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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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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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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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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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95)

DUMMY

빌랜드 마법사의 목소리는 알 수 없는 마력에 격앙되어 찌렁찌렁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의 명령에 벨린 데 란테를 포위한 적들이 검을 들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벨린이 날카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윌리엄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명령을 받든 빌랜드 선원들이 단창과 커틀라스로 무장한 채 뛰어들어왔다.

벨린은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 누구라도 가장 먼저 덤비는 녀석이 표적이 될 터였고, 빌랜드 선원 하나가 기합을 지르더니 단창을 내밀어 찌르려고 했다. 빌랜드어로 하프스피어라고 부르는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는 짧은 창이었다.

그가 냉랑한 얼굴로 팔을 뻗어 권총을 발사했다. 창을 든 선원은 정수리에 구멍이 난 채 쓰러져내렸다. 다른 선원들이 뒤를 이어 그를 덮쳤다. 반면 벨린에게 이젠 근접전을 수행할 무기가 전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장실에서 사브레를 찾아 무장하는 거였다만, 후회해봤자 늦은 뒤였다. 손으로 검을 막는 기적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저들에게 둘러싸여 난자당할 판이었다.

그때 벨린 데 란테의 뇌리에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계획이 있었다.

그는 재빨리 탄약가방을 열어 남은 약포 네 개 가운데 하나를 손에 쥐어 입으로 물어 뜯었다. 빌랜드 마법사가 시전한 마법의 여파 때문인지 슬슬 머리가 어질어질해졌지만, 손놀림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그가 권총의 부싯돌 격발장치에 뜯어진 약포를 바짝 갖다 댔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게 보이나, 마법사?"

기세 만발한 목소리였던지라 검을 들고 달려드는 선원들조차 순간 멈춰섰다.

벨린이 내뱉었다.

"사이프러스의 냉계마법에 어깨가 날아간 기분이 어때?"

"차갑더군."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꾸했다. 벨린이 받아쳤다.

"이것은 네가 맞은 것에 비해 갑절은 더 강력한 원소마법이다. 이 배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면 비겁하게 부하들 뒤에 숨지 말고 지금 당장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때?"

"재밌군. 다른 이도 아닌 네가 비겁하다는 말을 쓰다니."

윌리엄이 나직이 대꾸했다. 선원들이 주춤하며 히스파니아 총사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벨린이 약포를 부싯돌 격발장치로 더욱 바짝 댔다.

윌리엄이 말을 이었다.

"그러는 내 마법은 어땠는지 모르겠군. 미스터 데 란테."

"기껏해야 총만 날려버린 주제에."

"과연 그럴까?"

윌리엄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벨린은 그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마력을 느꼈고, 이윽고 그 빌어먹을 것이 뇌리에 알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어 판단력에 훼방을 놓기 시작하였다.

빌랜드 마법사가 설명했다.

"나는 흑마법사다. 우리 빌랜드인은 사물에 타격을 입히는 원소마법을 쓸 순 없지만 인간의 정신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저주를 잘 알고 있지."

벨린이 눈을 깜빡였다. 머릿속에서 숨겨졌던 무언가가 터지면서 휘몰아쳤다. 갑자기 그의 머리속이 서서이 알수없는 두통과 과거의 기억들로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윌리엄이 계속 말했다.

"나는 지난 한달 동안 히스파니아를 돌아다니며 성전기사단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지만, 사실 그건 일종의 저주였어. 책의 내용을 토대로 말하여 저주를 걸었지. 그 책의 내용이 히스파니아인들에게 퍼지며 네 조국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도록. 비록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 바람에 그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저주받은 대중들이 네 주인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다."

"웃기는군..."

벨린이 이를 악물고 간신히 대답했다. 허나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윌리엄이 계속 떠들어댔다.

