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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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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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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DUMMY

정신을 차린 아이는 침낭에서 일어나 앉아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애써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이미 밤이 되어버렸는지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동굴 밖의 세상은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불을 일렁거리며 따뜻하게 데워져 산뜻하게 아이에게 내려앉았다. 바람 소리를 제외한 다른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은 고요한 정적은 벌레와 같은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음을 암시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숲속을 방황하던 아이는 오랜만에 느끼는 안도감에 항상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려버려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때 불쑥 머리 위로 어떤 얼굴이 등장한다.

-일어났나?

칼의 얼굴이다. 다소 험상궂은 표정의 그 얼굴은 아이를 경악시켰는지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벌벌 떨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칼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당황한 것은 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숲속에서 아이와 마주칠 줄 몰랐던 그는 처음 당연히 한 마리의 들짐승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비틀거리던 흰 천의 주인이 아이이며 방사능이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칼은 시야에 들어온 아이의 모습을 보고 빗속을 뚫고 달려가 쓰러진 아이를 품에 안고서야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아이는 인사불성의 상태였다.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곧 생명이 꺼질 듯하였다. 사실 칼은 아이가 가망이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살아나려 애쓰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던 칼은 아이를 안고 동굴로 돌아와 아직 젖지 않은 침낭에 아이를 눕히고 수건으로 젖은 아이의 몸을 닦아내었다.

그 상황에서 등유를 이용해 모닥불을 피워낸 칼은 아이를 불 근처로 옮기고 나서야 좀 쉴 수 있었다.

칼은 깨어난 아이를 보고 모닥불에 올려둔 주전자를 들고 나무로 만든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자 마셔봐라.

낯선 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아이는 주저하고 있었다. 칼은 자신의 컵에도 물을 따라 마셨다.

-오염된 물이 아니다. 이래 보여도 깨끗이 정수한 물이다.

아이는 그래도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 벽면에서부터 아이를 향해 다가오는 한기가 결국 아이를 칼 가까이, 즉 모닥불 가까이 오도록 조금씩 떠밀었다.

어색하긴 마찬가지인 칼은 아이가 천천히 다가올 수 있도록 부추기거나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칼은 조용히 모닥불 위 반합에서 끓고 있는 수프를 자신의 나무 그릇에 옮겨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걸쭉한 크림 수프에는 당근과 감자, 브로콜리가 아주 맛있게 빛깔을 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아이의 눈에 띈 건 큼직한 고기였다.

칼이 고기와 감자를 한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리고 옆에 반합 뚜껑에 칼로 썰어 올려둔 빵을 한 조각 들고 수프에 찍어 먹었다.

방사능 처리반은 주기적으로 지하 도시로부터 식수와 음식을 공급받지만 대게 한정적인 데다 질도 떨어졌다. 항상 그것에 대해 불만인 칼은 자신이 정화한 토지에 정착하여 보급받은 구황작물이나 야생에서 운 좋게 구해낸 작물을 심고 키워 수확하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이어갔다. 고기의 경우 간혹 보급으로 나오거나 본인이 정화된 숲에서 잡아 구한 것이다.

원래라면 수프에 채소만 넣고 끓여 먹으려 했으나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있으니 고기를 꺼낸 칼이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칼이 먹는 모습을 보며 한시도 눈을 때지 않았다. 그것을 본 칼은 다른 그릇에 수프를 한 국자 퍼 담았다. 아이의 상태를 고려한 칼은 고기를 더 많이 퍼주었다. 칼은 그 그릇을 들고 아이를 향해 위아래로 한 번 까닥이고 나서 아이의 근처에 가져다 두었다.

어느덧 아이는 그 그릇을 들고 모닥불 옆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크림수프를 그릇째로 한 입 마셨다. 달큰하고 크리미한 식감에 알맞게 뿌려진 후추는 감칠맛을 선사했다. 잘 익은 감자는 살짝 누르기만 해도 부드럽게 부서졌다. 특히 아이를 사로잡은 것은 당연히 고기였다.

