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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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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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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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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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하품하생下品下生 2

DUMMY

"아난이 여기서 지내고 있었다니."


루아가 말했다.


"속세가 싫어져서 협회장을 관두고 떠났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요컨대 그런 사람에게 배웠다는 송하도 의외로 싹수가 대단한 녀석이었다.


"송하, 네가 만나러 왔다는 사람이 그 아난 법사라는 사람이지?"


내가 물었다.


"네, 맞아요. 제가 여기 5년 전에 들어와서 3년 동안 배우고 나갔는데, 그때는 이곳에 사부님 한 분만 계셨어요."


"시기가 겹칠 뻔했군요. 저희는 2년 전쯤에 들어왔습니다."


규빈이 말했다.


"영종도에 흘러 들어와서 멋대로 날뛰던 저희를 교화시켜 주신 게 그분이십니다.


다른 스님 하나 없이 혼자서 이 넓은 부지를 관리하고 계셨는데, 당시 법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물체에 깨끗할 결潔을 붙여놔서 청소하지 않아도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하셨죠.


어떤 원리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신기하게도 정말로 그랬습니다. 모든 더러운 것들이 사찰의 물건들을 피해 갔죠."


물체에 깃든 진명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아난 법사님께서는 이상한 분이셨습니다.


불상에 108배를 올릴 때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올려놓고는 끼니를 때우러 가신 적도 있었고, 탁발하러 갈 때 몸을 일부러 야위게 만들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식으로 주민들에게 음식을 받기도 하셨죠.


무엇보다도, 생전 한 번 타본 적 없다는 바이크를 배우셔서 저희와 함께 타고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 마을에 끼칠 소음공해도 고려해서, 도로와 주택가 경계 부근에 잠잠할 묵默이라는 글자를 잔뜩 뿌려놓으셨다는데, 그 덕에 저희는 저희대로 바이크를 즐기고 마을 사람들은 소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달리는 것도 새벽에 도로가 한적할 때 달렸죠."


어떻게든 폭주 활동을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포장하려던 노력이 엿보이는군.


"법사님께서는 그러고 나면 항상 아미타불이라는 말을 중얼거리셨습니다.


아미타라는 부처님의 공덕 덕택에 그분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르기만 하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서방정토 극락에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와 진용이를 포함한 살활회의 모두에겐 뭔가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아미타불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까 영종대교를 건너올 때 폭주족 두 사람이 아미타불이라고 외치며 덤비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군.


"저희에게 무공을 알려주기도 하셨죠. 저희 모두가 보살이라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모습이 안 보이죠? 어디 갔나요?"


"아, 그게···."


규빈이 말을 흐렸다.


"법사님께서는 지금 해궁사에 안 계십니다. 어디로 떠나신 건진 모르겠지만, 영영 떠나신 건 확실하죠."


"법사님께서 영영 떠나셨다고요?"


송하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 그럼, 이곳에 온 의미가 없는 게···."


그의 동공이 정처 없이 떨렸다.


확실히 황당한 소식이기는 했다. 우리는 또 언제 살수에게 습격받을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아무런 수확도 없이 돌아가야만 한다니.


"법사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규빈은 다른 돌파구를 제시했다.


"자기 제자를 자칭하는 송하라는 작명사가 찾아오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죠."


그 말에 송하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 제가 송하에요."


"네, 당신이 정말로 법사님의 제자라면 이 말씀에 담긴 수수께끼를 이해하실 겁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죠?"


"법사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게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면, 네가 예전에 머리 집어넣으려 했다가 나한테 혼났던 곳을 찾아봐라.'"


머리 집어넣으려 했다가 혼난 곳?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거지?


"너 변기에 머리 집어넣었냐?"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송하는 기겁하며 손을 엄청난 속도로 내저었다.


"그러면 어디지?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혼날 만한 곳이."


"아마도··· 거기일 거예요."


송하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 있었다.


"여기 할아버지 나무랑 할머니 나무가 있는데, 할아버지 나무를 보시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에서부터 중간까지 완전히 파여 나가 오목하게 변해 있었는데, 얼핏 보면 썰매처럼 보였다. 성인 남성이 저 안에 들어가서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송하가 느티나무의 옆으로 돌아갔다.


폭주족들이 각자 소원을 적어놓은 검은 기와가 나무 옆에 잔뜩 쌓여 있었고, 나무에는 구멍이 있었는데, 오뚜기처럼 생긴 구멍이었다. 사람의 두상 내지 흉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난 법사만 그런 게 아니라."


루아가 중얼거렸다.


"저기에 머리 집어넣으려 한 너도 좀 이상한 것 같아."


송하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한순간 호기심이 일어서 그만···."


한편 그 구멍에는 작은 돌부처가 놓여 있었는데, 송하가 돌부처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돌부처의 머리 부근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그가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석상의 진명이 석불石佛이에요. 보통 이런 건 아무리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진명이 석상石像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석상이 진짜 부처라는 거야?"


내가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쓸 수 있는데?"


루아가 물었다.


"석상 자체는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예요. 이 석상이 갖고 있는 진명이 중요하죠.


부처 불佛은 굉장히 희귀하고 출력 또한 높은 글자예요. 진명에 달고 있으면 내공이 대폭 증가하고 부처나 보살 같은 존재들이 사용하는 신통력도 깨우칠 수 있어요."


듣던 중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 글자를 내 진명에 단다면 형제들과 대적하는 게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일단 송하는 돌부처를 챙겨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루아가 규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난 법사는 왜 해궁사를 떠난 거야?"


그녀의 물음에 규빈은 침묵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법사님과 즐겁게 지내면서 금세 1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죠. 어떤 사람이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미선당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선당주?"


