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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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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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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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많이 컸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폭동이 진압되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폭동이 1차 진압된 날 LA 셰리프카운티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에서 한인상인들에게 인권침해적 피해를 준 폭동혐의자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 인권법 위반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것으로 끝이다.

결국 그 조사는 흐지부지 되었다.

또한 FBI의 LA지부장도 기자회견에서 폭도들을 인권법 위반으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그 수사 역시 아무런 진전이 없다.

재산상 엄청난 피해를 입은 한인 폭동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보험회사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이들 보험회사 중 과반수가 허가를 받지 않은 회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동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사기보험 피해를 당한 것이다.

감독대상인 주정부 보험국은 피해자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조사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더 가관인 곳은 정부 구호기관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다.

이들의 무성의한 업무처리로 아주 소수의 피해자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은행의 채무이행 조치로 주택과 상점을 빼앗길 상황에 놓였다.

지역 정치계도 한인들에 대해 한 마디로 무책임하게 행동했다.

한 하원의원이 흑인밀집지역에서 영업을 했던 한인 상인들이 재개업을 하려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 시조례를 재정했다.

이 때문에 많은 피해 한인들은 피땀 흘려 일궈 놓은 업소를 다시 열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극소수의 주유소와 식품점만 시공청회를 통해 재개업 할 수 있었다.

많은 한인들의 원성이 대단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폭동이 일어났을 때의 대처도 최악이었지만, 사후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사회의 모습은 한인사회를 각성시켰다.

이후 흑인사회에 손을 내밀기 시작하게 되고, 정치와 사회 전반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류지호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KABC, 이 자식들은 용서가 안 돼. 앞으로 트라이-스텔라 TV가 제작하는 알짜배기 드라마는 ABC 니들한테 절대 안 준다.”


데본 테럴은 수집된 각종 정보를 ABC를 제외한 경쟁 방송사에 뿌렸다.

폭동이 거의 진압될 즈음에 NBC에서 먼저 류지호의 영화를 왜곡, 편집해 사용한 KABC를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어 CNN은 KABC가 의도적으로 흑인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 보도를 내보냈다.

ABC는 거대 두 미디어인 NBC와 CBS에게 한 달간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음은 물론 CNN까지 집중 타깃이 되었다.

강경보수 포지션의 PARKS TV만 모른 척 했다.

당연히 KABC의 광고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류지호가 KABC에 명예훼손 등 민사를 걸지는 않았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 언론 보도의 자율성을 보장하기에 소송을 걸어봐야 승소확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유대계 언론 ABC와 맞서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기도 했고.

시간이 조금 흘러 KABC가 사과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Life Goes On>을 꽤 비싼 가격에 구입해 풀 버전을 특별 편성해 방영했다.

CBS에서는 폭동 기간 한인, 백인, 히스패닉, 흑인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상가지역을 방어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내보냈는가 하면, <Life Goes On>의 영화 속 한 여사의 실제 모델인 콤프턴의 한인 할머니가 운영하는 잡화점을 흑인 청년들이 보호해 준 것이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Garam Invest가 진행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이 모두 공개되었다.

KABC가 류지호의 영화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를 한 것인지,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리한 보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 고순희씨 사건을 집요하고 비열하게 하루 종일 반복 방영한 걸 떠올려보면, 더 윗선에서 뭔가 사전 지시가 있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할 뿐이다.


- 미스터 류! 자네!


수화기 너머에서 모리스 메타보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사고를 치려거든 미리 언질이라도 주고 쳤어야지!


쩝.


류지호는 지은 죄가 있어 모리스 메타보이의 꾸중을 묵묵히 들었다.

Garam Invest 소유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일주일 간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언론의 등쌀이 상당했다.

반대급부라고 할 순 없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

트라이-스텔라와 파라맥스가 제작한 일부 영화들의 비디오테이프 판매와 유료 케이블 결제, 재방송이 전국적으로 폭발했다.

특히 남북전쟁 최초의 흑인부대를 다룬 영화 <영광의 깃발>이 개봉 당시 부가시장 수익의 몇 배를 갑자기 벌어들였다.

LA폭동으로 입은 마음에 상처를 선조들의 용감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위안 받고 싶어 했을까.


