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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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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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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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엔티레이미크, 엔티레이미크~!

엔티레이미크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내가 잘못 들었나,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표정을 잠시 짓고 있던 엔티레이미크는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엔티레이미크는 문득 쳐다보면 이마의 미간과

두 눈이 찡그려질 만큼 환하고 강렬한 햇살 아래

높고 긴 건물 외벽의 표면에 마치 거미처럼 달라붙어있었다.

그러나 멀어져가는 햇살들의 반짝이는 아득한 빛처럼

어떤 소리도 어떤 그림자도 돌아본 곳에는 없었다.

지금쯤 음악 학교에서는 음악 수업들이 한창일 것이다.

피아노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수업들이.

그러나 그는 음악 수업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음악 학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이든 저녁 때든 아니면 밤이든.

그러나 그의 여동생이라면?

이제는 그는 잘 모르게 되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몇 살인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몇 년 동안에 걸친 훈련을 받았던 시간이 너무 멀고 먼

그리고 너무 오래전인 듯 혹은 너무 오래 지속된 시간처럼

착각이 들었다.

엔티레이미크는 계속 석조 건물의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두 손과 두 팔과 두 다리로.

가끔 번쩍거리는 건물의 흰 외벽은 거무스름하기도 하고

때로는 얼룩덜룩하게 시커먼 먼지가 군데군데 달라붙듯이

겉에 착색이 되어있었다.

엔티레이미크는 기억 속에 들려오던 어떤 목소리의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메아리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교관이 지시한 비결대로.

교관은 한 사람만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그 교관 중의 한 명은 그도 잘 알고 있던 친척 아저씨와

친구지간이라고 했었다.

마법을 쓸 때는 주변 상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그보다는 가능하다면 마법의 힘을 쓰려는 대상과 목표에게만

온전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

너무 간단하고 기초적이어서 별로 실질적인 도움은 조금도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모든 마법을 쓸 때는

이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고 그 교관은 말했었다.

찬척 아저씨와 잘 아는 사이인지 엔티레이미크는

물어보고 싶었으나

거구의 교관은 말이 없다기보다 의도적으로

근엄한 침묵을 가장한 것만 같은 두려운 분위기의 남자여서

엔티레이미크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후로는 그 교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엔티레이미크가 소문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소문이 들려오는 생활을 할

사람들도 아니긴 했지만.

교관들은 여러 가지를 돌아가면서 한 가지씩

담당해서 가르쳤고

가끔 탈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엔티레이미크는 탈락한 그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과 달리

그 사람들은 철저한 단속이 취해졌다.

모든 기억들이 다 삭제되어서

자신들의 고향과 집으로 돌아갔다.

왕국에서 보석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한정적이어야만 했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보석들의 위력을 알게 되면

그때는 왕국은 불리해질지도 몰랐다.

언제나 큰 힘에는 많은 유혹이 뒤따랐다.

그리고 큰 힘은 곧 큰 영광뿐만이 아니라

큰 쾌락을 필수적으로 동반했다.

큰 힘은 그러므로 곧 큰 쾌락이었다.

큰 힘이 곧바로 쾌락으로 환전이나

치환 또는 교환이 가능했으므로

큰 힘은 언제나 치열한 경쟁을 자랑하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쾌락만이 언제나 공평하고 평등했다.

모든 사람들이 쾌락 앞에서 전부 평등해졌다.

비록 그 쾌락의 분배와 선취를 놓고

불평등한 결과가 만사에 만연해있었지만.

세상의 어디에나 쾌락은 늘 불분명하고

불평등하게 집중되어있었다.

어디에는 너무 많았고 어디에는 너무 적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모두가 가질 수 없었다.

서로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그 소유권을 놓고

가시적인 혹은 암투적인 분쟁과 전쟁이

늘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그 후에는 당연히 결과가 달라졌다.

쾌락만이 영원했고 쾌락만이 가장 공평했으며

쾌락만이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언제나 가장 위력이 있었다.

사람들이 찾는 건 결국엔 언제나

쾌락들의 가지가지 종류들뿐이었다.

