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36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30 12:10
조회
10
추천
1
글자
12쪽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DUMMY

선아는 생각했다.


현대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의 딸 은영이와 선아 자신이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다. 문방구 아주머니의 딸 은영이가 당한 괴롭힘은 선아가 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아 역시 학교 친구들이 아무 이유없이 선아를 계단에서 밀거나, 선아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 칸 안에서 볼일을 보는 자신에게 걸레빤 물을 뿌리거나, 일부러 자전거로 선아를 치고 가는 등의 일들이 있었다.


단지 만만하니까, 혹은 나보다 못 살고 가난하니까, 아니 때로는 못생기고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또 때로는 남들과 다른 신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심한 아토피라던가 여드름 같은 것들로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면서 왕따를 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선아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 나 였어도... 나 같았어도... 그냥 그렇게 다 죽여버리고 싶었겠다.... 원한이 가득 찬 악귀(惡鬼)가 안 된게 이상할 정도네. 나라도 전부다 죽여버리고 싶을 것만 같아!


선아는 어째야 할까 고민스러워 그렇게 멍하니 책상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수업 교시는 체육 시간이었다.


반장이 교실 한가운데 칠판에 ‘체육’ 이라고 써 놓고는 분필을 들어 재빨리 선아의 얼굴을 향해 분필을 집어던졌다.


‘탁’하고 분필이 선아의 이마에 맞았고, ‘나이스 샷’이라는 외침과 함께 키득거리면서 체육복을 입은 반친구들이 쌩 하니 운동장으로 뛰쳐 나가는 것이 보였다.


선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의 이마에 묻은 하얀 분필가루를 팔소매로 닦은 뒤, 주섬주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운동장으로 향했다.


연복여중과 연복여고가 함께 마주보고 서있는 구조였기에 운동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유해서 쓰고 있었다.


사실 거진 3분의 2는 연복여고 선배들이 운동장을 사용했고, 3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좁은 구역만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렇게 조그마한 벤치 앞 운동장에 모여 피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이 끝났다.


순간 체육시간을 가장한 자유시간을 만끽하던 학생들은 환희에 차 꺄르르 웃어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자유시간은 학생들에게 있어 꿀과 같은 시간이었다.


몇몇은 무리를 지어 피구를 하느라 바빴지만 걔 중에 몇몇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운동장 구석에 깔린 벤치에 앉아 희희덕 거리면서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선아 역시 어울릴 친구도 없었을 뿐더러 정신이 산만하고 복잡해 그들 사이를 피해 먼 발치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다. .


그런 선아의 눈에 순간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구석에 외진 벤치에 앉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선아는 그 이상한 형체를 보고야 만 것이다.


자신의 엄마처럼 신을 모시는 무당도 아니었거니와 신가물이 아닌 선아 자신은 영안(靈眼)이 트이지 않아 귀신을 보거나 귀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 만큼은 참으로 이상했다.


선아가 자신의 두 눈동자를 손바닥으로 비비며, 피구 공놀이를 하는 학생들 가운데에 서 있는 이상한 형체를 자세히 쳐다보자 이내 믿을 수 없는 모습이 펼쳐졌다.


모두가 체육복으로 환복해 피구를 하는 무리 가운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하나가 가만히 서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서 있었다.


선아가 고개를 내밀고 유심히 바라보니 그녀는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거리도 꽤 먼 편이었고, 그녀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아가 인상을 쓰면서 무슨 소리인가 집중하자 이윽고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꽤 먼 거리였기에 이상한 여학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선아의 귓가에 들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기운과 냄새가 느껴지는 것을 보아 그 여학생은 귀신이 분명했다.


귀신이 확실한 것 같은 그 여자 아이의 입가에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선아의 귓가에 또렷하게 박혀 들려 오고 있었다.


- 얘는 아니고.... 어디보자... 이 년도 아닌데...?


선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귀신 여학생이 말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 얘는 애매한데... 흠... 얘는 아니고... 어디 있지? 흠... 어디 있지?


문득 선아가 그녀를 바라보다 말고, 몸을 흠칫 굳혔다.


선아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그 여자귀신이 윤선이와 민서, 그리고 주은이의 손톱을 빼앗아간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의 딸 은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흠칫 놀라 몸을 '바르르' 떠는 선아를 향해 갑자기 고개를 치켜 올린 그녀가 선아를 향해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귀신도 선아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선아를 바라보고 입모양으로 무언가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러 소리내지 않는 것인지 입술만 움직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선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 모양을 따라하고 있었다.


- 참.견.하.지.마.


분명 은영이는 ‘참견하지마’라고 또박또박 한 글자씩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돌려 벤치 앞에 앉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윤선이와 민서를 바라보고는 쏜살처럼 내달려 순식간에 그녀들 앞에 다가왔다.


윤선이와 민서의 시무룩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 여학생 귀신은 미친 듯이 '깔깔'대고 웃어댔다.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여학생 귀신이 소리쳤다.


- 이 년들이네! 이 년들 맞네! 이것 들이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드디어 원하는 것들을 손에 거머쥐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여학생 귀신의 입꼬리는 그녀의 귓가에 닿을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순식간에 흉측한 얼굴로 바뀐 그녀의 온몸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팔과 다리는 이상하리만큼 비틀려 있었다.