‘아니면 그들 흑인 형제들의 잘못된 폭력행위를 선조들의 희생으로 갈음하려는 무의식에 발현이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많은 상처를 남긴 아픈 사건이었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잊혔다.

상처를 입었던 이들만 오랫동안 고통 받을 뿐.

몇 주가 흐른 시점에는 미국의 메이저 언론들이 LA폭동을 일절 다루지 않았다.

류지호가 미국 언론에 크게 실망한 것과 상관없이 각종 매체에서 Ji Ho Ryu라는 이름 석 자를 열심히 알렸다.

사우스센트럴LA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지원과 한인타운의 자율방범대 지원사업, 저소득층 장학재단 설립 같은 일련의 행보들이 소상하게 알려졌다.

그를 통해 류지호 개인이 전국적인 유명인이 된 것에 더해 Garam Invest가 사회공헌에 힘쓰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래 얘들아. 꿈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우린 노예로 도망쳤지만, 군인으로 되돌아왔다!]


영화 <영광의 깃발> 중에서 남북전쟁 최초의 흑인부대 54연대가 행군하던 중 만난 꼬마에게 흑인 주임원사 롤린스(모건 포터필드)가 하는 말이다.

흑인 청년들 모두가 갱단원이거나 말썽만 부리는 사고뭉치는 아니다.

용산 캠프에는 명예롭게 군생활하는 흑인 부사관도 상당히 많다.


"Jay, 어디가? 함께 농구 안 할래?"

"니들하고는 안 해. 데니스 로드먼 같은 놈들아!"

"난 뉴욕 출신이야! 패트릭 유잉이라고 해줘."

"까불지 마, 난쟁이!"


류지호는 내기 농구를 제안하는 흑인 부사관들을 뒤로 하고 외출을 서둘렀다.

이젠 외출도 쉽지 않았다.

미국 언론을 통해 류지호의 얼굴과 신상이 다 알려져 버려서 국내 언론들까지 류지호를 취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다.

류지호는 용산 게리슨의 주요 게이트 주변에 취재진이 없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야 외출을 하고 있다.


❉ ❉ ❉


시청각장비운용병으로 AFKN에서 근무하면 소위 ‘꿀보직’으로 하루 종일 놀기만 할 것 같다.

그렇지는 않다.

바쁠 때는 ENG 카메라를 챙겨 외근을 다녔다.

각종 촬영을 진행하고, 때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의 캠프로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많은 카투사들이 주한미군사령관이나 고위급 장성들을 멀찍이서 어쩌다 보는 것과 달리 류지호는 연합사 본부의 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리포터와 함께 인터뷰를 나가게 되면 주로 상대하는 계급이 별들이었으니까.

간혹 대령급 인터뷰도 카메라에 담기도 하지만, 대체로 류지호가 장군들 촬영을 전담하는 편이다.

류지호의 계급이나 짬밥과 전혀 상관없이.

장성들 인터뷰 전문 촬영기사가 된 이유가 여럿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최고위급 장성들과의 인맥이다.

한미연합사령부 참모장 겸 미8군 사령관은 Garam Invest 조사팀장 겸 Pinkerton Corp. LA 지부장 데본 테럴과 매우 친한 사이다.

류지호가 용산미군기지로 그것도 AFKN으로 배치받게 된 배경에 미8군 사령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Jay~"

“옛설!“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비 기공식 초청 받지 않았어?”

“그런 이야기 못 들었습니다.”


1986년 한국전 참전 용사회(KWVA)가 창설되면서 그 동안 한국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단체가 해오던 한국전참전 기념비 사업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같은 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법안이 법제화 되었고, 올해 6월 14일에 기공식이 예정되어 있다.

기념비 건립비용인 1,600만 달러 대부분을 기부금으로 충당했는데, 이 중에서 500만 달러는 미국내 한국기업의 현지법인이 기부했다.

류지호는 월미도 해군기지에서 거행되었던 인천상륙작전기념식 참석 이후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꾸준히 관계를 이어오며 이 기념비 사업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금 액수만 놓고 봤을 때 기공식에 초대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내가 부사령관에게 자네 워싱턴 DC 출장 문제를 건의해볼까?”


부사령관이라 함은 국군 장성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뜻한다.

연합사 부사령관이 허락을 한다고 해도 참모총장은 물론 그 윗선까지 허락을 해주리란 보장이 없다.

