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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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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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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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발자국만 앞서 가라.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여의도를 떠난 류지호와 황재정이 가온 웨딩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주말임에도 출근한 친구들과 합류했다.

해병대 군복무 중인 김재욱을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 네 사람이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맛있는 거 먹자니까.”

“고기로 영양 보충이나 해.”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가 맛있게 들릴 때, 고우찬이 류지호에게 물었다.


“저번에 미국 회사는 무사했어?”

“응.”

“뉴스 보니까 거의 전쟁터 같더구만.”

“다행히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고.... 영화사하고 내 오피스는 다른 도시에 있어서 폭동에 휘말리지 않았어.”


황재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다.


“탐정회사 지사가 한인타운 한복판에 떡하니 있더구만 뭐.”


류지호는 못 들을 척 삼겹살만 뒤집었다.


“미국애들은 깽판을 쳐도 스케일이 달라. 그치?”

“그게 깽판이냐?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가게가 불타고....”

“그럼 데모.”

“우찬아, 넌 그냥 닥치고 많이 먹어.”


고우찬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며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고기가 익어야 먹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황재정이 소주잔을 류지호에게 내밀었다.


“이제 트라이-스텔라도 메이저가 된 거냐?”

“어림도 없어.”

“그 정도 매출에, 제작편수에,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는데도?”

“트라이-스텔라 열 개 정도 합해야 메이저 스튜디오 하나랑 견줄 수 있을까.”


김준우가 탄성을 터트렸다.


“와아! 거의 우리나라 대기업 사이즈네?”

“우리나라 대기업은 상대도 안 될 걸?”

“에이, 설마~”

“10년 후는 몰라도 현재는 그래. 메이저 중에 조금 떨어지는 콜롬비아스가 소닉에 4조에 팔렸어.”


참고로 1992년 재계 1위 오성그룹 시가총액은 8조 원에 조금 못 미친다.


“후아! 굉장하구나.”

“엉아가 그런 판에 도전하고 있다. 자식들아~ 막 존경심이 생기지 않냐?”


고우찬이 불퉁거렸다.


“쳇. 미국 할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뭣도 아닌 주제에.”

“오. 고우찬,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맘대로 해. 이제 나도 벤츠 뽑을 수 있어.”


류지호가 황재정을 향해 그의 말이 무슨 개소리냐는 듯 눈으로 물었다.


“재작년에 네 말 듣고 주식 산 거 있잖아. 대광산업.”


고우찬이 삼겹살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제 거의 익은 것 같았다.

고우찬이 씨익 웃으며 고기 한 점을 류지호 앞으로 놓아주었다.


“첫 고기는 지호 네가 먹어.”


류지호가 잘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한입 크게 먹었다.


“주식 그거 되게 웃겨. 난 아무것도 안했데, 그냥 앉아서 돈이 막 불어나더라.”

“팔고 싶으면 황원탁 이사에게 꼭 확인하고 팔아.”


류지호가 신신당부했다.

주식이란 것이 묘했다.

충분히 만족할 가격에 팔아치워 돈을 벌었어도 나중에 주가가 더 오른 걸 보게 되면 괜히 손해를 본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든다.

어설프게 접근하면 안 되는 것이 금융투자다.


“난 네가 팔라고 하면 팔고,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있을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걸 이제 좀 느꼈나 보네.”

“아닌데? 나만 망할 수 없잖아. 같이 망해야지.”


고우찬을 뺀 세 명의 친구가 일제히 숟가락을 들어 한 대 치려고 했다.


“에라이!“


대광산업 주가는 작년 연말 61,000원에서 당일 현재 207,000원으로 무려 239%의 주가상승율을 보여 주고 있다.

친구들은 대략 500~600주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당장 팔아도 1억 원 이상을 손에 쥘 수가 있다.

류지호는 89년부터 대광산업 주식을 꾸준히 모아서 현재 9만 주 조금 넘게 보유하고 있다.

지금 주가에 팔면 대략 200억 원이다.

당장 크게 돈 들어갈 곳도 없고, 군복무 중에 현금 재산변동이 생기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제대 후에나 팔아치울 생각이다.

황재정이 엄하게 입을 열었다.


“고우찬, 아무리 친구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라는 게 있다.”

“지호가 38선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닌데 뭘 넘지 마?”

