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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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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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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짓밟힌 꽃은

DUMMY

오시리스의 시계로 약 6일이 지나고 네이렌은 여러 가지 정비도 할 겸 정보도 얻을 겸 조금은 천천히 우주를 떠다니고 있었다.

“ 하아.. 여기도..! 진짜..! 너무하네...!! “

-딱..!

카린이 손가락을 튕기며 함선에 그려진 예쁜 그림들에 묻은 오물들을 제거한다.

“ 킥.. 저 행성에 있을 때는 아무 말도 못 하더니? “

“ 그.. 그건 무섭잖아..! 돌 맞는 건 싫다구! “

저러니까 계속 놀리고 싶지..

참 귀여운 천사다.

“ 니 친구는 여전하냐? “

에테리아스 행성을 떠난 지 6일.

그동안 다르시는 단 한 번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네이렌과는 달리 음식을 자주 먹어주어야 하는 다르시는 어떻게든 카린이 챙겨주고는 있다고 하지만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 이젠 문도 잠겨 버렸어.. 음식은 넣어뒀는데... 음... “

꽃밭에 충분한 물과 태양 빛이 충분하지 않으면 꽃들은 금방 시들어 고개를 숙인다.

뭐. 춘향은 이럴 거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했다만..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다르시가 충격을 받았다랄까?

“ 증말.. 머릿속이 깨끗한 녀석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깐.. “

춘향은 슬슬 천사가 팔딱거리며 화내는 모습도 지겨워지는 바람에 먹던 과자를 우주로 던져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암... 뭐 이 우주에서 어차피 할 일은 없었기에 다른 할 일이라고 해봐야 지루한 것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거라도 해야지 뭐.

-파지지직..!!!

“ 우왁..! “

“ 춘향님! 여기 계셨군요! “

지금은 아무도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둔 키를 오랜만에 붙잡고 아무 데나 여행이나 가볼까 생각하던 춘향의 앞에 미야가 나타난다.

가끔은 춘향마저도 놀라게 해버리는 미야의 속도에 살짝 당황스럽다.

“ ..이러다 내 아이덴티티를 뺏기겠는데. “

“ 네? “

“ 아냐. 왜? 꽃밭 공주님이 깨어나기라도 하셨댜? “

미야는 살짝 당황하다가 춘향의 말을 무시하고 하려던 말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판단했다.

“ 피렌님과 아리나님께서 찾으세요. “

....으..

그 둘이면 분명 재미없고 따분하고 지루한 일밖에 안 할 것 같은데...







“ 하암.. 불렀냐? “

보통 모인다면 조타실이지만

오늘은 웬일로 피렌의 방에서 모였다.

딱히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뭐..

“ 요즘 분위기가 좋지는 않지. “

“ 그래.. 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

11명의 사람이 우주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다.

그중에서 한 명이라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 심지어 그 밝은 다르시가 그러니까.. 걱정이 안 되려야 안될 수도 없지.. “

그렇게 피렌과 아리나가 서로 안타까운 말을 주고받고는 있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 그냥 냅두라니깐~ 원래 꽃밭에는 똥 같은 거름도 줘야 잘 자라는 법이야! 내가 그 이야기는 전승 안 시켰나? 착한 말만 해준 양파랑 나쁜 말만 해준 양파랑 비교하면 나쁜 말만 한 양파가 더 잘 자란다는 결과가 있었는데! “

“ ..그런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오랜만이네.. “

미적지근한 반응에 춘향도 신나게 말하던 입꼬리가 내려가고 어깨가 축 처진다.

분위기가 밝아야 놀릴 때도 더 재밌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없으면 지금부터 만들면 그만이고.

“ 뭐,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잖아? 아무리 레이브를 막기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붉은 눈이랑 거래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그 힘으로 주시자가 된 거니까 그 여론을 뒤바꾸려면 붉은 눈이 우리에게 이로운 존재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없을걸? “

신뢰는 천천히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그렇게 높게 쌓아놓은 신뢰는 무너져버린다면 잔해로 남아 그 위에 다시 신뢰를 쌓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똑. 똑.

-지이이이잉.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문이 옆으로 열린다.