장교도 아니고 일개 사병 나부랭이가 국군 참모총장도 참석하지 못한 워싱턴DC 행사에 감히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


“아닙니다. 나중에 기념비 제막식에 초대를 받게 되면 그때 참석하겠습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과 친분이 있다고 했지?”

“가끔 안부전화를 드리고 있습니다.”


윌리엄 웨버 대령은 한국전쟁의 영웅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수부대 작전장교(대위)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평양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1951년 2월 강원 원주 북쪽 324고지에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는 큰 부상을 당했다.

미국에서 1년여의 수술과 치료를 거쳐 현역에 복귀한 뒤 1980년 전역한 전쟁영웅으로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비와 추모의 벽 건립에 생의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인물이다.

윌리엄 파커와도 꽤 친분이 두텁다.


“그가 KWVMF(참전용사기념재단)를 이끌 모양이지?”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윌리엄 웨버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을 맡아 워싱턴DC 내셔널몰에 한국전 참전비(19인의 용사상) 건립을 주도할 예정이다.

실제 용사상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2006년부터는 미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 운동을 시작해, 10여 년 후 그 결실을 맺게 되는데, 그 사업에 삶의 마지막을 불태우게 된다.


“미국의 전쟁영웅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분들이 있어서 오늘 제가 카투사로도 복무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현재 미국에서 류지호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민간단체가 한국전쟁 참전용사회와 참전용사기념재단이다.

LA폭동 때도 캘리포니아주 한국전 참전용사회에서 전쟁용사들의 친구(류지호)를 나쁜 의도로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89년부터 류지호가 매년 꽤 많은 금액의 후원금을 기부해 오고 있기 때문에 참전용사회로서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류지호 역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신경을 꽤나 쓰고 있었고.


“혹시 생활하는데 애로사항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고.”

“전혀 없습니다.”


LA폭동을 계기로 류지호의 이름이 여기저기 언론에서 회자되자, 한국군 간부들과 카투사들도 사회에서 류지호의 신분에 대해 알게 됐다.

최근에 부쩍 카투사와 한국군 간부들이 갑자기 친절하게 굴었다.

당연했다.

미8군사령관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지 않나, 한 낱 사병 주제에 미국 본토에서 사무실로 직통전화가 걸려오지 않나, 이제 갓 스물이 넘은 주제에 할리우드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LA지역 저소득층을 위해 무려 1,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등, 한국군 간부들은 물론 심지어 미군들까지도 류지호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류지호가 거만을 떨거나 하지도 않았다.

맡은 바 업무만 묵묵히 수행할 뿐.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중에도 못되게 구는 선임도 있다.

이전 삶의 고참들이 한 짓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다.

류지호는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 ✻ ✻


류지호는 모처럼 주말에 외박을 나왔다.


지이잉. 지직.


여의도, 가온&GP투자신탁 임원 집무실이 모여 있는 층에서 팩스가 쉴 새 없이 종이를 토해내고 있다.

이곳에 한국 사업들의 관제탑 역할을 하는 류지호의 집무실도 마련되어 있다.

비록 각각의 규모가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효율적인 경영과 관리를 위해 이사회 의장 집무실을 마련하고 비서진도 꾸렸다.

팩스가 동작을 멈추자, 황재정이 종이를 수습해 서류철에 정리했다.

서류철을 챙겨 비서실을 나서며, 함께 일하는 비서실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의장실에 다녀올게요.”

“네. 실장님.”


가온&GP투자신탁 의장 비서실에는 황재정의 자리까지 포함해 다섯 개의 데스크에서 다섯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여자 직원 2명과 남자 직원 3명이다.

그저 커피나 타 내오고, 의장 스케줄을 챙기고, 의장이 지시하는 일만 하는 비서진이 아니다.

회계, 조직관리, 투자, 마케팅, 법률 등 각기 전문분야의 소양을 갖춘 이들이다.

황재정이 가장 나이가 어렸다.

하지만 직함은 실장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는 비서실 직원은 없다.

의장의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류지호를 제외하고, 가온 계열 사업부 전반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황재정이기 때문이다.

류지호의 최측근 중에서도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가온 웨딩 스튜디오의 주주이기도 하고, 가온 사업체들 내에서는 은근히 의장의 복심이란 소문이 돌 정도다.