그 쾌락들이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출몰하고 유행하며

장려되기도 하고 금지되기도 했다.

쾌락은 곧 미덕이고 도덕이었으며

아름다움이었고 가치였다.

어떤 도덕이나 어떤 윤리도

쾌락들보다 우선하거나

더 가치가 있지 않았다.

저열한 육체적 쾌락들부터

별별 잡다한 쾌락들을 지나서

고상하고 위대한 정신적인 쾌락들까지.

악인들과 선인들을 나누는 기준이

쾌락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 유무임을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선호하며 찬사를 보내고 좋아하며

가까이 해서 친한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한다고.

그 모든 쾌락들이 겹겹이 무수히 많은 가면들을

겹쳐서 쓰고는 세상을 횡행했다.

때로는 도덕과 윤리로

때로는 사랑과 낭만과 연애와 결혼으로

때로는 우정과 의리로

때로는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때로는 종교적 열정과 신앙적인 헌신으로

때로는 신의와 친절로

때로는 자선 사업과 봉사 활동으로

때로는 선행과 자비와 연민으로.

지금 엔티레이미크가 들어가려는 곳은

겉으로만 보면 특별한 건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나오려는,

즉 도둑질하려는 물건만큼은

특별한 것이었다.

어차피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훔치든 제일 먼저 훔치는 사람이 가장 유리할 것이다.

소유권의 선점이 가장 확실해지게 된다.

다만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이 본질이었다.

빛살처럼 그리고 빛으로 되어서 희미하게 가물거리며 빛나는

한 마리 거미처럼 그는 순간에서 순간으로 건너뛴다고

착각할 만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외벽을 타고

마치 한 줄기 빛의 밧줄이나 빛으로 된 실 한 가닥처럼

그저 빠르게 계속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차츰 그의 모습이 희미하다 못해 스러지듯이 멀어졌다.

조각을 하고 붙이고 때로는 잘라내어 여러 군데를

석조 장식물들로 장식을 한 외벽을

차례차례로 지나가듯 타고 위로 자꾸만 올라간

엔티레이미크는 건물의 창문을 가볍게

그냥 뚫고 들어갔다.

유리창은 깨져버리고 만 것이 아니라

조금도 흔들림조차 없었다.

이 건물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으나

마법으로 공간에서 공간으로 그렇게 건물 외부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고

엔티레이미크가 출발한 곳에서 그 중간의 거리를 뛰어넘는

마법을 통해서 이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떤 방어의 마법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거나

혹은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엔티레이미크가 알고 있기에는 그랬다.

그 정도로 강력한 방어 마법을 설치한 곳이었다.

건물의 안은 아름다운 커튼들과 그리고 의외로 휑한

느낌만 있는 넓은 실내면적의 분위기였다.

회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커튼들은 두껍고 고급스러운

면직물들이었고 창가에 침착하고 무덤덤하게 매달려있었다.

실내는 쾌적하고 청결하게 청소가 되어있었으나

사람도 가구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넓고 큰 텅 빈 공간이었다.

적막감만이 평화롭고 여유 있게

한가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이 오래전부터 드나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실내에서 느껴지는 느낌상만으로는 그랬다.

엔티레이미크가 왼손으로 상의를 젖히고

속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냈다.

왼손으로 붙잡은 검집 속에서 엔티레이미크는 단검을 뽑았다.

잠시 단검에 새겨진 글자들을 들여다본 엔티레이미크는

단검을 천천히 오른손으로 고쳐 쥐었다.

단검에 새겨진 글자들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다 자신의 운명이 결정한다>

라는 문장이었다.

엔티레이미크의 오른손이 날카롭고 매섭게 떨쳐졌다.

한 줄기 빛살처럼 단검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되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서 건너편 벽에 박혔다.

팽팽한 진동으로 단검의 손잡이 부분이 격하고 급하게

위아래의 소폭에서 반복적으로 끝없이 떨렸다.

엔티레이미크가 다시 오른손을 한 번 더

홱, 뿌렸다.

그의 오른손에서 작은 종이 조각들이

유유히 소폭의 진동을 하는

부드럽고 느긋한 곡선처럼 날아갔다.

