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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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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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밀레니엄 힐턴 호텔 웨딩홀 그랜드볼룸.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연회장이다.

가온그룹에 호텔이 인수되면서 한층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웨딩촬영을 위해 조명 설계를 철저하게 계산하다 보니 아마추어가 아무렇게나 스냅 사진을 찍어도 쓸 만 사진을 제법 건질 수 있는 예식홀로도 유명했다.

대형 연회장답게 꽃길이 꽤 길었지만, 주변으로는 생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곳곳에 생화가 많이 장식되어 있다 보니 꽃이 뿜어내는 향기가 자연스럽게 홀을 가득 채웠다.

가온웨딩 컴퍼니가 운영하는 모든 직영 예식장은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사용한 생화를 잘 정리해서 하객들이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로비에 비치해둔다.

어차피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기에 서비스 차원에서 고객에게 나눠주고 있다.


와글와글.

북적북적.


결혼시즌이 아님에도 그랜드볼룸 로비가 결혼식 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심지어 각종 연예매체 기자들까지 모여들었는데, 그들의 카메라는 김혜주, 박중환, 송라원 같은 톱스타들을 담는데 여념이 없었다.

오늘 결혼식은 본래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신부가 한국의 대형 연예매니지먼트 업체 대표였기에 소속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총출동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우찬과 김민아의 결혼식이 화제가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지인 위주로 청첩장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협력업체나 업계에도 제한적으로 돌렸다.

헌데 자신들의 위치를 너무 낮게 인식했다.

글로벌 10위권의 보안회사 JHO Security Service 한국지부의 부지부장.

대한민국 3대 연예기획사 CHAN의 대표.

게다가 신랑 고우찬은 세계적인 갑부이자 할리우드 영화감독의 죽마고우다.

또 다른 죽마고우 황재정은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가온그룹 임원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날라리 포토그래퍼 김준우의 친구이기도 하고.

연예매니지먼트로 출범한 CHAN은 무주 락 페스티벌 개최 같은 공연기획, 다솜방송 예능프로그램 기획·제작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김혜주, 박중환 같은 톱스타 외에도 70여 명의 연예인들이 소속되어 있다.

충무로의 미래를 책임질 여배우로 첫 손에 꼽히는 송라원과 점차 인지도를 올려가고 있는 연극무대 출신 배우들이 수두룩했다.

또한 이전 삶에서 일찍 삶을 마감했던 배우들을 거의 모아 놨다.

류지호는 신인 배우들의 케어와 심리 관리 부분에 만전을 기하라며 신신당부하고 있다.

암튼 온갖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결혼식을 놓칠 연예매체가 아니다.

매체에 따로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찾아왔다.

JHO Security Service 관계자들도 대거 결혼식을 찾았다.

그들 중에는 데본 테럴 고문도 끼어 있다.


“결혼 축하해. 찬.”

“감사합니다. 마스터.”


고우찬은 데본 테럴을 master(사범)라고 불렀다.

홍 관장에는 ‘스승’이라고 꼬박꼬박 부르고 있다.

뭐든지 다 아는 친구 류지호가 그랬다.

관장(館長)은 도장을 운영한다는 의미에서 경영책임자 성격이 강하고, 사범(師範)은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에 국한 될 수 있다고.

사부(師父)는 고루한 유교적 뉘앙스가 너무 강하다고.

그래서 홍 관장을 삶의 지혜를 나눠준 은인으로 여긴다면, 순수한 우리 말 ‘스승‘이라 불러드리라고 했다.

너무 난 척 하는 것 같아 재수 없게 들렸지만, 고우찬은 그런 뜻풀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 들어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나래안전 신입사원 교육 강사들의 슈퍼바이저를 맡을 예정이야.”

“얼마나 머무시는데요?”

“반년.”

“자주 뵐 수 있겠네요.”


JHO Security Service 한국지부와 나래안전 관계자들이 축하를 건네고 빠지자, 류지호 덕분에 알게 된 충무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춘사영화예술상이야 뭐야?”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김재욱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던 박상은이 말했다.


“하여간 마누라를 잘 얻어야 돼.”

“우찬이도 어디 가서 안 빠져.”

