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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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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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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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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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9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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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 ep.3 - 남작 영애와 그 수행원들(1)

DUMMY

그날 저녁 숙소에서는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에는 에레이시아를 제외한 전원이 참석했고, 어찌하다보니 아나이스도 자리에 끼게 되었다. 그녀가 일행에게 수배서를 보여준 것은 일행이 범죄자가 아님을 믿어서겠지만, 그래도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10명이란 인원이 한방에 모이다 보니 자리는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몇몇은 침대에 걸터앉아, 몇몇은 방구석에 쪼그린 채 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에 대해 논의했다.

이칼롯이 말했다.


“람카디스 대장을 비롯해 로샤단 레인저들을 살해한 죄로군. 거기다 상트룸 수도회를 습격한 것도 우리로 나와 있는데.”


데루루피아가 탁자를 탕, 내리쳤다. 그녀는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현상금 수배서가 국왕령으로 내려오다니...그 말은 란도스 전하께서 직접 문서를 작성하셨다는 말이잖아. 난 그분을 잘 알아. 그분이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현상금을 걸 리가 없어.”


하지만 수배서 하단에 찍힌 선명한 붉은색의 인장은 틀림없는 리크나이츠 가문의 것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촛불이 아롱거리며 빛을 냈다. 원래도 촛불 하나로 방 안을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유난히 빛이 흐릿한 느낌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데루루피아와 이칼롯도 윤곽만 가까스로 보일 정도였으니, 구석에 웅크린 마리네와 아나이스는 아예 어둠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제리온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이미 수배서를 읽은 뒤였지만 확인을 위해 다시 한 번 뒤적거렸다.


“죄목이야 갖다 붙이면 다 되는 거고, 제일 눈에 띄는 게 현상금 액수란 말이지. 뭐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루도 것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4천 골드라니, 이 정도면 국가 전범수준이라고. 이 정도 액수가 나왔다는 것은 국왕이 뭔가 알고 있다는 건데...”


알룬도가 대꾸했다.


“루도가 펠아람의 아이라는 사실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이리 빨리 알 수 있지? 레이시가 이곳을 습격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어. 물론 그자가 그 사실을 리크나이츠 국왕에게 알렸을 리 없지. 그건 자신의 계획에 오히려 방해가 될 테니까. 그럼 남는 게 나와 아망초양인데...우리는 그람을 빼곤 루도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어.”


“그럼 그람이 다 까발린 거 아니야?”


제리온의 질문에 데루루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람에게 펠아람의 아이가 루도라고는 말하지 않았어. 너희들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지. 백번 양보해 루도의 이름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가 너희들까지 현상범으로 내몰 이유는 없단 말이야. 이해득실을 떠나, 아예 안중에도 없거든.”


그즈음 문이 열리며 디리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데루루피아는 그가 구석에 자리를 잡은 후에야 질문을 던졌다.


“어때? 에레이시아는. 좀 기분이 나아졌어?”


그 말에 디리터는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었다.


“아직도 눈물바다야. 졸지에 범죄자가 되어버렸으니 무리도 아니지. 내가 들어가니까 혼자 있게 해달라고 하더라고. 에휴, 걔도 참 우리 때문에...”


현상금이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에레이시아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시골마을의 약사로 살아가던 그녀였는데, 하루아침에 쫓기는 몸이 됐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도 현상금이 걸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잡히고 안 잡히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현상금이 걸리면 범죄자로 분류돼 모든 시민권을 박탈당한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도둑질을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가 없다. 현상금이 걸리면 잡혀서 죗값을 치르지 않는 이상, 평생 인간 이하의 삶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치를 죄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법을 어겨 범죄자가 된 거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에레이시아의 행동은 그동안의 울분이 쌓이고 쌓여 나온 결과인지도 몰랐다. 다 죽어가던 아렌베일을 도와주다 로샤단과 얽혔고, 그 때문에 멀쩡하던 집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피해보상금을 받기 위해 이제껏 일행을 따라다니며 고생하고 드디어 그 결실을 보려 하는데, 현상금이 걸린 것이다. 재수가 없었다고 자위하기엔 너무 정도가 지나쳤다.

하물며 그녀는 동네 개 한 마리도 이길 수 없는 연약한 여성이다. 루도 일행과 달리 그녀에겐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었다. 내일 당장 현상금 사냥꾼이 달려올 지도 모르는 판이니 그녀로서는 앞이 깜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른헬트 주교가 써준 어음도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디리터, 좀 있다 다시 한 번 가봐. 말은 그렇게 해도 누군가 함께 있어줬으면 하는 게 여자 마음이니까. 후우, 정말 편하게 갈 때가 없네.”


