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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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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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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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링은 얇아도 다이아몬드 알은 굵어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돈봉투는 뒷전이 됐다.

신부 친구들이 함재비에게 술을 따르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고우찬의 처가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사실 함재비들은 봉투에 들어있는 돈이 안중에도 없다.

형사 생활을 하는 이철웅을 빼고 다들 경제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모은 돈으로 신혼부부의 45평 아파트 살림을 최고사양 전자제품으로 모두 도배할 정도였을까.

보통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장가갈 때가 FM대로 한다.

친구가 많은 경우 점점 요식행위가 되어가기 마련이다.

류지호와 친구들은 미풍양속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해 도가 지나치게 변질된 행위는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함이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신부 친구들이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관리실에 맡겨두었던 떡을 돌렸다.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한 것이다.

최근 들어 전반적으로 함 풍경이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

함(函)의 본뜻은 아는 이가 없고, 오로지 함값을 많이 받아내려는 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른 문제도 파생시켰다.

함진아비들이 함값으로 수십 만 원을 챙기게 되면 그 중의 일부분은 혼례식 날 꽃값으로 신부측에 다시 돌아간다.

문제는 남은 돈이 함진아비들의 음주가무에 쓰인다는 것이다.

류지호도 지겹게 경험했던 폐습이다.

수십 만 원의 함값으로 가는 술집이란 결국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룸싸롱으로 통일되기 마련이다.

모두를 싸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다지만, 노잣돈 정도였던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유흥비를 조달하는 것으로 전락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면 풍속도 변하고 예도 변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연한 사회섭리다.

그 변화는 시대에 맞추어 그 시대에 맞게 변형된다.

다만 사회문제가 된다면 자성이 필요하다.

류지호는 <복수의 꽃>을 준비하면서 고전 한국영화를 여러 편 찾아서 봤다.

그 중에는 1957년 작 <시집가는 날>이란 영화도 있었다.

한국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다.


[내가 구하는 것은 사람의 참된 마음이요. 병신이나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바칠 수 있는 깨끗한 마음. 부귀에 취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들하고도 사귀어 봤소. 그들의 천박한 마음에는 진절머리가 나오. 내가 구하는 것은 당신이었소. 진실한 애정과 순정의 아름다움을 가진 아내를 찾고 있었소.]


영화 속 신랑이 한 말이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붙어버릴 지경의 간지러운 대사다.

영화 <시집가는 날>은 양심과 염치를 허영과 맞바꾼 양반을 풍자하는 코미디 영화다.

한편으로 조선판 신데렐라 이야기다.

한국 TV드라마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암튼 영화는 결혼 상대를 사랑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타인에게 뽐내는 대상으로 여긴 결과 자가당착에 빠진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낸다.

배금주의에 물들어 ‘똥폼’을 잡고, 내실보다 권위만을 내세우는 이 시대의 속물근성을 1950년대 제작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

남들이 하는 풍속을 그냥 따라 하게 되면 언젠가는 알맹이는 없고 왁자지껄한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래서 왜 그런 것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실제로 10여 년이 지나면 이런 함재비 풍경은 사라진다.

신랑 홀로 함을 가져가는 경우가 보편화 된다.


‘가뜩이나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하는 결혼식인데.....’


류지호와 친구들의 첫 사업이 웨딩비디오였다.

결혼문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한국 사회의 급격한 인식변화를 알게 됐다.

점점 각박해지고 각자도생 풍조가 만연해지는 한국사회가 류지호는 안쓰러웠다.

그럴 때 대중문화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의 떨어진 자존감을 충전시켜 줘야 할 텐데....


꽉.

뿌직.


함을 짊어진 이철웅이 바닥에 놓여 있는 박을 깨며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함을 파는 행위는 선비인 신랑이 규수(여자선비)에게 예를 올리는 행사다.

함은 포장이 완성되면 신부에게 전달될 때까지 절대로 바닥에 내려놓지 않는다.

신랑·신부의 혼인을 축하하는 귀하고 상서로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신부 집에서 함을 받을 때에도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떡시루 위에 올려 받는다.


“사위~”


고우찬은 장모가 부르자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갔다.


“예. 어머니!”

“우리 사위, 거실에 상 좀 펴줘.”

“예!”


장모가 고우찬을 무척 예뻐했다.

