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강 특) 격투기 피지컬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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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9.18 16:36
최근연재일 :
2024.01.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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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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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소싸움

DUMMY

“110kg! 이제는 정말 멈춥시다. 더 욕심 부리다가 큰일 나겠어요. 지금 뭐 올림픽 출전한 거 아니니까 충분해요.”


김선호 소장은 내 손에서 바벨을 잽싸게 빼앗아갔다.

100kg을 든 후로 무게를 5kg씩 보수적으로 올려 시도했다.

그렇게 2번이나 더 기록을 깨면서 결국 최종 벤치프레스 중량 110kg까지 돌파해냈다.

내가 느끼기엔 아직 힘에 부친 것 같지 않았지만, 확실히 바벨을 제어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촬영하다가 제 욕심으로 괜히 부상당하면 민폐죠.”


“잘 생각했어요. 이미 강하다는 건 차고 넘치도록 증명했으니까 안전하게 가자고요. 와, 110kg까지 들 줄은 몰랐네요. 지금 가슴에 자극 별로 안 왔죠? 어깨가 무슨 기계마냥 받쳐주던데요. 오늘 측정 아주 볼만하겠어요.”


원판을 정리하면서도 끊임없이 날 칭찬하는 김선호 소장.


“남들은 다리로 겨우 드는 무게를 팔로 든 거라니까요? 남은 두 종목은 도대체 얼마나 해낼지 기대되네요. 이제 데드리프트를 배워보죠!”


데드리프트를 위해 바벨을 내려놓은 곳까지 가는 김선호 소장의 발걸음은 몹시 경쾌했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모양이었다.

이어서 진행된 데드리프트와 스쿼트 측정.

데드리프트 145kg, 스쿼트 140kg으로 3대 운동 총 중량 395kg이 내 기록이었다.

살면서 힘쓰는 일에 부족함은 못 느껴봤지만, 막상 3자릿수의 쇳덩이들을 다뤄보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 온힘을 다 끌어다 써야 하는 경우는 잘 없지.

게다가 김선호 소장이 옆에서 계속 대단한 일이라고 추켜세워주니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짝, 짝, 짝, 짝!


김선호 소장은 덩치만큼이나 큰 손으로 박수를 치더니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이게 믿겨지십니까? 오늘 처음 3대 운동을 해본 사람이 395kg을 들다니요! 제가 종종 3대 400은 노력의 영역이고, 500부턴 재능의 영역이 섞인다고 말했죠? 이렇게 시작을 400kg으로 하는 분들이 있어서 하는 소립니다.”


콘텐츠를 위한 멘트를 던진 다음 나한테 고개를 돌리는 김선호 소장.


“불도저님 상체가 유독 강하네요. 원래는 스쿼트랑 데드 무게가 훨씬 잘 나오는데요. 그만큼 고관절 쓰는 느낌만 잡으면 무게가 쭉쭉 오를 거란 뜻이니까 좋게 생각하시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래도 5kg 때문에 400을 못 찍은 건 좀 아쉽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지금도 어마어마한 건데요. 피트니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1000파운드 클럽이라는 게 있어요.”


“1000파운드 클럽이요?”


“우리나라에서 3대 500 막 이러는 게 여기서 온 건데요. 1000파운드, 그러니까 대략 450kg을 들 수 있으면 운동 깨나 한 사람 취급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첫 시도에 거의 400을 달성했으니까.... 옆에서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느껴지던데요? 하하하! 너무 불합리한 몸이잖아요.”


미국 얘기까지 듣고 나니까 내가 정말 객관적으로 훌륭한 근력을 타고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 때 동아리 선배들도 내 몸집에 비해서 파워무브를 잘한다고 놀라긴 했지.

그때야 그냥 신입생 한 명 한 명이 아쉬워서 동기부여 해주는 소린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한 얘기였구나?

당시에 한 7, 80키로 나가는 몸으로 토마스나 에어트랙처럼 체중을 팔로 지탱하는 동작들을 했으니, 벤치프레스 기록이 유독 높은 것도 이해됐다.

