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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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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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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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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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DUMMY

서종호와 장진형.

둘 다 기억난다.

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들 모습도.

하지만 그들과 내 학폭 문제가 어떻게 엮이게 되는 건지는 아직도 전혀 감이,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소장님?’’

‘‘예.’’

‘‘정말 몰라서 그런 표정 짓고 계신 거예요? 아니면 알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뭐, 뭐가요? 아니, 나 정말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좋아요. 그러면 제가 그 서종호란 분이 제보해 준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해 드리죠. 어느 날 서종호가 장진형한테 학교 뒤편으로 끌려가 뒈지게 맞은 적이 있었죠. 그런데 그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강소장님이었죠.’’

‘‘내, 내가요? 내가 어떻게요?’’

‘‘서종호가 장진형 없는 사이 뒷담화 한 걸 고대로 일러바친 거죠. 그걸로 장진형은 화가 이빠이 나서 서종호를 학교 뒤편에 끌고 가서 그야말로 먼지 나듯이 팬 거고요.’’


여전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백 프로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게,

장진형이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몰래 혼자 서종호를 데리고 가 팼다면 ......


근데 이것 역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장진형한테 서종호가 니 뒷담화 했다고 일러바친 기억.


‘‘역시나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네.’’

‘‘뭐, 뭐요? 무슨 말이요?’’


방용섭이 예의 전매특허 같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때린 놈은 기억 못해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는 그 유명한 말이요, 하하.’’

‘‘아, 아니. 난 정말 기억이 ......’’

‘‘자! 그러면 강소장님 기억을 한 번 제대로 되살려 드려보죠. 서종호 씨가 보내온 제보에 따르면, 강소장님이 그렇게 장진형한테 고자질을 한 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더군요.’’

‘‘무슨 이유요?’’

‘‘강소장님이 당시 서종호씨한테 앙심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앙심이요?’’

‘‘도시락이요.’’

‘‘도시락?’’

‘‘예. 서종호씨 같은 경우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매일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었죠.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그런 애들 있잖아요. 숟가락이나 젓가락만 들고 오는 친구. 그러면서 특히나 서종호씨가 강소장님 도시락을 좀 뺏어 먹었죠.’’

‘‘예? ...... 아하!’’


드디어 기억이 나기 시작한다.

그랬다.

서종호가 자주 내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었다.

그래서 일부러 걔 화장실 가는 쉬는 시간에 얼른 먹었던 기억도 났다.


‘‘이제 좀 기억나십니까, 강소장님?’’

‘‘예, 그건 기억나요. 걔가 내 도시락 뺏어 먹어서 그때 많이 짜증났던 기억이. 그래서 내가 열 좀 받아서 장진형한테 그랬을 수도 ......’’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방용섭이 펼쳐놓은 그물에 마침내 걸려든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소장님!’’

‘‘예.’’

‘‘당시 서종호씨 가정환경에 대해 기억나십니까?’’

‘‘저기요. 근데 무슨 지금 청문회 하는 것도 아니고 ......’’

‘‘청문회는 강소장님이 먼저 하셨잖아요. 그것도 저희들 없는 곳에서.’’


이번에는 방용섭이 굳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옆에 있는 임민정도 당연히 굳은 표정이었고.


‘‘흠흠.’’


두 굳은 표정의 위세에 다시 또 내가 눌려졌다


‘‘서종호씨 가정환경에 대해 기억나시냐고요?’’

‘‘정확히는 잘 몰라요. 내가 선생도 아닌데 일일이 다른 학생들 가정환경을 ......’’

‘‘당시 서종호는 소년 가장 집안이었죠. 서종호 누나, 여전히 미성년자, 여고생이었던 서종호 누나가 주경야독 하면서 집안을 먹여 살리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안 계셨고,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크게 다쳐서 거의 거동을 못하셨으니까요.’’

‘‘아하!’’