왜 그러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군대를 제외하고 자그마치 10년 넘게 붙어 있었다.

어수룩한 운동부가 어느새 세계적인 복합미디어 기업 계열사의 고연봉자다.

임원 승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도 들린다.

그것도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김재욱이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장모님,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한 상 거하게 차려졌다.

고우찬이 퉁박을 줬다.


“이 자식이.... 왜 자꾸 장모님이래? 네 장모님이냐?”


김재욱이 뻔뻔하게 굴었다.


“네 장모님이면 내 장모님도 돼지 뭘 따져.”


피식.

참 변함이 없는 녀석이다.


“민아 친구 중에 마음에 드는 애 있으면 말 해. 다리 놔줄 테니까.”

“넌 관심 꺼. 연애는 내가 너보다 훨씬 선수니까.”

“퍽도 선수다, 자샤.”

“첫사랑에 결혼 골인한 놈은 그만 닥치시지!”


신랑·신부와 친구들이 커다란 상에 둘러앉았다.


“머슴살이 드디어 쫑이네?”


황재정의 농담을 고우찬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내가 언제 머슴살이 했다고 그래?”

“경제 주도권이 민아한테 갈까봐 연봉 올려준 거야. 지호한테 고맙게 생각해라.”

“원래 JHO 연봉 세거든!”

“웃기시네. 나이 갓 서른 넘어서 이사급 대우받기 쉬운 줄 알아?”


고우찬은 JHO Security Service 한국 지사의 이사 대우 실장 직함을 달고 있다.

한국에서의 류지호 보안·경호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류지호를 대신해 총을 맞을 각오까지 해야하는 위치다.


“지는 사장급 대우 받는 주제에.”


이철웅이 깜짝 놀라 입안에 든 음식을 튀었다,


“더럽게.”

“재정이 사장됐어?”


고우찬이 이철웅 앞에 놓인 컵에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 놈이 명함만 비서실 팀장이지 실제는 사장급이야.”


이철웅이 맥주를 한 모금을 마셔 입안에 든 음식을 삼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서른셋에?”


박상은이 황재정이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출세했네.”


김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야, 오늘 술은 우찬이가 아니라 재정이가 쏴야하는 거 아냐?”


김재욱이 류지호를 가르켰다.


“저기 회장도 있는데, 월급쟁이가 왜 쏘냐?”

“것두 그러네. 킥킥.”


류지호는 친구들의 말을 못들은 척 했다.

친구는 그저 친구면 된다.

회장이니, 사장이니... 사회적 지위는 중요하지 않다.

친구 간에 서열이 만들어져 관계가 불편해질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오너 친구를 임원급에 앉히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작은 회사도 아니고.

이 당시 한국 대기업의 경우 사원 4년, 대리 4년, 과장 5년, 차장 5년, 부장 4년이 지나야 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것도 승진 연한이 됐을 때 바로바로 승진한 경우에만 그렇다.

가끔 발탁인사라는 이름으로 1~2년을 먼저 승진하기도 한다지만,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시쳇말로 승진에서 한두 번 물먹게 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당시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22년이 걸렸다.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부장에서 한 단계 더 승진한 직위를 임원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오성·금성·선경 그룹은 상무부터 임원이다.

경일자동차그룹은 이사대우부터 임원이다.

상무 위에는 전무, 전무 위에는 부사장, 부사장 위에는 사장, 사장 위에는 부회장이 있다.

이사 대우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이사를 거쳐 상무대우, 상무로 올라간다.

사장은 한 회사에 한 명만 있을 것 같지만 대기업은 그렇지 않다.

이 당시 오성전자에는 부회장이 2명, 사장이 13명이나 됐다.

가온그룹 산하 WaW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도 영화투자, 제작, 배급, 종합스튜디오를 네 축으로 4명의 사장과 각 사업별로 9명의 부사장들이 존재했다.

부사장 일부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직함을 달고 있다.

가온그룹 각 사업 영역마다 덩치가 크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지고 있다.

책임경영을 하는 인재가 필요한 탓에 사장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JHO Company Group은 한국에 금융, 엔터테인먼트, 게임, 디지털 사업이 진출해 있다.

보안·경비 지사가 진출해 있지만, 법인은 아니다.

