나온다. 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원정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의원들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그였다.


“왕비님의 귀환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의회는 이미 아르다르에 복귀한 뒤였겠지요. 그들로서는 보지 않아도 될 풍경을 보고 있는 셈이니, 말씀하신 ‘분위기 반전’은 꽤나 주효하게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는 마누앙이었다. 그 또한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다르로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이번 승리를 통해 다소 그 일정이 지연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는 중이었다. 검성의 고발 건에 관련하여 회색도시로 돌아가기 전, 로빈, 지나와 함께 협의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선두에 있는 지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원정대가 접근해오자 성내의 환호성도 그만큼 짙고 드높아진다. 하지만 그녀의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보다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존재는 따로 있었다.

그 그림자가 뒤따라오는 카논의 전신과 말까지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 타고 있는 말의 크기만 해도 다른 군마보다 배는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몸집을 감당해내기에 너무나 버거워 보인다. 거기에 제대로 휘두를 수나 있는지 의심될 정도의 육중한 철퇴까지 짊어진 상태였으니, 나름 한 덩치 한다고 자부하는 드렌턴조차 혀를 내두를 수밖에.


“와아, 저 사람이 바로.......?”


“그렇습니다.”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성 밖에 나서는 로빈과 그를 따르는 총리 마누앙. 그들은 지나와 어윈이 예를 취한 뒤 말에서 내리고 나서야 땅으로 발을 내딛는다. 들뜬 분위기는 복귀한 원정대에도 전염되어있었다. 남색정복 위로 가죽을 덧댄 전투복을 입고 있는 베르달군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먹색군복을 벗지 않은 이스누시아 병사들도 지나와 어윈, 그리고 로빈의 가까워지는 거리에 고함을 내지른다.


“국왕대리기사, 명을 완수하고 이제 막 복귀했습니다.”


당당하면서도 정중한 자세로 로빈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 지나. 로빈은 미소를 참지 못한다.


“고생했어.”


왕은 왕비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는다. 환성이 커지고, 몇몇 병사들과 기사들은 휘파람까지 불며 분위기를 돋운다. 매번 반복되는 낯간지러운 풍경이었지만, 아직 익숙하지 못한 몇몇 의원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야 했다.


“아,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응, 저분이 바로.......?”


부부의 눈빛을 받자마자 쿵쿵 땅을 울리며 다가서는 어윈. 가까이서 접한 그의 물리적인 존재감은 로빈이 접해왔던 그 어떤 생물체보다도 크고 위협적이었다. 거기에 한쪽 눈을 뒤덮고 있는 안대까지 더해져 그의 인상은 그야말로 험악 그 자체.


“내 이름은 어윈 아이언하트! 태양의 주군은 곧 나의 주군!”


그리고 그의 영력이 실린 목소리는 주변의 모든 환호성을 뒤덮기에 충분했다. 성벽과 성문이 떨리고, 주변 하늘을 지나치던 광소새 무리가 기절하여 추락할 정도의 울림이었다.


“아......., 아 예, 반갑-”


“이스누시아의 철심장이, 붉은 나무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철퇴, 아몬둔을 바닥에 내리찍으며 무릎을 꿇는 어윈의 몸짓이 너무도 과격했기에, 드렌턴을 포함한 카나반의 근위기사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바로 앞의 로빈은 곧바로 미소를 되찾은 상태였다. 무릎을 꿇고도 자신과 눈높이가 맞을 정도로 거대한 남자의 육중한 울림이었지만, 로빈은 망설이지 않고 어윈의 어깨 위로 부드럽게 손을 올려놓는다.


“정말 감사합니다, 철심장. 진심으로 환영해요.”


“.......”


어윈은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제국과의 인연을 완벽히 끊어버린 그였지만, 그의 ‘항복’은 어디까지나 제국을 향한 복수의 일부였다. 줄리아는 어떤지 몰라도, 그에게는 이번 항복이 철저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엘라론 드리브달의 배신을 비난하며 델핀 드리브달의 원수를 곱씹던 그였기에 이번 항복은 기사로서, 지휘관으로서의 모든 것을 내다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언짢았다.

그렇기에 ‘절반의’ 충성선언을 함에 있어서도 경어를 생략해버렸다. 카나반을 향한 충성 자체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붉은 나무’를 포함한 모두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무릎을 꿇고 있지만, 결국 너희 모두가 그저 나에겐 수단임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 붉은 나무는, 그런 자신을 그대로 품어버린다. 무례함을 꾸짖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위축되어 굽히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눈앞의 거한을 품어버렸을 뿐이다. 제아무리 둔감한 인간일지라도 그의 미소와 어깨에 얹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거짓이 아님은 알 수 있다. 이런 느낌이 너무도 생소했기에, 어윈은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잠시 내리 앉았던 환호성과 고함이 다시금 성을 뒤흔든다. 어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부하였던 병사들을 향해 로빈의 손을 잡아 들어 보인다. 그 체급 차이 덕분에 로빈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지만, 왕으로서의 근엄함보다 더욱 값진 것을 얻은 순간임을 알았기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건, 남편을 되돌려 받기 위한 지나의 손짓이 있고 난 후였다.


