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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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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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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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Of a Lifetime.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스탠퍼드 졸업식만 남겨 두고 있는 레오나 파커가 기숙사 생활을 정리하고 류지호의 집으로 왔다.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류지호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비록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낸다고 해도 많은 시간을 그녀를 위해 쓸 수 없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주말에 뭐해?”

“또 서핑 하러 가게?”

“이번에 새로 구입한 목장 구경 가지 않을래?”

“J&L Bell Ranch?”

“응.”

“좋아!”

“간단하게 갈아입을 옷이랑 생활용품 정도는 챙겨가야 할 거야.”

“며칠이나 있을 예정인데?”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려고. 괜찮겠어?”

“오케이! 문제없어!”


레오나 파커는 신이 났다.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류지호와의 오붓한 시간을?

아니다.

매튜 그레이엄이 프러포즈에 대한 귀띔을 해줬다.


‘어쩌면... 아이 좋아라.’


세상에 믿을 놈 없다고, 류지호는 의형을 믿어서는 안 되었다.

레오나 파커는 시골 목장에 놀러가면서 은근슬쩍 드레스까지 챙겼다.

온 우주의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은 아름다운 초원에서 그림 같은 프러포즈를 받을 걸 상상하면서.

이틀 먼저 류지호의 경호팀이 뉴멕시코로 떠났다.

금요일에 샤니스가 차려준 점심을 먹은 류지호와 레오나는 가까운 산타모니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얼마 안 있어 활주로로 안내되었다.

12인승 비즈니스 제트기 앞에는 도널드 제이콥, 두 명의 밀착 경호원, 제니퍼 허드슨과 의전팀, 승무원이 대기하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닙니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셨습니다. 탑승하시지요.”


레오나는 익숙하다는 듯 류지호를 따라 비즈니스 제트기에 탑승했다.

737 기종을 자가용 비행기로 이용하는 집안의 손녀다.

그녀 입장에서 12인 승 비즈니스 제트기는 경비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전세기다.

자신들의 소유도 아니었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잠시 후, 공항직원이 기내로 들어와 간단한 절차를 진행하고 떠났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모든 항공보안이 강화되었다.

부자들과 상류층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자가용 비행기 서비스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번거로워지긴 했다.

아주 조금.


부다다다당!


류지호 일행은 앨버커키 국제공항에서 경비행기로 갈아타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비즈니스 제트기가 이착륙할 활주로가 없단다.


“저 아래 보이는 모든 땅이 우리 거란 말이야?”

“아마 그럴 걸?”

“우와. 굉장해!”


레오나 파커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아이오와의 파커 필드에 비하면 소박했다.

그럼에도 가문의 땅보다 더 대단해 보였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목장이었으니까.


“여기도 눈이 올까?”

“왜? 눈이 왔으면 좋겠어?”

“안 오겠지? 눈은 뉴욕이나 Jay의 고향에서 즐기면 되지 뭐.”

“그것도 그렇다.”


제주도 2/3 면적의 광활한 대지다.

사유지 서쪽으로는 캐나디안 강을 경계로 하고, 목장 중앙 역시 북에서 남으로 긴 강이 가로지르고 있다.

목장 중앙에는 거대한 암석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목장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왔다.

목장 곳곳에는 작은 호수를 잇는 개울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는데, 목장에서 키우는 4만 마리의 소와 노루 등 야생동물의 생명줄 노릇을 하고 있다.


"세 품종의 소를 키우고 있다나봐.“

“보호종인 아메리칸 버팔로?”

“아니. 일반 소래. 젖소와 양은 키우지 않나 봐.”


에드윈 터너의 목장처럼 Bell Ranch에서 키우는 소들은 가죽을 벗기고 스테이크와 소시지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 소유주가 목축업 회사를 운영했대. 이 목장에서 생산된 것들을 자체적으로 유통했더라.”

“Jay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파커 필드와 위탁운영 계약하기로 했어.

“사유지 내 캠프는 몇 개야?”

“스무 개가 존재하는데, 그곳들 모두에 카우보이와 가족이 살고 있진 않아. 비워진 곳도 꽤 되나봐.”


캠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은 목장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다.