“지호 지금 위치가 회장이야. 미국 회사를 빼고도 한국에서 소유한 회사만 5개야. 아무리 격의 없는 사이라고 해도 망하니 마니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마.”

“......!”


분위기가 싸해지자, 류지호가 소주잔을 들어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야! 나 회장 아니고 현재 직업은 군바리야. 언제는 미군방위라며? 진지 빨지 말고, 소주나 빨어.”


챙.


김준우가 재빨리 친구들의 소주잔에 건배를 했다.

조금 분위기가 누그러들자 고우찬이 툴툴거렸다.


“어릴 때는 더럽게 삐딱했던 놈이 비서실장 되었다고 간신 다 됐어.”

“간신이고 충신이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대광산업 주식 절대 팔지 마.”

“안 판다니까!”

“올해 안에 40만 원 찍을 수도 있대.”

“진짜?”

“못 찍으면 어때? 지금 주가만으로 아파트 한 채값 벌었잖아.”

“그것도 그래.”

“그나저나 재욱이 면회는 다녀왔냐?”

“그 놈 말뚝 박아야겠더라. 군바리 체질이야 체질.”


한동안 김재욱과의 어릴 때 추억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애초에 회장이든 무엇이든 친구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류지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든지도 상관없다.

친구들은 류지호를 어릴 때부터 존중하고 따랐다.

최근에는 존경심마저 들었다.

쉬지 않고 발전하는 류지호를 보고 있노라면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 좋은 놈.

누군가 류지호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황재정은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니들도 지호 반 만 해봐라. 그러면 알게 될 걸. 노력하면 할수록 운도 덩달아 더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난 놈이 죽을 정도로 열심히 한다.

그러니 없던 행운도 굴러들어올 수밖에.

반면에 고우찬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불알친구 류지호는 왜 저렇게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살까.

이 황금 같고 소중한 청춘기에 공부와 사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상은 또 어떤가.

높다.

지나치게 높다.

영화든 사업이든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놈 같다.

물론 불알친구가 상대해야 할 놈들이 죄다 괴물이란 걸 모르지 않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면 이해는 간다.

데리고 있는 부하들도 어디 하나 모자란 사람이 없다.

아니 전직 CIA 간부출신까지 부하로 데리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소설 쓰냐고 단박에 욕먹는다.

남자가 야망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주인공처럼 류지호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며 재미없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고우찬의 마음이다.

고우찬은 어릴 때처럼 생각이란 놈을 잠시 접어두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웨딩 비디오를 시작할 때는 진짜 재미있었는데.


“애들아, 지호 휴가 나오면 우리 전국일주 해볼래?”

“콜!”

“나도 찬성.”


고우찬의 제안에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황재정과 김준우가 찬성했다.


“나하고 준우 훈련소 가기 전에 휴가 나오냐?”

“얼추 맞지 싶다.”


김준우는 류지호가 여자 친구 이야기하는 걸 요 근래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온통 영화 생각, 사업 생각 뿐.


“지호야....”

“왜?”

“나 소연이랑 사귄다.”

“축하해.”


김준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그게... 다 야?”

“아름다운 사랑해라. 아니 뜨겁게 사랑해라.”

“......?”


김준우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다.

황재정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따져 물었다.


“류지호 이 자식아! 여배우 언제 소개시켜줄 거야?”

“여배우?”

“여배우 소개시켜 준다며? 미국에 친한 여배우 없어? 난 인종 안 따져.”

“한 명 있는데....”

“백인이야? 흑인이야? 아시아인?”

“아시아인.”

“그래.”

“다연이 어때?”

“공... 다연?”

“내가 아는 여배우는 걔밖에 없다.”

“장난 하냐?”


고우찬이 낄낄대며 놀려댔다.


“오오. 둘이 까칠한 게 잘 어울리겠는데?”

“별로야. 아니 싫어!”


김준우가 은근슬쩍 놀림에 가담했다.


“그 말 다연이한테 고대로 전한다?”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다연이랑 엮으려고 그래. 친구라는 놈들이!”

“재정아, 외국여자 사귀려면 얼릉 미국으로 넘어가라.”

“그래, 한국에서 못 찾으면 외국으로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어.”

“영양가 없는 여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황재정이 소주잔을 테이블에 내려치며 대화를 정리했다.