서종호가 평균보다 불우한 집안 출신인 건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옷차림이나 뭐 그런 모습으로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근데 정말 그의 집안이 소년 가장 집안인 건 알지 못했다.

참! 가끔 무슨 성금 같은 거 걷을 일 있을 때마다 그걸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가던 것도 기억나기 시작했다.


‘‘이제 당시 서종호 군이 왜 도시락을 못 싸고 다녔는지 이해가 가시죠?’’

‘‘이해는 가는데요, 근데, 참 ......’’

‘‘근데 그때 강소장의 고자질로 장진형이 서종호를 학교 뒤편으로 데리고 가 얼마나 팼는지 아세요?’’

‘‘아! 정말 전 그 사실을 지금에야 ......’’

‘‘그때 고막이 터졌었대요.’’

‘‘예에?’’


나는 본능적으로 최웅과 한소라 쪽을 쳐다보았다.

임민정이야 당연히 굳은 표정이었지만, 두 사람 역시 그러했다.


최웅도 이건 자기도 좀 쉴드 쳐주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한소라는 아예 나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자! 이제 서종호씨가 굳이 25년 전 일을 왜 제보해 왔는지도 이해가 가시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당시 충격이 정말 컸드랬답니다.’’

‘‘아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서종호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장진형이 서종호를 학교 뒤편에 데리고 가 고막이 터질 때가지 팬 건 물론이거니와

그 전에 내가 장진형한테 서종호가 너 뒷담화 하고 다닌다고 일러바친 사실도 여전히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나 지금 막 접속하신 시청자 분 계실까봐 지금까지 이야기 잠시 다시 좀 정리하자면요, 이거예요. 강대구 소장 중학교 시절 반에 아주 불우한 급우가 하나 있었는데, 이 친구가 그래서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못 되었는데, 그래서 좀 친구들 거 뺏어먹고 그랬는데, 그게 그렇게 고깝다고 강대구 소장이 싸움 잘 하는 그 친구 짝꿍한테 얘가 너 뒷담화 하고 다녀 이렇게 몰래 고자질을 했다는 거죠. 글쎄, 뭐 백 번 양보해서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 주신 도시락을 남이 자꾸 손대니 화가 날 수는 있다고 치죠.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그렇게 얍삭하게 싸움 잘하는 다른 친구한테 고자질 하고 그러면 안 되죠. 솔직히 이건 뭐 대놓고 쟤 좀 패 줘, 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전문용어로 미필적 고의라고나 할까. 그래서 제가 서두에 사실상 강대구 소장이 자기 손으로 때리지만 않았지 학폭 가해자나 다름 없다는 식으로 표현 한 거고요. 아니, 어떤 의미에서 직접 팬 그 장진형이라는 친구보다 더 비열한 학폭 가해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방용섭의 일장연설에 가까운 긴 멘트가 끝이 났다.

그 사이, 나의 얼굴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슬쩍 핸드폰으로 시사팩폭쇼 실시간 채팅 방을 훔쳐봤건만

전체적인 여론은 방용섭의 지금 이 일장연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대구, 지금은 몰라도 중학교 시절 진짜 얍삭했구나.

지금도 하는 거 보면 한 얍삭한다느니

가장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인간형이라느니


‘‘저기, 강소장님?’’


한소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 예.’’

‘‘이쯤에서 그 서종호라는 분한테 영상편지로 깔끔하게 사과의 말씀이라도 한 마디 하시는 게.’’

‘‘아! 예, 그래야겠죠. 예, 그럴게요.’’


한소라가 나름 나를 위한다고 묘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내 침울해진 기분도 풀어줄 겸

또 아무리 봐도 이건 사과 밖에 돌파구가 안 생기는 상황이었다.


‘‘예, 음 ......’’


그런데 막 사과의 영상 편지를 남기려는 그 순간이었다.

방용섭이 옆에 있는 임민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랄까 회심의 미소 같은 느낌의 미소라고나 할까?