목장 내 일부 지역을 임대해 소를 키우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이전에는 키운 소를 소유주 회사에 납품하고 임대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했다.

앞으로는 파커 필드에 납품해도 되고, 본래 거래처와 거래를 지속해도 무방했다.

류지호는 거대한 목장을 소유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을 뿐.

목축업 사업에는 별달리 관심이 없었다.

Bell Ranch 내에는 전용 비행장이 존재하긴 했다.

50년도 전에 만들어진 비행장은 목장을 감시·감독하는 용도로 운행되는 경비행기와 헬기 격납고가 존재했다.

조종사의 안내에 따라 탑승객 전원이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목장 내 활주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되지 않은 흙바닥이었다.

활주로 양 끝에는 지반다짐용 육중한 진동롤러가 각각 한 대 씩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환경평가를 받아보고 아스팔트를 깔아야겠어.’


출퇴근하듯 자주 들락거릴 것 같진 않지만, 겨울철에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는 지역이라 아무리 땅을 다진다고 하더라도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곧 전용기도 생길 예정이라서 제대로 된 사설비행장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에드윈 터너의 목장에서도 그렇지만, 조금은 건조하고 텁텁한 느낌이 드는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오! 꽤 그럴 듯 한데?”


그저 엉성하게 지어진 격납고와 관제탑만 덩그러니 존재할 줄 알았다.

실제로 보니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시설이다.

격납고 안에는 경비행기 두 대와 헬기 한 대가 들어가 있다.

심지어 쌍발 화물기도 한 대 활주로 한쪽에 서있다.

도널드 제이콥이 류지호의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경비행기와 헬기는 보스의 소유가 아닙니다.”


류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전 소유주에게 경비행기 찾아가라고 독촉하진 말아요.”

“예. 보스!”


목장의 운영·관리에 최소 120명이 필요했는데 그 부분을 JHO Security Service에 위탁했다.


“삼촌!”


마중 나와 있는 무리를 향해 레오나 파커가 달려갔다.

악명 높은 폭주족 ‘지옥의 천사들‘ 혹은 ’밴디도스‘가 목장을 습격한 줄 알았다.

검은색 가죽점퍼와 커스텀 할리데이비슨 시트에 엉덩이를 걸친 사내 둘은 영락없는 폭주족 갱단을 연상케 했다.


“하여간 저 양반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째 달라지는 게 없어....”


류지호가 투덜거리며 레오나의 뒤를 따랐다.

폭주족 사내들은 파커 가문의 장남과 차남 그렉·노아 파커 형제다.

아이오와의 마초 형제가 직접 뉴멕시코까지 날아왔다.

목장에서 키우고 있는 가축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으하하하! 꼬마야 어서 와라!”


와락.


그렉 파커가 우왁스럽게 류지호를 껴안고는 등을 팡팡 두드렸다.

노아 파커는 류지호와 팔씨름 인사를 나눴다.


“윽!”

“뭐야! 이 허약함은!”


딴에는 <프레데터>에서 슈발츠네거와 웨더스 두 근육질 마초의 인사를 기대한 모양이다.

류지호가 가볍게 손을 쥐었기 때문에 멋진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은 뭐예요? 난 밴디도스가 쳐들어 왔는지 알았잖아요?”


그렉 파커가 버럭 화를 냈다.


“흥. 텍사스의 촌뜨기들을 어디 위대한 파커와 비교해!”


폭주족 갱단 ‘밴디도스’는 1966년에 텍사스에서 결성된 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우리가 바로 우리 부모들이 조심하라고 했던 그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용서해도, 밴디도스는 용서하지 않는다.]


폭주족 갱단 밴디도스의 모토였다.

미국을 넘어 여러 국가에 걸쳐 2,000여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세계적인 조직이다.

영화에서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정처 없이 떠도는 낭만적인 바이크 마니아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절대 아니다.

마약을 제조하고 운반·거래 하는 등 엄연한 범죄조직이다.

세계 최대 폭주족 갱단은 ‘지옥의 천사들’이다.

1948년 출범한 이 조직은 성폭행과 마약, 폭력, 살인 등 강력범죄를 수시로 자행하고 있어 FBI에서 중요 범죄조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폭주족 조직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참전용사들이 일탈을 택하며 처음 만들어졌다.

