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2,408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7.26 01:32
조회
118
추천
2
글자
12쪽

80화

DUMMY

방용섭이 제안한 대로 나와 그는 서로 문제의 제보자 이니셜을 동시에 답하기로 했다.

한형선이니까 나는 당연히


‘‘에이취!’‘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방용섭은


‘‘케이!’’


라고 다른 이니셜을 댔다.


으잉? 케이?


케이로 시작하는 여동생 주화 친구라.

그것도 신성여대 졸업한 친구.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케이는 김씨부터 해서 한 둘이 아닐 테고

내가 여동생 친구들 어느 대학교 들어갔는지 일일이 메모해뒀을 리도 만무한 일이니까.


‘‘어쩐지.’’

‘‘이럴 줄 알았어요.’’


정면에 앉아있는 방용섭과 임민정이 나란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소장님!’’

‘‘뭐, 뭐요?’’

‘‘내가 왜 강소장이 생각하는 그 분이랑 실지 제보자가 동일인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세요?’’

‘‘......’’

‘‘도저히 그림이 안 나와서 그래요.’’


방용섭의 말에 임민정이 맞장구를 치듯 말했다.


‘‘맞아요. 그 친구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이쁘던데. 내가 그래서 너는 우리 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니 아니면 무용과 졸업생이니 이렇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그런 친구가 고등학교 때 강소장님을 짝사랑했다라. 푸훗!’’


방용섭과 임민정이 동시에 비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어서 방용섭이 나에 대해 본격적인 인신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강소장님,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하하하, 강소장님이 솔직히 여자들한테 먹힐 스타일은 전혀 아니잖아요. 요즘 좀 뜨고 있기는 한다지만. 사실 난 왜 뜨고 있고 왜 중구난방 같은 인기 프로에 캐스팅 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아무튼 간에, 참! 저희 시사흥신소가 이번에 고등학교 시절 강소장님 사진까지 입수했는데, 하하하, 지금 제 핸드폰에 있는데 공개할까요, 말까요? 오히려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지금이 더 나아 보일 정도던데. 완전 오타쿠에 파오후 스타일, 푸하하하. 그렇다고 당시 공부를 잘 한 건가. 솔직히 그것도 아니었잖아요. 공부를 잘했으면 대학교를 고작 그런 데 밖에 못 들어갔겠어요? 외모도 별 볼일 없고,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었잖수. 그냥 시골구석에서 평범하게 농사 짓는 집안 출신 아닌가요? 그렇게 제대로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양반이 우리 제보자분, 완전 퀸카 스타일인 그 여자분 대시를 거절했다? 참! 그 분, 게다가 지금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데. 하하하, 아니, 아무리 구라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있는 거지. 푸하하하, 푸하하하.’’


방용섭과 임민정 두 사람 다 비웃는 표정을 훌쩍 뛰어넘어 마침내 폭소까지 터뜨렸다.

붉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얼굴의 나는 저만치 한소라와 최웅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에게 요즘 어느 정도 이성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 한소라는 아까보다도 한층 더 연민 가득한 표정이었고,

오늘 이 자리를 처음 기획한 최웅은 평소 그답지 않게 죄책감 가득한 표정이었다.


내 인생에 프롬프터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내 방송 컨셉은 이러했다.

명함 상으로만 시사평론가이지, 실질적으로는 정치 고관여층 일반 국민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듣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다른 패널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무시도 당하고 디스도 당했다.

그때 재미지게 깨갱 깨깽, 자학 개그를 하면서 폭소를 유발시키는 것이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그 덕에 지금까지 인터넷 방송 생활을 연명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방송 중 이 정도 무자비한 인신공격 수모를 겪은 적은 이전에 없었다.

비웃음과 조롱을 동반해 외모, 학벌, 집안 등에 대해 정면 팩트폭행을 맞은 적은 이번이 정말 처음이었다.


아무리 내가 싸움도 안 좋아하고 할 줄도 모르는 스타일이라지만,

만약 방송 중이 아닌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된다면

너 이 시키 따라나와! 라는 말을 안 내뱉을래야 안 내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안 내뱉으면, 두고두고 어디에서든 병신 소리만 듣게 될 테니까 말이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나.

방용섭을 노려보며 정말로 안 되겠다, 당신 따라 나와! 라고 해야 하나.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마치 이대로 나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그렇게 마렵던 프롬프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이상했다.

프롬프터 내용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예 프롬프터 모양이 이상했다.

