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988,801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8.07.27 17:11
조회
3,727
추천
11
글자
8쪽

베나레스의 총사(112)

DUMMY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다. 라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벨린은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스피놀라와 알레한드로, 자코모 다빈치 박사가 탄 황실 마차 안은 여러 혼란스러움을 가득 품은 분위기였다. 제노아 공국 출신의 자코모 다빈치는 자기 말 사투리로 뭐라 뭐라 이죽거렸고, 비위가 상한 알레한드로는 얼굴이 창백해져 성호만 긋고 있었다. 스피놀라는 턱을 괴고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이었으나 진지한 그의 표정에 무슨 생각이 담겨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벨린 데 란테가 창밖을 바라본 것은 황궁과 대학을 잇는 짧은 거리 풍경으로나마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아직 고요했다. 허나 그 소식이 백성들에게 공포된다면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일단 황녀는 어떻게 이 일을 받아들일까. 그녀는 분명 이 일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빈치 박사는 이미 황제에게 한 달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한 상태였다.

다만 이 일이 그녀의 신상에 우려되었던 것은, 여제 즉위를 앞둔 시점에서 황제의 서거가 너무 빨리 도래했다는 점이었다. 자코모 다빈치도 그 점에 화가 난 듯했다.

"폐하께서는 진작에 코마 상태에 빠져 계셨지. 생명을 유지하는 약으로 목숨을 이어나가셨던 걸세."

"코마 상태라구요?"

알레한드로가 깜짝 놀라 물었다. 히스파니아어로 코마 상태라 함은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회복불능의 뇌사상태를 말하는 거였다.

스피놀라가 설명했다.

"이것은 황녀의 최측근들만 아는 비밀이야. 추기경도 모르고, 총사대장과 나, 일부 시종들만 알고 있던 것이지. 황녀 마마, 아니 여제 폐하께서 진정 믿으시는 이들만 이 사실을 알아."

"그렇다면 폐하의 생명을 억지로 이어갔다는 소리군요."

알레한드로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피놀라가 말했다.

"황녀, 아니 여제께서는 즉위식을 치룬 후 폐하를 보내드리려 했지. 황제의 자리를 너무 빨리 인계받는 게 두려웠던 거야."

자코모 다빈치가 말했다.

"백성들이나 프란체스코 데 리베라 같은 자는 그것을 모르지. 그들은 그저 폐하께서 위독한 중병상태에 든 것으로 아신단 말이야."

"확실히 서거가 너무 일러요. 즉위식은 아직도 2주나 남았단 말입니다."

스피놀라의 말 한마디로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차는 어느새 아스틴 황궁의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가를 보던 벨린이 침묵을 깼다.

"즉위식을 앞당겨야 할 겁니다."

그가 묵묵히 말을 이었다.

"제국은 황제 자리의 공석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이젠 선택이 없어요. 마마께서는 삼일 내로 즉위식을 올리려 하시겠지요. 지금껏 황제의 자리가 3일 이상 빈 적이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요."

"만약 이게 자네들이 찾는 그 성전기사단 흉내쟁이들이 꾸민 일이라면..."

자코모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우연이든 음모든 좋은 기회인 셈이군. 히스파니아의 황실 계보는 복잡하니 적자인 두 공주들만 사라진다면 제국을 통째로 다른 왕가에 팔아먹을 수도 있겠지. 혁명이 아니라 나라 간의 계승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모두가 그 의견에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에우로파의 각국 왕실 계보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히스파니아 제국처럼 대국조차 황위계승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윽고 황실마차가 황궁의 정문을 통과해 본궁으로 나아갔다. 본궁에는 평소보다 배가 넘는 경비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머스킷총과 예장용 미늘창을 든 근위총사들과 용기병들이 궁전을 애워쌌다.

마차에서 내린 그들은 서둘러 궁전으로 들어갔다. 자코모 다빈치가 맨 앞장을 서서 제국 황제의 처소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노인의 몸으로 그렇게 빠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복도 곳곳에 국상을 상징하는 검은 정복과 리본을 단 귀족과 여러 신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소리에 분위기는 혼잡스러웠고, 황제의 처소로 향하는 문 밖이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누군가를 둘러 싼 분위기였다.

"비켜!"

다빈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잠시 귀족과 신사, 시종들, 근위대 군인들이 섞인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지팡이를 든 자코모 다빈치는 그들을 간단히 헤쳐나갈 수 있었다. 허나 자코모 다빈치의 전진도 일순간 어떤 큰 외침이 울려퍼지면서 멈추고 말았다.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다!"

신하들이 일제히 절을 했다. 모두들 그때까지는 긴가민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방의 맨 끝 부분, 서거한 황제의 침대 앞에 서 있던 이사벨 데 아라고른의 모습이 벨린 데 란테에게까지 드러났다. 이사벨 황녀, 아니 히스파니아 제국의 새 여제 이사벨 2세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침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선은 그녀를 보기 위해 도열한 신하들에게 향해 있었지만 숙인 고개를 단번에 들어올리지는 않았다.