평범한 일상을 거부한 이들이 참전 보상금으로 오토바이를 마련해 떼 지어 다니기 시작하다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새로운 폭주족 조직들을 만들고 있다.

어쨌든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파커 형제처럼 갱단인양 폼 잡으면 다른 폭주족 갱단에게 총 맞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함부로 나대다가는 큰 일 난다.


“텍사스에서 그렇게 말씀해보시죠.”

“못할 것 같아?”


노아 파커가 쓸데없이 씩씩거리는 자신의 형을 밀치고 나섰다.


“Jay, 날 따라와라.”


노아 파커가 류지호를 데리고 화물기로 걸어갔다.

화물을 싣고 온 흔적만 남았을 뿐, 활짝 열려진 해치 안은 썰렁했다.

대신 커스텀 할리데이비슨이 한 대 놓여있다.

어딘지 낯이 익었다.


“혹시 전에 파커 필드에서 제가 탔던 바이크에요?”

“오. 기억하고 있구나?”

“....?”

“네 녀석이 찾아가질 않아서 우리 형제가 직접 가져왔다.”


고마워해야하는 것일까 류지호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떨떠름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아, 네....”

“픽업트럭도 몬다며?”

“가끔이요.”

“이 목장에는 거친 산악지역이 없어서 야생의 거친 맛은 좀 떨어져. 어쩔래? 우리가 멋지게 산악 오프로드 코스를 만들어주랴?”

“싫어요! 아니 괜찮아요.”


부탁해요라고 하는 순간, 안 봐도 비디오다.

목장 한 지역을 자기들 멋대로 들쑤셔놓을 확률이 백퍼센트다.


“싫어?”

“서핑을 더 좋아해요. 이 목장은 자연 그대로 두고 즐기고 싶어요.”

“그렇다면야.”


류지호는 얼른 노아 파커에게서 멀어졌다.

괴짜 형제는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는 사고뭉치들이다.

그길로 레오나를 데리고 목장의 본부지역으로 향했다.

류지호를 태운 SUV가 피워내는 먼지를 맞으며 파커 형제가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며 류지호에게 엄지를 추켜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박하고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덤 앤 더머라고 해야 할지.....’


매튜가 그레이엄 가문의 이단아라면, 그렉과 노아는 파커 가문의 별종이다.

그레이엄 가문에는 앤서니라는 대니얼을 꼭 닮은 냉혈의 후계자가 있다.

반면에 파커가문을 책임져야 할 장남과 차남은 바보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동생인 브랫과 제임스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긴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과잉되게 행동하는지도 몰랐다.


“브랫과 제임스 관계는 어때?”


류지호가 넌지시 레오나에게 물었다.


“무슨 관계?”

“모른 척 하지 말고.”

“몰라, 나도. 할아버지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까....”

“제임스는?”

“아빠는 그렉 삼촌이 가문의 큰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다른가봐.”

“브랫이 파커 필드의 최고경영자인데?”

“파커 필드는 50년 전이나 현재나 똑같아. 심지어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파커가문이 돌봐주던 사람들이 조금씩 줄고 있어.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금융그룹은 그 기간 수십 배가 성장했지. 할아버지들이 볼 때 가문의 재산을 지켜줄 인물로 누굴 선택할지는....”

“참 복잡하구나. 파커도.”

“아빠가 문제가 아냐.”

“내가 모르는 가문 사람이 있어?”

“Jay."

"나?“

“만약 할아버지 유언장에 Jay 이름이 들어가면 골치 아파져.”

“무슨 골치?”

“뉴욕 저택을 상속해준다고 생각해 봐. 어떻게 될지.”


파커가문의 상징인 곳을?

말도 안 된다.


“내가 13살 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때 내가 어려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인데... 똑똑히 들었어. 뉴욕의 저택을 Jay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고.”

“난 파커가 아니잖아.”

“피이, 왜 파커가 아니야?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둘이 결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류지호는 파커가의 일원이 된다.

데릴사위 그런 개념이 아니다.