프롬프터 창 전면이 까맣게 암전되어 있었다.


어어!

어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소리를 내는 그 순간, 더욱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와 동시에 맞은 편 방용섭도 비슷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내 머리 위쪽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맞은편 방용섭, 그 역시도 나와 같은 쪽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말도 참 이상했다.

뭔가 신이 들린 듯한 목소리였다.

무당이 내는 목소리 같기도 하고, 부흥회 같은 곳에서 사람들 기도하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우선, 아까 방용섭이 처음 말한 강대구 소장 학폭 문제, 그거 방용섭이 소설 쓴 거임. 방용섭 지인의 지인이 강대구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서종호였고, 서종호한테 강대구하고 있었던 일화 몇 개 듣고 서는 방용섭이 강대구가 비겁하게 고자질해서 서종호가 옆자리 장진형한테 쳐 맞았다고 소설 쓴 거임.’’


거기까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말하고 난 방용섭이 거세게 숨을 몇 번 내쉬었다.

그 순간,


아하!

뒤늦게 나는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허공 위 프롬프터의 이상한 모양새는 다름 아닌 프롬프터 창 뒷면인 것이었다!

반면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 프롬프터 창 앞면은 내 맞은편 방용섭을 향해 있고.

그리하여 방용섭은 자신의 주작 만행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프롬프터 내용을 지금 넋 나간 표정으로 읽고 있는 중인 거다.


참! 아까 전 방용섭이 지가 하나님 목소리를 들었다느니 어쩌니 했었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 방용섭은 자기 눈앞에 보이고 있는 저 신비한 환영을 하나님이 내려 보낸 것이라 착각하고 무장 해제된 채 읽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프롬프터야! 역시 너 밖에 없다!

역시 너 밖에 없어!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방시장님?’’


최웅이 방용섭에게 물었지만, 방용섭은 대답 대신 넋 나간 표정으로 계속 프롬프터를 읽어 내려가기 바빴다.


‘‘두, 두 번째로 강대구 부모님 빚투는 지금 방용섭이 한창 파고 있는 다른 연예인 빚투 건을 가지고 또 주작하고 있는 거임. 강대구 네 동네 사람 하나랑 컨택해서 강대구 할아버지 아버지 등 집안 내력 알아낸 후 또 소설 쓴 거임.’’


뭐, 뭐야?

저 십새끼가 근데.

어쩐지, 우리 집안이 아무리 별 볼일 없고 할아버지가 잡기에 능하셔도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집안은 아닌데.


저 씹새기 저거 정말 죽여 살려.

따라 나오라고 할까.

참! 한 가지 더 남아 있지?


‘‘세 번째, 강대구 미투 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날조임. 케이로 시작하는 퀸카 스타일 강대구 여동생 친구는 애초 실존하지도 않음. 임민정이랑 어제 커피셥에서 머리 맞대고 가상의 인물 만들어낸 거임.’’


헐! 저 개씹새끼 진짜.

안되겠다.

진짜 따라나오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방용섭 스스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곧바로 줄행랑을 쳤다.


‘‘바, 방시장님! 어디 가세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아무도 방용섭을 제지하지 못했다.


‘‘임교수님?’’

‘‘예? 예.’’


순식간에 방용섭이 사라진 스튜디오.

사람들 시선이 자연스럽게 임민정에게로 모아졌다.


‘‘괜찮으세요, 임교수님?’’


한소라가 임민정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 사이 나는 생각했다.


‘너야. 방용섭이 없으니까 너라고.’


방용섭이 없으니까 그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를 음해한 책임을.

아무리 나로부터 선제타격을 받았다 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나는 선제타격이었지만 충분히 공공선을 위한 비판이었지만,

그녀와 방용섭이 내게 했던 건 엄염히 마타도어이고 인신공격 비난을 위한 비난이었으니까.


‘‘예? 예?’’


한소라의 안부 질문에 임민정이 당황해 하며 대답할 말을 바로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맞은 편 나의 날이 설대로 선 시선과 마주쳐야 했다.


그녀가 어버버버 하는 사이,

나는 얼른 강력한 한 방을 날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녀 역시 바로 줄행랑을 칠지 모르니까.


여자이니 따라나와, 라고 할 수는 없고

무슨 말을 해야 치명타를 날려 바로 바닥에 다운시킬 수 있을까,

신나게 머리를 막 굴리고 있는데

허공 위에 여전히 있던 프롬프터에서 다시 또 이상한 반응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시점에서는 자기 뒷면을 보여주고 있던 프롬프터 창이

이제, 백팔십도 회전하면서 내 쪽으로 자기 자막 글씨들을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허걱!