이칼롯이 현상금 수배서를 다시 한 번 검색하는 동안, 데루루피아는 아나이스에게 정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들은 절대 살인을 하지 않았으며, 이건 모두 어떤 집단의 음모이고, 때문에 죄를 뒤집어쓰게 된 거라고 조목조목 말했다. 아나이스는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설명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럴 분들이 아니라는 걸. 정말 살인자였으면 진즉에 절 죽였겠죠.”


데루루피아는 싱긋 웃고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물론 며칠 간 머물러 이미 아는 사이였지만 그게 그녀 나름의 감사표시였다.


“내일 당장 이곳을 떠날게요. 진위야 어찌 됐든 우리가 이곳에 머무르면 이 여관에 좋을 일이 없으니까요. 다시 한 번 고마워요.”


“그...그렇겠죠. 부디 몸조심하세요.”


그녀는 어색하게 악수를 받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리네 쪽을 살짝 흘겼는데, 워낙 어두워 그걸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아나이스는 어딘지 모르게 자리에 계속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칼롯과 제리온이 심상치 않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봤기 때문에 결국 그녀는 방문을 나서야 했다.


“...저는 이만 자러 갈게요. 다들 이야기 나누세요.”


그녀는 뭔가 아쉬운 듯 쭈뼛거리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밖에 뭔가가 쿵, 하고 걸리더니 이내 문짝에 밀려 나동그라졌다.


“아으으으...”


요통을 앓는 노인이 내는 듯 길게 내지르는 신음에 일행은 혀를 찼다. 오늘 하루 동안 저 소리를 수십 번도 넘게 들은 까닭이다.


“어머, 루도? 괜찮니?”


“어...응. 나 좀 일으켜주라.”


루도가 막 문고리를 집으려던 차에 반대편에서 아나이스가 먼저 열었고, 그 힘에 밀려 넘어진 것이었다. 모서리에 이마를 찍힌 거면 또 모를까, 루도는 또래 소녀의 미는 힘에도 당해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이후 아나이스가 부축해줄 때도 구슬픈 신음을 흘렸다.

제리온이 그 소리를 듣고는 피식 웃었다.


“아주 그냥 오늘내일 하시네. 여든 먹은 노친네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디리터도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게. 뭔 근육통이 저러냐.”


소변을 본다며 나간 루도는 20분이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운 상태라 벽을 짚고 조심조심 걸어야만 했다. 말로만 듣던 전신 근육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루도는 독에 걸렸을 때보다 훨씬 환자다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웠다.


“끄에으아으...죽겠다...”


루도가 돌아오자 침대를 점거하고 있던 제리온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야 했다. 가뜩이나 좁은 방에 루도까지 가세하자 이젠 정말 제대로 앉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제리온은 혼자 침대를 독차지하는 루도를 보며 욕설을 늘어놓았다.


“제엔장, 명색이 4천 골드짜린데 내가 양보해야지. 아주 걸어 다니는 금은보화가 따로 없네.”


“아, 몰라. 나 팔아서 집 사던지. 진짜 몸 하나 까딱하기도 싫어.”


“나한테도 현상금이 안 걸렸다면 진즉에 갖다 팔았다!”


둘은 실없는 소리를 하며 히죽거렸다.

아나이스가 나가고 루도가 돌아왔으니 이제 본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촛불이 거의 다 꺼져가자 제리온이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힘없이 빛나던 촛불과 달리 방안이 금세 환해졌다.

루도가 말했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수도에 가서 누명을 벗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쨌든 우린 지은 죄가 없으니까...”


“아, 그건 절대 아니지.”


루도를 제외한 전원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 경위가 어찌 됐든 현재로선 국왕이 루도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대응이 어째서 현상금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데루루피아의 말마따나 국왕은 그녀와 절친한 사이였다.

뭔가 오해가 있어 로샤단을 정말 살인범으로 여긴 건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이 수배서 자체가 정밀하게 위조된 것일지도 모른다. 진실이 뭔 진 알 수 없지만, 루도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그럼 어떻게 해? 이대로 그냥 평생 쫓기며 살아갈 순 없잖아.”


“계획에 변동은 없어. 너희들은 내가 말한 대로 에메랄드 섬으로 가. 거기는 자치령이니까 붙잡히는 일도 없을 거야.”