아내가 될 수도 있는 레오나가 파커 가문의 주요한 상속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능력만 있다면 그녀의 남편이 파커가문의 사업 전면에 나설 수도 있다.

류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레오나 세대의 파커 일가의 수는 10명을 훌쩍 넘긴다.

범위를 넓힌다면 수십 명이다.

자신이 그들 사이에 낄 이유가 없다.


“목장은 마음에 들어?”

“응.”

“오늘은 본부 리조트에 쉬고, 내일은 별장에 가보자.”


이전 소유주들은 사유지 내에 3개의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콘체이스 호수, 본부가 있는 지역의 저택, 사유지 북쪽에 위치한 가장 규모가 큰 캠프 지역의 저택 등이다.

그 별장들이 고스란히 류지호의 것이 되었다.


“나중에 정원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천리포 수목원 같은.”

“맘대로 해”


레오나가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땡큐, 큰오빠!”


레오나가 기습적으로 류지호의 입술을 훔쳤다.


✻ ✻ ✻


본부 캠프에 도착한 일행은 각자 볼 일을 보기 위해 흩어졌다.

파커 형제는 가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파커 필드 수의사들과 떠났고, JHO Security Service 직원들은 교대를 위해 관리사무실로 향했다.

류지호의 수행원들은 헤드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류지호와 레오나는 본부 저택을 둘러봤다.


그 날 밤.


류지호가 목장에서 일하던 기존 직원들에게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기존의 Bell Ranch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류지호는 주인이 아니다.

고용주도 아니다.

100년 동안 목장의 소유주는 다섯 번 이상 바뀌었다.

그 세월 동안 대를 이어가며 목장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Bell Ranch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주인이 아니라 그들일지도 몰랐다.


“자, 마셔!”

“죽어보자!”

“으하하하!”


파커 형제의 주량은 명불허전이었다.

목장의 카우보이들이 두 형제와 술대결을 벌이는 족족 나가 떨어졌다.

왁자지껄한 파티장에서 그렉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Jay! 이리 와라! 으하하하.”


류지호는 못들은 척 슬그머니 레오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터벅터벅.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본부캠프 주변을 산책했다.

맑은 밤하늘은 온통 별천지다.

네온사인 하나 없는 드넓은 초원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소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류지호가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깔아주었다.

레오나가 조신하게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류지호는 그런 그녀의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레오나 뒤에서 손을 넘겨 그녀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는 자세로 만들어주었다.

레오나가 류지호와 깍지 낀 손을 꼼지락거리다 입을 열었다.


“Jay.... 안 해?”

“키스 해줘?”

“그거 말고.”

“그럼 뭐?”

“있잖아. 그거. 꼭 말해야 알아?”

“프러포즈 링도 준비 안 했는데?”


거짓이 전혀 없는, 가식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류지호의 목소리.


“진짜?”

“응.”


차라리 능글맞게 농담하는 거면 같이 웃어줄 수 있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하니까, 레오나는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아휴, 너무해. 나 졸업하면 동부로 떠난단 말이야.”

“알아.”

“알면서.... 알면서....”

“나 어디 안 가. 레오나는 어디 가?”

“아니! 나도 아무데도 안 가. 난 언제나 큰오빠 옆에 있을 거야!”


하하.

류지호가 웃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보였을까.


“확! 뉴욕에 가서 결혼식장 잡아버린다?”

“라스베이거스 가면 30분이면 결혼할 수 있는데?”

“칫... 미워! 아, 슬퍼라~.”


류지호가 레오나의 머리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짐 지운다고 생각하지 마. 프러포즈가 뭐 대순가? 앞으로 쭉 함께 살아야 할 사이에.”

“쭉 함께 살아야할 사이?”


그녀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말했다.


“당연하지!”

“나랑 진짜 결혼하게?”

“어릴 때부터 그랬잖아. 난 무조건 큰오빠 짝이라고. 결혼할 거라고!”

“큭. 내가 못 산다 레오나 네 덕에.”

“나보고 살아.”


레오나가 류지호 품에 더욱 깊이 안겨왔다.


“저리 가. 인마.”

“아까는 키스해 준다면서, 이럴 거야?”

“그건 그거고.”

“그러면 이건 이거로 해.”