“우리 결혼할 때도 이렇게 떠들썩할까?”


김재욱은 한국에서 가장 큰 복합미디어그룹 산하 영화사의 프로듀서다.

박상은의 경우는 다솜방송 버라이어티 채널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친분 있는 배우나 연예인이 하객으로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나 치든가 뒷골목에서 개나리나 떨 줄 알았는데.... 우찬이가 저렇게 잘 나갈 줄 알았냐?”


김재욱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하. 그래서 출세는 성적순이 아니라잖아. 친구 잘 두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다.”

“근데 우찬이 쪽 하객들은 죄다 조폭이냐? 다들 왜 저래?”


김재욱이 소리죽여 웃었다.


큭큭.


오랜만에 용연태권도장 출신들이 총출동했다.

고우찬의 대학 동기들도 떼로 몰려왔다.

수십 년 간 운동을 한 사람들이라 정장을 입혀놓으니 단연 눈에 띠었다.

마치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한쪽에는 현직 경호경비요원들이 모여 있고, 다른 쪽에는 현역 태권도인들이 모여 있다 보니 묘한 그림을 연출했다.


“우찬이가 결혼하니까 평소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다 만난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누구?”

“상은이 넌 아네모네 아줌마 잘 모르지?”


에티오피아에서 남편과 함께 커피 사업을 개척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채연지 부부도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범생이처럼 공부만 해서 모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번 가보긴 했어.”

“진짜?”

“지호하고 우찬이가 하도 난리를 쳐놔서 신포고에서 엄청 유명했거든.”

“다구리 당한 거?”

“전설이었지 뭐.”


검정고시 당시 주안에서 고우찬의 행적을 알고 있는 김재욱은 피식 웃었다.


“암튼 저 아줌마 남편이 인천의 유명한 건달이었거든. 마음잡고 에티오피아 가서 봉사도 하고 아네모네 커피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현지에서 하고 있어. 왔다 갔다 하기 힘들 텐데, 우찬이 결혼이라고 귀국했나봐. 웨딩비디오 사업할 때부터 인연 맺은 인천의 사장님들도 평소에는 못 보고 살지. 저기 변호사 누님도 그렇고. 독립해서 나가서 자기 사업하는 가온웨딩 선배들도 오랜만에 보는 거고.”


고성재는 아들이 어린 시절 신세졌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많이 초대했다.

축의금을 받았다면 꽤 많은 돈을 모았을 수도 있다.

축의금을 받는 부스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없이 사는 지인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본인이 막노동판 인생이었다.

누구보다 그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듯 고우찬 결혼식에 초대 받았다고 모두가 귀빈인 건 아니다.

사실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귀빈 축에 끼지 못했다.

귀빈 대접을 바라는 사람도 없었고.

VVIP 류지호가 손수 웨딩비디오를 찍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 오너가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는데, 감히 특별대우를 바라는 것도 우스웠다.


“예~ 김혜주 사인 받았다!”


결혼식 하객들은 연예인도 구경하고 사인을 받는 것만으로 먼 길 온 보람을 느꼈다.


“이뻐~”

“웨딩드레스 최고야!”


신부대기실에 많은 연예인들이 다녀갔다.

웨딩비디오를 촬영하고 있는 류지호와 스냅샷을 찍는 김준우를 보고 놀란 얼굴을 했지만, 신랑·신부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걸 듣고 납득했다.


“영화감독이 결혼비디오를 찍어주면 작품 나오는 거야?”


김영찬처럼 농담을 건네는 지인도 있었다.

이서영 배우가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김 대표, 막상 결혼 하니까 싱숭생숭 하지?”

“모르겠어요, 언니. 그냥 좀... 실감이 아직 안 나는 것 같아요.”

“버진 로드에 올라서면 그때 실감이 날 거야. 나도 그랬거든.”


신부대기실에 잠시 류지호, 김준우와 셋만 남게 되자 김민아가 물었다.


“내가 문제인 걸까?”

“원래 다 그래.”

“원래?”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같이 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것도 평생을.”


류지호 본인 역시 결혼식을 경험해 봤다.

웨딩비디오를 찍으며 수많은 신부를 경험해보기도 했고.