“맘에 들어?”


지나가 귀엽게 웃으며 새빨간 혀를 삐죽 내민다. 로빈은 그녀가 묻고 있는 게 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의 환호성, 굳은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는 란다와 의원들. 굳이 모두 둘러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물론이지.”


“그럼-”


“근데 우리 바로 복귀해야 돼.”


느슨한 입가를 유지한 채, 미간을 구기는 지나.


“잉? 왜?”


그에 로빈은, 남들은 볼 수 없는 깊이로 긴 한숨을 내쉰다.


“벤 때문에.”




==================




어둠이 내리깔린 숲속. 잔잔한 바람과 그에 실려 오는 희미한 흙내음만이 가득한 그곳에, 달빛처럼 반짝이는 소녀가 앉아있다. 새하얀 원피스 외엔 그 무엇도(심지어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건 쌀쌀한 밤공기에 대한 걱정이 아닌, 근원을 알 수 없는 따스함뿐이었다. 숲을 품고 있는 그녀의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그녀의 뒤에 있는 거대한 야수로부터 알 수 있었다. 털의 색깔을 주변의 어둠에 맞춰 짙은색으로 치장한 그 야수는 기다림에 지쳐 턱을 괸 채 반쯤 졸고 있었다. 그러나 야수의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서 숲의 밤공기를 맞이하는 중이었다.


“.......”


야수의 귀가 쫑긋 일어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야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일어서려고 하는 야수를, 여인은 새하얀 손을 들어 제지한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송곳니 따위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다. 살랑살랑 밤바람을 타고 소녀의 앞에 내리앉은 씨앗은 곧바로 싹을 틔웠고, 싹은 곧바로 얇은 줄기들로 성장한다. 마치 수십 일에 걸쳐야 할 시간이 초 단위로 압축되어 진행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여러 갈래로 나뉜 붉은 줄기들은 서서히 굵기를 더해가며 주변의 성목보다 높게 치솟았고, 여인의 허리보다 굵은 뿌리를 사방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그 뿌리가 닿는 곳마다 새로운 줄기와 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그 존재 자체가 숲의 근원인 것처럼.


[Ash K’an Dao 미트라블루스. 안녕, 나의 딸아.]


그리고 줄기의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인의 형상. 이슬처럼 반짝이는 기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검붉은 눈동자가 작은 드루이드를 향한다.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운 모습이었지만, 여인은 넋을 놓고 올려다보는 대신 바닥에 엎드려 존재에 대한 예를 표한다.


“미트라블루스, 숲의 수호자 진, 어머니를 영접합니다.”


[그래, 진. 나의 딸. 네 목소리가 리벨리움의 파도 속에서 들려오더구나. 어쩐 일이냐?]


대답하기에 앞서,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숲의 사도, 세뮈엘의 거대한 시선을 올려다본다.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시여, 우선 제 죄를 고백하려 합니다. 저는 그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숲을 불태우는 것을 방관했고, 더러운 피와 화염이 숲을 더럽히는 것을 방관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비명은 나 또한 들었다. 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더구나.]


질책이 아니다. 원망도 아니다. 하지만 진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하지만 그는 끝내 승리를 얻었습니다. 피와 희생이 뒤따르게 하면서도 그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자신의 이름으로 짊어지려 합니다. 어머니, 진정 그는 당신에게 패배를 가져다주는 존재입니까? 제 악몽이, 정녕 그의 존재 때문입니까?”


진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알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숲의 사도에 대한 의심.

그녀의 축복을 받고, 그녀의 뜻을 받는 드루이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세뮈엘은 인자한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


[그의 패배가 곧 카나반의 패배가 아니듯, 그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가 아닌 법이란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오직, 가련한 나의 아들을 위해 자기 존재 이상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뿐이지. 그에게 의지하는 바가 점점 많아질수록, 파멸은 빠르게 다가오게 될 게다. 나의 딸, 너의 악몽도 영원히 지속되겠지.]


“저에게 곁에서 직접 보고, 직접 판단하라고 하셨죠. 저는 제 이성을 믿어야 합니까? 악몽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제 판단을 믿어야 합니까?”


[네 악몽은 그 뿌리를 뽑는 것 외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 하지만 그 뿌리는 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정반대의 편에서 비롯된 ‘악의’. 미안하다, 나의 딸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전에 주었던 조언 말고는 없단다.]


“.......용서하세요. 이것이 제 선택입니다. 제 형제를 운명에서 배제하는 건 저의 몫이 아닙니다.”


[형제라, 재미있는 표현이구나. 너는 그에게 그런 끌림을 느낀 것이냐?]


“모르겠어요, 그저....... 잘 모르겠어요.”


비록 팔의 형상은 없었지만, 진은 숲의 사도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괜찮다, 나의 딸아. 너의 믿음대로, 너의 느낌대로 가도 좋아.]


“하지만......., 하지만 그는 오해할 거예요. 어머니를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 데 필멸자의 손을 빌리는, 그런 치졸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은 그저 제가 떼를 썼을 뿐인데-”


[그가 생각하는 바는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내가, 아니,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 됐을 운명에 대해 너무 가벼이 생각했던 것 같구나.]


