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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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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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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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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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물약 제조

DUMMY

금요일 저녁.

나는 없는 이야기를 쥐어짜 내 핑계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고3 생활 시작 전 여행을 다녀온다는 핑계였다.


어머니를 적당히 속여 넘긴 나는 먹을걸 적당히 사서 폐가로 왔다. 냉장고가 없기에 밖에 대충 쌓아두고 바로 작업대를 향했다.


“휴, 시작이다. 정신 차리고 해 보자.”


주문을 외우듯. 뺨을 두드리고 준비를 시작했다.


손바닥의 땀을 슥슥 닦아내고, 라텍스 장갑을 끼었다. 임시로 산 싸구려 방독면을 쓰고, 재료들을 꺼내 개량한 후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뿔초잎 20g을 비커에 넣고 막대로 저으며 75도까지 온도를 서서히 올렸다.


‘천천히 올려야 한다는 거지.’


머릿속으로 수백 번 되새긴 제작법을 다시 떠올리며 온도계의 눈금에 집중했다. 5분에 걸쳐 원하는 온도에 다다랐을 때 신기하게도 잎이 녹아 흐물 해지며 액체로 바뀌었다.

불을 끄고, 트롤의 피 0.05ml를 넣은 다음 온도를 55도로 낮추었다.


‘첫 번째는 성공이고. 두 번째가 중요하지.’


끈적한 트롤의 피가 뿔초잎 용액에 합쳐지는 것을 보고, 길쭉한 플라스크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감압초 10g과 플라민 15g을 용액에 넣고, 색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며 온도를 다시 90도까지 천천히 올렸다.

녹색에서 푸른색, 보라색으로 변하다 마지막에 분홍색으로 색이 변하는 순간 불을 끄고 감압여과장치로 생성물을 천천히 걸러주었다.


‘후우···’


방독면 안을 파고드는 끔찍한 냄새와 흐르는 땀을 애써 무시하며 여과지를 꺼내 건조기에 올려두고 천막밖으로 뛰쳐나왔다.


“우웩···우욱···”


먹은게 별로 없어 헛구역질만 계속했다. 가져온 생수 한통을 뜯어 입과 코를 헹구며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코를 통과해 뇌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끔찍한 악취가 코 끝에 잔향을 남겨 한참을 고생하고서야 간신히 진정했다.


두 시간 뒤.

건조된 여과지 위로 얇은 결정체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군.’


결정체들을 피린 20ml에 담가 녹이고, 살리실산 1g을 첨가하자 스멀스멀 색이 변하며 완성되었다.

만들어진 용액은 아주 찐득한 새빨간 피를 닮았다.


‘그냥 마시는 게 좋겠지만 맛이 좀 그렇다니까···’


불순물을 첨가하는 것보단 이대로 마시는 게 가장 효율이 좋다.

하지만 끔찍한 맛과 향이 나기에 보통은 중화시키는 음료를 섞고는 했다.

나는 감미료가 적절히 가미된 음료에 섞어 100ml짜리 병에 옮겨 담았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 이게 300만 원이란 거지?”


병을 흔들자 찰랑이는 붉은 액체가 눈을 가득 채운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붉은 액체의 찰랑임에 홀린 듯이 빠져들어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웃음이 나온다. 한 달 뼈 빠지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고작 3시간 작업으로 얻어냈다.


“이번엔 용량을 늘려볼까.”


첫 시도라 실패할 수 있어 일부러 딱 하나 분량으로 작업했지만, 능숙해진다면 15개 분량정도야 한 번에 작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다음날까지 조금씩 양을 늘려나가며 총 15개의 회복물약을 만들고, 새로운 체화특성 하나를 얻어냈다.


[Lv : 1]

[신체능력 : 42]

[정신능력 : 45.5]

[특수능력 : 흡수정신(Absorbent mind)]

[체화특성 : 위기 모면, 약물 제조]

[마정 : 없음]

*현재 [저주: 거북이걸음]이 적용 중.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 대폭 증가.


3일 뒤.

나는 저녁 무렵 사복을 입고 다시 [호원정비]를 찾았다.


“어이쿠. 젊은 선생님이 금방 다시 오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아, 네. 안녕하세요.”


하루 수백 명이 들리는 가게일 텐데.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내게 뭘 판매했는지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걸 팔려고 가져왔습니다.”


“오, 벌써 만들어보신 건가요? 이거 참. 제가 제작세트를 제대로 된 분한테 판매한 모양입니다.”


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찰랑이는 붉은 병을 느긋하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치료율과 독성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든 사장은 내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의 팔뚝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치익.


핏물이 솟구치는 상처에 내가 만든 회복물약을 몇 방울 흘리자 하얀 김이 올라오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흐음···”


핏물을 닦아내고 팔뚝을 면밀히 관찰한 사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어이구. 제가 장인을 몰라봤습니다. 굉장하군요. 이거 몇 개나 가지고 계신가요?”


