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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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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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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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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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DUMMY

오늘따라 학교 계단이 높고 멀게만 느껴지는 선아였다.


숨을 헐떡이며 처음에야 기세좋게 계단을 한꺼번에 두 세개씩 올랐지만 어느새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선아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져가고 있었다.


계단을 힘겹게 올라 어느새 2층에 접어서자 선아는 '흘끗' 자신의 발 아랫쪽을 쳐다 보았다.


역시나 무서운 기세로 마치 커다란 거미처럼 네 발로 기어오는 흉측한 몰골의 은영이 아니 악귀가 보였다.


- 아이고... 어쩌나.. 잡히면 진짜 죽겠네!!


또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선아가 잽싸게 계단을 '우당탕' 오르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타닥타닥’ 하고 누군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 썅! 경비 아저씨나 당직 선생님한테 걸린 건가! 이런 씨... 지금 어른들 오면 골치 아픈데! 저 사람들까지 위험해지는데! 어떻게 하지?


고민에 빠진 선아가 이를 악물고는 재빨리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저멀리서 선아를 부르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아야! 문방구 아줌마야! 선아야! 어디있어? 어디 있는 거야?”


선아의 귓가에 꽂힌 목소리는 아침상을 차려준 현대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순간 선아가 멈칫했고, 선아를 미친 듯이 추격하던 악귀가 되어버린 은영이도 멈칫했다.


“선아야!”


다시한번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은영이의 몸이 심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순간 선아가 소리쳤다.


“아줌마! 저 지금 2층이요! 옥상 올라가야 한대요!”


선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은영이가 다시 커다란 구멍이 되어버린 두 눈에서 검붉은 피를 콸콸 쏟아내며 계단을 네 발로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에이! 썅!”


짜증섞인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선아 역시 미친듯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또 다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아줌마! 울 엄마가 무슨 칼을 줬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이거면 악귀 무찌를 수 있다고 했어요!”


선아의 외침에 현대문방구 아주머니가 중앙 건물 1층 계단 초입에서 소리쳤다.


“그거 신칼인가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을텐데 결국 신한테 그걸 부탁했다고? 너희 어머님도 참 대단하시다! 힘든 일인데... 어쨌든 선아야! 그걸로 은영이가 숨어있는 곳을 찔러야 해! 근데 그게 어디지? 우리 은영이 지금 어디 있니?”


망설이는 듯한 아주머니의 말에 선아가 재빨리 마음 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 것은 선아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엄마를 찾기 위해 간절히 소망하고 빌었던 그 때처럼 선아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은영이가 어디에 숨어있을까. 그녀의 영혼 본체가 숨어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는 선아였다.


그러면서 선아는 자신의 피에 종식 아재 그러니까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 내심 감사했다.


잘은 모르지만 종식 아재가 들려준 말에 따르면 종식 아재 가문은 대대로 유명한 지관(地官)의 집안이라고 했다.


흔히 지관이라 함은 ‘묫자리’나 ‘택지’를 정할 때,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풍수지리가의 역할을 말했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흔히 지관을 ‘감여가(堪輿家)’ 또는 ‘풍수가(風水家)’라고 부르기도 했다. 쉽게 말해 ‘감여가’라고 하는 것은 감은 ‘하늘’, 여는 ‘땅’이라는 뜻으로 하늘과 땅의 섭리를 깨달아 지기(地氣)를 읽을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실 선아는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아 혈(穴:정기가 모인 곳)을 느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선아는 막연하게 자신이 무당인 엄마의 피와 지관의 집안에서 이어진 혈통을 물려받아 이런 능력이 있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선아의 머리 한 가운데 어떤 이미지가 서서히 영글며 마음 속에 맺혀 보이기 시작했다.


- 거기구나! 거기였어!


선아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이 계단 아랫쪽을 바라보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줌마! 지금 은영이 제 뒤에 있는데 은영이를 찌르면 안 돼요! 찔러야 하는 건 연꽃 그림이에요! 한가운데를 찔러야 해요!”


“그걸 너가 어떻게 아니?”


이상하다는 듯한 아주머니의 놀란 외침에 선아가 소리쳤다.


“아! 지금 급해서 설명할 시간 없어요! 빨리요! 아줌마! 근데 제가 지금 못 가는데 어떻게 하죠?”


선아가 숨을 헐떡이면서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 소리치자 아주머니가 외쳤다.


“내 쪽으로 칼을 던져라! 내가 할게! 아줌마가 할게!”


선아는 순간 망설였다.


은장도가 자칫 잘못해서 부러지거나 깨지면 어쩌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은장도로 연꽃 그림을 찔렀을 때, 악귀가 된 은영이가 천도되지 않고 소멸된다면 악귀 은영이는 엄마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아는 지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선아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문방구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걱정마! 괜찮아! 다 괜찮아!”


선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재빨리 자신의 품 안에 넣어둔 은장도를 꺼내어 계단 밑으로 힘차게 집어던졌다.


“지금 던질게요! 꼭 잡으세요!”