(주)나래안전 시스템과 합작사를 설립해 주로 류지호 및 가족과 관련한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일본, 한국, 태국 대사관에서 지역보안담당관실(Regional Security Office)장을 역임한 미해병대 지휘관 출신의 팀 보거트(Tim Bogert)가 지사장을 맡고 있다.

주한미대사관 혹은 CIA 한국지부인 주한미대사관 지역조사과(Office of Regional Study)와 협력을 해야 할 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CIA와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오성그룹으로부터 정보제공 협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수뇌들은 다 알고 있다.

국내 최고의 정보력을 보유한 곳은 누가 뭐래도 오성그룹 구조본 내부의 홍보팀이다.

가온그룹 전략기획실과 (주)나래안전 시스템만으로 오성그룹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대신 JHO와 협력하면 그에 필적할 만한 역량을 보일 수 있다.

즉 JHO Security Service 한국 사무실이 규모가 작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황재정은 가온그룹 이사회의장(총수) 산하 비서실 전략2팀장이다.

한국의 대기업에 대입하면 과거 기획조정실 현재의 구조조정본부의 부사장급이다.

계열사 사장과 맞먹는 대우를 받고 있다.

가온그룹 이사회의장 비서실은 몇 년 동안 꾸준히 몸집을 불렸다.

재무·전략·인사·경영진단·미디어·계열사 관리·기획 등 8개 팀 145명이 일하고 있다.

산하에 가온경제연구원(구 대유)까지 편입시켰다.

그룹 감사실은 독립된 부서였지만, 실상은 의장 비서실의 지휘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재정은 계열사관리를 담당하는 전략2팀장이다.

계열사 사장단 업적 평가를 전략2팀에서 한다.

때에 따라서는 계열사에 대해 그룹 회장 래리 킴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가 전략2팀장이다.

당연히 연봉도 꽤 높다.

이 당시 국내 100대 기업 임원들의 평균 연봉은 2억8,413만 원이었다.

상위 1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봉은 13억1,584만 원이고.

임원 연봉이 가장 높은 기업은 오성전자다.

임원 7명의 평균 연봉이 무려 52억1,400만 원이다.

가온그룹은 10대 기업 임원 평균 연봉을 보장해주고 있다.

김석민이 입을 열었다.


“사장. 그거 좋은 거 아냐. 내 회사가 아니면.”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계속 승승장구해 별 중의 별이라는 최고경영자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파리 목숨이긴 마찬가지야. 아니 그냥 계약직이지.”


이철웅이 물었다.


“그래도 모든 샐러리맨들은 사장하는 게 꿈이잖아?”

“임원 승진 비율이 얼마인 줄 아냐?”

“공무원인 내가 알겠냐?”

“0.6%란다.”

“......!”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말에 딱 들어맞지 않냐?”


황재정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은 바로 하지. IT 부문의 사장으로 가라고 하니까 네가 거부했잖아.”

“거부 했지.”


친구들이 김석민을 미친놈 보듯 했다.


“난 그냥 개발자로 살래. 왜 회사가 사장한테 많은 혜택과 돈을 주겠냐? 그만큼 회사가 더 부려먹겠다는 뜻이잖아. 재정이 저 놈 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냐. 저 놈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사장급이라면서 무슨 출근을 새벽에 해?”

“누가 찾을지 모르니까. CineFeel에서도 밑의 직원들은 보통 7시30분~8시에 나오는데 사장과 전무는 새벽에 출근해서 직원들 출근할 때까지 혼자 일할 때가 많더라. 회의도 더럽게 많고, 혼자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지지. 책임과 권한이 그만큼 커지는 거야. 씨네필만 해도 영화잡지, 티켓 예매, 데이터베이스까지... 거기에 지호 저 놈은 빅데이... 암튼 더 뻗어 나갈거라더라. 임원이든 최고경영자든 결국 공과는 자신의 책임이야. 성과를 못 내면 그냥 모가지를 팍....!”


김석민이 자신의 목을 치는 시늉을 해보였다.

임원이 된다는 것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이 된다는 것과 같다.

일단 퇴사를 하고 퇴직금도 다 받는다.

그런 후 새롭게 근로계약을 한다.

임기는 기본적으로 1년이다.

능력을 보이지 못하면 1년 만에도 잘릴 수 있는 파리 목숨이다.


“어떤 대기업은 만년 부장을 자르는 방법으로 임원 승진을 사용하기도 한다더라. 1년간 임원 대우를 해주고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야 하는 거지. 그래서 임시직원의 준말이 임원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대.”


