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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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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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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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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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94)

DUMMY

벨린은 머스킷총을 들고 갑판으로 걸어나왔다. 거대한 돛대 그림자와 밤하늘이 아우라졌다. 칠흙같은 그믐날이었다. 갑판은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고, 선원들도 어둠 속에서 은밀히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할 따름이었다. 그 바람에 벨린은 들키지 않고 머스킷총을 든 채 계속 갑판 중앙으로 걸었다. 이런 날이라면, 두 총사를 구하러 간 까트린도 쉽사리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아스티아노만을 조용히 빠져나가기 위해 이 평저선은 극도의 정숙성을 발휘하여 신속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가의 히스파니아 해군 요새에 덜미를 잡히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오렌지공 마우리체호의 진행방향 오른쪽 시야에는 산 살바도르 해군요새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30미터 높의 두터운 성곽으로 둘러싸인 그 요새는 야간에 불법으로 출항하는 선박을 밀수선으로 간주하여 단속하는 임무가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빌랜드 마법사를 발견했다. 윌리엄 헨콕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에 가득한 수많은 별들, 전지전능한 마법사 멀린의 후예라는 이 빌랜드 마법사가 수많은 별자리들 가운데 하나를 예리하게 살폈다.

히스파니아 총사는 천천히 윌리엄의 뒤로 다가갔다. 그가 든 바인베스 32년식 강선파인 머스킷총이라면 먼 거리에서 그를 저격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위험을 감수하고 마법사의 등 뒤로 바짝 다가선 것은, 저 빌랜드 마법사가 동방회사와 연루된 혁명의 실체를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에서였다. 대체 무슨 음모이기에 거창하게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벨린은 그 비밀이 무척 궁금하던 차였다.

히스파니아 총사와 빌랜드 마법사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남짓했다. 벨린은 조심스레 다가섰다. 머스킷총의 조준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파도에 들썩거리는 배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신중히 움직였다.

벨린 데 란테가 발걸음을 멈췄다. 배의 갑판이 서서히 좌측으로 기울었다. 배가 암초지대를 피해 왼쪽으로 선회하는 듯했다.

그때, 빌랜드 마법사가 혼잣말을 하듯 정적을 깼다.

"오늘 별자리는 흉하군. 북극성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

"내 어머니도 종종 점을 쳤지. 별자리 대신 카드점이긴 했지만."

빌랜드 마법사가 천천히 뒤로 돌아서 손을 들었다.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둠속에 가려진 알 수 없는 그의 얼굴이, 이 상황을 더욱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정돈되지 않은 벨린의 긴 머리칼이 맞바람에 이곳저곳으로 흩날렸다.

"한 가지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어, 마법사."

윌리엄이 물어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너희들, 이 역겨운 반란을 리노바티오(혁명)라고 부르는 거지?"

"왜냐하면, 데 란테."

벨린은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무뚝뚝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떠들었다.

"성전기사단에 의한 혁명을 믿는 자들은 우리 빌랜드인이 아닌 그 자들거든. 혁명을 준비하는 자네의 동포들, 정말 아라고른 황가를 미워하는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이사벨 1세 여제의 피를 물려받은 이사벨 데 아라고른 황녀를 미워하거나, 제국의 권력을 쟁취하고자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어하는 거겠지."

"그래서 자코모 다빈치가 쓴 내용으로 책을 찍어내고 그것을 너희들이 퍼트렸나? 동방회사의 사주를 받고? 설령 들킨다 해도 빌랜드인의 소행이라 할 수 있게?"

마법사가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미스터 데 란테. 남의 대화를 훔쳐듣는 경향이 있군. 내 조수들이 너를 가만히 놔두던가?"

"그 녀석들은 이미 죽었어."

벨린이 단단히 말했다.

"여기서 아스티아노만을 벗어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이 배가 그렇게 될 거고, 너 또한 그렇게 될 거다."

"갓뎀(god damn)."

빌랜드 마법사가 욕을 내뱉었다. 신을 모욕하는데 쓰는 그 단어는 빌랜드의 적국인 사람들에게 흔히 비하감으로 취급되는 그 욕이었다.

"궁금해서 미치겠군, 미스터 데 란테."

목소리가 한결 험악해진 윌리엄이 물었다.

"대체 왜 우리를 막으려고 하는 거지? 네가 이 나라 황녀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건 들은 바 있다만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추적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렇지 않아? 네 어미에게 물려받은 지고 살기 싫은 그 성미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고귀한 여인과 몸을 섞는 재미가 쏠쏠해서?"

벨린이 태연히 대답했다.

"히스파니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지. 여인과의 쾌락을 마다하지 않는 자는 영혼까지 차가운 신교도들 뿐이라고."

그때 윌리엄이 잽싸게 팔을 뻗었다. 날카로운 어조로 알 수 없는 주문을 내뱉으면서였다. 벨린 데 란테가 반사적으로 머스킷총을 격발했다. 무언가 강력한 것이, 순식간의 벨린의 어깨를 치고 나갔다.

펑! 하고 대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스킷총의 총구에서 푸른 광선이 발사되어 윌리엄의 어깨에 명중했다.

주변이 순식간에 푸른 광선때문에 환해졌다. 그것에 어깨를 명중당한 윌리엄이 푸른 빛에 물든 얼굴로 크게 고함쳤다.

"네 죽음은 명백하다, 데 란테!"

그와 동시에 윌리엄이 반사적으로 시전한 마법주문이 벨린 데 란테에게 반격을 가했다. 윌리엄이 방사한 적색 불꽃이 벨린 데 란테의 머스킷총에 맞았다. 총은 그의 손아귀에서 산산조각났고, 붉은 빛이 후광처럼 번쩍 폭발했다. 눈이 멀 정도의 강렬한 빛이 번쩍 터졌다. 벨린 데 란테가 총을 떨어뜨리고 반사적으로 코트 자락을 통해 눈을 가린 뒤엔 치명타를 입은 윌리엄은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시력을 회복한 벨린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손이 얼얼했다. 마법광선에 맞은 그의 강선총이 잿더미가 되어 바닥에 바스라져 있었다.

그러나 벨린 데 란테의 공격 또한, 빌랜드인 마법사는 물론, 이 평저선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말았다.

마법사의 등 뒤에 있던 돛대의 기둥이 반쯤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그가 발사한 마력탄이 마법사의 어깨를 날려버리고서는 돛대까지 맞춘 것이었다.

돛대가 한차례 기우뚱하더니 나무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갑판으로 쿵 하고 쓰려졌다. 벨린 데 란테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갑판으로 쓰러진 평저선의 거대한 돛에 깜짝 놀란 선원들이 아우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든, 돛대가 부러진 오렌지공 마우리체호의 속력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정숙성 또한 사라졌다. 두 사람의 마법이 부딪칠 때 울려퍼진 큰 소음과 섬광은 산 살바도르 요새에까지 포착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갑판 한 가운데 서 있는 벨린 데 란테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몸을 보호할 무기가 기껏해야 허리에 찬 권총 한자루와 권총으로는 발사가 불가능한 탄약가방 뿐이라는 것이었다.

젊은 총사가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어두운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몰려들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윌리엄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저 자를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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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군인이 뭐 그렇죠. 연재를 더 하고 싶지만...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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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베나레스의 총사(95) +29 08.05.12 4,219 14 8쪽
» 베나레스의 총사(94) +16 08.05.11 4,189 16 7쪽
95 베나레스의 총사(93) +34 08.05.04 4,423 14 9쪽
94 베나레스의 총사(92) +22 08.05.03 4,269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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