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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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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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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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86)

DUMMY

벨린 데 란테가 제복 단추를 풀어 그녀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까트린은 낯선 남자의 손길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까트린은 상처를 보이기 민망했다. 왼쪽 쇄골 아랫부분. 그곳을 남에게 보여주려면 젖가슴 위까지 같이 드러났기 때문에 총탄을 적출하고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사실 까트린 데 세비아노 대위는 그간 의사의 말도 잘 지키지 않았다. 그녀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태연히 몸을 움직이고 다녔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기병대 막사를 돌아다니며 기병대원들에게 꿱 소리를 지르고 다녔기 때문에, 가뜩이나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던 그녀의 기병대 부하들은 아예 무시하고는 했다.

그 와중에 벨린 데 란테와 격렬한 싸움까지 했으니, 그녀는 은근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다.

벨린 데 란테가 붉게 물든 그녀의 붕대에 얼굴을 댔다. 냄새를 맡는 것일까.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뚝뚝하게 말했다.

"상처가 곪지는 않았군. 그래도 몸을 소중히 여겨야지, 데 세비아노."

까트린은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

"붕대는 매일 갈았어. 네가 상관할 게 아니라구."

그러나 벨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할아버지로부터 게르만 계통의 혈통을 물려받은 그녀의 속살은 하얗고 매끄러웠다. 그 하얀 피부때문에 바닷물과 피로 더러워진 붕대가 더욱 섬뜩해보였다.

그가 탄약 가방에서 총기손질용 아마포를 꺼내어 입으로 부욱 뜯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사정했다.

"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어, 데 란테."

"넌 이미 나와의 결투에서 지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네 몸은 내 것과 같지."

벨린이 총검을 이용하여 까트린의 어깨를 감은 붕대를 잘라내어 풀었다. 그리고는 상처가 덧나거나 벌어졌는지 확인하고서는 아마포를 이용하여 여러 번 감기 시작했다.

까트린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여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야릇하면서도 좋은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검을 들이대며 싸운 남자였는데, 그 남자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그 감각은 그녀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벨린이 아마포 붕대를 여러 번 감고 매듭을 지어주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매만지고 있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까트린이 나지막이 말했다.

"살롱 데 이스타나에서 네가 나를 밀지 않았다면, 정말 그 총탄이 내 가슴을 꿰뚫었을까?"

벨린이 갈색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가 입고 다니던 흉갑 만큼이나 너도 한번 뚫리니 속절이 없군."

그가 붕대의 매듭을 지으려다 손을 멈췄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벨린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갔다. 그녀가 무언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기나 긴 화해의 순간 끝에, 서로를 위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지며 무언가 맞닿으려는 그 찰나에...

마차 소리가 정적을 깼다. 두 남녀는 서로의 몸을 포개어 앉은 채 고개를 돌려보았다.

삼각모를 쓴 사내가 두꺼운 천으로 지붕을 씌운 마차를 몰고 다가오고 있었다. 벨린 데 란테가 벌떡 일어났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도 가슴부분이 풀어진 기병대 제복 단추를 잠그려고 애쓰며 긴장한 채 섰다.

마차를 탄 금발머리 사내가 말없이 손짓을 했다. 조안 데 아스티아노였다. 그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벨린이 피워놓은 모닥불 앞까지 몰았다. 먼지가 한 가득 일어났다.

마차가 멈춰섰다. 제복 차림의 조안 데 아스티아노가 밝게 웃고 있었다. 순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이 앳된 총사는 감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동방회사군 병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는 수장을 착용했고, 모자와 총마저도 동방회사군의 것이었다.

"잘 있었어? 정탐은 잘 됐고?"

벨린 데 란테가 마치 모욕이라도 받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그때까지도 조안은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헝클어진 머리로 가슴의 단추를 잠그려고 애쓰는 까트린 데 세비아노를 발견하고서는 서서히 웃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조안이 마차에 내리며 말했다.

"너 복장이 좀..."

"바닷물에 젖었지. 별 거 없었어."

벨린 데 란테가 모닥불을 발로 밟아 끄며 해명했다. 그럼에도 조안은 여 기병대원과 그를 교차해 바라보며 자기가 다 부끄럽다는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인데? 조안."

포장된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알레한드로 바레스가 밖으로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특이하게도 동방회사 직원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얀 가발도 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장부도 들고 있었다.

그 또한 그 어색한 분위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를 챈 것이 틀림없었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모닥불에 완전히 마른 기병용 재킷을 제복 위에 덧 입었다. 그리고는 이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날 겸 바닥에 떨어진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이윽고 조안이 어색하게 한마디 했다.

"우리가 좀 늦었지, 그치?"

"성공한 모양이군. 그 멍청한 동방회사군 순찰대가 잘 속아넘어가던가?"

"그럼 물론이지. 우리에게 자기네들 마차까지 줬는걸. 숙취 때문에 어지러워서 순찰소에 도착했는데도 별 일이 없었다구. 우리에게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무역구역으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암구어도 알려줬다니까."

"그거 좋은 소식이군. 어이, 알레한드로."

벨린 데 란테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거인 총사를 쳐다보았다.

동방회사의 상관 복장을 하고 가발까지 쓴 그가 상당히 우스꽝스러워보였다.

"안녕."

알레한드로가 인사했다. 벨린이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는걸. 어떻게 자네한테 맞는 옷을 찾았지?"

"운이 좋았지."

알레한드로가 덩치에 걸맞지 않는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다.

"자네가 살롱에서 귀족행세를 한 걸 응용해봤어. 마침 덩치 큰 동방회사 사원의 우두머리들이 있었거든. 준이사였나? 그 사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순찰대원들을 보며 크게 화를 내더라고. 암튼 그를 꽁꽁 묶어놓고 옷을 뺏는 건 어렵지 않았지. 가발쓰는 게 좀 가렵긴 하지만."

벨린이 총사대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후 다시 무장했다. 알레한드로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외곽 부두를 책임지는 동방회사 상관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 그 홀란드 무역선과 동방회사, 검은 옷을 입은 빌랜드인 사내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게 틀림없어. 상관에서 장부를 보니 매일 밤 그 38번 도크를 향해 막대한 양의 물자를 교역하더라구."

"지금 검은 옷 사내라고 했나요?"

기병도를 허리에 찬 까트린이 으르렁거렸다. 알레한드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까트린이 몸을 휙 돌려 자신의 말을 향해 다가서며 내뱉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

그녀가 말을 타러 뛰어 간 사이, 벨린이 마차에 탄 알레한드로에게 가깝게 다가섰다.

알레한드로가 수근거렸다.

"난 자네가 기절한 저 여 기병대원을 이끌고 길목에서 정탐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자네의 진정한 목적이 뭔지 알고 있었지. 보아하니 목적을 달성한 듯 싶은데?"

벨린이 피식 웃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가운데 하나지. 나하고 한 두 번 다녀보나, 척탄병?"

벨린이 탄약가방을 맨 채 마차에 오르며 투덜거렸다.

"정말 적군이 따로 없군.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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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나 주인공이나 때마침 등장한 두 총사가 웬수같을 듯.

그건 그렇고 올만에 연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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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베나레스의 총사(88) +19 08.04.12 4,475 1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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