업무의 미숙함은 완벽해 질 때까지 파고들어 결국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다.

해야 할 일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마무리하는 독종이다.

곧 방위병 복무를 할 예정이다.

때문에 비서실장 직급을 내려놓는다.


똑똑.


황재정이 의장실 명패가 걸린 출입문에 노크를 했다.

벽 대신 통유리로 되어 있어 문밖에서도 집무실 내부가 훤히 보였다.

류지호가 창밖으로 몸을 돌린 채 통화 중이다.

기업의 임원은 일반 직원들에게 다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지금 이 시기의 임원 사무실은 다소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에 가온 계열 회사에서는 형식적인 권위보다 실용과 효율을 중요하게 여겼다.

즉 중역실 하면 떠오르는 값비싼 원목가구와 손님 접객을 위한 고급스러운 소파 대신에 실무에 필요한 회의 테이블과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를 배치한 공간으로 꾸몄다.

의장인 류지호부터 솔선수범했다.

사무실 가구들은 캐주얼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죽시트 소파가 있어야 할 자리에 회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또한 소통과 업무 프라이버시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 유리벽을 통해 개방감은 늘리고 청각적인 프라이버시는 유지하는 공간을 구성했다.

임원이 외부 손님과 미팅을 해야 한다면 따로 마련된 고급스러운 접객실에서 하면 된다.


“소통 어렵지 않습니다. 임원과 일반 직원이 거리감이 없도록 장벽을 없애고 대화를 늘리면 더 나은 협업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임원실 공간 구성에 정답은 없다.

다만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 조직 내 소통을 늘리는 첫 단추는 임원실의 변화부터다.

황재정이 류지호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잠시 서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토요일인데, 정시 퇴근하지?”

“빅보스가 출근 했는데, 비서가 어떻게 퇴근 하냐?”

“내가 빨리 회사에서 꺼져줘야 비서실 직원들이 퇴근하겠네?”

“알면 토요일에는 회사 나오지 마. 차라리 평일에 야근하는 게 좋아.”

“비서실 직원들이 그래?”

“너 같으면 토요일에 늦게까지 일하는 게 좋겠냐. 토요일에 정시 퇴근하고, 평일에 조금 늦게 퇴근하는 게 좋겠냐?”

“둘 다 싫어.”


황재정이 매섭게 노려보며, 류지호 앞으로 서류철을 내밀었다.


“미국에서 온 팩스야?”

“응.”


류지호가 서류철을 넘겨보았다.

1991년도 북미박스오피스 수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박스오피스 톱10 절반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영화들이다.

전 세계 5억 달러 매출을 올린 <터미네이터Ⅱ>에서부터 <후크>, <양들의 침묵>, <아담스 패밀리>. <못 말리는 비행사>, <JFK>까지 총매출이 무려 17억 달러에 이르렀다.

물론 <후크>는 스티븐 A 아들러 감독의 E.T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 <터미네이터Ⅱ>는 캐롤코와 공동제작, 리젠시 엔터테인먼트의 <JFK>는 투자/배급만 했다.

그 외에 <벅시>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 비평가들이 주는 여러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류지호 회장님.”

“회장 아니고 의장이거든.”

“솔직히 의장 너님은 한국에서 아등바등 댈 필요 없지 않냐?”

“그건 뭔 개소리야?”


황재정이 류지호가 보고 있는 서류철을 손가락으로 콕 짚으며 말했다.


“작년 트라이-스텔라 매출이 20억 달러(1조 5천 억)가 넘잖아.”


류지호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가 봐.”

“네가 한국에서 뭣 빠지게 일군 것은, 그 백분지 일이 조금 넘을까 말까야.”

“그래도 한국에서 이룬 것들이 내게 더 보람이다.”

“맨땅에서 시작해서?”

“미국에 벌려놓은 것들은 왠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원래 그런 거야. 지분을 나눠 가졌으니 온전히 네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 주식회사가 달리 주식회사냐?”


그런 단순한 이유일리 없지만, 류지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서류철을 넘겼다.

류지호가 갑자기 탄성을 터트렸다.


“오오!”

“뭔데? 왜?”

“하하. 재정아, 데본이 또 한 건 했다.”

“무슨 한 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원작 하나를 또 확보했단다.”

“유명한 거냐?”

“아직은.... 근데 앞으로 유명해 지겠지.”