사실 임원은 간부들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년 계약을 기약할 수 없다.

월급은 두세 배 늘지만 집에서 자는 시간은 절반으로 준다는 말도 있다.

성과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이들이 대기업 임원이다.

재벌 체제에서는 총수의 충실한 머슴이 되려고 안달이고.


“그래도 짭새보다 낫지 뭘. 난 그냥 연금보고 산다. 승진 그 딴 것 바라지도 않아. 바닥생활하다보면 승진 시험 볼 시간도 없지만.”


바닥생활은 형사들 사이에 쓰는 은어로 외근 생활을 일컫는다.

이철웅은 연수경찰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

나름 지역 전과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마계라고 조롱받는 인천에서도 알아주는 형사다.


“공무원이 최고야. 대기업 취직하면 뭐하냐? 부장꼬리표 달고 오래 뭉갤 수도 없나 보더라.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치여서 회사를 그만 둬야 돼. 후배가 상사로 오기라도 하면 때려쳐야지 별 수 없고.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 방송국이 가장 잘 쓰는 방법이 지방 전근이나 대기발령이야. 책상 하나만 덜렁 주고 일도 주지 않으면 그나마 버티던 몇 명도 그만둬.”


냉소적으로 말을 길게 늘어놓은 박상은에게 김준우가 건배를 제의하며 물었다.


“지호 회사로 옮겼다며?”

“이 참에 시사에서 예능으로 갈아탔어. 다솜에는 일단 짜증나는 상관도 없고, 퇴사하면서 퇴직금 한 번에 땡긴 셈이라 몇 년 일하다 잘려도 변두리에 편의점 차릴 돈은 된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재욱이 한 소리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잘 했던 놈들이 어디서 죽는 소리야.”


본인과 고우찬, 이철웅을 제외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모범생들이었다.

황재정과 김준우는 공부도 잘하면서 흡연과 음주를 하던 날라리 세계에 한 발 걸치고 있었지만.


“나하고 우찬이처럼 돌대가리도 중역하는데, 똑똑한 새끼들이 앓는 소리는....”


고우찬이 이때다 싶어 김재욱에게 면박을 줬다.


“요새 중역이란 말 안 쓴다. 무식한 놈아.”


김민아가 살뜰하게 챙겨주는 안주를 우물거리던 고우찬이 말을 이었다.


“뭐 하러 힘들게 임원이 되려 하는가라.... 반대급부를 보면 딱 답 나오지. 임원 다는 순간 연봉이 억 단위로 뛰잖아. 복지혜택도 끝내주고.”

“JHO가 복지 하난 끝내주지.”

“우선 독립된 사무실이 생겨. 비서도 생기고. 전화를 대신 받아주고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비서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뽑힌 20대 여성이야.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무실은 넓어지고 책상도 커져. 차량은 또 어떻고. 내가 알기로 가온그룹은 상무급에게 대부분 그랜저급, 흔히 말하는 준대형이 지급돼. 전무 이상은 에쿠스급이 나와. 부사장급부터는 본인이 원하면 수입차를 탈 수도 있어. GOM 인터내셔널 사장 된 동석이형 보니까 해외출장 갈 때 무조건 퍼스트 타더라. 나중에 전용기 들어오면 그거 타고 해외 돌아다닐 거래.”

“가온그룹이 벌써 그 정도 사이즈가 나오냐?”


자기 회사도 아닌데 은근히 우쭐해진 고우찬이다.

황재정이 톡 쏘아붙였다.


“지 회사도 아닌 주제에 아는 척은. 야, 가온이 10대 기업이다.”

“나도 가온 주주거든. 지분으로 명함 내밀 수준은 아니지만.....”


딱히 비밀도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류지호와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 함께 가온웨딩을 창업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원이 되면 세 가지가 필요 없어져. 뭔 줄 알아?”


황재정의 물음에 고우찬이 고개를 저었다.


“외투, 가방, 우산.”

“....?”

“집 대문 앞에 전용 차량이 대기하고 회사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기 때문에 실외에 나가는 상황이 거의 없지. 거래처 임원 중에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일이 거의 없어 건강이 나빠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더라.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또 어떻고. 임원이 되면 비즈니스석을 타게 되고, 잠도 특급호텔에서 자. 사장 이상은 퍼스트야. 보통 임원이 되면 따로 특별히 부부 동반 만찬에 초대되고 회장님이 주는 선물도 받지.”


