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최근연재일 :
2024.09.01 23:20
연재수 :
219 회
조회수 :
11,473
추천수 :
32
글자수 :
1,131,441

작성
21.12.22 06:00
조회
55
추천
0
글자
12쪽

자백(5)

DUMMY

자, 그럼 본격적으로 말해서, 언제부터 조직을 사적인 일에 이용했냐고?

고난의 행군(1994년-1999년경)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공작금이 끊어져서 그랬소. 왜? 거기까지가 아니올시다.

조금 후엔 북으로 돈을 보내란 지령까지 떨어지더군. 왜 있잖소?

당시에는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몽땅 밀수꾼이었다니까. 1996년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이 담배밀수하다 체포된 채 추방된 거 기억 안 나오? 마약은 물론이라오. 우리도 엄연한 특수 외교관(外交官)이잖소. 외살관(外殺官)!


우리 조직은 돈도 없고 취직할 곳도 마땅찮고···.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일도 아닐 터. 밀수 대신 밀살을 한 것이요. 밀도살을.

그렇다고 개인적 욕심에서나 독특한 취향에서 사적인 집행을 감행한 건 더욱 아니라오. 이 모든 게 다 경영이 악화된 회사를 살려보려고 다른 사업에 진출했던 것일 뿐. 나름 다른 사람들의 원한 같은 것을 풀어주는 좋은 측면도 있었소이다.

개인사업 초반에는 남한 부자들의 개인 청탁을 해결해 주는 수준이었지 아마?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해결사 카페’라고 보면 된다오. ‘대신 돈 받아드림’이 아닌 ‘대신 죽여드림’을 모토로 내세운 깔끔한 청부살인(請負殺人)이로구나.

상당수 해결사 카페가 돈만 받아먹고 사기 친다는데, 난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엄수했다오. 초창기 대부분 고객의 해결대상은 변심한 애인이나, 돈이 급한데 빨리 안 죽는 배우자였소.

내친김에 남한 고위층 애로사항도 해결하기 시작했다오. 명분이 너무 좋았다니까.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

난 또한 업계 최초로 천수답(天水畓) 식 영농에서 벗어나 첨단농법을 도입하지 않았겠나! 국내외 범죄조직들과의 협업까지도.

당연히 공식적으로도 중국 기관을 개시(開始)로 하여 구(舊) 소련 및 위성국가들과도 일종의 MOU(전략적 업무협약)를 체결한 것이니라.

작업시스템 역시 공학적인 것과 생물학 또는 심리학적인 것, 이 밖에 인문학적인 것까지도 융합하는데 성공했소. 소위 융합경영이외다.

직원 중에서 여무명과 같은 걸출한 R&D 종사자들을 통해 최첨단 물질들이 개발되었지 뭐요. 특허를 제대로 받아야 하는데, 너무 아쉽고 안타깝소이다.

원래가 전쟁무기 개발 과정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이 탄생되듯이 치열한 생사기로의 현장에서 위대한 발명품들이 탄생하는 것인데···.

이러한 노력과 창의적 발상 덕분에 일감이 쌓여갔고,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밀려오더라. 어느덧 직원들이 12명으로 늘었소이다.


다들 일당백(一當百, The equal of 100 warriors)이요. 당연지사, 일당일(一當一)도 못 하는 잉여직원들도 존재한다만.

그러한 연유에서 그때그때 교체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이 직종은 노조가 없어서 너무 다행이라오. 윗선에서는 ‘남는 인력’인 그들을 알아서 하라는구나. 내가 다 알아서 직무상 사망으로 신속 처리하고 있소이다. 북한 공작원이기에 순직처리 되어도 보상금을 한 푼도 줄 필요가 없으니까. 이러니 매출이익이 차고 넘친지라. 넘 좋더라! 이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더냐?


지금은 빌라 한 동을 사무실 겸 사택용으로 다 쓰고 있지만, 창업초기에는 단독주택에 모두 모여 살지 않았겠소이까.

처음 입주한 위장 사무실도 허름한 빌딩 6층에 있는 흥신소였소.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었지 뭔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오르는데도 39계단을 올라야 했으니···.

그래서였을까? 주변 사람들은 우리 회사 직원들을 ‘6층 사람들’이라고 불렀다오.

6이란 숫자는 서양에선 불길한 숫자라던데? 6층이나 6호실에서 기괴한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면서 말이오. 쉿! 우리 6층에서도 남녀 직원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 마련. “좋니! 호 불어줘?”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왜 남 눈에 띄기 쉬운 흥신소를 택했냐고?

모르는 소리. 전직 경찰관 한 명쯤 고문으로 모시면 경찰정보를 ‘줍줍’ 할 수 있다니까.