“소설 제목이 뭔데?”

“소설은 아니고. ‘Band of Brothers‘라고 역사가가 쓴 논픽션이야. 2차 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 날부터 일본이 항복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지중대라는 미군 부대를 서술한 책이야.”

“전쟁영화라도 제작하게?”

“글쎄. 그건 좀 더 두고.”


에드워드 앰브로스의 ‘Band of Brothers‘의 원작 정식 제목은 무척 길다.

정식제목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 제101공수사단 506연대 E중대 : 노르망디에서부터 히틀러의 독수리 요새까지‘다.

이 책은 지난달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류지호가 데본 테럴에게 넘겨준 리스트에 들어있었다.

원작자의 이름도 원제가 엄청나게 긴 것도 류지호는 잘 몰랐다.

드라마 제목만 기억하고 있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도널드 제이콥이 미국 서점에 서적이 깔리자마자 구입해 한국으로 보냈고, 류지호가 읽어 본 후 판권확보를 지시한 바가 있다.


“왜? 제작비가 많이 들어?”

“그것도 그렇고. 스티븐 아들러와 이야기를 해봐야 돼.”

“자식이... 구라는... 무슨 아들러야? 그 감독은 너하고 노는 물이 다르지 않냐?”


류지호가 짐짓 우쭐거렸다.


“아들러가 감독한 <후크>에 Garam Invest도 투자했거든, 배급도 트라이-스텔라가 했고. E.T 엔터테인먼트와 트라이-스텔라 관계가 얼마나 좋은데.”

“스티븐 아들러, 실제로 본 적 있냐?”

“아직은. 근데 언젠가 만나지 않겠냐?”

“내 친구 많이 컸네?”

“우찬이 다음으로 내 키가 제일 크거든.”

“2등은 입 다물지?”

“키 4등은 나가서 죽어, 인마.”

“우찬이는 빼! 그럼 3등이야.”

“그럼 내가 일등인데?”

“닥치고, 팩스나 빨리 확인해. 비서실 직원들 퇴근시켜야 돼.”

“지금 가서 퇴근하라고 해.”

“나는?”

“저녁에 술 한 잔 하자.”

“인천 안 내려가?”

“어머니가 이제 집에 그만 좀 오라시네. 아들래미 음식 해서 바치기 힘드시단다. 큭큭.”

“나도 네가 현역인지 방위인지 헛갈리는데, 어머니는 오죽 하시겠냐? 이 미군방위 자식아!”


황재정이 집무실을 나갔다 돌아 올 동안 류지호는 계속해서 팩스 내용을 확인했다.

작년에 상장한 타임리 엔터테인먼트는 올 해 공격적으로 기업들을 인수합병 하고 있다.

트레이딩 카드 회사, 스티커 제작사, 만화 배급사 등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면서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주당 2달러였던 주가는 현재 10달러를 넘어 20달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런 몸집 불리기 때문에 몇 년 후 만화시장이 침체를 겪을 때 회사가 어려워지지.. 쯧”


그것이 로니 패럴만 같은 기업사냥꾼들의 수법이다.

타임리 엔터테인먼트 주식 상장 때 전체 주식의 40%를 공개했다.

상장으로 들어온 자금 상당 부분을 로니 페럴만 소유 회사에 배당을 했다.

그 배당으로 로니 패럴만이 대출한 자금 대부분을 상환함으로써 투자 원금의 무려 5배를 회수했다.

현재 Garam Invest, GARAM ventures는 총 18%의 타임리 엔터 주식을 확보하고 있다.

G&P는 9% 정도를 확보했다.

Pinkerton Corp. ParaMax, Tri-Stellar Television 등을 통해 모두 6%를 사들였다.

로니 페럴만은 39%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재 타임리는 장난감 회사 한 곳과 지분 교환 방식의 인수합병을 추진 중에 있다.

대략 5% 주식을 더 확보하게 되면, G&P에서 위임 받는 것까지 포함해 Garam Invest 가 최대의결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판권 팔아먹은 것은 차차 회수하는 걸로 하고. 더 이상 판권 팔아먹지 못하도록 해야 돼.”


타임리 엔터테인먼트는 90년대 중반 회사의 부채가 기하급수로 쌓이면서 파산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로 인해 많은 알짜배기 영화·TV 판권을 팔아먹게 된다.

