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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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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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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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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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90)

DUMMY

"까트린!"

벨린 데 란테가 외쳤다. 두 총사로서는 벨린이 그런다는 게 놀랄 일이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좀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두 총사마저도 동방회사군의 발포명령에 넋놓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그 순간, 총사들이 본 것은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말을 몰아 뛰어오르는 장면이었다. 그와 동시에 머스킷총이 일제히 발사되었고, 콩볶는 듯한 연속사격 소리와 함께 불꽃이 번쩍했다.

머스킷총의 연기가 자욱해졌다. 그 거리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비명소리도, 총소리도, 말울음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벨린 데 란테가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가 머스킷총에 총검을 장착하고서는 다른 총사들을 앞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기적이었다.

바닷바람에 걷힌 연기 사이로 선형 대열의 가운데 축이 보였다. 그 사이에 보인 것은 선형 대열을 짖이뭉개긴 기병이었다. 머스킷보병 여럿이 군마의 발발굽에 치여 쓰러졌다.

차마 말 한마디 꺼낼 틈도 없이, 총사들 모두, 그녀가 무사한 것이 기적적이라고 여기던 그 찰나였다.

가발을 쓴 동방회사군 지휘관이 권총을 꺼내 기병도로 총검을 쳐내는 까트린에게 쏘았다. 총탄은 그녀를 맞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탄 군마의 목 부분을 뚫고 지나갔다. 급소를 공격당한 말이 허우적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까트린이 같이 쓰러져내렸다.

"크윽!"

그녀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며 신음소리를 냈다. 쓰러진 그녀를 동방회사군이 포위하여 총검을 겨눴다.

총사들이 그녀를 구하고자 뛰어가려는데, 구석에서 나타난 동방회사군이 사방에서 그들을 포위했다.

“정지!”

그들이 장전된 머스킷총을 겨눴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과 5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라면 머스킷총도 충분히 정확했다.

벨린이 가장 먼저 두 손을 올렸다. 리본장식이 달린 삼각모를 쓴 동방회사군 지휘관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벨린이 웃었다. 동방회사군 장교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우습나?"

말이 끝나마자 동방회사군 병사가 뒤에서 개머리판을 휘둘렀고, 뒷목을 가격당한 벨린 데 란테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 * *


벨린 데 란테는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뒷목의 뻐근함이었다. 가벼운 뇌진탕이었다. 충격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쇠사슬이 달린 수갑을 차고 있는 것도 늦게 알아차렸다. 불쾌한 기분이 엄습했다.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다. 파도소리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넓은 천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단순한 천이 아닌 사각 돛이었다.

“깨어났군, 히스파니아 총사.”

누군가 벨린의 어깨를 확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다. 벨린 데 란테는 그 어색한 히스파니아어를 구사하는 사나이를 똑똑히 보았다.

검은 옷 사내였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엄숙한 느낌이 나는 프록코트를 차려입은 불온서적 유포 사건의 수괴였다.

빌랜드인의 부하가 벨린을 돛대에 묶었다. 벨린은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락없는 배의 갑판이었다. 마스트위로 나부끼는 홀란드 국기하며, 오렌지공 마우리체호의 갑판임에 틀림없었다.

벨린은 그 자리에서 그 검은 옷 사내의 용모를 또렷이 보았다. 그는 깡마른 체격에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사내였다. 나이는 이미 중년대에 접어들었는지, 얼굴에는 주름살이 져 있었다. 히스파니아인이 보통 생각하는 전형적인 빌랜드인의 특징을 닮은 그런 사나이였다.

“통성명부터 하지.”

그가 어색한 억양의 히스파니아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윌리엄 헨콕 박사다.”

“발음이 좋지 않군.”

벨린이 유창한 빌랜드어로 말했다. 빌랜드인이 흥미로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빌랜드어를 할 줄 아나?”

“옛 연인이 가르쳐줬었지.”

벨린이 간단히 대답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마우리체호의 선상이군."

"그렇다."

빌랜드인이 인정했다. 그가 뒷짐을 쥔 채 갑판을 서성거렸다.

"동방회사가 너희들의 처리를 골치 아파 했지."

"보아하니 너희들...“

벨린이 말했다.

“성전기사단의 재림을 믿는 미친놈들은 아니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는데 참 좋은 전설 아닌가? 제국을 칭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윌리엄이 웃어보였다. 벨린도 덩달아 웃었다.

“우리를 어떻게 추격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미스터 데 란테?”

“내 이름을 아는군.”

벨린이 파안대소하며 순순히 말했다.

“아스티아노의 어느 여관에서 멍청한 너희 부하 가운데 하나가 마우리체호의 선원이라고 둘러댄 모양이더군. 마우리체호가 동방회사와 제휴를 맺은 홀란드 무역선이란 걸 알았을 때 참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희들의 동방회사가 빌랜드 인과 연루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단 말인가?”

“나는 동방회사를 믿지 않았다. 오늘 일로 그것이 입증된 셈이지.”

벨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판에 있는 선원들이 출항하려는 모양이었다. 이미 돛은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올라 당장이라도 항구를 벗어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윌리엄 헨콕이 말했다.

“그렇다면 동방회사가 너희를 과소평가한 셈이군.”

닻이 올라가면서 오렌지공 마우리체호가 출항을 시작했다. 배에 속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칠흙같이 어두운 바다 속으로 서서히 나아갔다.

윌리엄이 차갑게 말했다.

“너의 동료들은 선창에 가두어놓았다.”

“그 여성 기병대원도 있나?”

“물론. 동방회사 입장에서는 너희들을 직접 죽이는 것보다 실종된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게 훨씬 유리하지. 우리와 동방회사의 비밀을 알고 있을 테니까. 하여튼.”

윌리엄이 벨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우리와 같이 빌랜드로 가 줘야겠다. 미스터 데 란테. 30년 전쟁 때 너에 대한 재미난 소문을 들은 바 있지. 빌랜드 마법사의 한 사람으로써 말하건데, 너는 나에게 흥미로운 대상이야. 히스파니아 총사와 사이프러스 마녀의 혼혈이 쉬운 조합은 아니지.”

배는 점차 항구와 멀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아스티아노만을 벗어날 작정인 듯했다. 아스티아노만 인근은 암초도 없어서 도항사의 도움 없이 빠른 속도로 약진이 가능했다. 이 속도라면 1시간 후면 아스티아노만을 빠져나갈 기세였다.

윌리엄이 위쪽 갑판으로 올라가서 선장과 조타수에게 뭐라뭐라 이야기를 했다. 그때, 히스파니아 총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말해줄 게 있다. 미스터 윌리엄 헨콕.”

윌리엄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벨린이 냉랑한 어투로 단정지었다.

“황녀마마의 이름을 걸고 장담하건데, 이 배는 아스티아노만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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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휴가 끝. 푹 쉬다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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