온몸의 관절이 다 꺾인 것처럼 좌우로 몸을 꺾은 은영이의 영혼은 민서와 윤선이를 바라보고는 신이 난 듯 좌우로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 죽여야지! 죽여야 해! 키킥! 이제 일주일! 일주일! 죽일거야! 일주일 있다 죽일거야!


선아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민서와 윤선이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뭐야? 왜? 갑자기 왜 지랄인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선아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는 민서였지만 선아는 윤선이와 민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나한테... 나한테 그 저주 다 넘겨. 내가 대신 죽을게! 얘네들 대신에 내가 죽을테니까 그 원한 나한테 넘겨!”


선아는 악귀가 되어버린 은영이의 검은 두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순간 은영이의 검은 눈동자가 씨뻘겋게 변하더니 선아를 향해 무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 이 년 봐라? 너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년들 내가 대신해서 족쳐주겠다는게 왜 니가 방해해?


은영의 입에서 표독스런 말이 울려퍼지자 선아 역시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애달파하시는데 너는 왜 악귀가 돼서 그래? 엄마... 너희 엄마가 저기 학교 앞에 있는 거 몰라? 정말 몰라?”


선아가 현대문방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은영이의 영혼이 멈칫 하고는 순식간에 원래대로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벤치에 앉아 있던 윤선이와 민서는 자신들의 앞에 서서 허공을 향해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고 있는 선아를 보고 놀라 이미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저 멀리 줄행랑을 친 지 오래였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은영이의 영혼이 슬픈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현대문방구 쪽을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 보았다.


악귀가 되어 자신을 죽인 친구들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자신의 딸 은영이를 위해 무언가 하려했던 엄마가 자신 때문에 무당으로서의 삶이 끝나 자신을 그리워하며 문방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영이는 알고 있을까 싶어 선아는 지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 저릿저릿했다.


“내가... 내가! 내가 해결해줄게! 그러니까 그 저주... 너희 원한! 전부 다 나한테 넘겨. 싸그리 넘겨!”


순간 선아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을 들은 은영이가 몸을 흠칫 굳히며 말했다.


- 너 진짜 죽고 싶냐?! 진짜 죽일 거야!


표독스럽게 말하며 매섭게 선아를 노려보던 악귀가 되어버린 은영이의 영혼은 한치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어보이는 선아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은영이의 영혼이 사라져 버렸다.


텅 빈 벤치 앞에서 선아는 조용히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




녹이 잔뜩 슨 철문은 당장이라도 초록색 페인트 껍데기 칠이 벗겨질 것만 같았다.


작은 마당 한가운데 깨진 기와를 뒤집어 놓았고, 그 사이로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아기자기한 그 구옥 주택 사이에서는 카랑카랑한 어린 여자아이의 고함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선아는 시뻘개진 얼굴로 씩씩대며 눈앞에 서있는 엄마를 향해 소리질렀다.


“내가! 내가!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선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는 선아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아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팔을 덜덜 떨며 큰 목소리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나 다 알아! 엄마가 나 버리고 간 거! 나 다 알아!”


순간 선아 엄마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선아는 그 옛날 일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 어렸을 때! 나 유치원도 들어가기 한참 전에 어린 나이였을 때! 엄마가 나 고아원에 버리고 갔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 다 기억해! 다 기억한다고!”


얼굴이 씨뻘개진 채 씩씩대던 선아는 이제 울기 직전이었다. 선아의 벌개진 눈동자는 핏줄이 곤두선 채, 굵은 눈물이 가득 서려 있었다.


“니...니가 그걸 어떻게.... 어떻게 기억해... 어린 나이였는데.... 어떻게....”


손을 벌벌 떨며 입을 가리고 선아에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사시나무 떨리 듯이 떨리고 있었다.


“나 다 알아.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엄마가 나 무당 팔자 안 이어받게 하려고 나 버린 거 다 알아! 나 찾으려고 나 버린 날 그날 새벽! 다시 고아원 찾아온 것도 다 알아! 버릴거면 애초에 찾질 말지 나 뭐하러 다시 찾으려고 했는데? 어린 애 가지고 장난쳐?”


선아의 바락바락 악을 쓰다시피 내지르는 목소리는 갈라지기 직전이었다.


선아의 외침에 엄마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선아는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 엄마 손에 이끌려 수원의 화서동에 있는 고아원에 버려졌다.


팔달산 밑에 있던 낡고 초로한 그 고아원의 운동장에 서서 울고 있던 선아는 지금도 그 서늘하고 추웠던 온도와 공기를 잊지 못했다.


“그 날... 그 날 밤에 나 데리러 온게, 종식 아재였어!”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이 엄마는 가슴을 부여잡고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내리치며 허공에 울부짖었다.


“아니다! 이제 종식 아재라고 하지 말아야하나? 내가 내 아버지라고 불러야 해?”


'아버지'라는 선아의 말에 흠칫 놀란 엄마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선아의 얼굴을 올려 보았다.


작가의말

[email protecte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들의 벽사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우리들의 벽사일기는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24.03.23 9 0 -
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5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3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2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1 1 11쪽
»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11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2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10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5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3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1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4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5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5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10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5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5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8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7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7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20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9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