하지만 어림없다.


“남자에게 여자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영양가가 없어?”


한동안 솔로인 황재정을 놀려먹던 친구들이 술자리를 파했다.

모두 황재정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고우찬은 고생하는 경호원들을 보며 한소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간까지 경호원 형들은 무슨 죄냐?”


류지호가 김영철 대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분간 외출외박 못 나와요.”

“아, 곧 을지포커스렌즈(UFL) 기간이겠군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 조건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을 조건으로 한미연합훈련인 ‘팀 스피리트’는 취소됐다.

다만.


“올해는 포커스렌즈와 을지훈련을 나눠서 한다는데....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네요.”

“시청각장비 운용병도 훈련 하냐?”

“훈련하는 걸 촬영하러 출장 간다.”


2008년부터 명칭이 을지프리덤가디언(UFG)으로 바뀌게 되는 을지포커스렌즈(UFL)는 1954년부터 유엔사 주관으로 시행하던 ‘포커스렌즈‘ 군사훈련과 1968년부터 정부차원의 군사지원훈련인 ’을지훈련‘을 통합한 훈련이다.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남북관계 및 대전 엑스포 행사지원 등으로 정부훈련과 군사훈련을 분리하여 실시했다.


“고생해라.”

“휴가 때 보자.”

“제발 그래라. 어떻게 유학 가 있는 것보다 군대 있을 때 얼굴을 더 자주 보냐?”

“하하하. 실컷 봐둬. 미국 들어가면 같이 못 논다.”


황재정의 자취방에서 하루를 묵은 류지호가 느지막하게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첫 휴가를 나오기 전까지 외출외박을 하지 못했다.

류지호는 8월 하순 열흘 간 진행된 포커스렌즈 훈련을 촬영하기 위해 출장을 나갔다.

이번 삶의 군 생활 최초로 야전을 경험했다.

미군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야전 같지 않은 야전이지만.


❉ ❉ ❉


류지호는 미군과 2인 1실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함께 생활하는 미군은 히스패닉이었는데, 류지호가 스페인어를 어설프게나마 구사할 수 있어 금방 친해졌다.

그는 성격도 조용한 편이고, 일과가 끝나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류지호도 덩달아 면학 분위기에 동참했다.

룸메이트가 미군에 입대한 것은 제대 후 미국회사에 취직이 잘된다는 이유에서란다.

류지호는 열심히 군생활 하는 룸메이트의 모습이 기특했다.

그가 부탁하는 서적도 열심히 구해다 주고, 공부도 도왔다.

가끔 이태원에 데리고 나가 술도 사줬다.

카투사 선임들 역시 일과 후에는 주로 공부를 했다.

카투사 거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다.

유학생도 많다.

신병 때나 열심히 외출외박을 나가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외출외박도 시큰둥해지는 모양이다.

외출외박을 나가면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집에서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 이상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류지호는 예외다.

기자들의 눈을 피해 자주 외출과 외박을 나갔다.

대규모 투자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보고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자주 외출외박을 나가던 류지호가 부대 안에만 틀어박혀 있자, 카투사 선임들이 그를 불렀다.

집합이라도 거나 싶어 더러운 기분이었는데.


“요새 왜 외출 안 나가냐?”


류지호는 포커스렌즈 훈련 출장을 다녀온 뒤로 외출외박을 자제했다.

일주만 지나면 첫 휴가를 나가기 때문이다.


“난 또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불편한 거 없지?”

“덕분에 없습니다!”

“별 일 없으면 이번 주말에 이태원 가서 술 한 잔 할까?”

“죄송합니다. 곧 휴가라서.....”


류지호는 미8군사령관 홈파티에 초대를 받지 않나, 한국군 부사령관과 티타임을 갖는 카투사다.

적당히 잘나야 류지호에게 선임 노릇이라도 하지.

카투사 선임들에게 류지호는 상전이 따로 없다.

AFKN에서 근무하다 보니 한국과 미국에서 유행하는 최신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It's tough for them to get by~ It's black, it's white~”

(왜들 그렇게 어렵게 사는 걸까 흑인인지, 백인인지 따위로)


흑인병사들은 마이키 잭슨의 ‘Black or White'보다 영 드레의 첫 솔로 앨범 ’The Chronic‘을 더 많이 들었다.