"네 몸에 명중시킨 그 마법, 빌랜드어로 '트렙 오브 메모리'라는 이름이 있다. 네가 감추고 싶어 하는 아픈 상처를 과대하게 부풀려 심대한 타격을 주지."

빌랜드 마법사가 피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 마법을 내가 걸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보아하니 자네에게 여인이라는 존재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복수의 대상인 모양이군."

"그 따위 것..."

벨린 데 란테가 나직이 대꾸했다.

"옛날에 잊은지 오래야."

"천만에."

숨어 있던 윌리엄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빌랜드 마법사의 오른쪽 어깨는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없었다. 떨어져나간 신체부위의 상처는 꽁꽁 얼어버린 듯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윌리엄은 그 정도의 상처 따위는 앞으로 있을 즐거움에 비한다면 참을만 하다는 표정이었다.

윌리엄이 살짝 손을 들었다.

권총과 약포를 들고 있는 벨린 데 란테의 손이 바짝 굳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와 황녀의 관계는 참 흥미로워. 네가 그녀에게 접근한 데에는 권력욕도, 그렇다고 진정한 사랑을 할 욕심 때문도 아니었던 모양이군. 네 머릿속에 잠재된 음흉한 욕망은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에 빠트려 실컷 즐긴 다음 네가 받은 고통보다 갑절로 상처를 주고 망가뜨리는데 있는 거지. 그것도 여러명을 동시에, 그렇지 않아?"

갈색머리 총사가 고통에 일그러진 실소를 터트렸다.

"한때 그러려고 했던 적이 있지."

윌리엄이 한쪽 팔에 붉은 마력을 아지랑이처럼 품은 채 벨린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벨린 데 란테는 경직된 얼굴로 천천히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심장마비라도 걸릴 듯, 그가 서서히 입을 벌렸다.

마법사와 총사의 몸이 교차했다. 윌리엄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통스럽지? 너는 깊은 기억의 상처에 빠져 서서히 마비될 것이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냐. 10초만 지나면 누구나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거든."

고개를 숙인 벨린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빌랜드 마법사가 부하에게 명령했다.

"지금이다. 놈을 죽여."

날이 두꺼운 커틀러스를 든 선원이 벨린의 목등에 검을 들이댔다. 벨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어둠속의 가려진 그의 눈동자 속에는 욕망과 후회와 고통이 점철되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숙인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 두방울 씩 떨어졌고...

벨린이 믿기지 않느다는 듯 말을 뱉었다.

"안젤라."

선원이 그의 목을 치려고 했다. 그때, 빌랜드 마법사가 손을 들었다. 막 벨린 데 란테의 기억 속을 더듬은 그의 얼굴에 순간 황당함과 함께 흥미가 감돌았다.

"잠깐."

마법사가 재빨리 물었다.

"지금 안젤라라고 했나? 노스트윈드의 안젤라?"

벨린은 대답을 하지 않고, 숨을 헐떡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마법사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신의 이름으로 맙소사, 그녀와 네가 아는 사이였단 말이야? 그것도 이런 식으로 서로의 감수성에 상처를 남기면서?"

"그럼 너도 이제 알겠군."

벨린이 두 발을 딛고 버티며 일어섰다. 순간 마법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완전 방심한 듯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였다.

벨린 데 란테가 고개를 들어 마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 그날의 복수심이 증폭될수록 나는 한없이 힘이 생긴다는 걸."

벨린이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벌떡 일어섰다. 바로 그때, 저주가 무력화된 것에 놀란 마법사가 뭐라 내뱉으려는 찰나, 벨린이 그의 얼굴로 약포를 집어던졌다. 불의의 일격이었다. 약포 속에 들어있던 붉은 색깔의 고운 화약이 순식간의 마법사의 얼굴에 뒤덮여 시야를 가려버렸다.

이제는 총사가 웃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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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린의 잠재된 욕망이 저런 것일 줄은 짐작하셨나요?


비평과 추천 바랍니다. 허허.-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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