“한 마디도 안지지.”

“결혼하면 내가 지고 살 거니까 그건 걱정 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장담하건대 나보다 괜찮은 신붓감은 세상에 없을걸.”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데?”

“왜냐고? 운명이니까.”


이제는 귀에 딱지처럼 자리 잡은 단어.


운명.


어쩌면 운명이란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상대는 레오나 말고는 없을 것 같긴 했다.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한 걸지도....’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안 믿었지, 예전에는.”

“응?”

“운명 같은 거 안 믿었다고.”

“예전 언제?”

“전생에?”


레오나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슬슬 돌아갈 때다.

말만 그렇지 사실 레오나는 답답하거나 속상하진 않았다.

자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해봐야 답도 없고.

때가 되면 근사한 프러포즈를 하겠거니....

어쩌면 거대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꼭 거창하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저 남자가 자신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기만 한다면.


“어디가? 해주던 건마저 해줘야지.”

“뭘?”


류지호가 입술을 내밀었다.

레오나는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한국 속담은 안 배웠어?”

“으이그!”

“어디서 많이 듣던 표현이다?”


심영숙과 류아라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온 우주의 별들이 키스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별똥별도 긴 꼬리를 뽐내며 지나갔다.


다음날부터 류지호는 레오나 나머지 두 곳의 별장을 둘러봤다.

캠프 몇 곳에 들러 카우보이들도 만났다.

텃세를 부릴 줄 알았다.

다들 새로운 소유주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두 사람에게 말까지 내주며 호의를 보였다.

말을 탈 줄 모르는 류지호는 레오나가 카우보이들과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식, 진짜 잘 어울리네.”


이틀 동안 J&L Bell Ranch에서 보냈다.

파커형제는 함께 온 수의사들과 연구원들을 목장에 남겨두고 떠났다.

그들은 목장에서 키우는 소의 건강상태를 검사하고, 하천과 개울, 초지에서 샘플을 채취해 파커 산하 연구실로 돌아갈 계획이다.

도널드 제이콥은 뉴멕시코 주정부와 행정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주도로 떠났다.


[영화감독으로 대중들에게 매우 친숙한 가온그룹 류지호 의장이 미국 뉴멕시코주의 대규모 목장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세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류지호 의장이 영화촬영 목적을 위해 목장을 매입한 것으로 보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호화생활 등을 두고 매입용도 및 자금출처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 재계 일각의 관측이다.(중략) 류 의장이 어떤 돈을 어떤 방법을 동원해 미국에서 제주도 2/3 크기의 목장을 매입했는지 관심이 쏠린다. 만일 부정한 방법으로 부동산을 구입했을 경우 국세청 등 관련당국의 자금출처 조사 또는 외환관리법 위반 등 탈세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도 있다.]

- 백원일보 석진규 기자.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비서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 사표를 보내왔다.

Bell Ranch 매입 관련 기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단다.

류지호는 사표를 돌려보냈다.

어차피 미국의 부동산매체에서 기사가 나갔고,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도 떠들썩하게 다뤄진 사안이다.

한국언론에서 아무리 짖고 까불어봐야 류지호가 받는 타격감은 제로에 가까웠다.

언론대응 비서들이야 이미지 실추 부분을 우려해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당사자인 류지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속된 말로 류지호가 방귀만 뀌어도 뉴스가 된다.

일일이 찾아서 볼 시간도 없고.

자신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일일이 신경 쓰는 것만큼 인생의 낭비도 없다.

사실에 입각한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가십에 가까운 것이 대부분이기에.


❉ ❉ ❉


한국의 언론은 미국에 비해 양반이다.

벨에어로 복귀한 류지호는 <REMO> 최종편 프리프로덕션으로 하루하루가 무척 바빴다.

영화팀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할리우드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주최한 파티에도 참석했다.

모든 파티에 레오나 파커를 파트너로 데리고 다녔다.

곧장 열애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파파라치에게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찍혔다.

레오나가 파커가문의 자녀인 걸 모르는 파파라치는 없다.

한마디로 미국의 황색언론들이 난리가 났다.

여동생 혹은 가족으로 지내던 사이가 연인으로 변했으니까.