특히 온갖 욕설이 떡칠 되어있는 ‘Xuck Wit Dre Day(And Everybody's Celebratin')을 듣는 흑인병사를 자주 볼 수 있다.

백인병사들은 올 여름 발매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흥얼거렸다.

카투사?

당연히 태지 보이즈의 ‘난 알아요‘가 대세다.

실제로 이 때 쯤은 ‘환상 속 그대로’ 넘어가는 시기이지만, 여전히 ‘난 알아요’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초강력 태풍이다.


“그 어렵다는 편지는 쓰지 않아도 돼... 너의 진실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직도 마음속엔 내가 있나요...”


류지호는 면회객을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 ‘난 알아요’ 노래를 흥얼거렸다.

여의도 면적에 필적하는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셔틀버스도 다니고 택시도 다닌다.

가끔 허가 받은 서울택시가 부대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계산은 무조건 달러다.


“How are you doing sir.”

“Good."


미군은 장교에게만 거수경례를 한다.

카투사 역시 미군과 똑같이 한다.

한국군 상급자에게는 ‘단결’ 구호를 붙여 거수경례하지만, 미군 장교에게는 지금처럼 구호 없이 간단한 인사말을 건넸다.

또 실내나 사복을 입고 있을 때도 경례를 하지 않는다.

캠프 특성상 장교들이 워낙 많아서 하루 종일 경례를 할 것 같지만.

부대가 워낙 넓고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나 지역이 한정적이라서 미군이든 한국군 장교든 만날 일도 별로 없다.

어쨌든 류지호를 면회 온 방문객은 매우 뜻밖의 인물이다.


“헤이!”


류지호는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스티브 데이커와 반갑게 포옹했다.


“건강해 보인다?”

“너도.”

“한창 가을학기 준비할 시기 아냐?”

“그렇긴 하지. 아차. 여기 인사해.”


스티브가 함께 온 20대 중반의 유대계 청년을 가리켰다.


“여기는 마이클.”

“만나서 반가워. 마이클 모하임이야.”

“반가워. 지호 류.”


류지호와 마이클 모하임과 악수를 나눴다.


“여기 마이클은 UCLA 졸업생이야.”


이때만 해도 류지호는 마이클 모하임이 영화와 관련된 인물인 줄 알았다.


“식사할래? 아니면 카페테리아에서 차 마실까?”


기본적으로 카투사는 미군PX를 이용할 수 없다.

용산 캠프에는 한국 군대에서 운영하는 PX가 따로 있다.

류지호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면세점인 미군PX는 카투사가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지만, 식당이나 푸드코트, 카페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결재는 달러로 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류지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설마, 날 만나려고 일부러 한국에 온 거야?”

“당연하지!”

“마이클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네?”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인사말과 근황 이야기가 오가다가 마이클 모하임이 입을 열었다.


“사실 나와 친구 둘이 오렌지카운티에서 게임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고 있어.”


UCLA 전기공학과 출신인 마이클 모하임과 앨런 아이단, 프랭클린 피어스가 의기투합해 작년에 실리콘 & 시냅스(Silicon & Synapse)를 설립했다.

보드 게임을 주로 유통하고, 비디오 게임을 아미가와 닌텐도 슈퍼패미컴용으로 컨버전하는 작업을 맡는 소규모 회사다.

그런데 아미가(Amiga)가 업계의 주류가 되지 못해 컨버전 작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콘솔 사업은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었고, 자체 제작 게임들도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적자로 문을 닫기 직전인 최악의 상황.


“현재 Interaction Play의 자회사가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운영비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솔직히 말할게. 사실 직원들 월급을 나와 앨런의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있어.”

“스티, 웨스트우드에 내 소유 벤처투자회사가 있는 거 몰랐어?”

“낸시가 알려주더라. 거기 제이콥씨인가 책임자와 미팅을 했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실리콘 & 시냅스가 크게 매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류지호에게 보고조차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UCLA 동문임을 내세워 보스에게 달라붙는 어중이떠중이라고 생각에 검토할 가치도 없다고 본 것 같았다.

더해 실리콘 & 시냅스가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것 또한 약점이었고.


“월급 지불할 돈도 없다면서 한국행 항공권을 어떻게 해결 했어?”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궁금했다.