루아의 얼굴이 굳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루아 둘 다 쓰디 쓴 감정을 집어삼켜야 했다.


미선당주 노루미, 그녀의 지시로 아버지는 움직였고, 아버지의 지시로 나는 루아의 부하 99인을 죽였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의 명령으로 무림인을 학살한 것이다.


"그 사람은 아난 법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저희도 처음엔 그 모습에 홀려서 좌우로 갈라지며 법사님께로 곧장 안내했죠.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


양 갈래로 묶은 노루미의 머리칼은 마치 금색의 강이 좌우로 쏟아지는 듯이 빛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4인의 개성 있는 부하들을 대동하고 있었고, 해궁사의 승려들은 그녀를 위해 기꺼이 길을 터 주었다.


규빈은 앞장서서 그들을 아난에게로 인도했고, 마당에 이르렀을 때 노루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푸른 시선이 향하는 곳에 한 남자가, 관음보살의 금상을 모시는 법당으로 향하는 돌계단에 불량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회색의 법의 위에 갈색 가사를 둘러 입고 있었다.


"범불작사梵佛作師 아난, 맞지?"


노루미는 그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난은 담배를 꼬나물고서, 머리에 삼三자로 주름을 만들며 노루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아니겠나?"


그 말에 노루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쌀쌀한 대답은 예상치 못한 듯했지만, 곧바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변모했다.


"아난, 작협회장 자리를 그만두고 여기서 여생이라도 보내려는 모양인데, 아직 정년도 한참 남았으면서 벌써 퍼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노루미가 아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당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그러니까 당신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줄게. 내 쪽으로 붙어."


"···."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내 전속 작명사가 되게 해주겠···."


"첫째."


아난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내뱉고서 말했다.


"나는 여생을 보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진리를 위한 진리를 찾으러 온 거지."


그는 노루미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둘째, 너는 너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가 담배를 한 모금 빨고서 이어 말했다.


"천만에. 너는 추하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석탄보다 새까맣지. 너 같은 년이랑은 같이 일 못 한다."


"하,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노루미는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대들었다.


"그렇게 치면 안 추한 사람이 어디 있어? 당장 너만 봐도 폐가 석탄보다 새까말 것 같은데? 그건 아름다운 거야?


아난, 너는 궤변이나 늘어놓는 쓰레기야. 쓰레기답게 냄새가 고약하지."


노루미가 아난의 멱살을 잡았다.


"나도 너한테 한마디 해줄까? 나는 네 무공부터가 어이없어.


깨달음의 수준이 석가모니는커녕 그의 제자들에도 한참 못 미치면서, 작명공이라는 사술로 불경梵과 부처佛를 만든다고作 자칭하니師 우습기 그지없어. 그런 걸로 부처를 만들 수 있나? 아니지. 그랬으면 네가 먼저 부처가 되었겠지.


너는 사기꾼이지만, 그런대로 쓸모는 있으니 내가 고용해주겠다는 거야. 고맙게 생각해야지."


아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쥐고 있던 궐련을 뒤집더니, 다짜고짜 자기 이마에 대어 지졌다.


규빈을 포함한 살활회의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아난은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궐련을 얼마나 세게 비볐는지, 그의 손가락 힘에 궐련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흩어지는 가루의 너머로, 이마 정중앙에 점과 같은 그을림이 새겨진 아난의 얼굴이 보였다.


이어서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머리 위로 치켜드는 것도, 앞으로 뻗는 것도 아닌, 그저 손바닥을 위로 하여 편안하게 들어 올리는 것.


"발심發心."


그의 손바닥에서 강한 빛이 떠올랐다.


발포發砲가 아닌 발심發心. 마음을 쏘는 일.


"!"


노루미는 본능적인 위협감을 느끼고서 거리를 벌리는데,


"여래보리광如來菩提光."


아난의 손바닥 위로 떠올라 있던 빛의 덩어리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었다.


진리를 쫓아 진리로부터 찾아온 자가 발하는 진리의 빛.


그 막대한 빛의 줄기가 노루미와 그 일당을 덮쳤다.


***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법사님께선 노루미를 포함한 5인의 무뢰한을 단신으로 격퇴하셨습니다"


규빈이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힘에 부쳐 힘들어하시는 법사님의 모습은 처음 보았죠.


게다가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격한 싸움 도중에 살활회의 동료들 몇이 죽거나 다치기도 했습니다.


노루미는 법사님을 당해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즉시 도망쳤습니다. 진용이를 비롯한 몇은 그녀를 추격해 엄중한 처벌을 내리기를 원했지만, 법사님께선 그리하지 않으셨죠.


법사님께서는 그저 죽은 이들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원혼을 달래어주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법사님께선 더 이상 노요한 일가의 알력 싸움에 얽히고 싶지 않다며 절을 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법사님께선 더욱 외진 곳으로 떠나 버리셨고, 이젠 저희도 어디에 계시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법사님께서는 저희가 더 이상 외부의 알력 싸움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떠나가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법사님께서 떠나신 이후로는 저희만으로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한 하수들만 섬에 흘러 들어왔으니까요."


규빈은 마당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서툴게 깎은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법사님께서 떠나시고 나서 저희끼리 만들어 세운 겁니다. 이러면 법사님께서 항상 곁에 계시는 것 같아 안심이 되죠. 진용이는 법사님을 탐탁지 않게 여겨서 좀 부수라고 하지만, 그럴 수야 없죠. 쓰레기처럼 살던 저희를 계도해주신 분인데."


그때,


"규, 규빈 스님!"


수도승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서, 섬에 '그들'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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