예전에 북한에서 고위층 귀순자인 이한영을 피격할 수 있었던 것도 흥신소 덕택일 걸? 피해자 이한영(본명:리일남)은 김정일 둘째 부인 성혜림의 조카이자, 그 후 암살된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과 이종 사촌지간이어서 피살자 족보가 다소 복잡하더이다. 사건 내막은 이와 같소. 보자꾸나!

암살조가 흥신소에 이한영 행방을 알아보라고 맡겼더니, 흥신소 소속 전직 경찰관이 현직 경찰을 통해 타깃의 위치를 확인해 준 것이라오.

이 암살조를 북조선에선 ‘순호조’라 부르오. 대외연락부 대남공작과 소속 동무들이었는데, 복귀 후 영웅 칭호를 받고 간부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이올시다.


그렇다면 우리 식구들, 아니 우리 회사만 이처럼 개인 사업을 벌였던 것인가? 결코 아니라오. 그땐 북조선에서 내려온 다른 조직들이 다들 어려웠소.

알아서 먹고살아야 했소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하랍디다.

쉽게 표현하자면 장마당! 인간처리 장마당.

때로는 돈 많은 클라이언트가 여러 조직에 일을 맡겨, 현장에서 다른 조직과 맞부딪치기도 했다오. 불가피하게 서로를 향해 작업을 하지 않았겠나.

어슷비슷한 사례를 한 가지만 들겠소.

서해안에서 중간거점 역할을 하던 고정간첩 식구들이 그 지역 땅값이 뛰자, 허가도 없이 우리 나와바리인 강남 일대 아파트를 대량으로 매집했었소.

뻔하지, 뭘. 땅 팔아서 번 돈으로 아예 강남에 분점을 차렸던 게요. 그들은 역시 개성상인의 후예들답게 이재에 밝더라.

살인청부업계 최초로 체인점 확장을 노리다니! 난 놈들이었소. 원래 황해도 출신들인 그들은 지역배치를 받을 때 말투가 비슷한 충청도에 위치할 것을 명(命) 받았다고 하더이다.

그맘때 우리 회사도 창업(創業) 단계를 지나 수성(守城) 과정에 있었던 관계로 이와 같은 경쟁업체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업계 질서유지 차원에서도 참교육이 불가피했소. 남 존 일 시킬 필요 없잖소. 무도(無道)한 침략자들로 규정했거든.

다행히 이들 충남 당진 식구들, 즉 황해도 출신들은 충청권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조금 느리더군.

항상 긴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서울 식구들과는 역량 면에서 차이가 있었소. 우린 상도덕과 업계 예절을 제대로 가르쳤지 뭐요.

“지깟것들이 붙어봤자지.”

충청파는 자기들도 남파간첩 출신임을 숨겨야 하므로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고자 하더라고. 이거 원, 그 조직의 보스가 나서서 쇼부(勝負)를 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같이 먹고살면 되는 게 아님매?” 그러면서 돈을 내놓더군.

난 바로 세게 나갔소. 이제부턴 어차피 흥정이니까.

“이걸 먹으라는기요, 말라는기요?”

겉은 충청도이자 속은 황해도인 조직의 보스는 결국 각서를 쓰면서 자존심이라도 세울 요량으로 한마디 하더군. “다시는 서울로 안 두루오갓서. 썅.”

그리하곤 서울 땅을 두 번 다시 넘보지 않았거늘. 대신 수도권 개발 예정 지구에 투자를 하지 않았겠소. 남조선 혁명 열사들하고 몰래 짜고 말이오.

이자들이 이러려고! 이들이 곧이어 땅 부자가 된데 머문 것이 아니었소. 훗날 더 어마어마한 거부가 될 기회를 거머쥔 거라오. 자칫 잘못하면 이놈들이 명실상부한 새로운 수도권을 총괄하는 최고 조직이 될 판일세!

“음,···괴롭다. 우리만 쏙 빼놓고 말이지. 시골 무지렁이로만 알았는데 재테크의 달인이었구나.”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것이 한 가지 더 있소이다.

내가 처단한 보위부 상판대기에게 예전에 고문당하면서 동무들 명단을 불어버렸단 말이오.

선실 이모가 직접 이 땅에 씨를 뿌리고 정성스럽게 길러낸 인간병기들을 말하는 것이라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살기 위해서였소. 정말 불가피했다오.

이들은 이 땅 어디엔가 숨어 지내고 있고, 밀고자인 나를 노리고 있겠지? 그래서 자백할 게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밤이 너무나 두렵노라고.