힘이 세면 격투기에도 도움이 될 거 아냐?

좋은 소식이네.

격투기를 접하게 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잠시 감회에 젖어있는 동안 김선호 소장은 주변을 정리했다.


“자, 3대 측정은 끝났고요. 저희 투우양성소에 오셨으니 소싸움 한 번 하셔야죠.”


김선호 소장이 말하는 소싸움이란, 맨몸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게임이었다.

투우양성소 채널에 출연하는 게스트들과 꼭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으로, 상대는 바로 김선호 소장이었다.

당연하지만 게스트 중 아직까지 김선호 소장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3대 600kg이 넘는, 씨름 선수 출신의 인간 투우랑 붙는데 바로 나가떨어지지만 않아도 선방이지.

나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김선호 소장의 앞에 섰다.


“저 방금 3대 측정했으니까 감안해주셔야 합니다?”


“어유, 그렇게 괴력을 보여주셨는데 제가 안일하게 승부에 임할 순 없죠.”


내가 밑밥을 깔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김선호 소장.

이것도 나름 싸움이라고 나는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때,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팀장이 한 마디 던졌다.


“박강용님, 촬영도 길어지고 있는데 너무 필사적으로 하지 마시고 적당히 그림만 만들어주세요. 어차피 소장님한텐 안 될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체급도, 근력도, 지금 하는 게임의 숙련도도 김선호 소장에게 내가 밀린다.

하지만 팀장의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는 말이 속을 뒤집어 놨다.

당연히 질 거라는 그 뉘앙스가 내 승부욕을 끌어올렸다.

난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김선호 소장이 팀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하하, PD님. 담당한 인플루언서를 존중해주셔야죠? 어제부터 봤는데 조금 특이하시네요. 회사 측에 얘길 좀 해놔야겠어요. 무례한 분이 제 담당이 되면 계약 연장을 좀 고민하게 될 거 같다고.”


팀장이 내 담당 PD라고 알고 있던 김선호 소장은 일부러 직책이 아니라 직무로 부른 것 같았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날 대신해서 화내준 게 분명했다.

어제 흔쾌히 센터를 무료로 이용하게 해준 것도 그렇고, 뭐랄까 운동계 후배 같은 느낌으로 날 좋게 봐준 모양이었다.

김선호 소장이 이렇게 나오자 팀장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클라이언트가 정말 회사에 그런 얘기를 한다면 자신에게 큰 불이익이 따를 테니까.

잠깐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김선호 소장은 특유의 에너지로 촬영을 재개했다.


“자, 시작해볼까요? 불도저님 말씀대로 방금 3대 측정을 하셨으니까 어드밴티지로 먼저 편한 자세 잡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양보를 해준 것과 방금 날 위해 팀장을 혼내준 데에 모두 감사하며 김선호 소장에게 달라붙었다.

자세를 낮추고, 두 손은 김선호 소장의 골반 쪽에 댔다.

상대의 중심을 밀어내기 편한 자세였다.

이에 김선호 소장은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후후....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흡!”


김선호 소장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난 있는 힘껏 손에 잡힌 골반 뼈를 밀었다.

하지만 마치 찰흙을 누르는 것처럼 힘이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김선호 소장의 몸은 우직하게 전진해 들어왔고.


“으윽...!”


아무리 힘을 써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니 난 빠르게 지쳐갔다.

단순히 근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선호 소장이 내 힘을 흘려내면서 내 무게중심을 들어 올리는 것 같다고 할까?

정말 투우가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느낌이었다.


-스륵, 슥


김선호 소장의 압박에 내 몸이 슬슬슬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필패다.

내가 물러나는 상황에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니까.

전세가 기울자 팀장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풋.”


그것 봐라 라는 속내의 소심한 표현이었다.

아, 이대로 질 순 없는데...!

난 순간적으로 레슬링 태클을 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깊게 낮췄다.