“너무 심각하진 마.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으면 부케 던질 때 엉뚱한 곳으로 날린다.”

"부케 실수하면 안 돼! 소연이가 얼마나 실망하겠어?"

“잠은 좀 잤어?”

“싱숭생숭해서.... 막 도망칠까 생각도 했다니까.”

“예식 시작되면 어차피 인사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갈 걸. 정신 차리고 보면 아마 비행기 안 일거다.”

“경험해본 것처럼 말한다?”

“시나리오 쓰려면 간접 체험을 많이 해봐야지. 내가 두 번째로 투자한 영화가 <결혼이야기>였잖아. 원래 결혼식이 마냥 즐거운 게 아니라더라. 잡념도 많이 들고, 걱정도 되고.”

“내가 이러는 거 신랑이 알면 섭섭해 하겠지?”

“우찬이도 똑같이 싱숭생숭 할걸?”


류지호 혼자서 웨딩비디오를 촬영하진 않았다.

가온웨딩 스튜디오의 전문 기사들이 두 팀이 왔다.

웨딩비디오 사업은 예전만 못했다.

물론 가온웨딩 컴퍼니는 웨딩비디오만 하지 않는다.

결혼종합 컨설팅 업체다.

매출은 여전히 업계 최고다.

이 시기는 결혼컨설팅 업체가 부부 한 쌍당 대략 180만원까지 마진을 남길 수 있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나름 합리적인 결혼비용을 썼다고 생각하는 예비부부들이 많다.

오산이다.

제 아무리 기본만 하겠다고 해도 모든 고객은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인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웨딩산업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가온웨딩 컴퍼니는 결혼정보회사부터 결혼식 전 과정과 최종적으로 여행사를 통한 신혼여행 서비스까지 가치사슬(Value Chain)을 완벽하게 이룬 유일한 업체다.

다만 저가용 결혼상품이 없어서 진입장벽이 좀 있다.

중소업체들과 가격경쟁하며 치킨게임 하는 것이 싫었던 류지호는 초창기부터 고급 브랜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는 연예인 결혼식 원스톱 서비스는 물론 부유층 컨설팅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암튼 본식 촬영은 가온웨딩 스튜디오의 기사들이 했다.

류지호는 주로 스케치 영상과 지인들 축하영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류 감독은 장가 안 가?”

“친구들 다 보내고 가려고요.”

“그래도 그렇지, 류 감독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맏형인데.”

“조만간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해 볼게요.”


술만 마셨다 하면 주사가 그렇게 심했던 고성재였다.

지금도 그 술버릇을 완전히 고치진 못했지만, 예전에 비해 음주 횟수가 줄어서 꼴사나운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온웨딩 스튜디오 리모델링이나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인테리어 공사를 따서 하던 (주)미추홀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인천을 대표하는 중견 건설회사로 성장했다.

사실 (주)미추홀 직원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신랑·신부가 글로벌 기업 오너 류지호와 친구인 것을 알고 있어 그러려니 했지만, 하객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은 것에 더욱 놀랐다.

그랜드볼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태반이 영화나 TV에서 보던 연예인이었고,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어디서 많이 봤다 하고 인사하고 보면 무슨 협회 회장, 가온 계열사 사장,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등 으리으리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결혼식 하객들만 놓고 보면 고성재 부자는 인천 유지 정도가 아니라 전국구 인맥을 자랑하는 대기업 회장님이었다.


- 아, 아~


황재정이 사회자 단상 앞에 서서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 잠시 후 결혼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하객분들께서는 모두 테이블에 자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 하는 결혼식이라 어설퍼야 마땅하다.

전혀 아니었다.

황재정도 그렇고 신랑 친구들은 명색이 웨딩업체 창업자들이다.

결혼식이란 행사에 이골이 나있다.

사실 결혼식 자체는 가벼운 행사다.

단지 거기까지 가는 여정이 고될 뿐.

예식장을 예약하는 것부터, 예물을 준비하고, 하다못해 청첩장을 주문하는 것까지.

거기다 드레스며 웨딩 촬영, 신혼여행에.

가장 까다로운 집 마련을 생각하면 싸움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일이다.