그게 나를 순간적으로 빡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맥없이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프롬프터가 나와 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나는 지난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온 자료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방용섭 임민정이 심하게 공격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역공용으로 준비한 자료의 일부분.


‘‘제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뒤늦게나마 중학교 때 같은 반이던 서종호 군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은 전하는데요. 그런데 저도 방용섭씨한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 데요.’’

‘‘뭐죠?’’

‘‘제가 다른 사람한테는 제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설교 듣는 거 감수하겠는데요. 솔직히 방용섭씨가 이렇게 저한테 하는 게 좀 속으로 웃겨서요.’’


푸하하하.


나의 말에 오히려 방용섭이 웃기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더더욱 나를 빡치게 만들고 있었다.


‘‘저기, 방용섭씨. 솔직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이 지금 저에게 윤리적인 부분을 논할 상황인가요? 저야 완전 어렸을 때, 철들기 전 이야기이었고요. 반면 방용섭씨 같은 경우 불과 몇 년 전 비리로 시장 직에서 물러나셨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사이버 렉카 운영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뒤나 캐면서 그걸로 먹고 사시는 분이. 지금 명예훼손 소송만 너 댓 건 걸려 있지 않으신가요? 참! 그리고 한 가지. 정치자금법 위반 걸렸을 때, 그때 그 돈 심부름 한 사람 가지고 협박에 위증교사까지 시도했었죠. 그런데 그 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났던데, 근데 그거 가지고 그 돈 심부름 하신 분은 아주 억울해 하셔서 여기저기 인터뷰 하시고 그러셨던데, 그거에 대해서 한 말씀 좀 하셨으면 하는 데요 ......’’


푸하하하.


이번 웃음의 주인공은 방용섭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던 임민정이었다.

방금 전 방용섭의 웃음만큼, 아니 오히려 더 사람을 빡치게 하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냥 강대구씨 이야기 중학교 시절 철없던 시절 이야기라 뭐 저때는 저럴 수 있지 하면서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근데 지금 또 이러는 거 보니 새삼 이 유명한 말 깨닫게 만드시네요.’’

‘‘뭐, 뭔 말이요?’’

‘‘역시나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이요.’’

‘‘예? 그건 뭔 의미에요? 갑자기 사람 쉽게 안 변하다니?’’


내가 임민정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랄까,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사람이 여전히 너무 얍삭한 것 같네요.’’

‘‘뭐, 뭐라고요?’’

‘‘그렇잖아요, 그냥 남자가 깨끗하게 사과할 거 사과하고 넘어가면 되지, 뭐 또 뒤에 그렇게 꼬투리를 달고 그래요, 쯧쯧. 난 이런 사람이 제일 짜증나더라고. 정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이런 인간들이 제일 짜증나. 자기 잘못만 이야기하면 되지, 꼭 물타기 하려 드는 인간들.’’


솔직히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아마도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서 제일 저런 물타기 논리로 이야기 많이 하는 인간이 임민정 저 여자 아니었던가.

매번 우리 진보 진영 쪽도 잘못한 것이 없지 않지만,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많은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상대 보수 진영이다 뭐 이런 논리.


‘‘아니, 됐습니다, 교수님. 저한테는 오히려 좋은 기회네요 ......’’


임민정이 고약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자, 방용섭이 그녀에게 만류하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마치 굿캅 배드캅처럼 두년놈이 뭔가 손발이 척척 맞는 느낌이었다.


‘‘ ......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인터넷 상에서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뭐 제 채널에서 아무리 말해 봐야 전부 제 편 밖에 없으니까 여기저기 잘 퍼지지도 않더라고요. 제 안티들도 꽤 많고 조회수도 많이 나오는 여기 시사팩폭쇼에서 해명하게 되어서 저로서는 오히려 잘 됐네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그 협박 및 위증교사 건에 대해 해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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