류지호는 그 전에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타임리 코믹스의 판권 이탈을 저지할 생각이다.


‘스노우볼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고 하더니 딱 그 말이 맞네.’


<레니게이드>는 신디케이션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미국의 수십 개 지역방송국과 기본 케이블을 통해 올 가을 첫 시즌 방영할 예정이다.

또 하나 좋은 소식도 보고서에 들어 있다.

<X-파일>의 칼 카터(Carl Carter)가 LOG 픽처스를 퇴사했다.

Tri-Stellar 텔레비전의 얀 호퍼는 곧바로 그와 계약을 체결했다.

NBC와 PARKs TV 두 곳과 <X-파일> 방영을 논의 중에 있다는 소식이다.

두 방송사 모두 반응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다만 PARKs TV에서 금요일 방영은 고려해보겠다는 여지를 남겼다고 한다.

통상 금요일 밤은 지상파에서 버리는 시간대로 여겨진다.

두 방송사에서는 컬트적인 요소가 강한 <X-파일>의 스크립트를 보고, 일부 마니아 시청층을 공략해 봄직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란다.

성공할 시리즈를 왜 못 알아보냐고 답답해 할 이유는 없다.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하는 것은 작품 자체가 가장 중요하지만, 홍보·마케팅, 방영 시간대 경쟁작들, 마지막으로 운도 매우 중요한 법이니까.


“...음.”


류지호가 마지막 페이지를 들춰보며 신음을 흘렸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93년 개봉 했거나, 예정인 영화 라인업 역시 굉장했다.

류지호가 영화선택 권리를 사용한 5편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영화들 모두 만만치 않았다.

3월에 개봉해 이미 대박은 기정사실화 된 <원초적 본능>, 지난 달 개봉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클리프 행어>, 7월부터 예정된 <유니버셜 솔져>, <언더 시즈>, <보디가드>, <어퓨 굿맨>, <나 홀로 집에Ⅱ> 등등...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인하우스 영화부터 배급만 하는 영화까지 매달 한편씩 개봉이 잡혀있다.

그 외에 헤이우드 앨런 감독 영화 한 편과 프랭크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까지...


“오락영화부터 작품성 있는 영화까지 참 골고루 갖췄구나.”


모리스 메타보이가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와 헤이우드 앨런의 <Husbands and Wives>, 패트릭 스웨이지가 출연한 <City of Joy>의 배급권을 가져 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영화들이 모두 성공할 수만은 없고, 박스오피스 줄 세우기를 할 수도 없다.

작년 한 해 실적만 놓고 보면 빅6가 당장 견제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빅6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 수작을 부리진 않을 것이다.

잡아먹으려고 하면 했지.


‘<아담스 패밀리>를 개봉할 때 온갖 저작권 소송과 법정 분쟁을 생각하면.....’


류지호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작년 <아담스 패밀리>를 개봉하기 직전이었다.

오리지널 TV드라마를 제작했던 감독이 느닷없이 권리를 주장하고 나왔다.

모리스 메타보이 CEO는 콧방귀를 뀌고 무시했다.

헌데 영화가 대박이 터졌다.

오리지널 TV시리즈 감독이 판권관련해서 법정 소송을 걸었다.

물론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스캇 루딘 프로덕션은 <아담스 패밀리> 판권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아담스 패밀리>를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

따라서 잡음 없이 프랜차이즈화하기 위해서 TV시리즈 감독과 물밑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 분쟁이 길어지게 되면 승소는 확실했다.

그런데 후속편 제작에 차질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 비용과 합의금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훨씬 이득이다.


“하여튼 남이 잘되면 숟가락 얹으려고 하는 놈들이 많다니까.”


어느새 접무실로 돌아온 황재정이 물었다.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비서실 직원들 퇴근했냐?”

“응. 이제 사무실에 너하고 나만 남았다.”


탁.


류지호가 서류철을 덮어 서랍에 넣었다.


“사복으로 돌아다녀도 되는 거냐?”

“응.”

“무슨 방위냐?”

“그 대신 우린 미군에서 승인한 패스 없이는 외출외박을 못하지. 퇴근이 아니라 외출외박이야.”

“누가 뭐래?”

“가자.”


오너가 군대에 가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회사들의 성장이 빨라지고 있다.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작가의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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