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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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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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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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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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화

DUMMY

많은 사람이 모이니 그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나뉘어 일종의 그룹이 생겨났다.


먼저 서연이와 미즈키 같은 휴식파.

이들은 정말 몸과 정신의 온전한 휴식에만 완전히 집중하며 수면과 식사, 장비의 점검 이외엔 거의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론 형과 유스케 같은 사교파.

그들은 휴식은 그냥 적당히만 하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이곳에서의 인연을 다지는 데 열중했다.


휴식파에 속한 나는 모처럼의 휴식 시간에 저렇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이해 가지 않았지만 사교파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은 가만히 있으면 괜히 우울하기만 하고 사람과 어울려야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하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그럼⋯ 결국은 헌터관리국 총본부 차원에서 이 모든 일을 총괄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너무 흔해서 이제 음모론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림자 정부에 놀아난 셈이죠.”


그리고 그런 휴식파와 사교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나는 적당히 혼자 쉬다가 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는 그룹에 꼽사리를 꼈다.

미국의 S급 헌터⋯는 아니고 S급 각성자인데 특이하게 헌터도, 헌터관리국도 아닌 FBI에서 일한 엠마의 이야기였다.


“헌터관리국 총본부는 언제부터인지 제대로 알 수도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전 세계의 정재계를 장악해 갔어요. 제가 알기로 한국도 국회가 붕괴하고 내전 수준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아요.”


엠마가 하는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상적인 국가의 기능이 작동하는 중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소환 조건이 까다로운 탑을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 동시에 소환한 비결이 무엇인가, 딱 그것이었다.


세계 각국에 위치한 헌터관리국은 국가별로 거의 독립적인 조직의 성향을 띠기는 하지만 어쨌든 모든 헌터관리국을 총망라하는 총본부가 존재하는데 그 총본부가 사실상 몬스터의 하수인이나 다름없는 조직이었고 그들의 주도하에 아주 장기적이고 치밀한 작전을 물밑에서 수행해 왔다는 것이다.


뭐, 한국만 봐도 나라의 근간이라고 할 수도 있는 국회를 한 방에 무력화시키고 군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 침식을 해둔 상태였는데 미국은 총본부가 위치한 나라인 만큼 또 세계 최고강대국인 만큼 훨씬 치밀하고 집중적인 작전을 벌여 그 침식도가 더 심각했던 모양이다.


“후~ 당장 이 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 이후의 일이 더 무섭군요. 제가 나갔을 때쯤 누군가가 알아서 다 정리를 해뒀으면 참 좋겠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겠죠.”


엠마는 물론 이 탑에 계속 있기는 싫지만 정작 나가려고 해도 무섭다는 듯 머리를 쥐어 싸매고 말했다.

이 일만 해결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여기서 나가면 뭘 하셔야 하길래 그렇게 걱정하시는 거죠?”

“많은 것들,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할 거예요, 다만 변화라는 게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나쁜 방향으로의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요.”

“예를 들자면 어떤⋯?”

“음~ 우선 지금까지 그 어떤 경제위기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대공황이죠. 혹시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시나요?”

“아⋯니요?”


엠마의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됐을 때의 세상이 상상이 가냐는 질문은 진짜 아무 지식도 없어서 모르겠다고 한 내 대답과는 의도가 좀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이어지는 엠마의 설명에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는 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연방정부든 지방정부든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행정력과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어요. ‘미국’ 이라는 나라가 갑자기 증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괴, 굉장히 심각한가 보네요.”


대한민국 정부도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줄은 알고 있고 단순히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나마 한국은 나라가 증발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맞아요, 한마디로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어요. 뭐, 미국인이 이런 말을 하니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약 100년 정도는 전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갔잖아요?”

“네, 그렇죠.”


그건 그냥 사실이니까.


“그런데 지금 그 황제의 자리가 완전히 비었어요, 그럼⋯ 다른 나라들은 뭘 하고 싶어 할까요?”

“서로⋯ 미국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하겠죠?”

“어떤 방법으로?”

“전쟁⋯이 제일 쉽겠죠?”

“그렇게 되면?” “⋯3차대전이죠.”


엠마는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듯 나를 정답으로 인도했다.

이야, 그나저나 정말 엠마의 말대로 된다면 나는 우리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남의 집 불구경한 건가, 이제 미국의 상황이 심각한 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아, 여기 있었네!”

“어? 무슨 일이야?”

“바쁘지 않으면 잠시 와 볼래?”


한참 엠마의 이야기에 빠져있는데 불쑥 찾아온 아린이가 나를 불렀다.

딱히 바쁜 일은 없는 나는 순순히 뒤를 따랐고 아린이는 나를 광장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러고 보니 휴식파와 사교파 이외에 하나의 소모임이 더 있었다.

아린이, 미즈키, 그리고 요한나로 이루어진 훈련파.


이들은 쉬지도 놀지도, 않고 여기서마저 자신의 힘과 실력을 갈고닦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눈떠, 훈련 시키려고 부른 거 아니야.”


이 악물고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결국 올 게 왔구나, 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자 아린이가 그렇게 안심시켰다.


“어? 아니라고?”

“응, 그냥 재미 삼아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재미 삼아라, 여기가 뭘 재미 삼아 해볼 집단은 아니긴 한데⋯ 나는 일단 나를 왜 불렀는지 이유부터 물었다.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내 검을 한번 쥐어보면 돼.”

“네?”


