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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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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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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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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90. 거창한 이유가 아닌

DUMMY

어디선가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다르시는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어둠.

그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 엄마..? 아빠...? “

조심스레 불러보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웃어주지도 않는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심장도 뛰지 않는다.

“ 엄.. 마...? “

아무리 불러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대답이 없다.

오직 엄마와 아빠의 몸에서 흐르는 주황색 피만이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 엄마..! 일어나봐요...! 엄마..!! 아빠!! 엄마가 눈을 안 떠..! 아빠!! 아빠!!! “

“ ...거기.. 누구.. 큭..! 있나...? “

“ 헙.. “

지금 들린 목소리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

그것도..

곧 죽어갈 듯이 힘겨운 목소리다.

다르시는 순간 겁을 먹고 아무도 없는 척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이미 들켰다는 듯이 누군가가 잔해를 헤집기 시작한다.

-투둑.. 툭..

“ 거기.. 있다는 거 다 알아..! 빨리..! 빨리 나와...! 크윽...! 급해..! 제발..! 제발 나와줘..! “

절대 나가지 않는다.

절대 아무도 없는 척 입을 틀어막고

숨도 쉬지 않는다.

심장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심장을 꽉 움켜쥐어보지만

결국, 다르시의 위에 있던 엄마의 시체가 옆으로 치워지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르시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눈을 감고 쓰러진 척을 한다.

“ 꼬마야. 일어나봐...! 괜찮으니까 제발..! 너밖에 없어..!! 제발..!! “

...

이미 들킨 건가..

하지만 다르시는 끝까지 죽은척한다.

남자는 그런 다르시를 보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꼬마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부모가 죽었는데도 저렇게 죽은 척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하게 머리를 쓸 수 있는 똑똑한 아이라면 더더욱 좋다.

남자는 손을 뻗어 억지로 다르시의 볼을 붙잡고 눈을 맞춘다.

“ 일어나. 괜찮아. 널 위협하지 않아. 오히려.. 큭..! 날 도와줬으면 해. 부탁할게...! “

“ ...사.. 살려주세요... “

얼굴을 부여잡자 죽은 척하는 것을 그만두었는지 부르르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말을 한다.

그 모습에 남자는 미소짓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 걱정하지 마라 꼬마야... 이름이.. 뭐니? “

“ 다.. 다.. 다르시.. “

“ 다르시.. 잘 들어. 머지않은 미래에 붉은 눈이라는 기계가 인류를 전부 무너뜨려 버릴 거야..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건 은하의 인도자들이지... 큽... 그런데.. 그런 은하의 인도자들의 리더인 은하의 개척자 레이브가 배신했어. 그 자식이 붉은 눈과 손을 잡았어..!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은하의 인도자에게 알려야 해. 알겠니..? “

다르시의 눈빛이 흔들린다.

...너무 어린아이에게 무거운 내용을

그것도 평범한 사람에게 은하의 인도자에 관련된 일을 말한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이 꼬마 한 명밖에 없다.

“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맡겨야 하는.. 어른을 미워해라. “

정말 미안하지만

이대로 가면 이 아이도 죽는다.

이 아이를 살리려면

이 아이의 운명을 뒤바꿔야 한다.

괴롭고 힘들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인류를 지킬 길이니까.

“ 잘 들어라 다르시.. 너는. 큽..! 지금 바로 달려서 우주선에 올라타야 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행성은 폭발할 거야. 내가 레이브라면.. 분명 그렇게 할 거야. 분명히 그 녀석이라면 그러고도 남아... 네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달려서 우주선에 타야 해. 알았지?.. 꼭 우주선에 올라타야 해.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할 수 있겠니? “

복잡한 은하의 인도자 어쩌고 인류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우주선에 올라타야지만 살 수 있다는 말이 훨씬 더 알아듣기 편했던 걸까.

다르시는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였다.

“ 그 우주선에는 사람이 있을 텐데... 무조건 조심해야 해. 절대 걸려서는 안 돼.. 숨어있다가 나중에 내려서.. .. .. 네가... 네가 은하의 인도자가 되어라. “

다른 어른들에게 알려봤자 믿지 않겠지.

붉은 눈이라는 존재조차도 잊혀가던 때 발견된 마당에

그런 붉은 눈과 은하의 개척자 레이브가 손을 잡았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

“ 네가 은하의 인도자가 되어서.. ‘ 은하의 감시자 ‘ 를 찾아라. 그렇게 다르시. 네가 은하의 감시자를 물려받아라. 알았니? “

“ 그.. 그게.. 뭔데요..? “

“ 크면 알게 될 거야... 아직은 몰라도 돼. 그리고.. 그때가 된다면.. 부탁하마. 레이브를. 은하의 개척자 레이브를 막아다오.. “

...아.. 또 말하다 보니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워졌다.

