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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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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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1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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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08)

DUMMY

"오랜만에 저를 안고 주무시겠어요?"

정신이 혼미해진 벨린 데 란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이 천천히 소파의 빈 틈에 드러누웠다. 벨린이 그녀의 허리를 팔로 안았다. 전쟁터에서 자주 하던 대로였다.

술기운에 눈을 감은 벨린이 나직이 말했다.

"따뜻해."

"이제 저 안젤라가 되는 거겠죠."

주인에게 등을 보인 채 아리엘이 직소곳이 물었다. 벨린 데 란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이 든 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리엘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주인님이 저를 안고 주무시면 주인님이 저를 안젤라라 부를 때처럼 좋을 때가 없었어요. 차라리 정말 그 여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야 주인님이 진정 사랑하는 여인이 될 테니까요."

"나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여러 여자를 사랑에 빠트리고 다니시잖아요."

"그건 그녀들 사정이지."

벨린이 졸린 투로 대꾸했다.

"나는 하룻밤이 좋아. 그 밤을 위해 그랬을 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아리엘이 눈을 감은 채 조심스레 말했다.

"주인님의 잠꼬대에서 안젤라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겠죠."

벨린 데 란테가 침묵했다. 졸음이 달아난 듯 다시 눈을 뜨기는 했지만.

그가 아리엘의 허리를 더욱 붙들어 잡았다. 그녀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알고 싶어요, 주인님. 그 안젤라라는 여자와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벨린 데 란테가 눈을 깜빡였다. 아리엘이 그에게 과거를 묻는 일은 금기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벨린이 아리엘에게 과거를 묻는 것도 금기로 치부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 금기를 깨트리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관심을 끌려는 수작 같았다. 아리엘도 노예이기 전에 젊은 여인이니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에게 욕정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벨린 데 란테는 아리엘과는 절대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철칙이 있었고 그녀와 잠자리는 전혀 흥이 돋지 않고는 했다. 그건 뭐랄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리엘의 유혹이 통한 듯했다. 벨린은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히스파니아 여자에게서 볼 수 없는 냉혹한 면을 지니고 있어. 바다 건너 섬나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얼음처럼 차가운 기질이지."

"주인님께서 죽였나요?"

"아니."

"히스파니아인이 아니예요?"

"바다건너 왔지. 히스파니아에 내전이 발발했을 때 그 내전에 참여하기 위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전쟁을..."

그 말에 벨린 데 란테가 속삭임으로 답했다.

"그녀는 머스킷트리스야. 영혼이 담긴 총탄을 쏘는 마탄의 사수."

아리엘은 머리칼이 쭈뼛 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은 그 말을 끝으로 아리엘의 목등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는 평온하게 눈을 감은 채 아리엘의 머릿결을 쓰다듬고서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아리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의 잠꼬대를 들어야 했다. 안젤라라고 달콤히 속삭이는 주인의 그 목소리를.

* * *

치명상을 입은 조안 데 아스티아노는 일주일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아지트로 찾아온 알레한드로 바레스는 벨린에게 그간의 치료 경과를 설명했다. 실력좋은 외과의사가 수술을 통해 가슴에 박힌 총알을 성공적으로 적출했지만 피를 워낙 많이 흘려 영혼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단 것이었다. 그 소리는 즉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깨어나서 정신이 이상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을 내포했다.

벨린과 알레한드로는 침대에 누운 조안 데 아스티아노를 내려보았다. 앳된 얼굴의 그 총사는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총사대 제복 차림의 알레한드로 바레스가 분노에 떨며 말했다.

"복수를 하고 싶군. 당장 총사대를 이끌고 히스파니아 동방회사로 쳐들어가자."

"아직은 복수할 수 없어. 알레한드로."

벨린이 뒤를 돌아 나서며 말했다. 알레한드로가 따라나왔다. 그가 물었다.

"어째서지?"

"우린 놈들이 어떤 혁명을 꾸미는지 몰라. 그 주체가 동방회사만인지 아니면 다른 곳과 연관됐는지,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어."

"조안은 너를 위해 움직였고 네 말에 혹하다 이렇게 됐어."

알레한드로가 소리쳤다. 벨린이 거실로 나서며 그 말을 경청했다.

"척탄병이라면 당장에 동방회사놈들의 항구와 성채에 수류탄을 쳐집어넣었을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는 척탄병이 아냐. 자네는 한때 척탄병이라 그런 습관에 익숙해져 있겠지만, 총사는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아. 잘 알지 않나?"

벨린이 냉랑하게 대꾸했다. 알레한드로가 내뱉었다.

"웃기는군! 그래서 내가 조안을 구하려고 의사를 부르러 다니는 동안 넌 황궁에서 계집질이나 했던 거야? 일주일 동안 우리를 만나지도 않고?"

"그것도 내 일의 일부야."

벨린이 딱 잘라말했다. 알레한드로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가 문가에 서자, 아리엘이 문을 열어주었다. 벨린 데 란테가 그녀에게 당부했다.

"조안 데 아스티아노를 잘 돌봐 줘. 혹시 그 녀석이 깨어나서 너를 덥치려든다 해도 저항하지 마. 나 때문에 생사를 왔다갔다 한 녀석이니까."

"네, 주인님."

