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행
안녕하세요.
아리아와 다인의 주위로 열 명의 후드를 뒤집어 쓴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뭐야?’
아리아와 다인은 의아했지만 기사들을 공격하는 이들을 보며 최소한 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기사들과 싸우다니, 대체 누구지?’
정체불명의 마법사들은 5명씩 돌아가며 마법을 캐스팅하는 차륜전(車輪戰)을 펼쳤다.
숫자는 기사들이 우세했지만 다수의 마법사들이 차륜전을 펼치는 지금, 기사들의 수적 우위나 상성의 유리함은 의미가 없었다.
차륜전술로 인해 마법사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캐스팅의 공백도 없는 상황.
뒤로 물러나 마법사들에게 시간을 줄수록 더욱 불리해지는 건 기사들이 될 터.
때문에 기사들은 오히려 더 저돌적으로 마법사들을 향해 검, 창, 화살을 날렸다.
마법사와 기사, 두 진영 간에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문득 기사들 가운데 창을 들고 있던 4명이 창끝을 한 곳으로 집중했다.
챙!
마법사들의 앞을 막고 있던 배리어에 균열이 생기며 공간의 틈이 벌어졌다.
그때 기사 중 한 사람이 그 틈 안으로 신속히 몸을 밀어 넣었다.
“흐윽!”
“끄헉!”
“으악!”
배리어 안에서는 그 한 명의 기사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세 명의 마법사들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가장 뒤에서 마법사들을 지휘하던 한 남자가 전면에 나섰다.
배리어 안으로 난입한 기사를 막기 위해 주문을 시전했다.
‘기가 라이데인(Giga Lighthein)’
기사는 자신에게 벼락이 내리치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 마법사를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악!”
한 발, 두 발, 세 발······.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기력을 참아내며 기사는 마법사의 얼굴을 칼로 내리쳤다.
솨악!
털썩!
마지막 일격을 가한 뒤 기사는 쓰러졌고, 기사에게 얼굴을 베인 마법사는 후드가 찢어지며 피로 범벅된 얼굴이 드러났다.
익숙한 얼굴.
“피, 필리스 선생님?”
아리아는 마법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카이저 마법학교에서 마력 운용 과목을 가르쳤던 필리스 선생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한 명의 기사가 자신을 희생해 마법사들의 진영을 흐트러트리는 동안 나머지 기사들은 어느새 거리를 벌였다.
마법사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탓에 추적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아리아와 다인은 서둘러 필리스의 곁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맞으시죠?”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에······.”
아리아와 다인의 질문에 필리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얼굴에 세로로 길게 갈라진 틈이 벌어지며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리아는 필리스의 얼굴에 생긴 검상을 보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치료 물약을 꺼냈다.
“선생님. 일단 이것부터 삼키세요.”
아리아가 건넨 치료 물약을 받아 마시는 필리스.
상처가 깊지 않은 데다 부상을 입은 직후 신속하게 치료를 했기에 상처는 금세 아물어 갔다.
필리스는 아리아와 다인을 향해 말했다.
“다행이다. 너희들이 무사해서.”
“서, 선생님.”
아리아는 필리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 계신 거에요?”
“사실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이곳에 오게 된 거란다.”
“네? 아버지가요?”
뜻밖의 상황.
“제국 요직에 있는 고위층과 두루 친분이 있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어디선가 첩보를 들으신 것 같더구나.”
“첩보요?”
“그래. 너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무리가 있다는 첩보 말이다.”
“아······.”
“벌써 이번이 네 번째라지?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번만큼은 널 도와야 한다면서 나를 몰래 보내신 거란다. 비록 이렇게 들켜버렸지만 말이야.”
필리스는 학교에서도 벤의 심복으로 두루 알려진 교사였다.
아마도 벤이 아리아의 위험을 감지하고 조용히 아리아를 돕기 위해 그를 파견한 듯싶었다.
“나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만 가야겠구나.”
“선생님 감사해요.”
“넵.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필리스는 아리아와 다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꼭 조심해라.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게 끝이 아니라 하시더구나.”
“네. 알겠어요. 아버지께 안부 전해주세요.”
필리스는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이제야 여유를 찾은 아리아와 다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
다인은 혼자 있는 아리아를 보며 물었다.
“왜 너 혼자 있는 거야? 카이와 아샤는?”
“걔네들이랑은 헤어졌어. 지금은 나 혼자 카르발로 가는 중이야.”
다인의 얼굴에는 갑자기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너 혼자 다니면 위험하지 않겠어?”
“다음에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또 너 부를게.”
다인에게는 냉정하리만큼 칼 같은 아리아의 태도.
다인은 그런 아리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언제 또 위험해질지도 모르고 또 그때가 되면 나를 부를 겨를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
“튜튼이랑 테티스도 불러서 같이 가지 않을래?”
* * *
오늘 낮까지 혼자 길을 가던 아리아는 어느새 세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아리아는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지만 야영지를 설치하는 등 귀찮은 일은 자신들에게 맡겨달라는 다인의 호언장담에 넘어가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아리아의 통신 구슬을 빌려 튜튼과 테티스에게 연락을 마치고 난 뒤 얼마 안 있다가 다인의 반지에서 빛이 나며 테티스가 나타났다.