시간이 없다는 것.

곧 우주선이 떠날 거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간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겹쳐 조급해져 버린 모양이다.

아니..

은하의 인도자인 만큼

이 아이를 지옥으로 인도하려는 것을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 제.. 제가 왜.. 저에게.. 그런걸.. “

이거 봐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

지금은..

은하의 인도자를 잠깐 내려놓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죽어가는 마당에 세계고 나발이고 무슨 상관인가.

“ 네 부모님을 죽인 녀석에게 복수해야지. “

“ ... “

“ 너처럼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을 잔뜩 만들려는 녀석을 제거해야지. 그러다 결국 너까지 죽이려는 녀석을 미리 죽여야지. “

다르시는 잠깐 숨을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알고는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확실하다.

엄마와 아빠는 죽었다.

“ 자. 다르시.... 큽...! 지금 당장 네가 할 일이 뭐라고 했지? “

“ ..우주선.. 우주선에 올라타는 거.. “

똑똑한 아이네.

“ 그래.. 가..!!! 얼른!!! 가!!!!!! 뛰어!!!!!!! “

남자가 외치자 다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소리지를 보람이 있었다고 봐도 되겠지.

...미안하다.

평범하게 예쁘게 자랄 아이였는데

이런 무거운 운명으로 인도한 나를 원망하렴.







처음 보는 우주선이라는 물체.

정말 많은 수의 우주선이 놓여 있는 바람에 어떤 것을 타야 할지 몰랐을 테지만 다르시는 멈추지 않고 곧장 달려나가 가장 앞에 있는

가장 화려한 우주선에 달려나가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오직 있는 것은 우주선

그리고 시체뿐이었다.

이 우주선이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저 우주선으로 가라고 했기에 갔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라고 했기에 계속 숨어서 입을 막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움직일 줄 몰랐던 우주선이 움직이고

두려움에 몸을 떨며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버텨왔다.

아니.. 버텼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 으음.. “

다르시는 조심스레 눈을 뜬다.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아니.. 기절한 건가.

아마 이렇게 눈을 뜬 시점부터 긴장되며 혹시라도 또 다른 소리를 낼까 입을 틀어막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기보다 기절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인듯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움직인 걸까.

지금은 우주선이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

왜..

아무도 없지?

우주선이 멈췄다면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는데..

아무도 없다.

물론 다르시에게는 좋은 상황이지만 동시에 수상한 상황이기도 하다.

조금만..

조금만 움직여 볼까...?


“ 읏..! “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탓인지 다리를 움직이는데도 조금 고통스러운 느낌이었다.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어린아이의 작은 보폭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려도 붙잡힐 텐데도 그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며 우주선 안을 둘러본다.

...조용하다.

아무도 없다.

혹시라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올까 계속 뒤를 확인하면서 걸어가 보지만

통로를 지나도, 넓은 방이 나와도, 갈림길이 나와도 그 누구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온갖 기계 장치들을 봐도 다르시로써는 알 길이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을 벗어나 우주선 밖으로 향하는 것밖에 없었다.

새하얀 세상..

신비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두렵다고 해야 할까.

색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는 듯이 먼지 한 점 없는 온통 새하얀 곳이다.

여기는 어딜까.

-탁.

다르시는 맨발로 이 새하얀 공간에 발을 올려놓았다.

굉장히 얇은 바닥인지 맨발로 걸어도 소리가 들렸으며, 단 한 명도 지나가지 않은듯한 새하얀 길에 다르시의 발자국만이 찍히는 기분이었다.

...아니..

..

하나의 발자국이 또 있다.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가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너무 새하얀 바닥 덕분에 보이는 그 신발 자국.

다르시는 조심스레 숨어가며 그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나아간다.


“ ...좋군. 아주 만족스러워....! 이건 인간의 경지로는 따라올 수 없는 것이야..! 그래.. 이게.. 이것이 바로 신인류다..!!! “

“ 레이브. 아직 완벽하지 않아. 지금의 육체로 한 번 더 이식했다간 정신을 유지할 수 없어. 육체와 익숙해지면 다음번에 이식. 지금은 안돼. “

어느 한 남자의 살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기계적인 딱딱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르시는 숨죽인 채로 멀리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살며시.. 아주 조심스레 쳐다본다.