최근 다솜방송에 합류한 박상은이 관심을 보였다.


“지호가 뭐 줘?”

“지호가 주는 게 아니고 회장님이 주시는데.... 부부 시계 세트 줄 때도 있고, 백화점 VIP 의류상품권 줄 때도 있고.”

“임원만 주는 거야?”

“연초에는 전 년도 성과급이 나가서 주로 연말에 이사부터 선물이 나갈 걸.”

“부장 이하는?”

“가온그룹 산하에 리조트들이 있잖아. 그룹 차원에서 직원용으로 확보해 놓은 회원권을 이용해도 되고, 개별적으로 직원 할인을 받던가, 뭐 그래. 근데 휴가철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휴가 계획을 잘 짜야 돼. 아, 캘리포니아에 있는 리조트도 무주리조트와 똑같은 할인혜택을 받아. 물론 항공료 지원은 안 돼. 회사가 커지며 직원이 많아져서 이젠 감당이 안 되거든.”

“다솜방송도 똑같이 그런 혜택을 받아?”

“당연하지. 가온그룹의 모든 자회사와 계열사 직원들은 똑같은 혜택을 받아. 원칙이야.”

“당연히 정규직만?”

“응.”


가온그룹은 서비스업종 중심 기업이기도 해서 단기 아르바이트도 많다.

모두가 동일하게 혜택을 받을 순 없다.


“아 쓰바! 나도 강력반 형사 때려치우고 나래안전으로 옮길까?”


고우찬이 점잖게 이철웅을 타일렀다.


“아서라. 너 정도 스펙은 나래안전에 널리고 널렸어. 좀 더 크고 오렴.”

“고우찬이 마이 컸네.”

“까불지마라. 쥐똥아.”

“쥐똥이라니! 너 키 몇이냐? 아니 일어나봐. 한 번 대보게!”


이철웅이 자신만만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식이... 나이 먹고 쪽 팔리게스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슬그머니 일어서는 고우찬이다.

김재욱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두 사람을 한곳으로 끌어 와 키를 재봤다.


“오오! 애들아, 철웅이 좀 봐라.”


고등학교 다닐 때는 170Cm에 미치지 못했던 이철웅이다.

헌데 190Cm가 넘는 고우찬에 뒤지지 않는 신장을 자랑했다.


“이래도 쥐똥이냐?”

“어릴 때는 재정이 만하던 것 같더니 갑자기 왜 늘어났지? 뭘 처먹었기에 키가 큰 거야?”

“내가 좀 구부정하게 다녔잖아. 그래서 키가 그렇게 안 커 보였어.”

“우리가 고등학교 때 네 키를 아는데 어디서 구라를 쳐?”

“고등학교 때도 170Cm 넘었어, 왜 이래!”


이철웅과 고우찬이 고등학교 시절 키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 같은 사이.

친구는 그런 것이다.

비록 먹고 사는 문제가 주된 대화 내용이었지만.

공다연이 티격태격 대는 고우찬과 이철웅을 보며 말했다.


“잘 살겠지. 저 곰탱이 데리고?”

“연애랑 함께 사는 건 달라. 많이.”


김준우가 류지호의 컵에 자신의 컵을 부딪치며 말했다.


“어쭈, 마치 살아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주방을 바쁘게 오가는 신소연이 김준우와 종종 눈을 맞췄다.

두 사람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결혼식 준비는 잘되고 있냐?”

“그게 말이야. 타이밍이 애매해서 말이지.”


공다연이 끼어들었다.


“너희 둘 사이에 타이밍 잴 거리가 뭐 있어. 날까지 받아놓고 볼 장 다 본 참에.”

“볼 장 다 보긴 했지. 근데 중요한 걸 놓쳤어.”

“중요한 거 뭐?”

“프러포즈.”

“그거 결혼 전에 적당히 봐서 하면 되지 않겠냐? 반지 미리 맞춰서 결혼해 달라고 해. 무릎도 꿇고. 촛불 백 개 켜놓고 기타 치며 세레나데는 필수다.”

“촛불을 무슨 백 개씩이나....”


류지호가 경고했다.


“그렇게 안 하고 넘어가면 그거 평생 간다.”