선아의 외침에 순간 거미처럼 팔다리가 길어진 은영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선아가 던진 은장도를 무섭게 노려 보았다.


순간 은영이의 팔이 엄청나게 길어지면서 떨어지는 은장도를 잡아 채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자 은장도는 은영이의 기다랗고 시커먼 손에 닿는가 싶더니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내리꽂혀 현대문방구 주인 아주머니의 손바닥 위에 살포시 놓여졌다.


그것은 마치 의지를 가진 새가 날아올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뿐히 착지해 내려앉는 듯 했다.


칼이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다니 선아와 아주머니 모두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벌릴 정도였다.


- 뭐야? 저 은장도 살아있는 거야?


선아가 속으로 생각하며 흠칫 놀라 아래를 바라보자 어느 새 고개를 돌린 은영이가 서글픈 표정으로 1층 계단 입구에 서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 엄마... 엄마... 그러지마... 그러지마요!


악귀가 되어버린 은영이의 영혼이 엄마를 향해 슬픈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모시는 신의 명령을 어겨 신이 떠나가버린 채,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버린 엄마의 귀에 은영이의 목소리가 닿을 리가 없었다.


선아는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은영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현대문방구 아주머니에게 전달해 주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은 짧았다. 선아가 큰 목소리로 계단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외쳤다.


“아줌마! 은영이가 울어요! 그러지말래요!”


선아의 외침에 이제 막 연꽃 그림 앞에 선 은영의 엄마가 흠칫 몸을 굳히고는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계단 쪽을 쳐다 보았다.


어느 새 거미처럼 거꾸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 1층 연꽃 그림 앞에 서 있는 은영이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 엄마의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현대문방구 아주머니는 그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은영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이나 내뱉으며 문방구 아주머니는 아니 은영이의 엄마는 순식간에 몸을 돌려 은장도를 꺼내 들고는 연꽃 그림 한가운데 칼날을 박아넣었다.


칼을 꽂은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흐르는 자신의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녹이 슬만큼 낡디 낡은 은장도의 칼날은 달빛을 받아서인지 서슬퍼렇게 날카로워 보였다.


그 예리한 칼날이 연꽃 그림 한가운데 박히자 순간 엄청난 기운이 그림에서부터 뿜어져나오더니 은영이의 입에서 ‘캬악’하고 시커먼 연기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새 숨을 돌린 선아가 1층에 내려와 그 광경을 묵묵히 쳐다 보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이 엄마 다 미안해! 다음 생에... 다음 생에도 엄마 딸로 태어나면! 그 땐... 그 땐... 엄마가 더 잘할게! 엄마가 더 잘해줄게! 미안해, 은영아! 그러니까 다음 생에도 꼭 이 엄마 딸로 태어나주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어느샌가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며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아주머니를 측은히 쳐다보던 선아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은영이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새 조각조각 하얀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지는 은영이의 모습은 팔다리가 비틀리고 꺾인 채, 검붉은 피를 가득 뿜어내는 거미 악귀(惡鬼)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작은 여중생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고개를 바닥에 숙인 채,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소중하게 쓰다듬던 은영이는 선아를 향해 빙긋 웃어보이고는 손가락을 펴 연꽃그림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렇게 은영이의 영혼은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져갔다.


선아는 울먹이며 천천히 연꽃 그림 한가운데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그림 한가운데 박혀있는 은장도를 꺼내들었다.


은장도가 빠지면서 찢어진 연꽃 그림 사이로 어떤 낡은 사진 같은 것이 한장 보였다.


- 여기 있었구나!


그랬다. 분명 아버지와 찍은 단 한 장 남은 가족 사진 때문에 죽게 된 은영이의 영혼이 숨어있던 곳은 바로 그 사진이었다.


선아는 조심스럽게 연꽃 그림 속에 숨겨진 은영이의 가족 사진을 꺼내어 현대문방구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는 선아가 건넨 사진을 받아들고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고는 바닥에 쓰러져 미친듯이 울기 시작했다.


선아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은장도 역시 구슬프게 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진짜 살아있나보네... 은장도... 너도 우는거야? 너무 슬퍼서?


선아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은장도가 ‘우웅’거리면서 진동을 보내듯이 떨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선아는 그런 은장도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자신도 모르게 강아지를 쓰다듬듯이 은장도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선아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갑자기 엄청난 피곤이 몰려와 그대로 학교 복도 바닥에 누워 잠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온몸에 남아있는 모든 기운이 '쑤욱'하고 빠져나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만큼 기운이 없었다.


긴장이 풀리면 모든 근육이 축 늘어진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던 선아는 '아이고'소리를 내며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아가 누워있는 중앙계단 앞 복도 바닥은 서늘하다 못해 차가웠고, 공기는 매캐할 정도로 차갑고도 시렸다.


선아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그렇게 잠시 바닥에 누워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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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5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3 1 11쪽
»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2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1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10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2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10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4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3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4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5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5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10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5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4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8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7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7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20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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