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서버 최강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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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댬
작품등록일 :
2024.06.01 23:27
최근연재일 :
2024.09.0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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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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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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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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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Lv. 7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5)

DUMMY

Lv. 7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5)


서버 전쟁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사실 그 시간 동안 정한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어쨌든 출근도 해야 하고.’


레벨을 올린다고 해 봐야 고작 한두 단계밖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한은 그 시간에 차라리 산군과 실버의 레벨을 올리기로 했다.


‘어차피 그 정도 올려봤자 크게 티도 안 날 테니까.’


저번에는 갑자기 끼어든 이상한 녀석들 때문에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기필코 20까지는 찍는다.’


정한은 열의를 불태우며 진호에게 물었다.


“오늘 저번에 말했던 거기 갈 수 있냐?”

“어디요?”

“얘들 레벨 올릴 만한 데.”


정한이 발끝으로 제 발밑에서 뒹굴거리는 산군과 실버를 가리켰다.


“아! 네, 오늘 퇴근하고 가시죠.”

“그래. 오늘은 집에 들렀다 가자. 규태 형한테는 말하지 말고.”


정한의 말에 진호가 악당처럼 킬킬거리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정한과 진호는 6시가 되기 무섭게 사무실을 나섰다.


“어? 얘네 어디 갔어?”

“과장님이랑 진호 씨요? 아까 6시 되자마자 나가시던데요?”

“이것들이 또 나만 따돌리고 둘이!”


한발 늦은 규태의 절규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아우,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냐?”

“규태 형님이 형님 얘기 하나 보죠.”


실없는 얘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서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꽤 넓은 공터였다.

도심에 이런 곳이 아직 남아있었나 싶을 정도의 땅에는 철조망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진호는 익숙하게 입구를 찾아 자물쇠를 풀었다.


“여긴 어디냐?”

“아, 여기 제 땅이에요. 아버지 몰래 사둔 거니까 비밀입니다. 형님.”


진호가 정한에게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내가 최성 회장님 만날 일이 뭐가 있겠냐. 근데 여기에 뭐가 있어?”


정한은 풀이 무성하게 나 있는 노지에 산군과 실버를 풀어놓으며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형님. 여기 필드 보스가 자리를 잡았더라고요. 최성 길드에 있을 때 혼자 렙업하려고 몇 번 왔었는데, 그때는 못 잡았거든요.”


진호의 얼굴에는 제법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하긴, 그때보다 레벨이 20이나 올랐으니.’


심지어 필드 보스의 레벨은 진호보다 30레벨이나 낮았다.

굳이 정한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레벨 차이였다.


“저놈 잡으면 던전 생기는 거 아니에요?”

“아마 그렇겠지? 여태 내가 본 던전은 다 그런 식으로 생겨났으니까.”


진호가 좀처럼 볼 수 없는 심각한 얼굴로 정한에게 말했다.


“형님. 저놈 제가 혼자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정한이 하려던 말을 진호가 먼저 꺼냈다.

굳이 나설 필요 없는 일에 나서서 엘리시온의 주의를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래.”


정한은 흔쾌히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주변 몹 정리해 줄 테니까 잡아봐.”


*


“형님. 서버 전쟁이라는 걸 한다는데요? 하실 겁니까?”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자가 물었다.


“글쎄.”


한여름임에도 목 끝까지 채운 새하얀 와이셔츠엔 붉은 핏자국이 번져있었다.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벗어낸 셔츠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난 사람 말고 다른 걸 죽이는 건 별로 관심 없는데.”


남자의 몸은 전체적으로는 마른 체형이었지만 전형적인 격투가의 몸이었다.

소위 말하는 실전형 압축 근육.

그리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하와이안 셔츠의 사내가 비닐에 들어있는 새로운 와이셔츠를 건넸다.


“그, 다른 서버에 있는 것들이 인간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남자가 피식 웃었다.


“너 외계인 나오는 영화 안 봤냐? 거기 보면 외계인은 다 저기 저 길바닥에 널린 녀석들처럼 생겼잖아.”

“그, 그건 그렇죠.”


남자는 새로 갈아입은 셔츠의 단추를 채웠다.


“난 그렇게 생긴 녀석들은 딱 질색이라.”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 드워프나 엘프 같은 것들이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소매의 단추를 채우던 남자가 시선만을 돌려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를 쳐다봤다.


“아, 아니. 그 드워프나 엘프는 인간이랑 거의 흡사하니까······. 죄, 죄송합니다. 형님.”


남자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덕구야.”

“예, 옙.”


소매 단추를 마저 채운 남자가 가볍게 몸을 풀어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하고 싶냐?”


덕구라 불린 하와이안 셔츠의 남자는 저 ‘하고 싶냐’는 말이 ‘죽고 싶냐’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형님.”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그리고 네 말대로 드워프나 인간이 나오면 말해주고.”


*


진호가 제 키만 한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실버 또한 싸울 준비를 하듯 몸집을 키웠다.

정한 또한 준비를 마친 듯 분신과 산군이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진호가 필드 보스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진호는 눈앞의 몬스터에게 호되게 당한 채 도망쳤다.

같은 대상에게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경험하는 일은 무의식중에 상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심어준다.

진호는 그것을 스스로 떨쳐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호승심이 앞섰다.


