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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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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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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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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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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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화. 질투

DUMMY

“워후!”


녹호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 안에 담긴 의미란, 쉽사리 짐작할 만했다.

그런데도 서주는 수줍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시키신 대로 골랐어요. 잘 어울리나요?”

“그럼. 아주 보기 좋아.”

“다행이에요.”


언젠가는 부끄러워했을 차림.

하지만 도플갱어가 즐거워하자 기뻐하기만 했다.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여기라고 확인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은 일이다.


오직 인영만이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이내 남자들 눈빛을 확인했다.

유난히도 주변엔 선글라스가 빛났다.

햇빛을 가리는지 아니면 시선을 숨기는지, 외부인은 알 겨를이 없었다.


“이모, 진짜···.”


볼멘소리가 나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가디건을 벗었다.

얼른 서주를 칭칭 감듯이 둘러주었다.

흉악한 거대함은 잠시 세상으로부터 모습을 감췄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조심해야지!”


서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과보호를 싫어했었지.

물론, 지금은 그렇게 예민한 수준은 아닐 터였다.


“나 애 아냐.”

“그래도.”


하지만 반항심이 들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트라우마나 관성이라고 부를 만한 일일지도 몰랐다.


“녹호 씨···.”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부탁할 구멍이 있었다.

도플갱어는 이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 들어갈 건데, 넌 어떻게 할래?”


이내 인영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바람을 무시하는 걸까?

서주가 잠시 실망감을 내비쳤다.


“나? 아, 싫어. 나오면 끈적해지고 사람이랑 부딪히고. 짜증 나, 그런 거.”

“그럼 서주랑 가야겠네. 괜찮지?”

“네? 아, 네.”


녹호는 그렇게 말한 후, 가디건을 잡아서 주욱 내렸다.

동시에 가려졌던 방탕함이 덜렁 튀어나왔다.

뚜렷한 흔들림에, 잠시 주변에서 힐끗댈 정도다.


“야, 이 개···!”

“가디건은 물에 젖으면 늘어지잖아? 잘못하면 큰 사고 날 텐데, 벗어두는 편이 좋지 않겠어?”

“아니, 좀 젖어도!”


인영이 인상을 쓰다가 곧 입을 닫았다.

그 말대로 다시 입히기엔 불안했다.

하긴, 지금은 부드러워도 젖으면 밧줄처럼 변할 테지.

어쩌면 비키니를 쓸어내릴지도 모른다.


“···아예 멀리 가. 다른 사람들 안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라고. 저기, 저 끝.”


시선이 닿지 않는 바다.

위험하든 말든 그쪽에서 놀라는 소리다.

녹호도 별말 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서주를 데려간다.

딱히 놀 만한 무언가도 없는데도.


“녹호 씨,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발이 안 닿아?”

“네.”

“그럼 잡아주면 되지.”


도플갱어는 굵직한 팔로 부드러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사람이 보이지 않을 더 먼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건 언뜻 밀회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니, 누군가의 눈에만 유독 그렇게 비치는 모양이다.


“지금 저것들 뭐 하는 짓이야?”


인영이 나지막이 중얼댔다.

눈에는 사람이라도 죽일 듯 살의가 서렸다.

두 발은 홀린 듯이 얇은 바닷물을 차박차박 걸어 나갔다.

볼록한 골반에서 파도가 느껴질 무렵, 두 사람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안 온다더니?”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듣는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만했다.

정말 그걸 몰라서 묻는다니.


“······.”


인영이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멈췄다.

그랬다.

무엇이 문제일까.


분명 합의를 끝냈다.

이미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그냥 이대로 두자고.

심지어 이렇게 먼 곳으로 가라고 한 사람도 자신이지.

따지고 들어가면, 문제는 없었다.


“더 들어와. 거기선 같이 놀기 힘들잖아?”


더군다나 바다에 들어왔다.

이미 핫팬츠에 소금기가 스미는 중이다.

아마 나오면 찝찝함에 몸서리를 쳐야 할 테지.

