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안녕하세요.
개척 도시 아스의 서부 요새.
히히히히힝~!
“크악!”
복면을 쓴 수백의 무리가 요새를 습격했다.
목책(木柵)이 불탔고,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복면 쓴 무리에게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어, 어서 이 사실을 하운드 님께 알려라!”
요새의 입구를 지키던 군인은 서둘러 전령을 보냈다.
“이럇!”
허겁지겁 말을 몰아 요새의 안쪽으로 달려가는 전령.
입구의 수비를 책임지는 병사는 눈앞에 보이는 수백의 도적떼를 보며 간투사를 던졌다.
“치잇, 오질나게 많구만 그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도적떼들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어차피 목숨 건지긴 틀린 것 같고······.”
수비 책임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세워진 통나무 건물을 쳐다봤다.
“저거라면 어느 정도는······.”
산세가 험한 서쪽에 길을 내기 위해 사용할 폭탄.
그것을 임시로 보관하고 있던 창고였다.
책임자는 품속에 있던 부싯돌을 꺼내들었다.
“흐흣, 기왕 죽을 거 뽀대 나게 가야지.”
담배를 태울 때 사용하던 작은 종이에 불을 붙여 창고 안으로 던져 넣었다.
“잘 가라. 이 개X끼들아.”
콰과광!
“흐억!”
천지를 울리는 큰 폭발이 일어났고, 도적떼들 중 수십 명이 폭발에 휩쓸려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도적떼의 간부로 보이는 자가 두목에게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총 52명이 부상을 입었고, 10명이 사망했습니다.”
“크흠.”
두목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간부에게 말했다.
“모두 죽여라.”
“······네.”
간부의 명령으로 부상을 입은 도적떼들은 모두 목이 베어졌다.
“신속히 움직여라. 목표는 하나, 하운드와 그의 가족이다.”
도적떼는 빠르게 요새 중앙을 향해 내달렸다.
이곳 아스는 단순한 요새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매우 컸다.
규모만을 놓고 보면 흡사 하나의 도시를 연상케 할만 했다.
한참을 달리던 도적떼 앞을 기백의 병사들이 막아섰다.
성인 남자의 키보다는 조금 작은 길이의 장검을 손에 쥔 남자.
유리 하운드.
그가 도적떼를 향해 일갈을 날렸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개척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병사들을 습격하다니 네 놈들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도적떼의 두목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하운드를 쳐다봤다.
하운드는 도적떼를 향해 계속 꾸짖었다.
“네놈들도 처자식이 있을 테지.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라! 그리하면 너희들 산채에 있는 가족들은 건드리지 않으마.”
도적떼의 두목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으로 퍼져 자신들을 에워싸는 많은 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시간을 끌려는 목적이었군.’
하운드의 속셈을 파악한 두목은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타다다닥!
도적떼들은 수비군이 포위진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전방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하운드는 다가오는 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고수다.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움직였을 텐데 포위진을 이리도 쉽게 파악하다니.’
그리고 기백의 도적떼들이 각자 자신들의 행로(行路)를 유지하며 달려오는 모습.
‘일반 도적떼가 아니다. 분명 고도로 훈련받은 자들이야.’
하운드는 적들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모두 방어진을 구축하라!”
하운드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검에 마력을 흘렸다.
그의 검 크로스 가드(Cross Guard)에 박힌 푸른색 돌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운드의 검에 생성된 거대하고 날카로운 검기.
쾅!
수비군과 도적떼가 맞붙는 순간 병장기의 충돌음이 거세게 울렸다.
하운드는 검을 휘두르며 도적떼의 두목과 맞붙었다.
챙! 챙! 챙!
몇 번의 검을 섞어본 것만으로도 적의 실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보다 한 수, 아니 몇 수 위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계승의 돌이 아니었다면······.’
힘겹게 두목을 막아내던 하운드는 뒤로 물러나며 두목에게 말을 걸었다.
“네놈들의 움직임을 보니 일반적인 도적떼는 아닐 터. 어디서 보낸 놈들이냐?”
“······.”
하운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목을 노려봤다.
“설마 폐하께서······?”
두목은 하운드의 말에 반응하며 몸을 떨었다.
“내 말에 반응을 했다는 건 최소한 내가 알 만한 유력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로군.”
하운드는 검을 다잡았다.
“어차피 나를 잡는 것이 목적일 테지. 와라!”
도적의 두목과 하운드의 격전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마치 주변과 동떨어진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두 사람의 전투는, 아니 두목의 검술은 수준이 달랐다.
그는 속검(速劍)을 구사하며 하운드를 압박했다.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며 찔러 들어오는 살상법.
하운드는 그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검을 막아내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푹!
하운드의 왼쪽 어깨에 두목의 검이 꽂혔다.
“흐윽!”
그의 몸에서 뿜어진 피가 두목의 검을 따라 흘러 내렸다.
하운드는 자신의 검에 마력을 넣어 상대의 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까앙!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목의 손에 쥐어진 검이 두 동강 나버렸다.
자신의 검이 부러지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두목.
그때를 틈 타 하운드는 두목의 얼굴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솨악!
아주 짧은 찰나의 공격으로 두목의 복면이 땅에 떨어졌다.
드러난 두목의 얼굴.
하운드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 당신은······? 어쩐지 보통 솜씨가 아니더라니······.”
하운드는 자신의 어깨에 박혀있는 부러진 검신을 뽑아냈다.