온갖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레오나를 두고 Trophy Wife라는 저질스러운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경제적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중년 이상의 남성이 새로 맞아들이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반려자들 뜻하는 신조어가 트로피 와이프다.

조롱과 경멸이 담긴 표현이다.

재밌는 것은 트로피 와이프라는 표현을 사용한 타블로이드가 얼마 후 폐간했다는 사실.

정확하게는 폐간 당했다는 것이 맞다.

JHO 오너를 저격한 것도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었는데, 무려 파커와 그레이엄의 손녀를 건드렸으니 당해도 쌌다.


“내 딸과 지호 류를 조롱하는 언론이 있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


매우 이례적으로 제임스·캐서린 부부가 언론들을 통해 강력히 경고했다.

그럼에도 류지호와 레오나의 열애설은 황색언론의 아주 좋은 기삿감이었다.

아시아에서 온 젊은 억만장자와 미국의 유력가문 손녀의 연애다.

미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연애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류지호가 게이임을 숨기기 위해 파커가족이 꾸민 속임수라든가.

파커가문이 JHO Company Group을 귀속시키기 위해 정략결혼을 단행한다든가.

류지호가 어릴 때부터 레오나를 성폭행했다는 더러운 타블로이드 기사도 있었다.

그 밖에도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이야기들이 일부 타블로이드를 도배했다.

JHO와 파커가문은 무관용·무차별 소송으로 대응했다.

도널드 제이콥과 데본 테럴이 암중에서 움직였다.


- 세기의 커플! 21세기 가장 핫한 열애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둘만의 개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돼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다보니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우리 두 사람은 감정에만 치우쳐 경솔하지 않으려 좀 더 신중하고 싶을 뿐이다. 형제처럼 지냈지만 이젠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됐다. 그리고 이 관계를 진중하게 이어가고자 한다. 지금껏 나를 지켜봤듯이 우리 두 사람 좋은 마음으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언론과의 문답은 항상 류지호만 했다.

레오나 파커는 철저히 보호했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류지호의 연인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무차별적인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황색신문은 바퀴벌레다.

잠시 폐간했다가 이름만 바꿔 다시 신문을 내놓거나,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한 말장난을 섞기 시작했다.

가장 치졸하게 군 언론은 로버트 폭스가 소유한 The NEWS Media 계열 타이블로이드다.

특히 영국의 The SUN은 마이키 잭슨에게 했던 것 이상으로 악질적인 기사들을 내보내 류지호와 파커가문의 신경을 건드렸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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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REMO : ....or Maybe Dead! (2) +3 23.07.29 2,897 111 26쪽
566 REMO : ....or Maybe Dead! (1) +4 23.07.28 2,962 106 24쪽
565 낄 데 안 낄 데 분별을 못하고 있어! +6 23.07.27 2,939 114 26쪽
564 영화감독은 우연을 창조하는 사람! +3 23.07.26 2,929 112 25쪽
563 형이 갖고 싶었던 건 아니고? +6 23.07.25 2,957 123 29쪽
562 Love Of a Lifetime. (4) +4 23.07.24 2,837 118 23쪽
561 Love Of a Lifetime. (3) +3 23.07.24 2,684 93 24쪽
560 Love Of a Lifetime. (2) +8 23.07.22 2,982 116 26쪽
» Love Of a Lifetime. (1) +2 23.07.21 2,951 113 24쪽
558 어련히 알아서 할까..... +6 23.07.20 2,954 118 29쪽
557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겠지..... +9 23.07.19 2,899 122 25쪽
556 MJJ Music Records. (4) +4 23.07.18 2,850 110 24쪽
555 MJJ Music Records. (3) +2 23.07.17 2,834 114 21쪽
554 MJJ Music Records. (2) +5 23.07.15 2,936 125 22쪽
553 MJJ Music Records. (1) +5 23.07.14 2,991 103 22쪽
552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2) +3 23.07.13 2,991 113 23쪽
551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5 23.07.12 2,979 112 23쪽
550 나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건데..... +4 23.07.11 3,011 11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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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내 이럴 줄 알았다! (1) +4 23.07.08 3,024 112 25쪽
547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4 23.07.07 3,029 11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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