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의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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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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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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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5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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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의 계승자 - ep.3 - 루도의 비밀(7)

DUMMY

“네놈!!”


허공을 맴돌던 문자들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것은 루도가 스크롤을 찢어버리면 마법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저지른 도박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해제되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위첼의 글레이브가 날아들었다. 루도는 그대로 공중에 몸을 날렸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뛴 거라 그는 부러진 의자 더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으아앗!”


위첼이 탁자를 뛰어 다시 공격해왔다. 루도는 무기를 빼앗긴 상태라 뾰족이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의자 다리며 주전자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투척한 것들은 위첼의 몸에 닿기도 전에 모조리 잘려나갔다. 잡동사니로는 시간 끌기조차 되지 못했다. 루도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후다닥 뒷걸음질쳤다.


“잔꾀를 부리다니 제법이군, 루도 레인폴!”


위첼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자리에서 전투태세를 취할 뿐,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진 않았다.

뒤통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루도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아무래도 자신의 도박이 성공한 모양이다.


“아으...아프다 아퍼. 마법이라곤 질색이야 정말.”


마리네의 투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저럴 뿐이지,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처럼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칼롯이 루도를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수고했다, 루도.”


그는 몸 상태를 확인해보려는지 허공에 검을 몇 번 휘둘렀다. 그의 검, 텔슈피드가 연노란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위대 기사 둘도 지금까지의 굴욕을 만회하려는 듯 거친 숨을 내뱉었다. 무기가 없는 루도를 제외한 모두가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다른 일행의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건 안개송곳니의 실책이자 로샤단의 행운이었다. 레이시는 마법의 힘을 맹신한 나머지 루도의 무기만 빼앗는 실책을 범했다.


“쳇...귀찮게 되는데...레이시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위첼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아무리 그라도 동시에 네 명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칼롯은 마법에 걸린 상황에서도 눈을 굴려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관찰한 결과 위첼이라는 자는 루도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를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그의 뒤에 있는 갑옷 입은 사내였다. 그는 이런 상황까지 와서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단 일 합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공격은 이칼롯조차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거리를 재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했었지.”


갑옷 입은 남자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철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있어서, 입으로 말하는 건지 갑옷이 스스로 말하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마리네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거 사람 맞나? 괴물 같은데...’


7미터, 8미터쯤 될까? 그 남자와 가까워져 갈수록 그의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아직 무기조차 뽑지 않았다. 폭이 넓은 클레이모어(Claymore). 그것은 그의 체격 덕분에 적정한 크기라고 느껴졌지만, 실은 디리터의 투핸드소드 뺨칠 정도로 거대했다. 마리네는 저 검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스크롤을 빼앗긴 건 예상외입니다만...뭐 제폰님이 있으니 상관없겠죠. 일단 고르딘에게 연락을 보내야겠군요.”


레이시는 주머니 안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피리를 꺼냈다. 또 마법인가 싶어 식겁하던 일행은 그것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 피리는 마법스크롤보다 더 심각한 물건이었다. 이칼롯은 레이시가 피리를 꺼낸 순간 다른 일당에게 연락을 취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분명 디리터와 제리온 쪽에도 손을 써놨다고 했다.


“마리네! 흰 머리를 맡아라! 호위대는 갑옷을!”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칼롯은 그대로 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공격이 닿기 직전, 그리고 자신의 검을 뽑기 직전 제폰이 말했다.


“그냥 해치우면 되는 건가?”


레이시는 피리를 입에 문 채 답했다.


“전부 죽여주시죠. 특히 루도 레인폴만큼은 확실히.”



***


레인스터만큼은 아니어도 가린워드의 상점가는 물건을 사고파는 부녀자들로 적당히 붐볐다. 에레이시아는 간판 걸린 곳이라면 무작정 들어가 물건을 구입했다. 그녀의 바구니엔 갖가지 청과류를 비롯해 말린 생선, 베이컨, 빻은 밀가루 등이 들어 있었다.

어패류 채소류 할 것 없이 한 바구니 안에 닥치는 대로 집어넣는 그녀였지만, 디리터가 사준 터키석 목걸이만은 치맛자락 안에 소중히 감춰두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디리터가 선물을 건네던 광경을 회상하며 볼을 붉혔다.


“야, 수도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그냥 눈에 밟힐 정도로 쌓여 있겠지?”


디리터가 다른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틈을 타 말을 걸어왔을 때, 그녀는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디리터가 마지막까지 시비를 거는 거로 생각하고는 차갑게 대꾸했다.


“궁금하면 네가 가보지 그러셔? 가서 눈에 밟혀서 장님이 되는지 확인해보라고.”


디리터는 낄낄 웃었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런 반응도 나름 귀엽게 느껴졌다.


“난 지금도 밟히는 게 많아서 못 가. 그건 그거고, 너도 도시 아가씨들이랑 견주려면 좀 꾸며야 하지 않겠냐? 가서 촌 여자가 훨씬 예쁘다는 걸 보여줘야지.”


“뭐...어?”


에레이시아는 금세 얼굴이 달아올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디리터가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애정표현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은유적 표현에도 그녀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것은 평소 당당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던 그녀로서는 또 다른 일면이었다.

디리터는 그녀를 이끌고 무작정 보석상을 두드렸다. 원래는 옷을 한 벌 맞춰주려고 한 것인데, 가린워드 마을에는 전문 의류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보석상이라고 해도 루비나 에메랄드 같은 값비싼 보석은 없었고, 그저 채광 중에 나온 예쁜 원석들을 가공해서 파는 것이었다.