그녀의 말에 마리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치령? 리크나이츠에 자치령이 있어요?”


“굳이 말하면 자치령이고...여하튼 그래. 내가 말했잖니!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그녀는 짓궂게 웃으며 마리네의 이마를 튕겼다. 이번에는 이칼롯이 물었다.


“은둔하라는 말인가? 아무리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도 범죄자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사양이야.”


“걱정 마. 란도스 전하는 내가 만나러 갈 테니까. 분명 무슨 오해가 있어서일 거야. 현상금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 너희는 내가 말해준 대로 해.”


“현상범이 국왕을 만난다고? 터무니없어.”


이칼롯은 그녀의 계획을 부정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데루루피아는 다른 사람의 안위만 생각하지 자신을 너무 돌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일행을 섬에 보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그 후의 일은 대충대충 얼버무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한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에 대해서는 이칼롯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현재는 루도가 표적이 되었다 뿐이지, 그렇게 되었을 때 가장 위태로운 건 데루루피아 쪽이었다. 그녀는 일행의 의중을 알아채고는 생긋 웃었다.


“에구, 착해라. 나 걱정해주는 거구나. 하지만 문제없다니까? 나는 란도스 전하랑은 막역한 사이야. 조금만 노력했으면 왕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분이 나를 해할 리가 없어. 뭔가, 오해가 있는 거야.”


디리터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발언에 눈썹을 찡그렸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데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5년 전 레인스터에서도 저런 얼굴이었다.


“그래도, 누님 혼자 가기엔 너무 위험해. 왕궁에 도착하기 전에 사냥꾼들에게 잡히면 어쩔 건데?”


그러자 알룬도가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내가 함께 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라.”


“어...그럼 저희도...”


베리어스와 발가르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데루루피아는 호위대의 요청은 거절했다.


“수호기사단은 안 돼요. 교단이 현상수배범과 결탁했다고 알려지면 그거야말로 끝장이라고요. 두 분은 일단 류이덴사로 돌아가세요. 베른헬트 주교님의 안부도 걱정 되고요.”


“아망초 양, 하지만...”


“그 얘긴 그만 해요. 베리어스, 발가르. 당신들은 현상금도 걸려 있지 않고, 아직 온전히 수호기사단 소속이에요.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길 바라요.”


데루루피아는 베리어스의 청을 단박에 거절했다. 그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그 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구구절절 옳은 얘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자신들이 따라가 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베리어스는 안개송곳니와 붙은 이후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지금, 그는 데루루피아의 명을 따르기로 했다.

이로서 대강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로샤단은 에메랄드 섬으로, 데루루피아와 알룬도는 수도로, 그리고 호위대는 류이덴사로. 자세한 것은 앞으로 짜나가면 된다. 현재로선 끊임없이 움직여 현상금 사냥꾼들의 눈을 피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회의가 끝나고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갈 즈음, 루도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저기, 근데 섬이면 항구로 가는 거죠? 그럼 어림잡아도 일주일은 말을 달려야 할 텐데...그때까지 현상금 사냥꾼을 피해갈 수 있을까요?”


“아, 그거?”


그녀는 활짝 웃으며 루도의 등을 두드렸다. 재미있는 장난을 발견한 것 같은 그 미소에 일행은 뭔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저런 해맑으면서 더러운 표정을 분명 본 기억이 있는데...카토르였던가?



똑똑. 고요한 복도에 노크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 안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거나, 혹은 방문을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디리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똑똑. 똑똑.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며, 정중하게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다.

똑똑똑, 똑똑똑, 쾅쾅. 결국 디리터는 격식을 포기했다. 지금껏 노크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갑자기 하려니 익숙할 리가 없다. 그냥 휙휙 문을 열어야 성미가 풀리는 그에게 이런 냉대는 참기 힘들었다.


“야 이 계집애야! 거 더럽게 비싸게 구네. 나 들어간다!”


그는 문고리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또 걸어 잠근 탓에 철컥거리는 파열음만 나겠지. 그런데 이게 웬걸? 잠겼을 거라 생각한 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열린 것이었다. 문을 연 디리터 자신도 어안이 벙벙하여 한동안 문고리만 바라보았다. 거칠게 문을 연 자신이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언제 문을 연 거야?’