“네 여자 친구가 그러더라, 어떻게든 널 만나서 진실한 태도로 사정을 이야기 하면 도와줄 거라고. 그래서 아는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돈을 모아서 왔지. 더 이상 팔아먹을 것도 맡길 물건도 없어.”


마이클 모하임이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현재까지 출시한 게임은 뭐가 있지?”

“게임 좋아해?”

“지금까지는 별 관심 없었어. 앞으로는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지.”


오락실용 게임에서 PC게임으로 넘어갈 때 류지호가 처음 접한 게임은 ‘둠’이었다.

그리고 ‘워크래프트’, ‘AOE’, ‘C&C’ 같은 유명한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을 조금 했었다.

물론 국민 게임이라 불렸던 ‘스타크래프트’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로스트 바이킹’(The Lost Vikings), 작년에 ‘RPM 레이싱’을 출시했어.”

“판매가 시원찮았던 모양이네?”

“기대한 만큼 팔리지 않았어. 하지만 게임계에서는 호평을 받았다고.”


이전 삶에서 게임 마니아였다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게임들이다.

마이클 모하임이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안타깝게도 류지호는 고전게임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게임을 즐겼던 건 아니었다.

당연히 게임회사 대표 이름까지 알고 있진 않았다.


“개발 중인 프로젝트는 뭐가 있지? 장르는 뭐야?”

“‘RPM 레이싱‘에 액션 요소를 확장한 리메이크 게임 하나와 로토스코핑(Rotoscoping)기법을 이용해 만든 ’블랙쏜‘(Blackthorne)이란 게임을 내년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이야.”


로토스코핑(Rotoscoping)은 사람의 움직임을 영화 카메라로 찍은 후 그것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그리는 기법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주로 쓰던 기법이었는데, 현재는 영화 VFX에서도 응용하고 있다.

제작비와 시간을 꽤나 많이 잡아먹는다.

때문에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점차 사용하지 않고 있는 추세다.


“그랬구나.”


류지호의 시큰둥한 태도에 마이클 모하임의 애가 탔다.

올 봄 사우스센트럴LA 지역에서 벌어진 폭동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흑인 정치가들도 브래들리 시장도 경찰국장도 주지사도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이다.

월가의 투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화제지만,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해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과 LA지역 소수인종 화합을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밝혀져 많은 미국인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특히 1,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장학재단 설립에 기부하기로 해서 미국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을 넘어 찬사를 받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UCLA 동문들과도 두루두루 친분을 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 대단한 청년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입대했다.

친 이스라엘 성향의 언론과 방송에서 그 부분을 놓칠 리가 없다.

한때 류지호의 군입대 이슈를 미국은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대서특필했다.

마치 미국으로 유학을 왔거나 부모가 유대계인 젊은이들이 그 애국심을 본받으라는 듯이.

암튼 오지랖을 떨다가 조용히 살기 글렀다고 할 수 있다.

2년 넘게 군대에서 지낸다고 해도 쉽사리 잊힐 것 같지도 않고.

현재 UCLA 재학생 가운데 스포츠 선수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인사라고 하면 단연 류지호를 꼽을 수가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인 중에 가장 유명하다는 것이 맞을 지도....

어찌 되었든, 마이클 모하임은 류지호에게서 투자금을 조달 받는 것이 1차 목표다.

더불어 류지호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싶은 욕심도 있다.

이미 20대 초반에 투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대단한데, 투자회사 수익률 또한 엄청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영화투자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손댄 영화마다 크게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그런 투자의 신성이 자신의 회사에 투자를 한다면, 홍보효과가 저절로 생기는 이점은 물론이고 또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는데 용이할 수 있다.


“내년에 발매할 ‘블랙쏜‘은 충분히 시장에서 먹힐 거라고 자신해.”


마이클 모하임이 자신감을 피력해보지만, 류지호는 여전히 시큰둥할 뿐이다.


“그때까지 버티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투자에 관심 있어?”

“당장 필요한 운영자금만 말해 봐.”

“30만 달러.”

“300만이 아니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투의 말이다.


“30만 달러면 지금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모두 마무리 할 수 있어.”

“내년까지만 회사 운영하고 말거야?”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왜 30만 달러야?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에 대한 계획이 없어?”

“없을 리가....”

“주력 비즈니스는 비디오게임 콘텐츠 제작이야?”