“크흣, 전력을 다해도 힘들겠군.”
하운드는 온몸의 힘을 끌어 모으며 기합을 외쳤다.
“타핫!”
* * *
요새의 중심, 하운드의 저택.
젊은 부인과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기고 돌아오시겠죠?”
젊은 부인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럼. 아버지가 어떤 분이시니. 이번에도 도적떼들을 물리치고 돌아오실 거야.”
저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서쪽의 풍경은 붉게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한 말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여보,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우당탕탕!
시끄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부인과 아이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여, 여보!”
그곳에는 하운드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부인은 급히 하운드를 부축했다.
“여, 여보! 어찌된 일이에요?”
하운드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부인에게 말했다.
“크흑, 부, 부인. 어서 도망치시오.”
“도망이라니······.”
“이제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거요. 그러니 어서······.”
아이는 처참하게 상처 입은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흐앙~”
하운드는 부상으로 인해 주체하기 힘든 몸을 반쯤 일으키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머리에는 아버지의 핏물이 엉겨 붙었다.
“카이, 아버지 말 잘 들어라.”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우리 가문의 유일한 계승자다. 반드시 살아야 해. 알았니?”
“······네. 훌쩍.”
하운드는 자신이 사용하던 장검과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단검으로 크로스 가드에 박힌 푸른색 보석을 빼냈다.
“카이, 이건 천 년 동안 내려온 우리 가문의 보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버리면 안 돼.”
“······훌쩍, 네, 알겠어요.”
그때 저택의 정원에서 하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습격이닷! 습격이닷! 모두 피······ 흐억!”
뒤이어 몇 차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운드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자신의 손에 들려진 푸른색의 보석과 카이를 번갈아 보며 잠시 고민하던 하운드.
그는 결심한 듯 단검을 들어 카이의 복부를 찢었다.
“아악!”
“꺄아악, 여, 여보!”
카이와 부인의 비명소리가 방 전체에 울렸다.
하운드는 카이의 뱃속에 푸른색의 보석을 집어넣었다.
“부인! 내 서랍에 있는 치료 마법 주문서를 가져 오시오. 어서!”
부인은 서랍을 열어 주문서를 가져왔고, 하운드는 그것으로 카이의 상처를 치유했다.
“하아, 하아, 하아.”
카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 왔다.
하운드는 자신의 아들을 꽉 껴안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지켜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미안함······.
하운드는 보석이 빠진 장검을 들고 다시 문밖을 나섰다.
“부인, 카이를 부탁하오.”
부인을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하운드.
“내 사람이 되어 주어 고마웠소. 다음에 또 만납시다.”
“여보······.”
쾅!
하운드는 문을 닫고 나갔고, 부인은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녀는 서재에 있는 책장을 밀어 그 뒤에 있는 작은 공간을 열었다.
“카이 어서 이리로 들어가!”
저택의 시공 당시 설계자의 오류로 만들어진 빈 공간.
어린 아이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었기에 활용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책장으로 가려뒀던 보기 흉한 공간을 열어 그곳으로 카이를 집어넣었다.
“어, 어머니는요?”
“카이, 어머니 말 잘 들어.”
“······.”
“무슨 소리가 들려도 입 꾹 막고 있어야 해. 알았니?”
“······.”
“대답해! 어서!”
카이는 어머니의 다그침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은 카이를 꼭 안으며 말했다.
“넌 꼭 살아야 해. 사랑한다 아들.”
드드드득!
책장이 다시 닫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설컹!
“흐읍!”
털썩!
카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온몸을 떨었다.
‘어, 어머니······.’
얼마나 지났을까?
카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어느새 지쳐 잠이 들었다.
드르르륵!
책장이 열리고 강한 햇빛이 카이의 얼굴을 비췄다.
“으음.”
카이의 눈앞에는 검을 쥐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있었다.
“히익!”
카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네가 카이구나.”
남자는 카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차드 헤안이라고 한다.”
카이는 어리둥절해 하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차드······ 헤안?’
10년 전쟁의 영웅이자 제국 유일의 소드 마스터 차드 헤안.
제국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갓난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듣는 것은 차드 헤안의 이름이라는 말.
그는 제국을 대표하는 명성 높은 기사였다.
카이는 얼떨결에 헤안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소식을 듣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헤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얼굴을 굳혔다.
“어머니, 아버지는요?”
“······미안하구나.”
카이는 방을 둘러봤다.
어머니가 쓰러진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흩뿌려진 핏자국.
하지만 헤안이 정리한 듯 어머니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카이는 그저 멍하니 핏자국을 바라봤다.
그런 카이를 보던 헤안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혹시 다른 가족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군.”
“헤안님.”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차분한 카이의 어조.
헤안은 카이의 표정을 주목했다.
“말해보거라.”
“어찌 하면 헤안님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까?”
카이의 표정은 무겁고 진중했다.
헤안은 카이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분명 강해지겠구나.’
헤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카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낼 곳이 없다면 나와 함께 가는 건 어떻겠느냐?”
“······헤안님과 함께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다. 대신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내가 직접 검을 가르쳐주마.”
“직접, 검을······.”
카이는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도적떼를 생각했다.
‘내가 강해져야만이 뭐든 할 수 있어.’
카이는 결심한 듯 안광을 밝히며 대답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로 달아주신 여러분의 의견을 참고하여 실력 향상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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