-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려면 잘 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고우찬 군은 살면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됐을 때 제가 우찬군에게 그랬어요. 지금부터라도 죽어라 태권도만 파라. 그러다보면 나중에 네가 뭐든 되어있을 거라고. 여러분 보세요. 우리 우찬군이 얼마나 잘난 청년으로 성장했는지.....


주례는 고우찬이 유일하게 스승으로 모시는 홍 관장이 했다.

대학 은사들이 섭섭할 수도 있었지만, 태권도계의 큰어른이라 내색을 하지 못했다.

결혼 축가는 김민아의 친구들이 불렀다.

단연 공다연의 실력이 돋보였다.

그 외에도 인기가수가 결혼 축가를 불러 하객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조성문 아냐?”

“‘굿바이 마이 러브‘의 조성문? 이야, 이건 뭐.... 급이 다르네.”


김민아가 가수 본인을 찾아가 부탁하기도 했지만, Aram 프로덕션의 최준영이 조성문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인연이 있었다.


“지호는 나중에 위트니 휴스톤이 축가 불러주는 거 아냐?”

“마이키 잭슨이 노래 불러 줄지도 모르지.”

“마이키 잭슨하고도 친하대?”

“할리우드에서 그렇게 잘 나간다는데 친하지 않을까?”

“영화계는 몰라도 가수들까지 친할까?”

“하여간 지호 저 놈 인맥의 한계가 어디일까?”

“지호 결혼식 보면 알게 되겠지.”


세기의 결혼식까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성대한 결혼식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김민아가 입은 새하얀 드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더 아름답게 빛났다.

당연했다.

현 시점 가장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이니까.

성대한 결혼식답게 하객들도 유명인들이 많았다.

부케는 김민아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올 가을 김준우와 식을 올릴 예정인 신소연이 받았다.

몇몇 친구들은 연예인 지인까지 초대해 성대한 뒤풀이 파티를 열 길 기대했겠지만.

친한 친구들끼리 조촐한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김재욱이 손수 차를 몰아 신랑신부를 공항까지 에스코트했다.

김준우가 툭하고 류지호에게 물었다.


"넌?"

"...뭘?"

"결혼 안 하냐? 언제까지 도 닦을 거냐?"

"도 닦긴...."


황재정이 끼어들었다.


"곧 한계가 닥치지 않겠냐?"


류지호와 김준우가 동시에 말했다.


"너나 잘 해!"


민망할 법도 하건만 황재정은 뻔뻔했다.


“모태솔로의 근자감이냐?”

“뭔 개소리래?”


김준우는 친구들의 삶이 달라진 걸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우찬이가 제주도도 아니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갈 줄이야.”

“우찬이가 너보다 해외는 더 많이 돌아다녔을 걸?”

“용 됐네. 우리 우찬이.”


고우찬과 김민아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일찍부터 하와이에 가온웨딩 컴퍼니 지점이 개설되어 있었다.

하와이 지점의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부부가 영어를 잘해서 여행에 큰 어려움을 없겠지만, 보름간의 긴 신혼여행 동안 자질구레한 일을 해줄 코디네이터를 고용했다.


‘아씨... 눈물 날 뻔했네.’


건달들과 어울리다가 살인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살았던 고우찬은 이곳에 없다.

약간은 건들거리고 현명하지 못하게 처신할 때도 많지만.

어쨌든 고우찬은 좋은 반려를 만났다.

곧 2세도 생긴다.

평행세계든, 일장춘몽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꿈에서 깬다한들 류지호는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가장 친한 벗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게 되었으니까.


✻ ✻ ✻


아카데미 시즌을 앞두고 류지호가 미국으로 돌아왔다.

전하영 부사장과 심선미 피디와 함께 왔다.

류지호는 두 사람을 JHO/Working Title Films(JWT)의 LA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리자 체이시(Liza Chasie) 할리우드 오피스 사장을 소개시켰다.

NYU 필름 스쿨 출신인 리자는 한때 ParaMax Films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뉴욕을 근거지로 하는 다양한 프로덕션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6년에 JWT의 생산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한 후 최근 LA 사무실을 책임지는 사장이 됐다.

현재는 로맨틱 코미디 <윔블던> 제작에 관여하고 있다.