“닌텐도 슈퍼패미컴 전용 게임을 주로 개발하고 있는 중이야.”

“PC용 게임 소프트웨어는 아직 대중화가 안 된 시기인가.....?”


류지호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마이클 모하임과 스티브 데이커는 알아듣지 못했다.


“.....흠.”


류지호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미국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돕느라 1,500만 달러를 쓰는 판에, 대학 동문에게 푼돈(?)을 투자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이유가 없다.


‘....게임회사라.’


현재 GARAM Ventures는 실리콘 밸리 벤처투자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IT관련 업계에 쌓여있는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모하임 회사에 투자하면서 그걸 토대로 미국의 IT업계를 들여다보고, 숫자로 알 수 없는 실질적 실리콘밸리 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마침내 류지호가 결정을 내렸다.


“100만 달러 투자할게.”

“너무 많아.....”

“지분율 때문에 그런 거라면 신경 쓰지 마.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경영에는 참여 안 해.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배당금이나 잘 챙겨줘. 난 그걸로 만족하니까.”

“고마워.”

“고맙긴. 마이클도 부루인이잖아. 동문끼리 돕고 살아야지.”


류지호가 시선을 스티브 데이커에게 옮겼다.

스티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까지 벌린 채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

겨우 1시간 대화를 나눠보고, 선뜻 동문에게 1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류지호의 배포에 놀라고 말았다.


‘하긴 단편영화 찍으면서 돈을 아끼지 않고 지르는 녀석이었지.’


스티브 데이커는 납득했다.

지난 번 <Life Goes On>에만 대략 50만 달러(한화 4억 원) 이상을 쓴 친구다.

장편도 아니고 중편영화에.


“지금 어디 묵고 있어?”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널 만나러 온 거야.”

“언제 돌아가?”

“몰라. 네가 어떻게든 보살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럴 거지?”

“에휴! 이 대책 없는 놈.”


스티브 데이커가 류지호의 시선을 피하며 슬쩍 딴청을 피웠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한 짓거리였으니까.

마이클 모하임으로서는 이번 한국행의 각오가 남달랐다.

이번에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거나 인터렉션 플레이 하청업체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류지호에게 매달리고 애원해서라도 반드시 투자를 받아가야 했다.

일단은 성공적인 한국행이다.


“넌 마이클과 무슨 관계야?”

“실리콘 & 시냅스에서 방학 때마다 인턴으로 일했어. 내가 좋아하는 선배 중에 한 명이 마이클이야.”


아직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활성화 되지 않은 시기라서 공대생들이 인턴으로 일할 만한 기업들은 이름 있는 테크기업 몇 곳 밖에 없었다.

류지호가 시선을 마이클 모하임에게로 향했다.


“이 놈 쓸 만해?”

“아직 배울 게 많지.”

“스티가 떠벌이긴 하지만, 게으른 녀석은 아냐. 이 녀석 잘 부탁해.”


스티브 데이커가 발끈했다.


“떠벌이라니!”

“네가 파티 다니면서 내 이야기를 많이 떠벌리고 다니는 걸 모를 줄 알았냐? 난 한국에 있지만 눈과 귀는 미국에 두고 왔어 인마.”


스티브 데이커가 변명을 늘어놨다.


“....자꾸 사람들이 물어보는 걸 어떻게. 나도 귀찮다고.”

“적당히 해 적당히.”


류지호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스티브 데이커는 찔끔해서 슬쩍 시선을 피했다.


“스티는 내가 UCLA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야. 많이 좀 가르쳐줘.”

“인턴 정도는 써줄 수 있지.”

“내가 지호와 연결시켜줬어. 선배, 겨우 인턴이라니?”


마음의 짐을 덜어냈는지 마이클이 한결 편안 어조로 스티브와 투덕거렸다.


“인턴도 감지덕진 줄 알아.”

“일단 부대 밖으로 나가서 기다려. 늦어도 6시에는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류지호는 두 사람을 부대 밖으로 내보냈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외출을 나왔다.

두 사람을 이태원으로 데리고 갔다.

해밀턴 호텔에 묵을 방을 잡아주었다.

류지호는 식사 내내 북미 게임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년 후가 되면 게임업계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되는 인물과 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것을 류지호는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기억하는 게임회사 이름도 아니었고, 아직 베스트셀러 게임 출시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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