‘레벨의 차이를 보여주마.’


진호가 눈앞의 적을 상대로 투지를 불태우는 사이 정한은 착실히 주변의 몬스터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저 녀석 도대체 언제까지 눈싸움만 하고 있을 거지?’


십 분이 넘도록 진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몬스터를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진호를 독촉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정한의 목표는 산군과 실버의 레벨을 올리는 것.

주변의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것만으로도, 두 녀석의 레벨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한이 주변의 몬스터들을 거의 처리했을 때.

진호가 움직였다.


진호는 가장 먼저 거대한 수정구를 소환해 냄과 동시에 공격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수정구에서 새하얀 번개가 피어오르기 무섭게 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진호의 상대는 거대한 식인 식물이었다.


‘상성이 좋진 않네.’


정한은 일전에 상대했던 식물형 몬스터들을 떠올렸다.

개중에는 지금 진호가 상대하는 필드 보스와 비슷한 모양의 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자가 치유 능력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런 부류의 몬스터들은 치유를 끊을 만한 군중제어기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치유를 하기 전에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제인 진호에게는 군중제어기 스킬이 없다.

게다가 단시간에 피해량을 최대로 뽑아내기도 힘든 직업군이었다.


‘그래도 레벨 차이가 나서 아프진 않겠네.’


보스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 힘든 부분이 어마어마한 생명력과 상상을 뛰어넘는 데미지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정해주는 것이 바로 레벨이다.


‘데미지도 제법 들어갈 테고.’


정한이 할 일은 묵묵히 그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다.


진호는 식인 식물의 목표물이 수정구로 향해있는 동안 자신의 가장 강력하고 시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몇 번의 공격을 받아내던 수정구가 파괴되었다.


식인 식물의 공격이 진호에게로 향하기 전 그는 신성한 방패를 불러냈다.

사제들만 사용할 수 있는 이 스킬은 생명력만큼의 데미지를 막아주며 피해량의 일정 퍼센트를 생명력으로 흡수시켰다.


‘생명력은 풀이지만, 어차피 저놈이 죽기 전에 한 번 더 쓸 수 있으니까.’


심지어 재사용 대기시간까지 짧은. 그야말로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다만 스킬의 유지 시간이 짧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평타의 텀이 긴 식인 식물의 공격을 겨우 두 번밖에 막아내지 못한다.


‘이 타이밍에 수정구 한 번 더 소환하고, 마나 좀 채워야겠다.’


진호가 식인 식물을 공격하자, 그의 펫인 실버도 입질을 시작했다.

피해량은 고작 해봐야 두 자릿수였지만 그마저도 진호에겐 감지덕지했다.


다른 사람들, 소위 딜러라고 부르는 공격형 직업을 가진 이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느린 사냥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이지.’


정한은 제법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식인 식물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십 분 정도면 끝나겠는데?’

“하아암. 지루하네요.”


주드의 말 한마디에 정한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잘 싸우고 있는데 산통 깨지 말고 저리 가라.’

“아니, 레벨 차이가 저렇게 나는데 왜 저렇게 소심하게 싸운대요? 스태프로 뚝배기만 때려도 이기겠구만.”

‘네 뚝배기가 깨지고 싶단 얘기지?’


정한이 주드를 잡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진호가 식인 식물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주드의 말대로 식인 식물을 스태프로 패기 시작했다.


“야! 너 잘 싸우다가 갑자기 뭐해?”

“아, 평타는 이게 더 잘 먹히거든요. 속도도 빠르고.”


마법사나 사제 계열의 일반 공격은 식인 식물과 비슷했다.

무기 자체의 에너지를 모아 방출하는 형식.

공격 속도는 느리지만 원거리 형태로 생명력과 방어력이 낮은 직업에게는 이점이 높은 공격이었다.

진호는 이를 기본적인 틀을 파괴하고 몬스터에게 정면으로 부딪친 셈이다.


“이럴 거면 철퇴랑 방패를 들지 그랬냐.”

“사제용 철퇴랑 방패를 아직 못 먹었거든요.”

“오! 이제 좀 볼만해졌네요! 잘한다! 더, 더! 그렇지! 후려쳐!”


말 그대로 지팡이로 뚝배기를 깨는 진호와 그런 진호를 응원하는 주드.

정한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차마 뭐라 말은 못 하고,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


진호의 치열한 전투는 정한의 예상대로 십 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막을 내렸다.

결과는 진호의 승리였다.

진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정한에게 걸어왔다.


“형님! 저 혼자 잡았습니다. 필드 보스를! 저 혼자!”


진호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래. 봤어. 잘했다.”


정한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진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무래도 식인 식물과 진호 사이에 쌓인 원한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은 모양이었다.


정한과 진호는 필드 보스인 식인 식물이 남긴 아이템 상자를 열었다.


“오, 열쇠를 바로 주네요?”

“야. 사제용 방패 나왔다. 너 쓰면 되겠네.”

“이건 이 차장님 드리면 되겠는데요?”

“이건 뭐냐? 키울 수 있는 식물 같은데? 이것도 펫인가?”


그렇게 정한과 진호는 한동안 작은 상자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움말 : 몬스터와의 레벨 차이에 따라 시스템의 보정을 받습니다.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몬스터한테 맞아 죽는 것만큼 슬프고 허망한 일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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