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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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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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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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07)

DUMMY

"너를 죽이려고 왔다."

사나이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일을 매우 자주 해왔는듯, 마치 서류를 처리하는 듯한 사무적인 태도였다. 벨린 데 란테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그가 대뜸 목숨을 거둬가겠다고 선포한 습격자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호전적인 반응이었다.

갈색머리 총사가 강선파인 머스킷총을 들어올렸다. 그를 죽이려고 미행한 암살자들이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아들었다. 왼쪽과 오른쪽 두 사나이는 레이피어를 뽑았고 가운데 사나이는 아무런 무기도 뽑지 않았다.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모양이었다.

반면 벨린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는 검자루에 손을 대지도, 허리춤에서 권총을 찾아 뽑지도 않았다. 오직 총신이 짧은 머스킷총을 앞에 총 자세로 들고 있을 뿐이었다.

암살자들의 대장이 말했다.

"벨린 데 란테 대위. 너는 우리의 대의를 거스르고 있다."

"너희들의 대의가 뭔지 알아."

벨린이 이죽거렸다.

"기껏해야 나라를 뒤엎어 잇속을 챙기갰다는 얄팍한 수작 아닌가?"

"우리는 일개 장사꾼이 아니야."

암살자들의 대장이 응수했다.

"너는 무력과 머리만 믿고 까부는 한량에 불과해, 데 란테. 너 혼자서는 이사벨 황녀의 황위를 지킬 수 없어. 많은 이들이 이 일에 가담하여 명예와 사활을 걸었다. 이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왔고 절대로 실패할 수 없어."

"덤비시지."

벨린이 자신있게 한마디 던졌다. 암살자들의 대장이 충고했다.

"신사답게 검을 뽑아 싸우는 게 좋을 것이다. 그깟 머스킷총 한 자루로 셋을 상대하겠다는 건가?"

"내 검은 망가졌어. 세뇨르 아사시노(암살자)."

벨린이 간단히 말했다. 암살자들의 대장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 거리에서 머스킷총의 정확도는 매우 뛰어났지만, 장전이 오래 걸리는 머스킷총의 특성상 한명을 쏘아죽이면 나머지 둘이 달려들어 죽임을 당할 게 뻔했다.

벨린이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인 채 오른손으로 머스킷총의 플린트락 장치를 뒤로 젖혔다. 왼손은 탄약가방에 가까이 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암살자들의 대장이 부하들이 들릴 수 있도록 작게 말했다.

"놈은 검을 쓰지 못하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머스킷총에 장전된 총탄 한발로 세 명과 맞설 리 없지."

두 암살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신의 검술과 순발력과 운을 믿었다. 총사대 대위와의 거리는 기껏해야 5미터 남짓. 놈에게 돌진하다 한명이 저격당해 쓰러져도 머스킷총 정도는 검으로 충분히 제압하여 찔러 죽일 수 있었다.

세 암살자가 눈빛을 교환하나 싶더니. 일순간 양쪽의 두 사나이가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벨린 데 란테가 총을 겨눴다.

조준을 피하기 위해 두 사니아가 각각 좌우측 대각선상으로 돌격했다. 허나 한쪽은 조준을 뿌리칠 수 없었다. 암살자들이 발자국을 세번 때기도 전에 날카로운 눈매로 총을 조준하던 갈색머리 총사가 머스킷총을 쏘았다. 연기와 함께 번쩍 하는 불꽃과 총성이 울려퍼지더니 조준을 피해 힘껏 도약하려던 왼쪽의 사나이가 반사적으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오른쪽 암살자가 박차를 가했다. 돌격상태에서 레이피어의 찌르기 공격은 상대에게 치명상를 가할 수 있었다. 더구나 레이피어를 든 사나이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표적은 결코 머스킷총을 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탄을 사용해버렸으니까.

그러나 벨린의 행동은 달랐다. 그가 재빨리 탄약가방에 손을 집어넣고 탄약포를 입으로 물어 뜯었다. 그럼에도 나머지 암살자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리 재빨리 재장전을 한다 해도 검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란 십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총강 속에 화약과 탄환을 넣고 꽂을대로 다지는데만 해도 최소한 10초는...

그러나 벨린 데 란테는 여지없이 그 예상을 비웃었다. 그가 재빨리 꽂을대를 빼내 총구속에 튕겨넣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암살자가 기합과 함께 레이피어를 내지르려는 그 순간.

벨린이 반사적으로 플린트락장치를 뒤로 댕기면서 지향자세로 방아쇠를 당겼다. 곧이어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뿜어나와 사위를 가렸다. 이윽고 화약연기를 헤치며 암살자가 쿵 하고 쓰러졌다. 머스킷총의 꽂을대가 가슴을 꿰뚫은 채로.

가운데 암살자가 상황을 파악하는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머스킷총 연기가 완전히 걷히자, 머스킷총을 든 채 서 있는 벨린 데 란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총사대 대위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여 적의 정수리를 관통한 꽂을대를 손으로 뽑았다.