그는 요령 없게도 가장 눈에 띄는 목걸이를 냉큼 집어 들었다. 목걸이에는 타원형으로 세공된 푸른 터키석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냥 무작정 고른 것인데도 에레이시아는 감동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목걸이는 아주 무난한 형태에 값도 얼마 나가지 않았지만, 그 상징성 때문인지 그들에게는 광채가 날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둘이 워낙 패션에 무지하다는 점도 한 이유였다.


“이거 어떠냐? 괜찮지 않아? 음...다른 거 찾아볼까?”


“아...아냐! 맘에 들어. 빨리 나가자.”


에레이시아는 홍당무가 되어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워낙 연애 쪽에 무지한 탓에 행여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디리터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재빨리 목걸이의 값을 치렀다. 마침 건너편에서 제리온과 호위대 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에레이시아의 주머니 속으로 목걸이를 집어넣었다.


“자, 내가 주는 선물이야. 돈 좋아한다고 어디 가져다 팔면 안 된다.”


“어...응...고마워.”


에레이시아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디리터도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헛기침만 했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디리터는 무언가 결심한 듯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기, 에리. 우리 일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는데...만약 다음 목적지가 수도로 정해진다면...”


“어어-이! 바보 남매! 먹을 건 다 샀냐?”


멀리서 오던 제리온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눈치 없이 외쳤다. 에레이시아는 외침을 듣고 화들짝 놀라 디리터에게서 후다닥 물러났다.


“모...모...몰라! 징그러워, 저리 가!”


“....”


자신이 누군가의 연애사업을 방해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제리온은 천연덕스럽게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 다리 아프다. 돌아다니는 것도 일이야 일. 챙길 거 다 챙겼으면 여관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


호위대는 베리어스를 비롯하여 모두 양손에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있었다. 워낙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라 돌아다니나 맘에 드는 식자재가 있으면 뒤도 보지 않고 구입한 것이었다. 베리어스가 디리터와 에레이시아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는 둘의 관계를 눈치 챈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떻게, 보급품은 다 마련하셨습니까? 뭣하면 저희 먼저 여관에 가서 기다릴까요?”


“아,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 가서 맥주나 한잔해야겠어.”


디리터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일행은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올 때와 달리 에레이시아와 디리터 사이엔 몇 보정도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하늘만 바라보는 그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고 짐작하는 사람은 베리어스뿐이었다.

딱히 눈 둘 곳이 없자 디리터는 상점가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좀 전에 다 거쳤던 장소라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믿기지 않는 광경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아....”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노점 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에게로 집중됐다.


“뭐야 저건?”


“사람인가?”


“허이구....크기도 하다.”


그는 엄청난 크기의 거구였다. 디리터도 나름 키가 크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그 남자 옆에 서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2미터는 우습게 넘기는 키에, 몸집도 엄청나 사람이 아니라 불곰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레이시아는 손을 최대한 뻗어도 그 남자의 콧잔등조차 닿지 못했다. 그는 맞춤 제작한 것이 분명한 풀 플레이트 메일로 몸을 두르고, 머리에는 배서닛(Basinet)을 착용하고 있었다. 디리터는 그의 갑옷을 만드는데 보통 사람 3인분은 될 만한 쇳덩이가 들어갔으리라 확신했다.

그 남자는 작은 빵가게 앞에 서서 바게트 빵을 정신없이 먹어대는 중이었다. 웬만한 집의 문짝만 한 방패를 옆구리에 끼고, 한 손으로 게걸스레 음식을 먹는 그 모습만으로도 흡사 이곳이 전쟁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청나게 크군요. 복장으로 보아 기사나 용병 같은데, 이런 시골 마을에 무슨 일일까요?”


베리어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남자가 어울리는 곳은 전쟁터지, 이런 촌마을이 아니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일행뿐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공감했다.


“모를 일이군. 어쨌든 엄청 배고파 보이네.”


제리온이 그를 보며 낄낄댔다. 그는 먹고 있던 빵을 모조리 해치우고는, 새로운 바게트 빵을 손에 집고 있었다. 바게트 빵 하나면 일가족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에겐 그조차 턱없이 모자라는 모양이었다.

그는 먹을 것 이외에는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일행도 지나가던 참이었기에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막 그가 있던 빵가게 앞을 지날 때였다.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고음의 음향이 허공을 갈랐다. 목각 피리인가? 디리터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일상을 찢는 그 소리는, 연주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로지 한 가지의 음향만 낼 수 있는, 신호를 위한 도구.

그것은 레이시가 보낸 ‘몰살’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에 있던 남자가 쩔그럭 거리며 입 가리개를 닫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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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2) +2 15.03.29 1,092 39 14쪽
65 람의 계승자 - ep.3 - 어느 좋았던 봄날(1) +4 15.03.29 1,300 36 13쪽
64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完) +7 15.03.28 1,180 45 17쪽
63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8) +3 15.03.28 1,261 36 14쪽
62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7) +2 15.03.28 1,083 40 12쪽
61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6) +4 15.03.28 1,147 38 15쪽
60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5) +2 15.03.28 1,131 39 16쪽
59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4) +2 15.03.28 1,074 35 14쪽
58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3) +3 15.03.28 1,023 36 17쪽
57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2) +3 15.03.27 1,127 40 10쪽
56 람의 계승자 - ep.2 - 소년과 라즈베리 파이(1) +5 15.03.27 1,133 46 10쪽
55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2) +2 15.03.27 1,073 47 15쪽
54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1) +4 15.03.27 1,059 42 20쪽
53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0) +2 15.03.27 1,114 45 17쪽
52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9) +2 15.03.27 1,163 51 15쪽
51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8) +4 15.03.27 1,243 39 16쪽
50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7) +2 15.03.27 1,082 42 12쪽
49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6) +3 15.03.26 1,151 46 9쪽
48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5) +3 15.03.26 1,129 4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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