“ 피렌. 잠깐 심각한 일이.. 뭐야. 니들 모여서 뭐 하고 있는 거냐. “

“ 음? 윌리. 뭐 할 말 있어? “

뭐.. 따로 모여서 놀고 있었다면 조금 화가 났겠지만

아리나, 피렌, 춘향의 조합에 분위기 자체도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짐작이 가기에 윌리는 자연스레 넘기기로 했다.

“ ...저거 잠긴 문 뚫을 방법은 없나? “

“ 응? 왜? 다르시한테 무슨 일 있어? “

잠긴 문이라고는 카린이 숨을 때 쓰는 비밀 방과 다르시의 방밖에 없었기에 당연히 다르시의 방을 생각한 아리나가 물어본다.

“ 은하의 인도자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다르시 인도자를 공격할 계획을 짜고 있어. “

“ 뭐? “

“ 라티안이 레이브를 죽이는 걸 모두가 봤나 봐. 이제 남은 건 다르시밖에 없다면서 다르시를 죽이기 위해 진화의 인도자에게서 정보를 받았더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시자의 눈에 대량의 에너지를 쏟아 넣을 거야. “

그렇게 된다면..

저번처럼 다르시가 쓰러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시자의 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다르시였기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나마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보자면..

“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멀어져야 해. 윌리. 주시자의 눈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

“ 자세한 위치는 모르지만.. 은하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은하 바깥에 존재한다고들 하지. 그래서 다들 주시자의 눈을 파괴하지는 못하고 에너지를 쏘아 올려 주시자의 눈과 연결된 다르시 인도자의 육체에 충격을 가하는 거다. 시간이 없어. 어느 정도는 다르시 인도자가 견뎌내야 해. “

“ ..알았어. 카린을 불러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게. 피렌. 윌리랑 같이 알비스한테 가서 최대한 주시자의 눈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키를 잡아줘. “

“ 알았어. “

아리나가 지시하자 피렌도, 윌리도 그 즉시 움직인다.

아리나도 카린을 부르러 가려는데...

여전히 춘향이 앉아있었다.

“ 안 가? “

“ 흐음... .. .. 음.. “

춘향은 생각한다.

...설마 레이브는 이걸 노리고 에테리아스 행성에서 일부러 패배한 걸까.

너무 과한 생각이 아닐까 싶지만..

그 녀석이 인간이 아닌 춘향이 생각하는 AI의 끝판왕이라고 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다.

“ 어디까지 설계한 걸까? 참... 놀랍단 말이지.. “

“ 으응? 뭐가? “

“ 아니야! 어쩌면 우리가 상대할 녀석이 아니라고 봤을 뿐이야. 가자! 새 잡으러! “

새라니.. 카린인데..







-똑. 똑. 똑.

“ 다르시. 조금 급하게 할 말이 있으니까 문 좀 열게? 미안해? “

....

물론 방의 방음 하나는 끝내주게 철저하다지만 밖에서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있도록, 문에 딱 붙어서 말하면 들을 정도로 카린이 잘 설계해놓았기에 분명 아리나의 말은 다르시에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방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들려오는 소리는 조금도 없었으며, 문은 잠겨있기에 평범하게 열리지도 않았다.

“ 카린. “

“ 아.. 알았어. “

-딱.

카린이 손을 튕긴 것과 동시에 잠금장치가 사라졌다고 확신한 춘향이 문을 잡고 수동으로 벌컥 열어젖힌다.

“ 야! 괜찮냐?! “

눈이 아프지 않게 은은하게. 그러면서도 어둡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충분히 잠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연하게 빛나는 방.

그 안에는 카린이 넣어둔 온갖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식들과 여러 대의 냉장고... 그리고 예쁜 침대가 있었다.

냉장고와 음식이 조금 더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를 게 없는 방이었으며

아마 저 냉장고들은 방을 잠그기 전에 카린이 음식을 미리 채워두었던 것이리라.

뚜벅뚜벅 걸어 나간 춘향이 침대에 누워있는 다르시의 몸을 억지로 돌려 얼굴을 본 순간

이미 상황은 늦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 야! 야! 정신 차려봐!! 야!! “

“ 카린! 물수건 빨리! 그리고 앨리스도..! “

“ 알았어..! “

급하게 카린이 물수건과 함께 온갖 약들을 창조해내고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침대 시트와 이불도 새것으로 갈았다.

