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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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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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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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화 소집

DUMMY

683화 소집


“대사헌 김수현을 정사로 삼아서 아마미 통찰사를 준비하고자 한다. 이는 유구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산둥 회합에 자리한 나라들에도 전할 것이오. 경들은 그리 알고 일을 준비하시오.”


일을 대할 기준이 서고 그 기준에 따라 행할 책임자가 세워지니 남은 것은 세세한 실무라, 조선은 이를 준비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당사자들을 포함하여 사방에 알리는 것이었다.


하여 사방으로 사자가 움직이니 가장 먼저 소식을 받아 보게 된 것은 남경이었다.



***



“엄미(奄美)라니, 이름은 좋구나.”


조선에서 보낸 국서는 한자로 표기하니 당연하게도 그 읽음과 해석은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의흥제 주자랑 역시 제가 생각한 대로 받아들였으니 그가 받아들인 뜻은 ‘모두가 아름답다’라는 뜻이었다.


근래 세상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면 도무지 좋게 보기 힘든 그였기에 더욱 좋게 들리는 말이기도 하였으니, 주자랑은 조금 더 알고자 입을 열었다.


”헌데 그 땅이 대체 어디에 있으며 이들이 말하는 분쟁은 무엇이더냐?”

“유구국 근방에 있으며 그 크기는 작은 섬들이 모여 크지 않으니 인구도 적다고 합니다.”


조선 우의정이며 남경 주재사인 김상헌이 공손히 대답하니 주자랑은 더욱 캐어물었다.


“적다니, 얼마나 적다는 말이냐?”

“직접 보지 않아 세세히 알지는 못하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을 모두 합한다고 한들 한양에서 경전 한 글귀나마 욀 줄 아는 이가 더 많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적구나.”


김상헌이 든 비유에 그 땅이며 사는 사람들이 얼추 그려진 주자랑이나 여전히 의문으로 남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김상헌에게 묻기 저어됨이 있었으니 주자랑은 그 남은 의문을 감추며 일렀다.


“조선에서 다음에 논하고자 하는 일이며 유구국 위해 열심이라는 건 잘 알았다. 대명은 이 암미라는 땅에 대한 일을 산둥 회합에 위임하겠다.”


위임한다고 하나 이는 사실상 위신 세우기 위한 겉치레며 자신들이야말로 천자에 걸맞음을 주장하고자 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속내는 김상헌 역시 어렵지 않게 알았으나 알았다고 하여 드러냄이 상수가 아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어지는 김상헌의 대답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의례적인 말이었다.


“믿어주심에 보답하여 아국 조선은 항상 공정하고 의롭게 행할 것입니다.”



***



“소신 양사창, 지엄하신 황상의 명에 따라 대령하였나이다.”


내각 대학사 겸 병부상서 양사창이 들어와 올리는 인사에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주자랑은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고개를 드시오. 그리고 나를 보시오.”


자신과 마주하여 대화하자는 말에 양사창은 무언가 고민이 있음을 알고 일단 겸양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부족한 소신이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그저 황상께서는 하명하시고 소인은 그 말에 따를 뿐입니다. 혹 듣고자 하는 말이 있어 물으신다면 그저 대답하고 그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황상의 뜻이니 그 또한 지당한 일입니다.”

“고개를 드시오. 나는 스승으로 삼은 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스승으로 삼은 이라는 말에 양사창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시선이 마주하니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주자랑이었다.


“유구국 이야기, 이미 들었을 거라 생각하오.”

“불쌍한 일입니다. 대명의 교화가 닿은 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입니다.”

“스승은 이 일이 어떻게 풀리는 것이 순리라고 보시오?”

“응당 원래 주인에게 돌림이 마땅하며, 억지로 갈취한 자는 응당한 처벌을 내림이 마땅합니다.”


양사창이 하는 말은 정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자랑은 조선에서 하겠다는 방책을 들은 후니 자못 의심이 들었다.


“그것이 천자가 내리기 정당한 판단인가?”

“천자가 내리는 판단은 정당합니다.”