여기서 더 들어가면 가디건까지 젖을 터였다.


“···놀자고 온 거 아냐. 일 얘기, 갑자기 떠올라서.”

“그래? 그럼 몇 걸음 더 들어갈게. 누가 들으면 안 되잖아?”


녹호는 턱 밑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내려갔다.

가뜩이나 키가 커서, 상당히 깊을 수밖에 없었다.

서주는 까치발을 들어도 서지 못할 정도다.

당연하게도, 매달릴 곳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질문이 귓가에 박혔다.

하지만 인영은 두 사람의 모습에 시선을 박아넣었다.

겁 많던 이모가 자기 남자를 꽉 끌어안고 있다.

오른팔은 거대한 흉통을, 왼팔은 울대가 선명한 목덜미를 휘감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따로 있겠지.

바로, 저 흉악한 방탕함 말이다.

지금은 녹호의 단단한 가슴팍과 지퍼처럼 맞물려 있다.

둘 다 흉통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커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 말해야지. 너 리조트, 이쪽으로 결정한 거야?”

“대충은.”

“서비스도 바다랑 관련되면 좋고?”

“그래. 읏차, 잘 아네.”


도플갱어는 서주를 다시 한 번 끌어올렸다.

바다가 크게 출렁였다.

지퍼처럼 맞물렸던 가슴팍도 떨어졌다.


하지만 자세는 더욱 기묘해졌다.

흉악한 방탕함은 그 사이로 팔뚝을 붙들었다.

굵직한 근육이 가려질 정도라니, 쉽지 않은 묘기다.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씨, 그게 어디 쉬워? 지자체랑 합의해야 할 수 있는 거지.”

“걱정하지 마. 오히려 그쪽에서 몸이 달아오를 테니까.”

“짜증 나는 소리 하지 마. 세상에 확신할 일이 어디 있어?”


멀리서 봐서 기분 나쁜 광경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 더욱 유해하다.

절로 짜증이 일만큼.


“만나봤잖아? 그러니까 알지.”

“그건 그런데···.”

“또 할 말은? 겨우 그것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

“아니지. 아니야, 그건.”


인영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시선은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 물 아래를 향한다.


“왜 하필 리조트를 여기에···. 아, 천청해 때문이지. 그 망할 인간.”

“부산 서구. 아마 백혈병 관련해서 표를 챙기려는 거겠지.”

“괜찮네. 많이들 뽑겠어.”


대충 대답하다가 미묘하게 표정을 찡그렸다.

무언가 발견한 듯했다.


“그건 모르지. 환자는 소수거든. 요란해 보여도 큰 힘은 없어. 어디까지나 인원수에 비해서, 그래도 결코 주류는 되지 않을 만큼이지.”

“언론에서 주목할 텐데?”

“대중이 아니니까 관심 가지는 거야.”

“대중이지. 그래도.”

“그건 주목받기 전까지고. 특징 짓고 구분하기 시작하면 소수야.”


수면 밑에 보이는 다리.

서주는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발끝으로 굵직한 허벅지를 휘감고 있었다.


“···그래, 너 잘났어.”


인영이 몸을 돌렸다.

감정을 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서주는 얼른 입을 열었다.


“많이 화난 것 같은데요?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달래줘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기에 걱정이 되는 듯했다.


“글쎄? 통쾌한 기분이 들진 않아?”

“네? 왜요?”

“인영이는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거든. 계속 뒷바라지하는데, 배신당한 기분이어서.”

“진짜요?”

“어. 내 편으로 꼬드길 때, 그렇게 이간질하고 부채질했지.”


이제는 꽤 지나버린 과거다.

예현과 서주를 괴롭히게 해준다며 회유했지.

인영은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설령 끝나고 나서 못내 찝찝해하긴 했지만.


“아···. 인영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서주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만했다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화 안 나?”

“음, 싱숭생숭해요. 약간 서운한 기분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네. 가족인데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그냥 떨떠름하고 말죠.”