이런 거로 진정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 정말.. 앞으로 문 잠그는 건 금지야. 사생활이고 뭐고 안돼. 알았지 춘향? “

“ 왜 날 보고 그래? “

“ 너가 주장해서 잠금장치를 만든 거잖아! “

“ 으으.. 아픈 애 앞에서까지 싸울 거야?! 나가서 싸워! “

평소와 같이 티격태격하는 아리나와 춘향.

그리고 웬일로 아리나와 춘향의 앞에서 큰소리치는 카린.

나가서 싸우라고 소리치면서 본인이 나가서 앨리스를 불러오는 그런 바보 같은 모습도.

그런 카린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다르시의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모습도.

그런 다르시가 좋아하게 되어버린 소소한 일상이 오늘은 아프게 다가온다.

“ ...아리.. 나.. “

“ 응 다르시. 말하기 전에 여기 물 좀 마셔볼래? “

카린이 만들어준 튜브를 다르시의 입에 가져다 대고 병을 천천히 누르자 물이 조금씩 빨려 올라가 다르시의 입술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런 촉촉한 입술만큼이나 촉촉해진 눈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르시는 조심스레 눈을 감고 말한다.

“ ..날.. 두고 가.. “

“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르시. “

“ 나.. 알 수 있어... 나 때문에.. 은하의 중심부에서 멀어지고 있는 거지..? “

이런 무식하게 착한 녀석을 봤나..

“ 나.. 너희들에게도..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날.. 두고가.. “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마음도, 육체도 충분히 괴롭고 아플 텐데도 억지로 쥐어짜내서 하는 말이 자신을 두고 가라는 말이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뺨을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다르시의 꼭 감고 있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며 춘향마저도 딱밤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팔짱을 낀 채로 방을 나가버렸다.

“ 다르시.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 응. 금방 낫게 해줄게. “

아프지 마 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평범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니까..

“ ..미안해.. 나 때문에.. 미안해... “

“ 너 때문이 아니야. 너는 올바른 길을 걸었어. 붉은 눈이랑 거래 좀 하면 어때? 너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그런 거잖아. 그 주시로 레이브를 감시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은 진작 붉은 눈이 뒤덮었을 거야. “

다르시를 위해서

위로의 말이 아닌 정확한 판단을 해서 말해준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다르시는 이 은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 진실 덕분에 이 은하의 사람들은 아직도 살아가고 있으니까.

단지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붉은 눈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묻어버린 과거의 관습 때문이다.

다르시는 현재 이 은하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먼저 붉은 눈과 맞서 싸우려고 했던 가장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 이게.. 진짜 올바른 길이었을까..? “

당연히 올바른 길이다.

다르시로 인해 행복해진 사람이 이 은하에 너무나 많다.

그런 다르시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건...

전부 레이브.. 그 녀석이 설계한 것이겠지.

“ 괜찮아 다르시. 흔들리지 마. 우린.. 널 믿고 있어. 많은 사람도 점점 진실에 다가가면 알게 될 거야. 너는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한 거라고. “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이미 짓밟힌 꽃의 줄기는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 난.. 모르겠어.. 아리나.. “

다르시는 힘없이 머리를 억지로 옆으로 돌린다.

“ 날.. 버리고 가.. 너희에게만큼은..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잖아..? 너희는 은하의 중심부로 간다고.. 했잖아... “

“ 제발.. 다르시 그런 말 하지 마.. “

“ ...나 대신.. 레이브 인도자님을.. 막아줘.. “

그대로 다르시는 아리나의 눈을 보지 않았으며

그 뒤로 달려온 앨리스가 다르시를 보살피며 안정을 취하도록 해 주었다.

....몸은 조금 진정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평범하게 다친 것이 아닌 주시자의 눈에 의해 아픈 것이므로 여전히 고통스러울 것이며..

..안타깝게도 앨리스의 치유는 마음의 병까지 고쳐내지는 못했다.


작가의말

짓밟힌 꽃은 결국 일어나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

내가 죄인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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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402. 최악과 최선의 선택 23.12.22 22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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