가운데 암살자는 똑똑히 그 광경을 보았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곧이어 벨린 데 란테가 가방에서 탄약포를 꺼내려는 시늉을 하자, 암살자는 뒤로 돌아 어둠 속으로 잽싸게 사라져버렸다.

암살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리노바티오가 도래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벨린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머스킷총을 어깨에 기댔다. 죽은 두 암살자들의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그는 꽂을대에 심장이 관통당해 죽은 암살자의 몸을 앞으로 돌려 품안을 뒤졌지만 오직 책 한 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암살자의 품에도 똑같은 책이 들어 있었다.

벨린은 황녀의 심기를 건드렸던 성전기사단의 복수에 대한 책을 손에 들었다. 문득 이 책을 쓴 저자가 떠올랐다. 분명 이 책을 썼다는 그 의사겸 마법사는 이미 그와의 만남을 예견해왔다.

어쩌면 그 자가 이 혁명에 엃힌 중요한 실마리를 지니고 있을 터였다.

저 멀리서 횃불을 든 자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사람의 이목을 끌면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기에, 벨린 데 란테는 머스킷총을 어깨에 맨 채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벨린은 산 루첸가의 아지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복장이 형편없었다. 술냄새와 화약냄새가 베었고, 제복에는 적들의 피가 튀었다.

오랜만에 아리엘을 보겠군, 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오렌지공 마우리체호에서 일을 벌인 이후 그는 한동안 아지트로 돌아오지 않았고, 아지트의 관리는 전적으로 아리엘과 알레한드로 바레스에게 맡긴 차였다. 그가이 아지트로 가지 않고 아스티아노의 여러 여관을 돌아다닌데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동방회사의 추적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아리엘 때문이었다.

늦은 밤이었다. 사위가 어둠속에 고요했다. 벨린은 어둠을 틈타 저택의 문을 두번 두드렸다. 이윽고 한 여인이 등잔을 들고 와서 문을 열었다. 하얀 머릿수건에 허리를 조이는 분홍 보디스와 치마를 입은 갈색머리 여자였다.

"주인님."

"안녕, 아리엘."

술기운에 취한 벨린 데 란테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아리엘이 주인의 몸을 등잔으로 비춰보고서는 흠칫했다.

"다치셨나요."

"적의 피야."

"화약 냄새가 나요."

주인이 벌였을 총격전을 상상하며 아리엘이 말했다. 주인이 대꾸했다.

"이제는 검을 도저히 못 쓰겠어. 머스킷을 다루는 게 편해서."

아리엘이 사위를 살피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피가 뭍는 것을 감내하고 주인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그녀는 용감하게도 란툰반도와 다니치의 전쟁터에서 배운 습관대로 주인을 모시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실에 당도한 대로 피묻은 주인의 삼각모와 총사대 제복 코트를 벗기고, 쇼파에 뉘였다. 검을 찬 벨트와 머스킷총은 벽걸이에 걸었다. 주인의 두 장화를 벗기고 옷을 말리기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집어넣었다.

그녀가 장작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돌아오지 않으셔서 걱정했어요."

"살롱에서 우리를 방해했던 그 여자를 혼내주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그 여자 기병과 사랑을 나누셨군요."

아리엘이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상냥한 아리엘이 그렇게 건조한 어투를 사용한데는 며칠 동안 자신을 버린 주인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벨린이 노예의 말을 무시하며 물었다.

"누군가 찾아오지 않던가?"

"이틀 전에 주안 스피놀라 중령이 왔다 갔어요. 주인님이 돌아오시는대로 연락을 달라고 했어요."

벨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한 그는 잠시 만사가 귀찮았다. 잠을 푹 자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리엘이 그의 잠을 방해했다.

"그 금발머리 신사분은 많이 나아졌어요. 세뇨르 알레한드로가 몇번 찾아오면서 의사를 불렀는데 계속 요양을 취해야 한대요."

"그 친구 이름은 조안이야. 금발머리 신사가 아니라."

벨린 데 란테는 더 이상 아리엘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고 할 참이었다. 너무도 졸렸다. 내일 그가 염두한 새로운 일을 위해 이제 그만 잠이 들어야 했다.

그가 술기운에 중얼거렸다.

"내일 마법사를 만나야 해, 아리엘. 그 마법사가 정말 성전기사단에 대한 책을 썼는지 알아봐야하거든."

그러자 아리엘이 주인 앞에 다가섰다. 작게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어투가 어딘가 모르게 슬퍼보였다.

"오랜만에 저를 안고 주무시겠어요?"


-----------


아리엘이 한 10화만에 보이긴 했다만.. 체감상 느끼는 등장도는 훨씬 길겠죠. 연재주기가 1주일에 한번이니까요. 음.

헌데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인 이유가. 좀 있으면 등장할 주인공의 철천지 원수, 안젤라 노스트윈드와 연관되어 있어서.. 다음화에서는 잠깐 그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도록합시다. 그런 다음 마법사가 나타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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