다르시를 우주선으로 보낸 그 피 흘리던 남자와 비슷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

그리고.. 거대한..

아주 거대한 새하얀 얼굴.

다르시가 살던 집을 네 개 정도 더 겹쳐도 모자랄 만큼 거대한 얼굴이 지금 밟고 있는 이 땅.

이 세계 전체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아아.. 그래.. 알고 있어.. 내 몸에 정착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에이아. “

“ 레이브. 계획에 필요한 연구 표본 압도적 부족.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한 결과 도출 필요. 인간. 많이 필요해. “

레이브.. 레이브..

다르시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인류를 배신하고 붉은 눈과 손을 잡은..

엄마와 아빠를 죽게끔 했던 사람...

“ 그래. 우리에게 시간은 이제 무한하니까. “

“ ..아직 세포의 노화 방지는 불가능. 오랜 연구 필요. 표본을 많이 가져와. “

그렇게 남자는.. 레이브는 거대한 얼굴을 향해 살벌한 미소를 보낸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 ... “

숨을 죽이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 ...어..? “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그때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아니.. 바닥이 솟아오른다.

“ 에.. 에에..? “

그리고 움직인다..?

이대로 가면 들키는데..?!

“ 어.. 어어.. 어 잠시.. 이게 왜 갑자기..?! “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바닥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다르시를 억지로 끌고 나와 결국 에이아라고 불린 거대한 얼굴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마치.. 뒤를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마주치면 죽을 것 같은 느낌..

자신의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불안한 이 느낌...

“ 뒤를 돌아봐. “

다르시는 천천히.. 에이아의 말을 따라 뒤를 돌아본다.

“ 나는 에이아. “

...

자기소개를 하라는 건가..?

“ 저.. 저는.. 다르시에요... “

“ 연구에 필요한 것이 더 있는지? “

..?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일까.

다르시는 연구라는 걸 잘 모르는데..

...아니..

..설마.. 에이아라는 얼굴은 나랑 레이브라는 사람과 함께 온 동료라고 생각하는 걸까..?

같은 우주선에서 왔으니까..?

“ ...당신은.. 왜 그 사람을 돕는 건가요? “

“ 당신 아님. 에이아. “

“ ..에이아님은 왜 그.. “

“ 에이아. “

..확실한 걸 좋아하는 건가.

에이아라고 부르지 않으면 답해주지도 않을 것 같았으며

점점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는 것 같은 건.. 음 그건 기분 탓이겠지.

“ 에이아는.. 왜 그 사람을 돕는 건가요? “

“ 그 사람의 정의를 찾지 못함. “

...알 것 같다.

에이아는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다르시를 적대하지 않는다.

다르시는 천천히 침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확하게 이름을 말하며 물어본다.

“ ....에이아는.. 왜.. 레이브를 돕는 거죠? “

“ 본 기체. 에이아가 원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인간. 연구의 완성을 위해 이용하는 것.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는지? “

도울 수 있는 인간이라...

...

에이아도

레이브와 똑같은 목표를 가졌다는 걸까.

엄마와 아빠를 죽였듯이

사람을 죽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걸까.

무섭다.

두렵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 그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복수해야지..

그래.. 복수해야지....

인류를 지킨다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고작 복수다.

아직 어린 나이인 다르시는 왜 복수를 해야 하는지

복수가 무엇인지

복수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르는 다르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연구에 필요한 거.. “

다르시는 에이아를 마주 본다.

분명 남자가 그렇게 말했지.

은하의 감시자를 찾으라고.

“ 눈... 나에게.. 눈을 주세요. 이 은하 어디에 있든 그 누구든 찾을 수 있는.. 그런 눈을 주세요. “


작가의말

은하의 감시자는 누구세요

평화의 주시자 아닌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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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402. 최악과 최선의 선택 23.12.22 2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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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391.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는 23.12.15 242 0 14쪽
» 390. 거창한 이유가 아닌 23.12.14 243 0 14쪽
398 389. 숨겨왔던 비밀 23.12.13 243 0 13쪽
397 388. 제3자의 시선 23.12.13 2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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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386. 물밑에서 움직이는 잔잔한 폭풍 23.12.11 244 0 13쪽
394 385. 공론화 23.12.11 245 0 12쪽
393 384.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 23.12.10 245 0 15쪽
392 383. 그 누구도 죽지 않기를 23.12.09 245 0 13쪽
391 382. 과부하 23.12.09 246 0 15쪽
390 381. 절대 풀리지 않을 오해 23.12.08 24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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