같은 듯 하나 전혀 다른 말이니 주자랑은 그 차이를 어렵지 않게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더 깨달았으니, 그는 씁쓸함이 입가를 감도는 걸 느꼈다.


‘조선이 말한 것은 정녕 옳았구나.’


그들이 말한 대로였다.


세상에 황제는 있으나 천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든 순간, 주자랑은 저도 모르게 입을 놀려서 명령을 내렸다.


“암미라는 땅에서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세히 알고 싶소. 사람을 선별하시오.”

“명에 따르겠나이다. 다만 먼저 질문 하나를 하고자 하니 허락하여 주시길 청합니다.”

“허락하오.”

“무엇을 목적으로 보냄이 낫습니까? 그저 보고 들음입니까, 아니면 그곳에서 무언가 하기를 원하십니까?”


양사창이 물으며 눈을 빛내니 이번 일로 조선이며 유구와 일본, 나아가 산둥 회합까지 한번 흔들어 볼 뜻이 그 눈에 담겨 있었다.


그에 주자랑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흘러가는 일을 소상하게 보고 듣기를 원하오. 허나 그 외에 스승이 무언가 하겠다고 하면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오. 그것이 대명을 위한 것이라 믿으니 말입니다.”

“황상의 하해와 같은 이해와 은혜에 이 양 모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먼저 감사를 하여 뜻을 표한 양사창은 곧이어서 다짐하듯 말을 덧붙였다.


“저의 일생은 대명을 위하여 있으니, 이 뜻이 변하여 어리석은 결과가 되지 않도록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



“쯧.”


짧게 혀 차는 소리로 심경을 대변하니 주변에 자리한 이들은 누구 하나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치 무소불위한 황제와 같은 위엄이나 실상 그 위엄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이곳은 심양도 아니고 남경도 아닌 북경이었다.


아무리 영락제 이래 이곳이 도읍이었다고 하나 이제는 아니고 그저 풍족한 땅, 그리고 지방 중심지에 불과하다.


하여 이곳을 다스리는 것은 황제일지 모르나 거하여 직접 일하는 것은 왕이었으니 그는 바로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었다.


“잠시 전쟁에 나갔다 오니 아주 개판이군그래.”

“소, 송구합니다.”


북경 순무 왕정지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니 도르곤의 시선이 자연히 그에게 향했다.


목숨은 건졌다고 하나 아직 온전히 낫지 않아 몸을 절고 있는 그를 본 도르곤은 미간을 좁히고는 마뜩잖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더는 그런 놈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에 일을 벌인 놈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나는 그런 놈이 더 없냐고 물었다.”


좋지 않은 심기가 한층 더 나쁘게 변했음을 알려주듯 겨울 한기 저리 가라 할 차가움이 담긴 말에 왕정지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당장에라도 그러하다고 하면 면피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으니 나중을 생각하면 이만큼 어리석은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정지는 분명 한간 소리 들으며 북경 한인들에게 남몰래 경멸당하는 신세다.


하지만 청나라에서 보면 그는 한인 출신이라는 요소가 감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고 눈치 있는 인사다.


“······예친왕 전하께 말씀드리기 심히 어려우나 소인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흥.”


가벼이 코웃음 치나 그 코웃음 후 얼굴에 서린 못마땅함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네놈 목숨이 한번 왔다갔다 하였거늘 고작 그렇단 말이냐?”

“북경 인구는 가벼이 백만을 넘습니다.”


어쩌면 천만에 이를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나 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뜨내기들을 합하면 반드시 그러할 거라고 왕정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모두를 전부 검사하여 확인하는 건 대단히 힘이 들며, 재원과 인력이 만만치 않게 듭니다. 심지어 그러하였다고 한들 만반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감히 아뢰겠습니다.”

“그런 소용 없는 짓으로 인력, 시간, 재물 따위를 낭비할 생각은 나도 없다.”


딱 잘라 효험 없을 무식한 낭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도르곤은 왕정지에게 다시 물었다.


“무얼 준비했지?”

“······화약 통제입니다.”

“지금은 통제되지 않는다고 하듯 말하고 있구나.”


도르곤이 하는 말에 왕정지는 마른 입술을 혀로 살짝 적시며 말을 이었다.