나처럼 밤에 주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여성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수 있으나, 도심 건물 옥상 곳곳에서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시뻘건 십자가가 신경이 쓰인다오.

그랬었소. 북에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는 어릴 적 교회도 다니셨고,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밤에 몰래 성경책을 읽으셨소.

지금도 난 밤에 초롱불 밑에서 작은 성경책을 몰래 읽고 계시던 흰옷 입은 어머니 꿈을 자주 꾼다오. 그랬다오.

여기에 와서 들은 이야기인데 쉿!. 공화국을 창립한 그분의 어머니도 이름이 강반석이던데?

반석(盤石)은 베드로란 뜻이란 것도 여기서 이해하게 되었지. 심지어 그분 외삼촌이 목사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동무들은 아는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너무 달라 경악했던 것을. 한데 남한이나 북한이나 높은 분들 어머니 성이 강 씨인 경우가 많구나.

나 역시 성이 강이요, 이름은 ···. 이름은 병옥. 황공무지(惶恐無地)로소이다.


【듣다 보면 확 열 받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겐 양철북으로 유명한 대작가‘권터 그라스’가 다 늦은 나이인 2006년 자신이 과거 나치 친위대인 SS 대원이었음을 고백하여 독자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참말로 그의 자백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파장을 야기했어요.

이는 그가 그동안 좌파 평화주의자이자, 반전(反戰)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 좋고 아름다운 것에는 모조리 참여해 왔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행위는 실로 60년 만에 자백이었는데, ‘양파 껍질을 벗기며’라는 자서전 형식을 빌려, 죽기(2015년 사망) 전에 그간의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가 이미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에, 그간 독일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의 자격으로 우파진영을 야멸차게 공격한 인물이었기에,

1954년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59년 양철북으로 히트를 치고도 60여 년간이라는 긴 시간을 침묵했기에, 인간성 자체에 대한 많은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거기다가 책 내용을 놓고 보더라도, 자신은 당시 어린 10대에 불과하였고, 징집되어 나중에 친위대에 배치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런 점들이 뼈를 깎는 자기고백이라고 좋게만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책‘양파 껍질을 벗기며’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까면 깔수록 자꾸 뭔가가 나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평소엔 껍질로 꼭꼭 싸매고 있지요. 누군가 화끈하게 까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린 그분들께서 평소 죽순과 나물반찬만 먹고 사는 채식주의자로만 알았잖아요.

영어로 ‘eats shoots(죽순) & leaves(잎)’말이죠.

허나 다시 꼼꼼히 짚어보니, 콤마 위치가 틀렸군요.

‘Eats, shoots, & leaves’ 즉 뭔가를 막 처먹고는 들키자마자, 이건 적들의 음모라고 사방에 막 쏘아대더니, 튈 준비를 한다던데요?

그리하여 백성들은 위정자들의 존귀한 말에 숨은 콤마를 잘 봐야 해요. 그렇다마다요.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룡신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결백(2) 21.12.31 44 0 11쪽
39 결백(1) 21.12.30 46 0 12쪽
38 명백(5) 21.12.30 37 0 11쪽
37 명백(4) 21.12.30 36 0 12쪽
36 명백(3) 21.12.29 37 0 11쪽
35 명백(2) 21.12.29 38 0 12쪽
34 명백(1) 21.12.29 39 0 11쪽
33 담백(5) 21.12.28 44 0 11쪽
32 담백(4) 21.12.28 40 0 12쪽
31 담백(3) 21.12.27 43 0 11쪽
30 담백(2) 21.12.27 45 0 11쪽
29 담백(1) 21.12.26 48 0 11쪽
28 흑백(4) 21.12.26 46 0 12쪽
27 흑백(3) 21.12.25 47 0 12쪽
26 흑백(2) 21.12.25 49 0 12쪽
25 흑백(1) 21.12.25 44 0 12쪽
24 주인백(5) 21.12.24 46 0 11쪽
23 주인백(4) 21.12.24 45 0 12쪽
22 주인백(3) 21.12.24 46 0 12쪽
21 주인백(2) 21.12.23 50 0 11쪽
20 주인백(1) 21.12.23 51 0 12쪽
» 자백(5) 21.12.22 56 0 12쪽
18 자백(4) 21.12.21 56 0 11쪽
17 자백(3) 21.12.21 50 0 11쪽
16 자백(2) 21.12.20 49 0 13쪽
15 자백(1) 21.12.20 54 0 11쪽
14 고백(5) 21.12.19 53 0 12쪽
13 고백(4) 21.12.19 54 0 12쪽
12 고백(3) 21.12.18 66 0 12쪽
11 고백(2) 21.12.18 65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