진이 고개를 든다.


“......네? 그게 무슨 말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짧은 탄식과 함께 짙은 하늘을 올려다봤을 뿐이었다.

“.......설마.”


[왜 그러느냐?]


“.......아뇨, 아니에요, 어머니. 그저.......”

진의 시선이 반대쪽 하늘, 남쪽을 향한다.

“제 시험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




“정말 오랜만의 귀환이군요.”


오캄푸스가 턱뼈를 들썩이며 웃는다. 물론 들뜬 기분은 망자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팔루뎀으로 귀환한, 불쌍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꿈에 그리던 아르다르로의 귀환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은빛 성벽, 회색도시 아르다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물론 벤은 그런 감상을 맛볼 수가 없었다. 저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얼굴을 구기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카니아.”


그의 부름을 받은 카니아가 말을 몰아 곁으로 다가온다.


“애들 군장 풀고, 휴가 주라는 거지?”


“.......네.”


“뒤처리는 남편이랑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 일에만 집중해.”


“네, 고마워요.”


물론 카니아와 토우칸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그쪽 방면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벤은 카니아의 말대로, 자신의 앞으로 닥쳐온 일에 집중하면 된다.


“병원이나 먼저 가보는 게 어때?”


가만히 멈춰선 벤의 뒤로 로브를 둘러쓴 고도가 다가온다. 어색하게 끝났던 마지막 대화를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이런 고도의 태도는 벤의 입장에선 새로울 것이 없었다.


“병원? 뭐 때문에?”


“무릎 말이야.”


“.......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벤은 그제야 잊었던 통증을 기억해내며 자신의 왼쪽 무릎을 내려다본다. 치유마법으로 감염과 통증을 막아내고 있긴 했지만, 영원히 절뚝거리지 않으려면 치료가 우선이다.


“목발 짚고 법정에 서봐야 동정표를 얻기 위한 수작질이라고 생각할걸.”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 안 해. 이번 원정에 동참했던 기사와 마법사, 병사들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


벤은 고도의 바닷빛 눈동자를 돌아본다.

그녀답지 않은 친절함이다. 하지만, 벤은 이렇게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럴까?”


“언제든지 증인석에 서줄게.”


고도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한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쉬기나 해. 내 걱정하지 말고.”


“누가 네 걱정한데? 이대로 통합군이 해체라도 되면 그간 내 경력은 인정받지도 못할 거 아냐. 제대로 하라고.”


“예예, 그러시겠죠.”


뾰로통한 얼굴의 고도가 지나쳐가고, 그 뒤를 안식을 향해 게걸스럽게 몰려가는 병사들이 따른다. 회색도시는 평화로웠다. 그들이 어떤 지옥을 거쳐 왔는지, 그리고 어떤 희생이 있는지 도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병사들의 들뜬 분위기는 성문을 넘지 못했다.


“.......?”


뒤늦게 다가온 벤은 병사들이 멈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뒤돌아보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카니아로부터 휴가에 관련된 전파를 들었다면 이런 분위기일 리가 없을 터.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길을 터주는 병사들과, 그 끝, 성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긴 원정,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심이라곤 그의 온기만큼이나 담겨있지 않은 인사말의 주인공은 ‘대사제’ 레기라 독트리스. 벤은 어렵지 않게 그 굳은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네요.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그리고 두 기사님도.”


벤의 마지막 말은 대사제의 뒤를 따르고 있는 두 교회기사를 향해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나와 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빠르게 식어간다.


“검성님, 제가 왜 나와 있는지는 잘 아시겠지요.”


대사제의 점잖은 말에 벤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에서 내리려는 찰나,


“이게 무슨 짓이냐?! 일국의 검성을 성문에서 연행하겠다고? 이 무슨 무례인가?!”

카니아의 영력이 담긴 목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진다.

“다시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 와라! 검성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이딴 수작을 누가 모를 것 같나?!”


“자, 자, 카니아, 진정하세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기세인 그녀를 제지한 것은 다름 아닌 벤 본인이었다. 그는 말을 몰아 카니아의 앞을 막아서고, 천천히, 느긋하게 목발과 함께 땅으로 내려선다.

“괜히 길게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죠. ‘왕명’이잖아요?”


“그렇습니다.”


왕명이라는 단어에 노골적으로 억양을 준 벤과, 그에 지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대사제 레기라. 결국, 벤은 절뚝절뚝 걸음을 옮겨 레기라를 지나쳐 두 교회기사의 사이로 들어선다. 그 와중에, 벤은 고도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병원은 개뿔.”


라고 웃으며, 벤은 고도에게서, 그리고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다.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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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7) +12 16.10.03 548 14 16쪽
249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6) +5 16.09.28 470 15 16쪽
248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5) +10 16.09.23 432 13 17쪽
247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4) +8 16.09.18 508 15 19쪽
246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3) +10 16.09.13 511 13 18쪽
245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2) +10 16.09.08 458 14 13쪽
244 (23막) 네 눈물 속에서 나를 본다 (1) +7 16.09.03 511 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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