최근에 집에서 쫓겨났던 아이가 있었지.

경찰서까지 갔지만, 자기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

혹여 자신의 부모가 처벌이라도 받을까 걱정한 탓이다.

설령 버림받더라도 가족이기에 원망하지 못했다.


“저번에 말씀하셨잖아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가끔 섭섭할 때야 있다지만, 어떻게 조카를 싫어하겠어요?”


고귀한 격언이지만, 그래서 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린다.

어떻게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지.

하지만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를 잘 실천하고 있다.

다름 아닌 가족에게는 말이다.


“뭐, 그럴 수 있지. 감정이 그렇다는데, 내가 어쩌겠어?”

“그럼 이제 인영이한테···.”

“아니, 혼자 한 번 두자고.”

“네?”


녹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었다.

사자에게 아이의 영혼이 들어가면 이럴까?

과격한 장난기가 사납게 피어올랐다.


“걔는 인내심 키우는 훈련 좀 해야 해. 선이 어딘지는 아는데, 참지를 못해.”


도플갱어처럼 안색까지 조절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병적인 편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놀자고. 깊어서 그런지, 딱히 보는 눈도 없잖아?”

“여러모로 필요해서요?”


녹호가 입술을 핥았다.

이내 남은 손 하나로 서주의 허벅지를 받쳐 올렸다.

이렇게까지 들자, 둘 사이 높낮이는 역전이 되다시피 했다.

사나운 얼굴 앞에는 부드러운 살결이 가득했다.


“글쎄?”


도플갱어는 방탕함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


녹호와 서주가 숙소로 들어왔다.


“그럼 저는 제 방에서 쉴게요.”

“그래.”


남녀에 따라 방을 나눠둔 모양이다.

도플갱어가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방을 착각한 거 같은데?”


인영이 노트북을 빠르게 두드린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듯했다.

어쩌면 녹호가 아까 서주를 택했기에 이러는 걸지도 몰랐다.


“아, 일 때문에.”

“갑자기 업무가 많네? 그것도 내가 들어야 하는 종류로.”

“원래는 다 알아야 하거든? 뭐, 이번엔 그것 때문도 아니지만.”


녹호는 곧 사진첩을 찾았다.

이내 안쪽을 바라보며 육포를 씹었다.

밖에서 체력을 소모했으니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인영 역시도 아는 활용법이다.


“천청해. 답이 보이는 것 같아서.”


도플갱어가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신경 쓸 만한 일이다.


“결국, 아들 덕을 보려는 거잖아? 그럼 그걸로 물어뜯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은 나도 해봤어. 근데 약간 애매해.”

“왜?”

“너무 괴롭히면 동정표가 생길지도 모르거든. 선을 지켜야 해.”


물론, 그 정도는 이미 고려하는 중이다.

사람은 언더도그마를 응원한다.

그런 만큼 폭로전은 여론을 살피며 벌여야 한다.

잘못했다간 홍보만 해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한 번에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데, 너무 사리는 거 아냐?”

“글쎄. 그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후원을 방해하면 되잖아.”


무슨 이야길까.

녹호가 귀를 기울였다.


“정치도 돈이 있어야 하지, 자금줄 마르면 답 없어.”


그랬다.

인영은 경영자다.

그렇기에 도플갱어가 전체를 조율할 때, 한 사람을 회사처럼 볼 수 있었다.


“돈이 없으면 재도전을 못 한다?”

“어. 천청해는 부자라서 정치에 입문할 수 있던 게 아니잖아.”


녹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운 눈매는 어느덧 가늘어졌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고, 허술했던 부분을 촘촘히 하는 중이겠지.

잠시 집중이 이어질 무렵, 뒤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작가의말

캐릭터 특정상 가끔 이런 장면도 나와줘야 하고,,,,


흠, 그렇습니다.

이건 지루한 내용 전개와 정리를 최대한 흥미롭게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의도가 있습니다.

결코 저에게 음습한 판타지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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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1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0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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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8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 139화. 질투 24.08.17 10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1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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