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아이돌 프리스카 (1)
하지만.
내가 원하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육체는 여전히 기생충이 점령한 상태.
『이번엔 네 맘대로 되도록 두지 않을 거다.』
“아직 독을 얻지도 못했으니 순순히 육체를 내놓고 돌아갈 생각은 없다만?”
『그래서? 지금부터 뭘 어쩌려고? 내 통제가 있는 한 맘대로 행동할 순 없어.』
“과연 그럴까? 이 몸이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너뿐만 아니란 걸 명심해.”
-이필립씨?
다시 들려온 심사위원의 목소리.
다행히 내 의식은 끊기지 않았다.
내 신체를 움직이는 건 어디까지나 기생충의 자아였지만.
-이필립씨 계속 시간을 끌면 탈락입··· 크헉!”
『?!』
자아를 빼앗긴 신백야.
그는 서슴없이 자신의 오른팔을 뻗어 심사위원의 흉부를 노렸다. 정확히 폐가 위치한 곳이었다.
이번엔 아홉 마리의 뱀의 머리가 아니었다. 단 한 마리의 뱀.
그것은 독니를 소유하고 있던 창조된 괴물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일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했잖아, 신백야. 난 아직까지 충분한 독을 취하지 못했다고.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독이야.”
『잘못 짚었다! 저 심사위원에게 독은 없다고!』
“크크, 누구처럼 멍청하지 않으니까 걱정 말라고.”
어라···?
그러고보니.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왔다면 그 놈도 있어야 했다.
내가 말하는 그 놈이란, 블레와 엔터의 심장격에 위치해 있는 배용만 이사.
처음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심사위원은 3명이었고, 쭉 내 정체를 눈치채고 있던 배용만 이사도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시간이 되돌아 간 것뿐 아니라 아예 과거가 바뀐 것이다. 어딘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쿨럭.
이내 심사위원의 몸에 꽂혔던 독니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괴물로 창조된 내 오른손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원상복귀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필립씨는 합격입니다. 대기실로 돌아가 2차 오디션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합격이라고···?』
“이런 벌써 독니가 가진 능력을 잊고 있었나? 이래서야, 쭉 멍청한 헌터라는 소리나 들을 수 밖에.”
『그러고보니···』
독 페로몬을 머금고 있던 연가시의 능력 중 하나. 독니를 통해 감염된 인간을─내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생충 네놈이, 페투라의 우두머리를 찾아 반드시 원하는 게 있나 보군. 순순히 내 일을 도와주려는 거 보니.』
“크크크. 한 가지만 말해주지. 신백야 네 의식이 계속 내 자아를 지지해주고 있으면 넌 쉽게 육체를 돌려받을 순 없을 거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내 의식이 기생충의 자아를 지지해주고 있다라? 물론 지금 상황만 따져본다면 내가 기생충에게 이끌려 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기생충의 힘을 빌려, 기대하고 있던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네놈의 바람처럼 쉽게 정신이 무너지진 않을 거니까 기대는 말아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나? 모든 건 내 의지에 달렸다.
“···크흑!”
순간.
육체를 독점하고 있던 기생충이 심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처럼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랬다.
내 의지만으로 기생충과 자아를 바꿔 치기 할 수 있던 것이다.
“내 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내 정신력과 육신도 함께 강해지고 있지.”
당연히 물리적인 힘은 없었다.
나와 기생충이 분리되기 전까지 정신적인 충돌 외에 직접적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
“자아를 바꾸든 힘을 소모하든 앞으로 명령은 나, 신백야가 직접 내린다.”
『크흣···』
손쉬운 일이었다.
자신의 신체를 되찾는 일은 말이다.
숨을 삼키던 건 기생충의 목소리가 잦아들어가며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독니를 사용할 수 있는 건 너뿐이겠지만, 이제부터 내 명령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내가 나약하다고?
만약 그랬다면 이 초월급 괴물을 어떻게 다룰 수 있었겠어?
* * *
“신백야씨?”
오디션이 끝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내 허리춤 부근에 둔탁한 테이저건을 대고 있는 남자.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이요트였다.
“저 신백야 맞습니다. 그 총은 거두시죠.”
“···”
“어차피 테이저건으로는 기생충을 제압하긴커녕 약간의 타격도 줄 수 없을 겁니다. 그 전에 아이요트님의 신체가 전부 녹아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아이요트는 내 침착한 목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위압감.
“···상황이 꽤 긴박했던 걸로 아는데 혼자서 해결했던 겁니까?”