ParaMax의 자회사로 편입된 JWT는 두 명의 공동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WT2 Productions이란 자회사를 두고 있었는데, 유명한 <빌리 엘리어트>, <새벽의 황당한 저주> 등을 제작한 프로덕션이다.

WTTV(Working Title Television)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도 자회사로 두고 있다.

JWT는 모회사 ParaMax Entertaiment의 승인을 받지 않고 3,500만 달러 예산을 자의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이상의 고예산 영화 제작이 막혀있진 않다.

언제든 모회사와 의논해 고예산 영화도 제작할 수 있다.

현재 JWT는 영국 런던의 본사와 LA 사무실로 이원화 되어 운영 중이다.


"어떻게 된 게 JHO 총수도 없는 전용기를 계열사 대표가 타고 다닐 수가 있어요?“


전하영 부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오너도 아니고 JWT의 공동대표가 비즈니스 제트기를 타고 런던과 LA를 오가며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내놓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했고, 매번 퍼스트 타는 거나 비즈니스 제트기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 것이나 비용 측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작년에는 호주에 지사를 설립해서 3개국을 돌아다니려면 전용기가 있으면 좋지요.”


작년 봄 호주에 JWTA를 설립했다.

현지 인력과 함께 만든 영화가 클리프 레저가 주연한 <네드 켈리>다.


“JWT가 그 정도였어요?”

“500만 달러로 3억 달러 가까이 벌었으면 자격이 충분하죠. 존과 에릭은 영국 젊은 프로듀서들의 롤모델이에요.”


극영화로 제작된 <빌리 엘리어트>의 뮤지컬도 기획 중이다.


“부사장은 존과 에릭 두 사람과 친분을 다져 봐요. 배울 게 많을 겁니다.”

“....?”

“프로듀서가 자신의 사단을 가지고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양에서는요.”


전하영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빈>의 론 앳킨슨이나 <노팅힐>의 존 그랜트 같은 배우들은 영국에서 JWT 전속배우 취급을 받는다.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은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들과도 매우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많은 영국 배우들이 기꺼이 JWT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할 정도다.


“JWT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영국 배우를 <우리별>에 캐스팅할 수 있도록 해보라는 말이군요?”

“먼저 리자와 공동제작이나 현지 로케이션 협조 문제부터 논의해 보세요.”

“예. 감독님!”

“저녁에 집에서 봐요.”

“일 보세요.”


딱히 바쁜 일은 없었다.

오랜만에 윌리 워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케이아누 립스에게도 연락했다.

하루를 꼬박 시차적응 겸 휴식에 쓴 류지호는 다음 날 오전부터 서핑을 즐겼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서핑 보드를 옆구리에 낀 류지호가 나타나자 평소 친분 있는 서퍼들이 아는 체를 했다.

월리 워커와 케이아누 립스와도 함께 서핑을 즐기기도 했다.

배런 렌프로도 빼놓을 수 없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인해 레이싱 카에 푹 빠져있는 윌리 워커가 조금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불미스런 사고가 벌어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작비가 1억 달러가 넘는다며?”


얼마 전, 윌리 워커는 <REMO> 최종편 출연계약서에 서명했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니까, 신나게 놀아보자!”

“스크립트를 봐서는 내가 액션 시퀀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나중에 프리비즈 시사할 때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이번에도 스턴트는 내가 다 하는 거다?”

“봐서.”

“날 못 믿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야?”

“내 소중한 친구이자 배우가 촬영하다 다치는 게 싫어.”

“CG가 가미된 와이어액션이 콘셉트 아니었어?”

“글쎄.....”


류지호는 말을 삼갔고, 윌리 워커도 더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몇 주후부터 <REMO> 최종편 촬영을 대비한 스턴트 트레이닝이 시작된다.

어차피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


“빈스와는 통화 했어?”

“같이 게임하자고 하더라.”


윌리 워커가 키특거렸다.

<분노의 질주>에 함께 출연 중인 빈스 싱클레어는 TRPG 마니아다.

외모는 근육질의 마초 이미지인데, 광적인 던전 앤 드래곤스(D&D) 마니아다.

스스로 던전마스터(DM)를 할 정도다.

멋도 모르고 류지호는 빈스 싱클레어의 꼬임에 넘어가 D&D를 배웠다.

