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과 검정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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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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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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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 - 지구적응기 03

DUMMY


아빠와 함께 식료품점에 갔다 올때도,


혼자 하이라인을 따라서 산책을 할때도,


워싱턴스퀘어 공원에 가서 앞으로 다니게 될 College of Arts 건물을 올려다 볼때도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한 단어가 있었다.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는거지?


만화의 주인공 처럼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녀석을 발견하면


“너 내 친구가 되어라!!”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수업에서 마주치며 인사 30번 하기 미션을 달성하면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친구라는 것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달 기지의 학교를 다니면서 동년배의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은 꽤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워낙 특별 대우(?)를 받다보니 그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나라는 사람의 사회화가 덜 된 것이 가장 큰 이유 였을 것이다.


머리도 좋은편이고 신체능력도 일반인들과 달라서 안그래도 무언가를 함께 하기 힘든데 나는 그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나 혼자 궁금한건 다 질문해가면서 수업 시간을 독차지 했고, 체육시간에도 모든 종류의 게임을 망치기만 했다.







보통의 학교였다면 나를 격리 시키거나 배제 시키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인류]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의 목적 자체가 나와 같은 존재를 만들고 육성 하는 것 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내가 우선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였지만 그들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일이 당연했다.


그 아이들도 착한 아이들이어서 대놓고 질투나 시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와서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진짜 한대 쥐어박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유년기 시절을 보내서 친구하나 만들지 못했다.


친구를 만드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생소하고 낯선 일이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스케이드 보드를 타는 아이들도 있고, 한쪽에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같이 춤 연습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개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도 있고 연인들도 있다.


그렇게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놀고 있다.


걸어가다 눈이 마주치면 원래 알던 사람들인지 처음 본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뭐라 뭐라 수다를 떨기도 한다.








저 사람들에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저렇게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나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건가..


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입맛이 씁쓸하다.







그렇게 지구에서의 생활 첫째날은 별거 없었다.


지구에서의 첫째날 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었지만 한두번 와본것도 아니고 그냥 소소한 일상이 이어질 뿐이다.


아빠가 오늘 저녁으로 파스타를 준비해 두셨다.


소스랑 토핑으로 올릴 미트볼은 다 되어 있었고


내가 집에 들어가니 손 씻고 오라고 하시면서 면을 삶기 시작하셨다.


식탁에 같이 앉아서 담아주시는 파스타 위에 강판으로 치즈를 갈아서 올렸다.


그러면서 머릿속 가득한 나의 인생 최대 질문을 아빠에게 털어놨다.




“아빠..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 아빠는 친구 많아??”




“어.. .. ..”




한참을 생각해 보는 걸 보니 아빠도 친구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내가 아는 아빠의 친구분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는 대학 캠퍼스에 만났다고 했다.


엄마가 몇년 후배 이기는 한데 함께 어울리다 연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학창시절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 무리가 있는데,


내가 지구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아빠도 그때 지구에 내려오시고 대부분 달에 있기 때문에) 집으로 친구분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한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때면 혼자 오시는 분도 있고 파트너(부부도 있고 연인도 있고)랑 함께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한 열명 정도의 손님이 오셨는데 그중에 누가 원래 친구이고 누가 그 친구분의 파트너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서 정확히는 모른다.


손님이 오시면 나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리고 내 방으로 올라가 있었으니까.


하여간 아빠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히 안다.


나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다.







그리고 전화통화나 엄마랑 대화 중에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서울에도 친구가 있다고 했고,


연구소에 박사님들 중에서 몇명 하고도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았다.


그냥 동료 이상으로 자주 어울리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아직 내 첫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어서 질문 폭탄을 또 던졌다.



“그럼 아빠랑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야? 어디서 만났어?”



“음.. 그건 대학때 만난 너희 엄마지~”



“아.. 안돼.. 그건.. 엄마 빼고.”



“음.. 그럼 굳이 하나 꼽자면 링겔만 그 친구가 현재 베프지.


아빠도 친구를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해 본적은 없긴한데, 지금 니 질문 받고 한번 돌이켜 보니 특별한 방법 같은건 잘 모르겠다.”



“.. .. ..”



“대학교때 친구들도 그렇고 일하면서 만난 친구들도 그렇고 꼭 친구가 되야지!! 하고 친구가 된건 아니고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같이 생활하고,


함께 시간을 쌓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랑 성향이 맞는 사람하고는 노력하지 않았도 더 가까워지고,


성향이 안맞는 사람하고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했던 것 같아.


인위적으로 이렇게 행동해서 이런 관계를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결국 친구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시간이 만들어 주는 거 아닐까? 싶은데..”



“.. .. ..”




아빠의 대답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그 말을 곱씹어보면 결국 나는 그 어떤일도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이 없었던 건가?


그래서 나와 성향이 맞는지 아닌지 테스트 해볼 기회 조차 없었던 건가?


아빠의 ‘친구 만드는 법’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거나 나는 친구를 만들수 없는 사람 이라거나 그런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출발선에 조차 서 본적이 없으니 아직 실패한 적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 내가 학교 다닐때 너무 잘난척하고 다른 아이들 배려를 안해서 친구를 못만들었던 걸까?”