“소연이는 안 그래. 얼마나 털털한데.”

“그것도 6개월이야. 6개월 지나면 네가 알던 소연이가 아닐 걸?”


류지호의 경험에 의하면 그랬다.

비록 좋지 않은 결혼생활이었지만.


“복잡하게 안 할래. 과한 이벤트 말고 둘이 항상 가던 장소 가서 무드 잡고 신호 조금씩 보내면 소연이도 마음에 준비 하겠지. 그다음에 반지 내밀고 결혼해 주세요, 끝.”

“여자는 안 그래. 나중에 나이 먹으면 구박받는다니까.”

“해봤냐? 말이 왜 이렇게 번지르르해.”

“결혼식도 중요하지만 그전 단계도 중요해. 평생 바가지 긁히면서 살기 싫으면 진중하게 프러포즈해. 소연이가 좋아할 만한 거로. 반지는 필수지참이고.”


공다연이 투덜거렸다.


“반지에 한이라도 맺혔어? 자꾸 반지, 반지 거려. 억만장자인 주제에.”

“그만큼 심벌이 중요하단 거야. 준우야, 엉아 말 들어라.”

“넌 영화감독인데 뭐 좀 참신한 프러포즈 아이디어 없어?”

“내 코가 석자다.”


그러지 않아도 레오나 파커의 졸업에 맞춰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다.

소박한 방식, 거창한 방식, 아주 거창한 방식.

고민 중이다.

그깟 프러포즈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솔직히 남자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도 한 번 해봤다.

막상 해보면 영화처럼 환상적이지 않다.

정성이라고 쓰고 스트레스로 읽는 그런 것이랄까.

아무리 이벤트 준비를 잘 해봐야, 막상 연인을 감동시키는 게 쉽지 않다.

영화에서는 손가락에 실을 걸어 반지를 쪼르르 미끄러뜨려 끼워주며 프러포즈를 하기도 하고(스탭맘), 연인이 좋아하는 황수선화를 집 앞에 몰래 심어두기도 하고(빅피쉬), 스케치북에 마음을 적어 고백하기도 하고(러브액추얼리), 공주를 구하는 왕자처럼 장미를 입에 물고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비상계단을 올라가 고백하고(귀여운 여인), 툭하고 진심을 털어놨다가 졸지에 프러포즈가 되는(어바웃 타임) 등 수많은 로맨스를 선보여 왔다.


“청혼할 때 진심을 다하면 통한다고들 말하지. 근데 말이다. 반지 링은 얇아도 다이아몬드는 알이 굵어야 하는 것처럼 내가 여자라도 소박한 이벤트보다 스토리가 있는 좀 풍성한 프러포즈를 좋아할 것 같아.”

“결국 돈을 팍팍 써야 된다는 거잖아. 이게 여자를 무슨 속물근성 쩌는 존재로 매도하고 있어.”


공다연이 짐짓 화를 내든 말든 류지호로서도 고민이긴 했다.

명색이 영화감독이지 않나.

레오나 파커로서는 특별한 프러포즈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기타치고 청혼가를 부르며 반지를 끼워주는 판에 박힌 프러포즈에 실망할지도 몰랐다.


‘멜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장르야.’


스펙터클한 장면 콘티를 짜는 것보다 로맨틱한 프러포즈 콘티가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류지호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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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Love Of a Lifetime. (1) +2 23.07.21 2,951 113 24쪽
558 어련히 알아서 할까..... +6 23.07.20 2,953 118 29쪽
557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겠지..... +9 23.07.19 2,898 122 25쪽
556 MJJ Music Records. (4) +4 23.07.18 2,849 110 24쪽
555 MJJ Music Records. (3) +2 23.07.17 2,832 114 21쪽
554 MJJ Music Records. (2) +5 23.07.15 2,935 12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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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2) +3 23.07.13 2,990 113 23쪽
551 내 것이 없으면 언제고 한계가 닥치게 되어 있어. (1) +5 23.07.12 2,978 112 23쪽
550 나도 아직 시도하지 않은 건데..... +4 23.07.11 3,010 118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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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내 이럴 줄 알았다! (1) +4 23.07.08 3,023 112 25쪽
547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아..... +4 23.07.07 3,029 112 25쪽
» 반지 링은 얇아도 다이아몬드 알은 굵어야.... +7 23.07.06 3,040 10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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