벽에 달라붙은 후에 그 자잘하게 잘려진 종이 조각들은

유리 가루들로 천천히 변해갔다.

색색의 유리 가루들은 달라붙었던 벽에서

오색도 영롱하게 빛나다가

천천히 메마르게 말라갔다.

벽에 작은 정사각형으로 된 빛의 도안이 나타났다.

점점 더 그 도안이 더 넓고 더 큰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변했다.

정사각형의 안에는 각종 도형의 그림들이

정사각형의 테두리들과 똑같은 파란 빛으로 새겨지듯이

정교하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삼각형과 사각형,

원과 마름모와 각종 선들이 모여서 이룩한

어떤 직선들의 짜여진 무늬였다.

비밀하고 신비스러우며 차갑지만 매혹적이고

그리고 결코 풀 수도 알 수도 없을 것만 같은

난해하기보다는 생경하고 처음 보는 낯선.

엔티레이미크는 오른팔을 들고는 크고 길게

있는 힘껏 오른손을 쫙 펼쳐서 뻗었다.

그의 상의를 입은 오른팔에 비해

20배는 더 먼 거리일 것 같은

벽에서 차츰 빛들이 사라지고

물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건처럼

자칫하면 바닥으로 떨어지기라도 할 듯이

접시 한 개가 서서히 밀려져 나왔다.

그가 계속 오른팔을 뻗고 있자 접시는 점점 더 두둥실 뜬 상태로

그에게로 옮겨져 왔다.

그에게 계속 다가오는 접시는 온통 파란 빛으로 가득한

보석들이 가득 박혀있었다.

엔티레이미크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작은 물결처럼 살짝 번져갔다.

그때였다.

좌우의 벽들이 다 부서지면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모두 남자들로 다 같은 검은색 상의와 검은색 복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밑에 입은 바지들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신념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

그들은 일제히 한결같이 외쳤다.

엔티레이미크가 차갑고 건조하게 짤막한 한마디 말을 했다.

"구름이나 보내주마."

엔티레이미크는 다시 왼손을 확, 뿌렸다.

왼손에서 투명하고 흰 단검들 같은 모양의 빛살들이

마구 쏟아지면서 날아갔다.

검은 상의단은 차례차례로 혹은 무순서하게

희고 반짝거리거나 혹은 불투명한 거품들을 몸에서 터뜨리며

곧 똑같은 거품들로 차츰차츰 변해서

이윽고 터져버린 거품들과 함께 사라졌다.

죽는다기보다는 그냥 없어지는 것처럼.

비명조차도 없는 잠잠한 나머지 거품들의 소멸처럼.

엔티레이미크는 그 접시가 완전히 그리고 편하고 부드러운 수평선으로

그에게 다가오자 오른손으로 고요히 붙잡았다.

접시는 크기와 두께에 비해서 의외로 묵직했다.

보석들이 아름답게 가득가득 선명하게 박혀있는 접시를

들여다보던 엔티레이미크는 상의의 속주머니에서 꺼낸 자루에

집어넣고 윗부분에 돌아가면서 꿰어져있는 끈을

잡아당겨서 묶어버렸다.

주머니는 처음의 크기처럼 여전히 작았고 또 처음처럼 홀쭉해서

무엇이 들어간 것처럼 전혀 불룩하거나 조금도 두껍지 않았다.

엔티레이미크는 왼손으로 윗옷을 펼치고 속주머니에

자루를 다시 집어넣고는 그대로 창문을 향해서 달려갔다.

창문을 그대로 통과한 그는 눈이 멀 것만 같은

강렬하고 환한 허공 속에서 한 줄기 밧줄의 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다가,

이윽고 하얀 점 하나로 한 번 빛나고는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건물은 방금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쓸쓸하면서도 감미로운

오후의 적막한 햇살 아래에 조용히 그리고 평온하게

직립한 것처럼 있었다.

이제 오후가 천천히 기울어지듯이 저물 것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또 먼 곳에서

밤이 찾아올 것이다.

언제나 세상이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이 되어왔듯이.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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