“응, 맞아. 그런것 같아. 완전~”




아빠의 대답에 우리 둘다 빵터져서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그 말의 여운이 가슴 구석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친구라는 것은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하고 그 시간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간단 하게는 대화일수도 있고, 취미생활 일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로 친구가 될수 있다.


나는 내가 내 옆에 놓여진 의자들을 발로 다 걷어차 버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자리를 깔아 놓고 그들이 편하게 앉아서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놓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내 옆자리에 내 욕심과 내 짐들로 가득 채워두지 말고, 좀 비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잠시 쉬어가는 사람이라도 앉을 수 있을테니..


내가 다가가는 법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다가올수 있게 여백을 남겨놓고 마음을 열수 있는 것이 더 먼저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마무리 할때 즈음에 아빠가 말했다.




“고모한테 물어봐~ 친구만드는 법.


아빠도 내향적인 편이라 친구 만드는 법을 조언해 줄 위인은 못되는 것 같고..


아빠가 아는 휴먼 중에 최고 인싸는 니네 고모다.


고모한테 한번 물어봐바.


친구 만드는 법.”





고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모 혹시 내일 점심 같이 하실래요? 시간 괜찮으세요?]



[우리 조카 뉴욕으로 온다는 얘기는 들었다. 내일 좋아 12시에 갤러리로 올래?]



[네! 내일 12시 까지 갈게요!]




할아버지가 하시던 사업들은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 가장 큰 파트가 아빠가 담당하던 [우주인류]연구소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미술, 문화재단 [경계]가 있다.


이곳에서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사업은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할아버지는 문화와 예술이 인간을 정의 한다고 생각하셨다.


고대, 중세의 인류는 신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피조물이었다.


각종 미술품과 설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인간의 생각의 범위를 한정짓는다.


그때의 인류는 어떤 일이 벌어지면 열심히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한때는 신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 외에는 외설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육체는 부끄러운 것이고 추잡한 것이었다.


르네상스와 함께 죄악시되고 터부 였던 것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고 예술로 존중받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창피해 하던 것들을 자랑 할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된다.


인상파와 추상과 큐비즘과 다양한 미술사조 들이 현대 철학과 맞물려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이게 무슨 예술이냐??] 에서 [이것도 예술이야??]


더 나아가 [이것도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미술의 확장은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의 확장이다.


그 이전에 아름답다고 인정받지 못하던 것들이 이것도 아름다운 것 입니다 라고 찬양받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전에는 부끄러워하며 숨어서 했어야 하는 행동들이 아름다운 것이 되고 멋진 행동이 된다.







미술의 확장은 인간의 활동 범위를 확장시켜 준다.


미술과 문화가 인식을 바꾸고, 인식의 변화가 인간의 범주. 그 경계선을 긋는다.


인간은 스스로 그은 경계선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히 두려워 하는 동물이다.







미술, 문화재단 [경계]에서 하는 일은 그렇게 아름다움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는 철학관을 가진 작가들을 지원한다.


그들의 작품 활동이 꾸준히 이어져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수 있도록 후원한다.


과거에 팝아트나 그래피티, 각종 실험적인 설치와 행위예술 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해 할수 없는 관종 들의 몸부림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겨우 십년 이십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예술이 메인 스트림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런 예술이 인종과 성별, 종교, 사상 등의 제약을 파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경계]도 과거의 현대미술이 했던 그런 일들을 꾸준히 지원하며 인간의 행동과 인식을 확장하는 일을 한다.


고모가 그 일을 담당하고 있고 뉴욕에서 중심 축이 되는 작가 지원센터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인싸 중에 핵인싸력을 가진 고모에게 적합한 일 인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네트워킹을 하는것이 주된 일이기 때문이다.








내일 고모는 어떤 답을 던져 줄까?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같은 단어만 가득하다.



‘친구.. 친구.. 친구.. 친구..’




나는 지금 왜 이 생각에 집착하는 걸까?


마땅히 행복한 인간이라면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스테레오타입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고 행복하다.


정말로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이고 충분히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만큼 안정적인 가족들이 있다.


늘 나를 서포트 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다.


딱히 심심해서 놀아줄 사람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친구’ 라는 것, 가져본 적도 없어서 있으면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뭐 있어본 적이 있어야 친구가 없어서 허전하고 공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피규어 수집하는 것 마냥 남이 다 좋다니까 막연하게 나도 트로피처럼 세워두고 싶다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친구가 생긴다고 그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대하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다거나 그런것도 아니다.


모르겠다.


나도 왜 친구를 만들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자성에 끌리는 나침반처럼 나의 촉각이 그쪽으로 곤두서 있을 뿐이다.







에이.. 지금 이런게 중요한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훨씬 더 중요한 걸 해야하는 때 인지도 모르는데..


바로 그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을 못 찾아서 방황하는 걸까?


원래 피끓는 20대의 밤은 이렇게 늘 생각이 많은 걸까?







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지금 막 생겼다.


너도 이렇게 생각이 많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런게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와의 대화와 공감..


그래서 친구를 가지고 싶은걸까.. ..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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