아리엘이 절을 하며 대답했다. 문가에서 아침햇살이 쏟아져내렸다. 벨린 데 란테는 삼각모를 바로 쓰고 앞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후광을 등에 지고 서 있었다.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른 주안 스피놀라 중령이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데 란테 대위, 오랜만이군. 자네를 계속 찾았네."

"세뇨르 스피놀라. 마침 이야기를 하려던 참입니다."

"그 리노바티오(혁명)와 시중에 퍼진 소문 때문이라면 우리 할 이야기가 많아. 자네들이 오렌지공 마우리체호를 침몰시킨 후 여러 골칫거리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그럼 저와 어디로 좀 가시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레한드로와 함께요."

벨린 데 란테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뒤늦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문밖으로 따라나온 알레한드로가 상황을 파악하고 가만히 섰다. 주안 스피놀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벨린 데 란테가 대답하며 앞장서 나아갔다.

"지식의 전당입죠."


-------------------


<img src="http://pds9.egloos.com/pds/200802/06/55/b0054255_47a991d725923.jpg">


주말 연속극에서 갑자가 일일연속극으로 되어가네요. 이게 다 휴가 덕이랍니다.


여기서 잠깐.

옛날에 머스킷트리스의 정체를 가지고 말씀하셨던 분이 있었는데, 그때 뜨끔한 이유는 정말 제가 그런 스토리를 꾸미고 있어서 그랬던 거죠.


그거 보고 바꿔버릴까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답니다. 잘 짜놓은 스토리를 변경하기 싫어서요.


p.s:혹시 등장인물 일러스트나 삽화 그려줄 분 있으신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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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7

  • 작성자
    Lv.96 720174
    작성일
    08.07.15 18:42
    No. 1

    요즘 읽을 거리가 생겨서 행복함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Nematomo..
    작성일
    08.07.15 18:43
    No. 2

    덜덜, 잘읽고갑니다~
    결국 조안+ 아리엘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1 키리샤
    작성일
    08.07.15 18:44
    No. 3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다정검
    작성일
    08.07.15 18:47
    No. 4

    잘 보고 갑니다. 계속 일일연속극 체제를;;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3 Like빤쓰
    작성일
    08.07.15 18:47
    No. 5

    으윽.. 아리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달여우
    작성일
    08.07.15 18:48
    No. 6

    잘 읽고 갑니다.

    군생활 열심히 하셔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자희
    작성일
    08.07.15 18:56
    No. 7

    하앍...
    삽화누군가 그려줬으면 좋겠다...
    전 그림같은건 구경도 못해봤기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ㅎㅎㅎ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眞魂
    작성일
    08.07.15 19:43
    No. 8

    드뎌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씩..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겨울바른
    작성일
    08.07.15 20:35
    No. 9

    강호정담에 가끔 가일님께서 일러스트 신청을 받으시는데, 한 번 부탁해 보시는 건?

    가일님은 슈네바이스의 작가분이시고, 일러스트도 공지에 많이 올라가 있으니 보시고 한 번 부탁해 보세요.

    아마 요즘 판타지 같지 않은 '정통'의 세계관을 가지신 두 분이니 금방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kazema
    작성일
    08.07.15 21:55
    No. 10

    잘보고 갑니당~~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몰과내
    작성일
    08.07.16 02:21
    No. 11

    기대하지 않았던 일일극 한편~ 너무 행복합니다 ^^

    요즘들어 벨린의 성격을 종잡을 수 없다고 느끼는 건 저만 그런가요? 명확하게 정의하기 힘든 것 같네요.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음, 벨린은 지금 주위 사람 모두를 하나의 장기말로 다루고 있나요? 모든 이들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가재괴물
    작성일
    08.07.16 05:05
    No. 12

    안젤라라는 여자때문에 몇명의 여자가 벨린에게 서러운 꼴을 당하는지........제가 총으로 쏴버리고 싶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뱃살이랑
    작성일
    08.07.16 09:34
    No. 13

    휴가라고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Gavin
    작성일
    08.07.16 10:52
    No. 14

    성격보다는 주인공 잠재의식. 즉 내면의 문제라 해야겠네요.
    주인공의 성격은 일관되게 그려가긴 했습니다만... 내면의 성향이 문제 같아요.

    주인공은 지금 겉으로는 안젤라를 증오하고 그래서 여인과이 사랑이란 걸 중요해서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간접 복수를 해대며 판을 벌이지만,

    내면속으로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거 같으니까요. 자신도 그것을 간혹 인식하기는 하지만 아예 무시해버리는 양상이죠. 그러니 안젤라 당사자가 나타나야할 일.

    주인공이 주변 인물을 기만하여 조종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여인들을 가지고 놀면서 생긴 인식인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是可
    작성일
    08.07.16 14:00
    No. 15

    안젤라가 누구더라.. ㅜ_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얼어가는불
    작성일
    08.07.18 03:13
    No. 16

    역시 안젤라가 적색 코트의 머스킷트리스였군요. 영혼을 담는 마탄수 멋지군요. 그리고 나중에 벨린과 한번 저격 전을 펼칠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백병전이라도... 부디 벨린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근데 김건모의 짱가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transistor
    작성일
    10.12.06 19:17
    No. 17

    어쩐지 그럴듯해 보이더라니 ㅋ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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