“···5개입니다.”


“좋습니다. 제가 다 사지요. 개당 3백만 원 어떠십니까?”


나는 굳이 흥정하지 않고 가격을 받아들였다. 이또한 공략집에 나온 내용.


‘호원정비의 사장은 첫 번째 부르는 가격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3백만 원이면 본래 생각하고 있던 가격이기도 했다.


“재료가 또 필요하시겠지요?”


사장이 주섬주섬 꺼내는 재료들을 보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 여기선 뿔초잎과 트롤의 피만 샀을 텐데.

내가 요전날 이 상가에서 샀던 재료 전부가 꺼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재료를 나눠 사셨던데 한 번에 사시죠. 제가 저렴하게 맞춰 드리겠습니다.”


씨익 웃는 사장의 미소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차피 이 상가단지는 자기 손안에 있다는 건가.

내가 너무 물렀다. 아예 다른 곳에서 나눠 샀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겠지.


“그러죠.”


나는 의연한 척 재료를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며 가게를 나섰다.


‘집에 바로 가면 안 되겠어.’


혹시 미행이 있을까 싶어 집에 돌아오는 길을 최대한 꼬았다.

이리저리 서울 전역을 돌며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을 타거나 내리고,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기도 하며 어렵게 집을 향했다.


“후우···젠장.”


한밤중에나 겨우 도착한 집. 자꾸 한숨이 나온다.

머릿속에 공략집이 있건만. 그걸 지킬 힘이 없으니 멀리 돌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한다면, 마음이 급해진다. 천천히 안전하게 여유를 부리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당분간은 낮은 수율을 유지하자.’


일단은 5개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겨우 그 정도 재료로 15개를 만들어냈다고 하면 제작법을 뜯어내기 위해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려야겠어.’


강해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마물의 정수를 얻으며 조합하거나, 장비나 새로운 기술을 얻거나.

실제로 단련하여 강해지는 방법도 존재한다. 유명한 무도관이나 마법사 교육기관들은 등록이 어려워 대기번호를 받아야 할판이니.

하지만 결국은 레벨업이다. 단단한 기둥을 세우듯 레벨을 쌓아놓아야 한다.


“엄마 저 학교 끝나고 도서관 들렸다 와요!”


매일 하교 후. 밤늦은 시간까지 물약을 만들었다.

성능이 괜찮은 방독면을 하나 사고부터는 속도가 더 붙었다.

노하우도 점점 생겨났다.

그렇게 3주.


“많이도 모았네.”


탁탁. 물건을 꺼내 정렬했다.

총 5천만 원. 그리고 회복물약 47개.


3주간 시간을 두고 천천히 호원정비에 판매하는 회복물약의 수율을 조금씩 높였다.

처음엔 만드는 제품의 30% 정도만 팔다가 지금은 50%까지 올려서 만든 제품의 절반을 팔았다.


호사장은 실력이 늘었다고 좋아할 뿐 다른 반응은 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심정이군.’


내 배를 가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정리하며 나는 인터넷을 뒤적였다.


*경험치 20만에 1천만 원으로 모십니다. 국내에서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레벨업을 제공합니다.

*경험치 10만당 8백만원. 직접 타격 X. 원거리에서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시면 됩니다.

*레벨업 패키지. 기초수료반 승급자들만 가능. 레벨 10까지······


인터넷에 범람하는 레벨업 대행업자들의 광고들.

확실히 저렙구간이 경험치에 비해 비용이 비싸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레벨업 분배가 훨씬 어려웠기 때문이다.


“레벨 10까지는 올려야 뭐라도 할 텐데···”


레벨 10이면 마물의 정수를 두 개까지 흡수할 수 있다.

그 정도가 된다면 그래도 대형 길드의 게이트 공략에 따라갈만했다. 물론 허드렛일을 하는 보조인력이겠지만.


중요한 건 안전. 그리고 보험이다.

게이트 내부는 워낙 위험하기에 무조건 안전보험을 들어주는 곳으로 해야 한다.

안전보험에 들어둔 대행업체는 무조건 게이트 탐험 일정 전부를 촬영해야 했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는데 영상이 없다면, 바로 범죄행위로 기소되기에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모든 대행업체는 사고율을 공시하게 되어있기에 무사고를 내세우는 업체들을 찾았다.

이 정도면 될법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무슨 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곳이 게이트였다.


“일단 문의만 넣어두자.”


레벨업 빠르게 크고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시장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레벨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능력치 상승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쨌든 레벨을 올리면 조금의 능력치라도 올라가니 레벨업을 해두는 건 무조건 이득이었다. 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레벨 25 이하면 사교모임에 참여가 불가능하다라···’


요즘 재벌들 커트라인이라고 떠도는 이야기다.

돈 많은 놈들의 세계는 확실히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꽤 적절한 커트라인으로 보인다.

안전하게 레벨 25까지 올리려면 최소로 잡아도 2,3백억은 들었으니 말이다.