그러자 김선호 소장이 재빨리 반응하며 무게 중심을 더 아래로 깔았다.

역시 단순한 힘 대결이 아니었어.

난 밑으로 내려가는 김선호 소장의 어깨를 꾹 눌러버렸다.

급하게 고관절을 접던 김선호 소장은 내 압력까지 더해지자 순간적으로 밸런스가 깨졌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선호 소장의 측면을 밀었다.


“흐읍...!”


하지만 역시 김선호 소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금세 한쪽 다리를 뻗어 내 기습을 버텨냈다.

굵은 다리가 펌핑 되어 트레이닝복에 팽팽하게 근육의 윤곽이 드러날 정도였다.

김선호 소장도 쉽사리 자세를 바꾸지 못하고, 나도 계속해서 힘을 주느라 잠시 균형이 유지됐다.

하지만 평화로운 균형은 아니었다.


-찌지직...!


무언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날 정도로 양쪽 다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나나 김선호 소장이나 그런 사소한 소음에 주춤하지 않고 소싸움을 이어갔다.

난 조금이나마 승기를 잡아간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고.

김선호 소장 또한 지지 않으려 내 바지를 샅바 잡듯 단단히 붙들었다.

두 덩치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순간!


-펑!


파열음과 함께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엇?”

“어이구!”


난 참을 수 없는 허전함에 대결중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풀거리는 천 쪼가리.

한때 바지라고 불리던 것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


김선호 소장의 엄청난 악력과 내가 바닥에 버티고 선 힘이 합쳐져 애꿎은 바지가 말 그대로 빵 터져버린 것이었다.

안에 드로즈를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김선호 소장은 갑작스런 상황에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거 어쩌면 좋아요...! 이, 일단 사무실에 있는 제 바지부터 입으시죠. 바로 갖다드릴게요.”


손에 붙잡고 있던 내 바지였던 것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사무실로 가려는 김선호 소장.

나는 그런 김선호 소장을 불러 세웠다.


“저기, 소장님!”


“예...?”


“방금 소싸움은 무승부...인 걸로 할까요?”


이미 카메라에 다 담겼는데 당장 바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 질문에 김선호 소장은 잠시 사고가 멈추었는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그러시죠.”


김선호 소장은 내 제안을 수락한 다음 문득 이 상황이 우스웠는지 웃음을 애써 참으며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지.

난 고개를 돌려 이번엔 투우양성소의 PD를 보았다.

내 덕에 행복해진 또 한 명의 사람.

PD는 빵긋 웃으며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었다.

입 밖에 내놓진 않았지만 속으로 신나서 외치고 있을 거다.

오우, 어그로 끌기 좋은 썸네일!

이렇게 말이다.

스포츠란 건 역시 각본 없는 드라마라니까.

나한텐 비극이었지만.


* * *


다음날 투우양성소 너튜브에 공개된 나와의 합방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3대 운동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정보들.

기대하지 않았던 게스트의 높은 3대 중량.

소싸움에서 처음으로 고전하는 김선호 소장의 모습.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

마지막으로 격투기에 도움이 되는 3대 운동으로 구성된 2부에 대한 예고까지.

투우양성소 기존 구독자들과 격투기 매니아들 모두 좋아할 요소들이 섞여 조회수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내 너튜브도 낙수효과를 얻었고.


“쓰읍.... 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건 좋은데....”


너튜브 알림에 나타나는 구독자들의 닉네임 중 일부가 굉장히 수상했다.

이거 좋은 일인 거 맞...겠지...?


작가의말

지는 것보단 바지 터지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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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꿈만 같았다 +3 23.12.17 1,048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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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싸움 23.12.15 1,117 19 11쪽
16 난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23.12.14 1,123 20 15쪽
15 투우양성소 23.12.13 1,184 18 18쪽
14 사고 쳤다...! +1 23.12.13 1,222 19 14쪽
13 BJ빡꾸 23.12.12 1,188 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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