그러자 요한나가 자신의 낡은 검을 뽑더니 내게 칼자루를 내밀었다.


“으음⋯ 네⋯.”


괜히 검을 쥐었다가 그대로 대련이 시작되는 거 아닌가, 조금 두려웠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지,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 시키는 대로 검을 쥐어보았다.


그리고⋯.


“음, 됐어.”


정말로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요한나는 아무 말도, 행동도 없이 다시 도로 자신의 검을 되받아갔다.


“⋯훗.”

“하하⋯.”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미즈키는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기분 나쁜 비소를 날리고 있었고 아린이는 억지로 지은 미소로 애써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아니, 왜, 뭔데!!! 다짜고짜 사람 불러놓고 영문도 모를 짓을 시키고 왜 자기들끼리만 뭔가의 감상을 느끼는데?! 이거 뭐 신종 괴롭힘이야?!”


나는 방금 그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뭐뭐, 진정하고, 정말 별건 아닌데 그⋯ 준호는 검이랑 체질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내가 흥분해 목청을 높이며 당장 해명을 요구하자 요한나가 미안한 표정으로 위로하듯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예? 체질⋯이요?”


특별한 알레르기나 지병 없고, 힘 좋고 유연하고 순발력 빠르고 대담하고, 대체 내가 검과 체질이 안 맞을 부분이 뭐가 있지?


“너도 전에 한 번 봤겠지만 내 검은 자격⋯ 체질이 맞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거든. 그런데 그⋯ 준호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아⋯.

거기까지 듣자 요한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요한나는 내가 최대한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자신의 모국어까지 중얼거리며 완곡한 한국어 표현을 찾았지만.


“요한나 님의 심판의 검은 네게 개미 오줌만큼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네놈은 검에 대한 재능도, 잠재력도, 자격도 없다는 말씀이시다.”


미즈키가 앞뒤 잴 것도 없이 그냥 시원~하게 팩트를 박아주었다.


“알아듣기 편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야.”

“천만의 말씀.”


내가 미즈키를 아니꼽게 바라보며 말하자 미즈키는 쌤통이라는 듯 씩 웃으며 받아쳤다.

쓰읍⋯ 하은이도 그렇고 분명 다 잘 대해주는 것 같은데 왜 주변에 은근히 적이 있는 느낌이지?


“아니, 그래서 미즈키 넌 반응했냐?”


내가 검에 재능이 없다는 건 둘째치고 그냥 미즈키한테 놀림받는 이 상황 자체가 싫었던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막 던졌다.

“너는 바보인가? 당연히 반응했으니 내가 웃고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러자 미즈키는 더욱 짙은 비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흠⋯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군.


평생 검의 길을 걸으며 검에 모든 것을 바친 미즈키가 검에 재능도 자격도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면 진작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겠지.


“하아⋯ 이렇게 딱 재능없음 판정을 받으니까 뭔가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데⋯ 그래서 이건 갑자기 왜 해보신 거예요?”


미즈키처럼 검에 큰 뜻은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나는 괜히 사람 불러다 망신만 준 이 상황을 따지듯 물었다.


“아, 그⋯ 그게⋯ 실은 내가 요한나 씨에게 너에 대해 상담을 했었거든.”

“나에 대한 상담?” “응, 어떻게 하면 네가 검기를 쓸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검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괜한 헛수고 하기 전에 심판의 검으로 내 싹수를 확인해보자는 거였던 건가.

이제 대충 이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럼 저는 결국 검기를 못 쓰는 사람이라는 건가요.”


노력과 성실함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범인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 노력과 성실함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천재의 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검기는⋯ 극소수의 타고 난 검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천재의 영역이었다.


“⋯괜한 말로 네게 어려운 고민을 남기진 않을게. 맞아.”


요한나는 괜한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확실하게 내 한계를 못 박아주었다.

⋯아.

아프다.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지만 요한나의 입에서 나온 ‘맞아.’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카운터 펀치에 맞은 듯 머리가 핑 울렸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검을 완전히 놓지는 마, 검술은 검기를 쓰는 게 다가 아니니까⋯!”

“네⋯ 그래야죠⋯.”


당연히 어린 애 투정 부리듯 어차피 검기도 못 쓰는 거 검 따위 안 쓸 거야! 하면서 내려놓을 생각은 없었다.

똑같이 검기는 쓰지 못하더라도 아린이가 알려준, 그 정확하게 베어내는 감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천지 차이라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


“흐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역시 상심의 충격이 바로 가시지는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주제 없는 고민에 빠진 채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 그⋯ 주, 준호야, 미안해, 내가 괜한 짓을 해서⋯ 너라면 반응이 있을 줄 알았어⋯.”

“어? 아, 아니야. 오히려 신경 써 줘서 고맙지. 검기 써보겠다고 죽어라 노력하다가 나중에서야 애초에 검기를 못 쓰는 사람이었다고 아는 것보다는 이게 충격이 덜하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잖아.”

“그, 그래도⋯.”

“애초에 나는 사기적인 전용특성을 타고났잖아? 거기다 검술까지 타고나기를 바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지금 내가 이러는 건⋯ 그냥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 쉬고 올게.”

“아⋯ 응⋯.”


내가 쉬겠다고 하자 아린이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고 나는 내 자리에 누워 침낭에 몸을 파묻었다.


“⋯⋯못 봤겠지?”


그리고 뜨뜻해진 눈시울을 침낭에 비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의 흔적을 지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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