“민간에서 화약 제작을 엄금하고 모든 관할을 청나라 사람들이 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급 역시 허락을 얻은 후에야 내갈 수 있게 합니다. 이것만 지킨다면 전과 같은 일은 그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효율적이군.”

“이만큼 효율적이며 비용이 덜 드는 대책은 없습니다.”


자리도 잊고 반발하여 외치는 말에 도르곤은 피식 웃었다.


“하, 네 제안은 쓸만하다. 하지만 그건 북경만으로 만족할 떄의 이야기지. 그렇게 하는 순간 청나라 사람들은, 아니 우리 만주족들은 책상 앞에서 떠나기 어렵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서 제대로 일할 능력도 부족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지적에 왕정지는 점사 멎었던 땀이 다시 줄줄 흘리는 걸 느끼며 눈알을 굴렸다.


북경 순무라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한들 결국 그는 가장 높은 이가 아니다.


언제고 더 윗사람의 눈 밖에 나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현실로 만들 힘이 있었다.


“하지만 화약을 모두 쥐겠다는 발상은 마음에 든다.”

“예?”


돌연하게 바뀐 태도에 왕정지는 적잖이 당황하며 제 처지도 잊고 멍청하게 되물었다.


이내에 자신이 해버린 실수를 자각한 왕정지는 쉼 없이 요동하는 두 눈알로 제 동요를 드러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이어진 말은 덤덤할지언정 차갑진 않았다.


“안 그래도 화약 생산을 증대하고 싶던 참이다. 대포도 더 많이 만들고 말이다.”


화기 사용을 늘리겠다는 선언을 한 도르곤은 왕정지를 보며 물었다.


“해낼 수 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번 일 이래 왕정지는 화약은 물론이고 군사와 관련된 일은 신물이 나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들은 순간 거절은 할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왕정지는 눈물을 머금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물론입니다!”

“예친왕 전하, 심양에서 사자가 찾아왔나이다.”

“심양에서?”


왕정지의 대답을 기다렸다고 하듯 심양에서 사자가 왔음을 알리니 도르곤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당장 그럴만한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또?’


그러던 중에 그나마 그럴 듯한 이유가 하나 떠오르니 도르곤은 살짝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황태후께서 보내셨더냐?”

“아닙니다. 섭정친왕회의 명으로 왔다고 합니다.”


예상이 빗나갔다는 점에서는 다행인 대답이었다.


허나 동시에 의문이 더욱 커지게 하는 대답이기도 했으니 도르곤은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던 도르곤은 굳이 더 고민하기보다는 직접 듣는 게 낫겠다고 여기며 입을 열었다.


“북경 순무는 이만 물러가라.”

“예, 전하.”

“사자를 들여라!”


왕정지가 크게 안도하며 물러나자 그를 대신하듯 팔기 사내 하나가 당당하게 들어섰다.


이윽고 도르곤 앞에서 예의를 취한 그는 크게 외쳤다.


“예친왕 전하께 알립니다! 산둥 회합이 소집되었습니다! 주최한 것은 조선이며, 유구국에 관하여 논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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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8 ageha19
    작성일
    24.09.11 21:06
    No. 1

    드디어 천명을 다투는 두 나라의 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li****
    작성일
    24.09.11 21:23
    No. 2

    근데 진짜 글 수준이 레알.. 이게 단순히 대역물이라고 취급하기엔 말이 대역물이지 실상은 담고 있는 담론 수준부터 장난아닌대.. 매 화 매 화마다 감사하면서 읽습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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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 675화 오명을 견디는 것은 어렵다 +1 24.09.02 71 12 12쪽
675 674화 선택과 강요 +1 24.09.01 69 13 12쪽
674 673화 실리를 챙긴 후에는 외견을 살핀다 +3 24.08.31 69 14 11쪽
673 672화 영화롭지 않은 영전 +5 24.08.30 83 12 13쪽
672 671화 닿아있다고 하여 같은 땅이 아니다 +5 24.08.29 75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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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666화 오십보백보 +4 24.08.24 72 11 12쪽
666 665화 바라는 것은 변한다 +2 24.08.23 72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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