검은 머리칼 위에 검은 망사로 만들어진 코이프를 쓴 여제가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제의 왼쪽 곁에 가슴에 훈장을 단 총사대장이 서 있었다. 황제의 서거가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은 이때, 여제 곁에서 그녀를 보좌할 거물 대신은 총사대장 뿐인 듯했다.

그러나 그녀가 원칙적으로 대신들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벨린 데란테를 비롯한 이들의 도착은 적절한 것이었다. 외로운 듯 서 있던 이사벨이 벨린 데 란테를 비롯한 자들을 발견한 순간, 총사대장이 의례대로 외쳤다.

"히스파니아의 새 황제 이사벨 2세 폐하 만세!"

"새 황제 폐하 만세!"

모두가 만세삼창했다. 말없이 서 있던 이사벨 여제가 고개를 들어 벨린 데 란테를 바라보았다. 이사벨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고, 신사들의 여제의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들은 일어날 지어다."

"황제 폐하시여."

스피놀라가 예를 보이며 일어섰다. 그녀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짐은 그대들과 지금 바로 할 이야기가 있다. 집무실로 가자. 이제는 섭정의 집무실이 아닌 알현실이 되겠지만 말이다."

세 총사와 황실 주치의가 일어났다. 황실 주치의는 당장 페란테 2세가 정말 서거했는지 확인하려는지 침대로 뛰어갔다. 이사벨 여제는 그를 내버려두었다.

그녀가 그들을 이끌고 집무실로 걷기 시작했다.

"벨린 데 란테."

여제가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벨린이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조만간 짐은 대관식을 치뤄야 한다. 그 소리는 짐이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추기경이 짐의 머리에 은빛 왕관을 씌워준다는 소리지."

"톨레도로 가시겠군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데 란테. 일단 어떻게 선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는지 은밀히 진상을 조사할 필요가..."

갑자기 이사벨 여제게 걸음을 멈췄다. 잠시 싸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녀가 누군가와 마주쳐서는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디에네 데 아라고른 황녀였다. 금발 머리칼에 검은 리본을 메고 있었다.


--------


집 컴퓨터가 망가졌는데 메인보드부터 파워까지 맛이 가서 10만원은 달라는군요. 쩝. 제 한달 월급보다도 많은 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베나레스의총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7 베나레스의 총사(115) +25 08.08.11 3,492 13 7쪽
116 베나레스의 총사(114) +23 08.08.10 3,387 14 10쪽
115 베나레스의 총사(113) +36 08.08.03 3,678 15 11쪽
» 베나레스의 총사(112) +19 08.07.27 3,728 11 8쪽
113 베나레스의 총사(111) +26 08.07.22 3,818 12 7쪽
112 베나레스의 총사(110) +25 08.07.20 3,862 13 7쪽
111 베나레스의 총사(109) +29 08.07.17 3,898 10 7쪽
110 베나레스의 총사(108) +17 08.07.15 3,867 12 7쪽
109 베나레스의 총사(107) +17 08.07.14 4,007 10 10쪽
108 베나레스의 총사(106) +21 08.07.12 4,261 12 8쪽
107 베나레스의 총사(105) +26 08.07.05 4,360 12 7쪽
106 베나레스의 총사(104) +28 08.06.29 4,116 12 9쪽
105 베나레스의 총사(103) +29 08.06.22 4,195 13 10쪽
104 베나레스의 총사(102) +30 08.06.15 4,193 13 10쪽
103 베나레스의 총사(101) +19 08.06.14 4,110 14 8쪽
102 베나레스의 총사(100) +44 08.06.08 4,572 12 9쪽
101 베나레스의 총사(99) +34 08.06.01 4,786 11 10쪽
100 베나레스의 총사(98) +32 08.05.24 4,579 14 10쪽
99 베나레스의 총사(97) +30 08.05.18 4,398 13 8쪽
98 베나레스의 총사(96) +22 08.05.17 4,222 14 7쪽
97 베나레스의 총사(95) +29 08.05.12 4,219 14 8쪽
96 베나레스의 총사(94) +16 08.05.11 4,188 16 7쪽
95 베나레스의 총사(93) +34 08.05.04 4,423 14 9쪽
94 베나레스의 총사(92) +22 08.05.03 4,269 12 9쪽
93 베나레스의 총사(91) +23 08.05.02 4,156 15 7쪽
92 베나레스의 총사(90) +20 08.04.23 4,360 16 7쪽
91 베나레스의 총사(89) +19 08.04.20 4,330 16 8쪽
90 베나레스의 총사(88) +19 08.04.12 4,475 16 9쪽
89 베나레스의 총사(87) +16 08.04.09 4,341 14 7쪽
88 베나레스의 총사(86) +25 08.04.06 4,505 1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