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방 안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에레이시아의 모습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라 코앞을 분별하기도 힘들었지만, 워낙 밤눈이 좋은 디리터인지라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가슴팍에 모은 채, 그 위로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하얀 원피스는 이제 그녀의 눈물에 젖을 대로 젖어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디리터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살짝 깨물었다. 아까 자신이 방에서 쫓겨날 때도 저 자세였으니, 그 후로도 계속 울었다는 게 아닌가. 물론 아까처럼 흐느끼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처연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했다.


“야...에리...”


에레이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굳은 채 미동조차 없었다. 디리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냥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함께 울어줘야 하나...남자들이랑 살아온 그로서는 우는 여인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당혹스러웠다.

그는 침대 맡에 선 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에레이시아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가줘...너희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야.”


잔뜩 위축된 디리터는 그 말에 정말로 나갈 뻔했다. 하지만 문이 열려 있던 것과, 조금 전 데루루피아의 조언을 듣고는 용기를 냈다.


“에리, 그 있잖냐...뭐 네 말대로 우리 때문에 네가 이 지경이 된 거긴 하지만 말야...”


“몰라, 이젠 날 좀 내버려둬. 이대로 잡혀서 감옥에라도 가지 뭐.”


“야, 무슨 그런 말을 하냐?”


디리터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자포자기식의 발언이라니, 항상 당찬 모습을 보이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충격이었던 건가..?

에레이시아가 말했다.


“너희들만 안 만났으면 평범하게 약초나 캐며 살았을 것을. 아니, 아렌베일...그 사람을 살려주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그녀는 쌓였던 원망을 여과 없이 늘어놓았다. 평범한 시골 여자가 겪기에 지금까지의 경험은 너무 가혹했던 모양이다. 이제 그녀는 모든 걸 체념한 것 같았다. 그에 따라 그녀를 바라보는 디리터의 얼굴도 점점 굳어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이런 불행한 일들만 일어나는 거야? 대체...”


“야, 에레이시아!”


낮지만, 힘을 주어 디리터는 말했다. 그러자 에레이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레이시아...디리터는 처음으로 별명이 아닌 그녀의 풀네임으로 부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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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5) +1 15.04.05 891 31 11쪽
103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4) +2 15.04.05 805 29 15쪽
102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3) +4 15.04.05 996 28 13쪽
101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2) +1 15.04.05 797 30 12쪽
100 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1) +1 15.04.05 1,034 29 12쪽
9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1) +5 15.04.04 973 34 11쪽
98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0) +3 15.04.04 948 32 14쪽
97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9) +2 15.04.04 890 26 12쪽
96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8) +1 15.04.04 1,091 26 14쪽
95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7) +1 15.04.04 984 28 15쪽
94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6) +3 15.04.04 1,029 26 15쪽
93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5) +2 15.04.03 1,150 33 11쪽
92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4) +2 15.04.03 798 29 18쪽
91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3) +2 15.04.03 952 27 13쪽
90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2) +2 15.04.03 751 30 13쪽
89 람의 계승자 - ep.3 - 펠아람의 저주(1) +2 15.04.03 1,081 32 11쪽
8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1) +2 15.04.02 972 35 11쪽
87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0) +1 15.04.02 952 34 13쪽
86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9) +2 15.04.02 1,016 34 17쪽
85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8) +1 15.04.02 924 36 15쪽
84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7) +2 15.04.02 854 35 16쪽
83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6) +2 15.04.01 1,084 32 14쪽
82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5) +1 15.04.01 1,019 38 16쪽
81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4) +3 15.04.01 1,089 34 18쪽
80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3) +1 15.04.01 1,125 37 14쪽
79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2) +2 15.04.01 928 39 19쪽
78 람의 계승자 - ep.3 - 추격자(1) +1 15.04.01 945 34 18쪽
77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6) +3 15.03.31 1,125 40 17쪽
76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5) +1 15.03.31 1,030 34 14쪽
75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4) +4 15.03.31 1,054 34 13쪽
74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3) +2 15.03.31 950 35 14쪽
73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2) +1 15.03.31 877 39 13쪽
72 람의 계승자 - ep.3 - 일어서다(1) +4 15.03.31 893 35 15쪽
71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7) +7 15.03.30 1,026 44 23쪽
70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6) +4 15.03.29 897 40 16쪽
69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5) +2 15.03.29 945 35 17쪽
68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4) +1 15.03.29 1,127 36 20쪽
67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3) +1 15.03.29 1,125 33 16쪽
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3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80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2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4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3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3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60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4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4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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