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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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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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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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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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일상(3)

DUMMY

“이상하지?”


“···네. 이상하네요.”


“귀찮지만 그래도 잠깐이니까. 이것 말고는 딱히 귀찮게 하는 건 없을 거야.”


“시발. 맨날 감시당하는 기분인데 귀찮은 게 없기는!”


쿵! 차태백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이미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맥주 한잔에 취한 건가.


‘생긴 건 백정인데 술을 못 마시네.’


“시발! 말은 진짜 똑바로 해야지. 휴가는 니미. 어딜 가든 누가 지켜보는 것 같은데 뭔 휴가야. 해외는 나가지도 못하고. 젠장!”


“···우리 외국 못 나가나요?”


설마. 해외 출국이 안된다고?


“아, 가능해. 다 보고해야 하긴 하지만. 사실 신경 안 쓰면 정말 아무렇지 않거든. 태백형이 좀 날카로워서 그래.”


“내가 뭘 날카로워? 나만 그런 거야? 다른 사람도 다 그렇잖아? 저번에 지리산 산장에서 하루 자고 왔더니 경고하더만. 통신 반경인가 뭔가. 그거 벗어나면 보고해야 한다고. 시발. 내가 해외를 나갔어?!”


“그만.”


“맞아요. 너무 소리가 커요. 다들 듣는 것 같아요.”


이주원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호기심보단 두려움에 가까운 눈빛들.

각성자인가 봐라고 속삭이는 소리도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하··· 술 땡기네.’


돈도 벌고, 하고 싶은 거 다하며 살라고 했더니만.

이건 뭐, 사육장이 좀 넓은 가축이나 다를 바 없는 건가.


침묵이 이어지던 술자리는 금세 끝이 났다.


“이만 가지.”


이독 팀장이 먼저 일어서고, 이어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다음 탐험날 봐요.”


“시발. 간다.”


“갈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갈게요!”


다들 인사를 건네며 멀어졌다.

나도 슬슬 가보려고 몸을 돌린 순간.


“훌륭한 젊은이. 내일 바쁘지 않다면 마탑에 놀러 오시게나.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아, 네. 그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어수마저 그렇게 떠난 뒤, 나도 밤길을 걸어 집을 향했다.

술이 땡겼지만 아직 미성년자신분이라 참아야만 하는 게 답답했다.


‘생각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군.’


상영관이 있던 곳은 종로 5가쪽이었다.

광화문까지 그리 멀지 않아 집까지 슬슬 걸어갈만했다.


‘그건 진짜였을까.’


내가 어릴 적 여러 차례 보았던 초기 탐험가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들.

그걸 보고 꿈을 키웠을 각성가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 이야기가 다 거짓이었다는 건가. 아니면 오늘 본 이야기가 다 거짓인 걸까.


점점 더 모르겠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중요한 건 게이트국이 초기 탐험가들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렵다. 머릿속 공략집에 나온 게이트 관리국에 대한 정보들엔 없는 내용이다.

다만 후에 게이트국이 폐쇄하게 되는 원인이 외부인들이나 변절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반 각성자들과의 관계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것도 게이트국 폐쇄에 큰 몫을 했었다.


“쉬운 게 없네.”


머릿속 공략집.

분명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이런 단체나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약한 편이었다.


게이트 내부와 관련된 정보들. 예컨대 마물에 대한 정보나 게이트의 종류별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 그리고 마정과 장비, 재료나 부산물에 대한 정보는 없 는걸 찾는 게 힘든 수준이지만.


게이트 밖에서의 이런 인과관계나 내밀한 속사정들은 정보가 부실했다.

결국 이건 직접 부딫히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였을 텐데.’


언젠가 찾아가려던 스카이피플의 본사가 있는 곳이 이 근처였다.

나는 회사 외관이나 구경할 겸 방향을 잡고 길을 걸었다.

청계천 인근에 있는 5층짜리 빌딩. 스카이피플의 로고가 박힌 건물은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안돼! 그만해! 제발···”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


소리가 들려왔다. 두터운 방음벽의 틈새로 한줄기 새어 나온듯한 아주 미약한 소리였다.

일반인이라면 들을 수 없는. 오로지 향상된 내 육체능력덕에 간신히 귓가에 들려온 작은 외침.


“······하아.”


나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다.

위잉. 부드럽게 자동문이 열리고, 스카이 피플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화려하게 꾸며진 1층은 손님들이 대기표를 뽑고, 접수를 하는 창구가 여럿 있었다.


“아,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영업이 끝났습니다.”


나는 접수대에 홀로 앉아 있는 직원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탁.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아챘다.


“어이, 오늘 영업 끝이라고.”


어깨에 올라온 손을 잡아 옆으로 꺾고는 허벅지를 가볍게 발로 차 주었다.