몇 번 게임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꽤나 재밌었다.

문제는 빈스 싱클레어가 기본 3시간짜리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TRPG 초보자인 류지호로서는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부터 게임하자고 하면 슬금슬금 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함께 놀 수 없다고 말해줬어.”


윌리 워커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쉬운 거 확실해?”

“물론이지.”

“그렇다고 해 두자고.”

“아카데미 주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에 집중해야 하잖아.”

“알겠어.”

“진짜야.”

“믿는다니까.”


다음 날은 다른 서핑 포인트에서 서핑을 즐겼다.

한창 서핑에 푹 빠졌다가 아카데미 주간이 시작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아카데미 주간에는 최소한의 행보만 했다.

트라이-스텔라와 ParaMax 파티만 참석했다.


“이벤트 업체 대표와 만난 것은 제니퍼만 알고 있도록 해요.”


제니퍼 허드슨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JHO Company 파티를 전담하는 업체는 교포가 운영했다.

류지호와 UCLA 동문이기도 하다.

조용히 업체 대표와 만나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영문 대본이 나오면 JWT 영국 본사로 보내기로 했어요.”

“공동제작은 몰라도 현지 로케이션 협조는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JWT에서는 영국영화에 한정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지금까지 JHO Working Title Films는 할리우드와도, 스페인과도, 호주와도, 프랑스와도 합작을 진행한 바 있다.

한국이라고 해서 파트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고생했어요.”

“건강하세요. 감독님.”


JWT와 <우리별> 프로젝트 공동제작을 논의한 전하영과 심선미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들이 선전하면서 한국의 감독들이 유럽에서 꽤 인지도를 쌓고 있다.

류지호가 한국에서 연출한 영화들로 인해 한국영화가 제3세계 영화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확인시켜줬다.

차기 WaW 픽처스 사장이 될 수도 있는 전하영에게 다양한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JWT의 영화들은 동성애자, 유색인종, 지식인과 노동계급, 장애인 같이 쉽게 화합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영화 속에서 서로 포용하고 친구가 되거나 연인이 된다.

30대 독신남자들을 위한 로맨스 특화 제작사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고, 수 십 년 전부터 내려온 영국영화 전통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영국다운 것 혹은 영국의 영화 선배들이 쌓아올린 전통이 과연 무엇인지 반문하는 영화를 발굴하는 것 또한 틀림없다.

영국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할 때 JWT의 영화는 세계 시장에서 잘 팔렸고, 현재도 잘 먹히고 있다.

JWT의 공동대표에겐 세계적인 것이 곧 가장 영국적인 것이다.

류지호가 생각하는 WaW 영화의 미래 또한 다르지 않았다.

WaW가 세계적인 영화사가 되는 것은 마치 마법 같은 일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아시아만 좁혀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WaW의 영화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나 2003년의 한국영화 라인업들은 충무로가 나아갈 미래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지구를 지켜라!>, <실미도>, <황산벌>, <똥개>, <싱글즈>, <스캔들>, <퇴마기록Ⅲ> 등.

유난히 빼어난 한국 영화들이 올해 대거 쏟아진다.

이 기세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아시아 영화시장 제패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더 나아가 유럽에서도 더 일찍 한국영화 마니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WaW가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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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 Love Of a Lifetime. (2) +8 23.07.22 2,980 116 26쪽
559 Love Of a Lifetime. (1) +2 23.07.21 2,950 113 24쪽
558 어련히 알아서 할까..... +6 23.07.20 2,953 118 29쪽
557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겠지..... +9 23.07.19 2,897 122 25쪽
556 MJJ Music Records. (4) +4 23.07.18 2,849 110 24쪽
555 MJJ Music Records. (3) +2 23.07.17 2,832 114 21쪽
554 MJJ Music Records. (2) +5 23.07.15 2,934 125 22쪽
553 MJJ Music Records. (1) +5 23.07.14 2,990 10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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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5 23.07.12 2,977 112 23쪽
550 나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건데..... +4 23.07.11 3,009 11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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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내 이럴 줄 알았다! (1) +4 23.07.08 3,023 112 25쪽
»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4 23.07.07 3,029 11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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