신속하게 나타난 테티스와는 달리 튜튼은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크흠. 아샤는? 아샤는 어디 갔어?”
튜튼은 도착하자마자 은근히 아샤의 행방을 물었고, 아샤와는 헤어졌다는 아리아의 말에 크게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인은 자랑하듯 자신들이 끼고 있는 반지에 대해 설명했다.
카이와 아리아가 가진 워프 반지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이들도 이동 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리아는 자신의 반지를 내려다보며 지금쯤 카이는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했다.
다인과 테티스의 수다로 여행길은 꽤나 북적였다.
‘조금 시끄럽지만 외롭지는 않네.’
그들의 소란에도 아리아는 얼간이 삼총사와의 동행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때.
튜튼이 발걸음을 멈추며 친구들을 쳐다봤다.
“잠깐.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
아리아는 튜튼의 감지능력에 감탄했다.
‘나도 못 느꼈는데, 역시 정보부 대신의 아들이라 이건가?’
아리아와 친구들은 적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아리아를 포함해 세 사람은 마법을 캐스팅했고, 테티스는 품에서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몸을 한껏 낮췄다.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
꿀꺽!
직전에 위험한 일을 당했던 아리아는 한껏 긴장했다.
그러나 무성한 수풀을 헤집고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아샤였다.
“아, 아샤?”
아샤를 본 튜튼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여기 어떻게 온 거야?”
“호호. 겨우 찾았다. 아리아 잘 지냈어?”
이제야 아샤를 만난 튜튼.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가 넘어갈 때쯤 친구들은 야영지를 설치했다.
원래대로라면 카이가 했어야 할 일들을 세 남자들이 분담했다.
평소와 같이 식사 후 근처 물가에서 몸을 씻고 야영지에 모여 앉았다.
아리아는 이곳에 온 경위를 물었지만 아샤는 일부러 대답을 회피하는 듯했다.
‘이 녀석들이 듣는 곳에서 말하기가 좀 그런가?’
아리아는 세 얼간이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늦은 밤.
모두가 잠이 들었고, 아리아와 아샤만이 모닥불에 둘러앉아 있었다.
“아샤, 이제는 말해봐.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아샤는 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카이가 가보라고 했어.”
“카, 카이가?”
“응. 너 걱정된다고 가보래.”
“······.”
아리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너무 매정하게 카이를 떠난 것은 아닌지 조금 후회도 됐다.
“아리아.”
“으응?”
“넌 카이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문제······?”
아샤의 뜻밖의 질문에 아리아는 말문이 막혔다.
“내 생각에 카이의 문제는 그거야.”
“······?”
“절제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욕망.”
“뭐, 뭐라고?”
“말 그대로야. 자신이 얻은 힘을 마음껏 쓰고 싶은 욕망 그리고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
“욕망이라.”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어. 그런 욕망을 절제하기란 인간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지.”
아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소위 말하는 정신파괴라는 거 있잖아. 그건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강함에 취하는 거야.”
“그렇다면 카이도 그렇게 된다는 거잖아.”
“이대로 내버려두면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하······.”
“내 말을 잘 들어. 난 ‘이대로 내버려둔다면’이라고 말했어.”
“그, 그럼?”
“아리아, 넌 자신의 파괴적인 힘에 몰두하면서 점차 살육에 젖어 들어가는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잘 모르겠어.”
작아진 아리아의 목소리.
아샤는 어조에 힘을 주어 확신 있게 말했다.
“그건 옆에서 사람들이 붙잡아줘야 하는 거야.”
아샤의 말에 아리아의 눈동자는 크게 떠졌다.
“정신이 파괴되어가는 사람을 혼자 두는 게 가장 위험해. 그 사람을 구하고 싶다면 절대로 그 사람을 혼자 두면 안 되는 거야.”
“아······.”
“아리아. 물론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고 해서 모든 정신파괴를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단지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뿐이지. 하지만······.”
아샤는 아리아의 손을 잡았다.
“처음부터 포기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소중한 친구를 돕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샤의 말은 따뜻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아리아는 아샤의 말을 되새겼다.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
아리아는 밤새 카이를 생각했다.
* * *
카이는 하염없이 불을 바라보며 아리아를 생각했다.
변해가는 자신을 채찍질하던 아리아.
아리아가 자신을 탓할 때마다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없는 지금 카이는 자신을 위해주었던 아리아가 많이 생각났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힘을 쓰면 쓸수록 그 힘에 취해가는 자신을 보며 카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내 스스로 힘을 조절하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카이는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가 만약 누군가가 위험에 빠진다면? 그때도 힘을 조절해야 한단 말이야?’
카이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지금으로서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자신의 옆에는 아리아가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것.
카이의 옆에는 울프와 아이슬리가 있었지만 가슴 속 공허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아리아를 만나는 방법.
마법과 오만의 도시 카르발.
‘조금 더 서둘러야겠어.’
댓글로 달아주신 여러분의 의견을 참고하여 실력 향상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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