“제 마음은 그러고 싶었습니다만, 형편없는 연기 탓에 탈락 위기에 처했고─배용만 이사에게 독충 헌터라는 사실을 들켜버렸습니다. 그래서 기생충의 도움도 받게 되었고요.”
“···도움을 받았다고요? 물론 신백야씨의 몸에 살고 있는 기생충과 어느정도 상생관계라는 건 예측하고 있었습니다만.”
“손쉽게 자아가 되돌아왔냐고 묻고 싶은 거죠?”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 자아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아이요트님보다 한발 빠르게 공격했을 겁니다.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요.”
내가 뒤를 돌아보며 아이요트와 시선을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잠깐동안 미간을 구기던 아이요트가 이내 테이저건을 거뒀다. 의심은 거두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정정해드리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기생충은 제 명령에 따르는 개일 뿐입니다? 상생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단어군요.”
“···?”
아이요트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에 잠깐동안 의아해했다. 더 이상, 별다른 공격자세는 취하지 않았지만.
“오디션 직전엔 많이 긴장한 듯 보이더니 오디션 이후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네요? 방법이 어떻든 무사히 1차를 마무리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2차 오디션에서 이노블 대표를 만날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계획대로라면 그래야 하는데 좀 힘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노블 대표가 저희 두 사람이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1차 오디션에서 만났던 배용만씨가 사라지지 않았나요? 백야씨.”
“···아.”
아이요트는 마치 방금 전 상황을 직관한 것처럼 꿰뚫고 있었다.
“예상해보건데, 시간을 되돌린 건 배용만의 능력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배용만이 그 정도 레벨에 도달할 수준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였고요.”
“그럼 제3자의 인물이 격투에 끼어들고 있었다는 겁니까?”
“뭐··· 그 상황도 배제할 순 없지만 블레와 엔터테인먼트 자체에 어떤 특수한 장치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페투라 일원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한 장치랄까요···?”
우두머리를 상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각의 페투라 일원을 상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네요.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말이죠.”
“신백야씨, 저쪽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
아이요트가 가리킨 곳.
다름아닌 안무 연습실이었다.
“저긴 왜요?”
“일전에 블레와 엔터가 아이돌 사업에 손을 뻗었다고 말한 적 있었잖아요?”
“그렇습니다만.”
“이 안무 연습실 안에 이번에 데뷔하게 될 아이돌 ‘프리스카’가 있는 거 같더군요.”
“···그래서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이요트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진한 독의 냄새요.”
“···큭.”
아이요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체가 반응했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들어내고 있던 기생충이었다.
『독 페로몬.』
“독 페로몬···?”
나는 어떻게든 놈에게 지지 않으려 정신을 집중했다.
“신백야씨.”
“···”
“이미 이노블 대표의 장치가 작동한 이상 우리의 정체가 탄로나는 건 시간 문제일 겁니다. 아니, 이미 배용만에 의해서 이 곳 어딘가 CCTV로 저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러고보니.
애초에 오디션을 보기로 했던 이유가 이노블 대표의 눈을 피해서 몰래 블레와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습생이 되기 위해서였는데···
“상황이 꼬여버린 이상 이노블 대표가 굳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집중 경계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하기엔 주변이 너무 평온하네요.”
“지금 당장은 그래 보일 겁니다. 저희로서 빠른 시간 안에 이노블 대표의 레이더망을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약간 정신은 없어지겠지만 저를 따라오면 됩니다.”
“···무슨 생각을?!”
쾅!
아이요트는 말이 끝나자마자 연습실 문을 우악스럽게 발로 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진입했다.
연습실 내부.
키가 크고 늘씬한 4명의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앳된 얼굴이었다.
아이요트는 자비없이 그대로 4명의 여자아이들에게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너무 순식간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꺄아!
-꺅!
외마디 비명소리와 동시에 다시 공간안에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어둠.”
주변의 색은 반전된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꼭 사슬에 몸이라도 묶인 것처럼 포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건물 전체에 결계가 깔려있었군요. 이제부터 공간 조작을 시작합니다. 저희는 각각 여자분들의 몸에 진입합니다.”
진입한다고?
빙의를 한다고 말하는 건가?
아이요트.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우리가 블레와 엔터의 연습생이 되는 것이 실패한 이상 직접 소속 연예인의 몸에 빙의하여 빠르게 이노블 대표에게 접근하려던 것이다.
“공간조작을 사용하면 일순간 결계의 포박에서 벗아날 겁니다. 빙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24시간을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루안에 이노블 대표에게 도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신백야씨.”
“자, 잠깐만요! 아이요트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여자몸에 들어가는 겁니까?”
“헌터 요원은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임무를 해결하는 게 저희 요원의 임무이니까요.”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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