재벌들의 입구컷 같은 거려나.


띠링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전화벨이 울려왔다.

연락처 교환 후 한 번도 연락해 본 적 없는 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호원정비 호사장


화면에 뜬 문구를 확인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꽃샘추위가 기승이네요.”


“안녕하세요. 3일 만이네요.”


3일 전에 회복물약을 가지고 방문했는데, 뭐 때문에 전화를 한 거지?


“네. 다름 아니고 선생님이 레벨업 대행업체를 쓰시려는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저랑 연결된 업체가 몇 개 있어서요.”


“···아, 네.”


“놀라셨죠? 하하하. 저도 문의글 들어온 거 보고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제공해 주시는 제품이 워낙 퀄리티가 높아 인기가 좋습니다. 건강히 제품을 만들어 주셔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이 레벨업 대행 쪽이 양아치들이 워낙 많아서 말입니다.”


“··· 그렇죠.”


호사장은 뱀 같은 혓바닥을 꿈틀거리며 자신이 하는 대행업체를 소개했다.

이 정도로 뻔뻔하게 나오다니.

은근하게 머리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하.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짜증이 확 솟구쳤지만 한숨 한 번으로 털어내고, 재료와 포션들을 정리했다.


“일단 정리하고 가자.”


그렇게 정리 후 폐가를 나오는 길.

나는 지금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해야만 했다.


“여~태오. 오랜만이야.”


“어? 어, 형. 그러게. 오랜만이야.”


박상식이였다.


“요즘 많이 바쁜 거야?


“아, 이제 고3이잖아. 야자에 도서관에 정신없지.”


“그렇겠네.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여기 밤이면 귀신 나온다던데."


심장이 쿵쾅거린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평소처럼 말하려 하지만 어색한 기분이 든다.

이래서 되도록 피하려고 했건만.


“야, 뭐 나쁜 짓 했냐? 이놈 이상하네 이거.”


웃으며 툭툭 건드리는 손길을 바라보다 탁 옆으로 쳐냈다.


“어디 손을 대. 공부 못하는 병 옮을라. 나 고3이라고.”


그럴듯했을까. 평소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대한 머리를 쥐어짰다.

잘 떠오르지 않는 10년 전의 나를 상상하며 말이다.


“하하하하. 이 자식이.”


내 머리를 헝클어트린 박상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넌 공부해라. 나랑 다르게 똑똑하니까. 대학만 잘 나와서 좋은 직장 구해보자고. 요즘 ‘대길드’들은 사무직 초봉이 억 단위라더라.”


“거기 들어가려면 따야 하는 자격증이 몇 개인줄을 알아? ‘게이트 관리사 1급’에 ‘마물 도감 2급’ 이상, 거기다가 ‘마도 장비사’ 2급을 따야 해. 그것만 해도 5~6년은 그냥 날아갈걸.”


“너라면 1~2년이면 충분해. 내가 보증하마. 고시생 대표로서 확신한다.”


난 어깨에 놓인 박상식의 팔을 밀어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 가야 돼. 헛소리 말고 가서 공부나 해. 유나 누나 또 운다.”


“에이. 유나가 왜 울어. 유나는 돈 잘 번다~”


등뒤로 들려오는 박상식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평소처럼 차분히 걸으려 했는데, 걷는 걸 의식하니 오히려 몸이 뚝딱이는 느낌이었다.


김태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상식의 표정이 점점 차갑게 내려앉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김태오가 떠난 폐가를 살피던 박상식은 곧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김태오의 반대편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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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게이트 탐험(1) 24.02.23 139 2 14쪽
24 각성(3) 24.02.22 145 1 15쪽
23 각성(2) 24.02.21 14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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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일상(4) 24.02.16 136 4 14쪽
19 일상(3) 24.02.15 141 4 14쪽
18 일상(2) 24.02.14 144 4 15쪽
17 일상(1) 24.02.13 154 3 13쪽
16 빙하 리치 24.02.12 155 3 14쪽
15 서브탱커 24.02.09 165 4 12쪽
14 의심 24.02.08 168 4 13쪽
13 5등급 게이트 탐험 24.02.07 175 4 14쪽
12 탐험의 이유 24.02.06 177 3 13쪽
11 화랑 탐험대 24.02.05 182 3 15쪽
10 납치? 24.02.02 188 3 13쪽
9 살아남다 24.02.01 202 3 14쪽
8 1등급 마정을 얻다 24.01.31 203 3 13쪽
7 황금 고블린의 보물창고 24.01.30 203 4 13쪽
6 고블린의 숲 24.01.29 197 4 14쪽
» 물약 제조 24.01.26 210 4 14쪽
4 F등급 인생 24.01.25 223 4 14쪽
3 기초수료반 24.01.24 240 4 16쪽
2 첫 침식 +2 24.01.23 288 3 15쪽
1 돌아가다 +2 24.01.22 381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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