그리고 프롬프터가 보여주는 글자들은 나의 말문을 잠시 막히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방금 나간 방용섭은 현재 진행 중인 이런 저런 명예훼손 소송들 전부 유죄 판결을 받을 거임. 아무래도 오늘 이 방송에서 보여준 그의 실체가 상당부분 앞으로의 재판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약 4개월 후 법정 구속까지 당하게 됨. 물론 이번 공천도 오늘 건으로 완전 물 건너갔고. 임민정도 마찬가지임. 비례대표 공천 완전 쫑남. 그리고 정말 웃긴 건 오늘 방송 건으로 방금 전까지만 손잡았던 방용섭하고도 틀어짐. 다음 주 방용섭 방송에서 임민정 교수 시절 이런저런 만행과 남편 회사 비리, 자식들 사생활 씹는 내용이 나올 예정임. 결국 올해 안에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내년에는 이혼하게 됨]


흐흐흐흐흐흐.


‘‘강소장님! 강소장님!’’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오자 한소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불렀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니시죠?’’

‘‘예, 아, 아니요. 아프긴요. 참! 임교수님한테 한 마디 드려도 될까요?’’

‘‘예?’’


임민정이 마치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처럼 깜짝 놀란 기색을 선보였다.

하지만 나는 불과 방금 전까지 견지하고 있던 날선 시선을 언제 그랬냐는 듯 내려놓고 있었다.

오히려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음, 지난주 중구난방 방송에서 제가 좀 결례를 저지른 것 같아서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오늘 방금 자리를 뜨신 방용섭 전시장님이랑 같이 저에 대해 좀 서운한 감정 표명하고 싶으셨던 임교수님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는 바입니다.’’

‘‘저, 저기 .......’’


나의 예상치 못한 언변에 임민정은 더더욱 당황해 하는 기색이었다.

그것은 엠씨인 최웅과 한소라도 마찬가지였다.


‘‘야! 강대구! 너 방금 전 상황에 너무 충격 받은 거냐?’’

‘‘아닙니다. 충격을 받기는요.’’


나는 부처님을 연상케 하는 인자하고 자비롭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계속 멘트를 이어나갔다.


‘‘저는 처음부터 방용섭 전시장님이나 임민정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게 팩트가 아니라는 걸 당사자인 제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잠자코만 있었던 것은, 아무쪼록 그렇게 해서라도 두 분이 저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 노여움 등을 푸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 때문이었지요. 만약 아직도 존경하는 임교수님께서 성에 차지 않으시다면, 이 자리 제 면전에서 몇 마디 더 하셔도 원죄를 저지른 자로서 저는 그 형벌 달게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83화를 끝으로 잠정 휴재에 들어갑니다 +2 24.07.29 56 0 -
84 83화 +3 24.07.29 90 5 12쪽
83 82화 24.07.28 104 2 12쪽
82 81화 24.07.27 117 5 12쪽
» 80화 +2 24.07.26 119 2 12쪽
80 79화 +1 24.07.25 117 4 12쪽
79 78화 +1 24.07.24 111 3 12쪽
78 77화 +2 24.07.23 126 3 12쪽
77 76화 24.07.22 130 4 13쪽
76 75화 +2 24.07.21 124 3 12쪽
75 74화 24.07.20 134 4 12쪽
74 73화 24.07.19 131 4 13쪽
73 72화 +1 24.07.18 127 5 12쪽
72 71화 +1 24.07.17 135 3 12쪽
71 70화 24.07.16 139 2 11쪽
70 69화 +2 24.07.15 142 7 12쪽
69 68화 +1 24.07.14 143 4 12쪽
68 67화 +1 24.07.13 144 5 12쪽
67 66화 24.07.12 178 4 12쪽
66 65화 +1 24.07.11 159 3 13쪽
65 64화 24.07.10 166 3 12쪽
64 63화 +1 24.07.09 169 4 12쪽
63 62화 24.07.08 180 7 13쪽
62 61화 24.07.07 173 6 12쪽
61 60화 +2 24.07.06 178 7 12쪽
60 59화 +1 24.07.05 166 6 12쪽
59 58화 +1 24.07.04 164 7 12쪽
58 57화 24.07.03 166 5 13쪽
57 56화 +1 24.07.02 179 6 12쪽
56 55화 +2 24.07.01 178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