퍽. 쿵. 공중에서 두 바퀴 정도 회전한 직원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손을 꺾는 순간 직원이 각성자임을 깨달았기에 사정을 두지는 않았다.

정신을 잃은 채 작게 신음하는 직원을 그대로 두고 2층을 향했다.


‘여긴 아니고.’


나는 소리가 더 가까워지는 곳을 향해 한 층씩 확인하며 올라갔다.


‘꼭대기였군.’


5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스카이 피플의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너 뭐야?”


“뭐야. 어떻게 올라왔어?”


퍽. 퍽. 쿵. 쿵.

나는 말하기도 귀찮아 대답 없이 주먹을 한방씩 꽂아 넣었다.

힘조절하는 게 쉽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때린 것 같다.


“저긴 것 같은데.”


나는 복도 끝에 있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표이사 이진영]

문 앞에 서자 고풍스러운 재질로 된 문과 그 위로 걸린 명패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훨씬 넓은 방안에 무기를 든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응? 뭐야?”


“저건 어떤 새끼야? 어떻게 온 거야?”


도끼. 일본도. 마체테. 창과 롱소드. 쇠사슬에 톱까지. 보기만 해도 살벌한 무기들을 든 남자들 열댓 명이 뒤돌아 나를 향했다.

그 살벌한 시선 속에서 내 눈은 오직 무릎 꿇려진 왼손잡이와 이지아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거참··· 누구세요?”


밝은 베이지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이 내게 물어왔다.

저게 대표 놈인가?


“···이지아. 괜찮아?”


“흐윽···흑··· 김태오?”


“후우··· 기다려봐.”


이지아를 두고 왼손잡이를 협박한 건가? 대충 상황은 그려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이지아와 피투성이가 된 왼손잡이를 보니 답답함과 분노가 동시에 차오른다.

대체 뭘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결국 여기까지 끌려와 이지아까지 위험하게 만든 왼손잡이에 대한 답답함과 이 상황을 초래한 대표에 대한 분노가 속을 들끓게 만들었다.


“어이, 아저씨. 당신 뭐 하는 새끼냐고요.”


나는 베이지 정장의 말을 무시하며 성큼성큼 꿇려진 모녀에게 다가갔다.


“이 새끼가!”


깡! 깡!


“···뭐 하냐?”


남성은 일본도를 내려친 팔뚝에서 금속과 부딪힌 소리가 나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자식 각성자야! 안에 갑옷을 입고 있어.”


“뭔 갑옷이야. 불편하게.”


왼쪽에서 길쭉한 창날이 찔러왔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게 마력이 담긴 모양이다. 오른편에선 검과 도끼가, 정면에선 기다란 대검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대로 맞아줄 수도 있지만···


슥. 스윽. 단 두 걸음만으로 모든 무기를 피해냈다.


카악투라의 정수를 얻고 나서 잘 쓰진 않았다만.

내 손가락엔 무려 유일급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리고 그 반지는 이런 저 레벨 각성자들의 허접한 공격 따윈 모두 무시할 수 있는 회피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쾅! 쾅! 나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족족 주먹으로 날려버렸다.

그래도 레벨 20대의 각성자들일 텐데 한방에 죽진 않겠지.


퍽! 복부를 가격 당한 남성이 날아가 벽에 부딪혀 큰 균열을 만들었고,


퍼억! 무릎을 걷어 차인 남성은 기이하게 꺾인 다리로 공중을 빙글거리다 바닥을 나뒹굴었다.


퍽! 퍽! 콰직! 한 방에 한놈. 속 시원하게 작살내면서 베이지 정장에게 다가갔다.


“이··· 이게 무슨···”


위기 따윈 없었다. 가로막는 모든 걸 날려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난장판이 된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부서진 벽은 없는 걸 보니 일반적인 벽은 아닌 모양이다. 꿈틀거리는 남성들을 보니 죽은 사람도 없는 모양이고.


나는 베이지 정장을 내버려 두고 이지아와 김민아의 포박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벨트에서 회복물약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태오! 흐윽··· 이게 다 뭐야···”


나는 두 모녀를 두고 베이지 정장에게 다가갔다.


“야, 너 자꾸 뭐 하는 거야?”


“···뭐? 뭘 한다는···”


콰직!


“으아아아악!”


건방지게 책상 위에 올려진 손을 내리쳐 짓뭉개줬다.

콰직. 계속 앉아있는 게 꼴 보기 싫어 양 무릎도 부숴주었다.


“으윽! 으아아악!”


퍽! 시끄럽게 울부짖는 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술에 발등을 선물해 주었다.


“읍··· 커억···!”


부러진 이를 뭉텅이로 뱉어내는 베이지 정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가 이진영이냐?”


“흐읍···”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을 보며 다시 물었다.


“왜 자꾸 저 둘을 건드리는 거야. 뭐가 목적인 거야?”


“···흐···흐읍.”


입이 박살이 나서 언어가 제대로 구사되질 않는다.

너무 흥분했나. 말도 못 하게 패버렸네.


“그건 제가 설명할게요.”


김민아가 주춤거리며 이지아의 부축을 받아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진영 대표는 황금 고블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해요. 게이트 관리국보다 먼저 그걸 찾고 싶어 하죠.”


“그래봐야 이런 정도의 놈들로 뭘 할 수는 없을 텐데요.”


“맞아요. 그 정보를 팔 생각인가 봐요. 누구에게 팔려는 건진 알지 못하지만···”


덜컹. 그때 닫힌 대표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깔끔한 정장에 흰머리가 가득한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노년의 남성. 임한수 국장이었다.


“이거참. 일이 공교롭게 됐습니다.”


그는 난장판이 된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턴 게이트국에서 맡겠습니다. 1층에 치료 마법사가 있으니 치료받으시지요.”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 임한수 국장은 곧 입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김태오씨는 저희 게이트국 소속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일을 벌이시면 곤란합니다. 다음부턴 먼저 저희에게 연락을 주세요.”


“···네.”


“그럼 가보세요.”


냉랭한 축객령이었다. 여기 있어봐야 더 이야기를 듣긴 글렀다.

이지아와 김민아를 데리고 방을 나서자 게이트국 직원인 이기후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도에 서있는 게 보였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방음이 잘 되는 방이긴 하지만. 이 많은 인원이 이렇게 가까이까지 오는 동안 눈치채지 못했다니. 이들 모두 상위 각성자라는 이야기였다.


“이거 받으시죠.”


이기후가 건넨 건 게이트 관리국 소속임을 증명하는 조그만 출입증이었다.


“게이트국 출입부터 국내 모든 정부기관에서 사용 가능한 출입증입니다.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땐 경찰에 보이셔도 좋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기후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고는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고, 나머지는 5층의 다른 방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모녀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 치료를 받았다.


“태오야. 너무 고마워. 정말··· 네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괜찮아. 우연이야. 여기 대표랑은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우리 엄마를 두 번이나 구해줬는데.”


“모르고 있겠지만 너희 어머니도 날 한번 구해줬어. 빚진 걸 것 뿐이야.”


왜인지 감사인사를 듣는 불편했다. 너무 성질대로 일을 저질러서일까. 찝찝함이 계속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고마워. 이 은혜는 어떻게든 갚을 거야. 정말로.”


“···그래. 오늘은 어머니랑 푹 쉬어. 다음에 이야기하자.”


왼손잡이와도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고는 나는 다시 어두컴컴해진 청계천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청계천의 물줄기를 내려다보며 게이트 관리국 출입증에 새겨진 내 증명사진을 살펴보았다.


“···언제 찍은 거야?”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사진 속엔 작게 미소 짓는 내 얼굴이 들어있었다.

뭔가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집에 가자.”


차태백의 말이 맞았다. 게이트국에서 항상 날 감시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현장에 오진 못했겠지.


왜인지 게이트 관리국에 더 깊숙이 끌려들어 간 느낌이 들었다. 깊숙한 수렁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그 섬뜩한 감각에 몸이 잘게 떨려왔다.


어떻게든 새 정수를 빨리 얻어야겠다.

그것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한 번은 살아날 구멍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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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두 번째 게이트 탐험(1) 24.02.23 139 2 14쪽
24 각성(3) 24.02.22 145 1 15쪽
23 각성(2) 24.02.21 142 2 14쪽
22 각성(1) 24.02.20 148 2 15쪽
21 일상(5) 24.02.19 136 3 14쪽
20 일상(4) 24.02.16 136 4 14쪽
» 일상(3) 24.02.15 141 4 14쪽
18 일상(2) 24.02.14 144 4 15쪽
17 일상(1) 24.02.13 154 3 13쪽
16 빙하 리치 24.02.12 155 3 14쪽
15 서브탱커 24.02.09 165 4 12쪽
14 의심 24.02.08 168 4 13쪽
13 5등급 게이트 탐험 24.02.07 175 4 14쪽
12 탐험의 이유 24.02.06 177 3 13쪽
11 화랑 탐험대 24.02.05 182 3 15쪽
10 납치? 24.02.02 188 3 13쪽
9 살아남다 24.02.01 202 3 14쪽
8 1등급 마정을 얻다 24.01.31 203 3 13쪽
7 황금 고블린의 보물창고 24.01.30 203 4 13쪽
6 고블린의 숲 24.01.29 197 4 14쪽
5 물약 제조 24.01.26 209 4 14쪽
4 F등급 인생 24.01.25 223 4 14쪽
3 기초수료반 24.01.24 240 4 16쪽
2 첫 침식 +2 24.01.23 288 3 15쪽
1 돌아가다 +2 24.01.22 381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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