아이가 수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칼은 아이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아이가 어색한 모습으로 숟가락을 받자마자 칼은 빵을 아이 쪽으로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시선을 수프에 내리깔고는 슬며시 칼을, 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빵을 집어 얼른 한입 베어 물었다.

-생존자 감지! 생존자 감지! 생존자를 신속히 지하 도시로 피난시켜야 합니다.

그 적막을 깬 것은 AI로봇이다. 이 로봇은 칼의 머리 주변을 알짱거리며 귀찮게 굴고 있다.

아이는 그 소리를 듣고 놀란 모양이다. 칼은 로봇을 낚아챈 후 말했다.

-AI 휴면 모드 전환

-휴면 모드 전환! 휴면 모드 전환! 휴면 모드로 전환합니다. 적대적 생명체 출현과 같이 비상 상황 시 자동으로 일반 모드로 전환됩니다.

그 끝으로 AI로봇은 조용해졌다. 칼은 아이가 다시 안정되었는지 보았지만, 여전히 놀란 모양이다. 먹던 그릇을 내려놓고 다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이번에 동굴의 구석에서 몸을 움추린 채 나올 기미가 없었다.

결국 칼은 남은 그릇을 정리하고 자기 자리에 누웠다.


-적대적 생명체 출현! 적대적 생명체 출현! AI 일반 모드로 전환합니다! 적대적 생명체 출현! 적대적 생명체 출현!

칼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핀다. 모닥불이 꺼져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후방 1m 적대적 생명체 접근

칼은 뒤에서 달려오는 발걸음을 듣고 뒤로 돌며 그것을 잡아챈다. 아이다.

아이는 아직 불에 타다 남은 장작을 들고 칼을 찌를 작정이었다. AI가 말한 적대적 생명체는 아이였다.

갑작스레 아이가 자신을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지 고민하던 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나를 죽이고 차지하기엔 짐들은 크고 무거웠으며 어제저녁 아이가 칼을 무서워했지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생존자 감지! 생존자 감지! 생존자를 신속히 지하 도시로 피난시켜야 합니다.

AI로봇이 또 칼의 주변을 돌며 이 말을 반복한다. 칼은 귀찮게 구는 AI로봇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날 공격했지?

칼이 아이에게 물었지만 아이는 칼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허공에서 장작을 들고 허우적거릴 뿐이다.

-생존자 감지! 생존자 감지! 생존자를 신속히 지하 도시로 피난시켜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시설로 안내합니다.

-알고 있다!

칼은 AI로봇을 보고 소리쳤다. 그 소리는 매우 커서 그 동굴 안에 꽤 오랫동안 울림이 퍼졌다. 아이도 놀란 모양이다. 방금까지 매섭게 달려들었던 아이의 모습은 없고 울먹이고 있다.

칼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칼은 자신과 아이의 몸을 밧줄로 묶어 움직이고 있다. 아이가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르니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밧줄로 포박하고 귀환 시설까지 가는데 아이가 길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자기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

아이를 그냥 안고 갈 수도 있지만 아이를 돌본 적도 없는 칼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처음에 저항하였지만, 지금은 순순히 칼의 뒤를 따르고 있다.

-생존자 감지! 생존자 감지! 생존자를 신속히 지하 도시로 귀환시켜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시설로 안내합니다.

로봇은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근데 이상하게도 로봇이 이 소리를 지껄일 때마다 밧줄을 통해 아이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칼은 아이 쪽으로 돌아보았는데 아이의 표정은 점점 겁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귀환 시설은 지하 도시로 이어져 있는 시설로 생존자를 지하 도시로 귀환시키기 위한 것이다. 평소 땅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방사능 처리반과 함께 있는 AI로봇이 신호를 보내면 땅 위로 모습이 드러난다. 혹시나 있을 다수의 생존자를 위해 크기는 가로 10m 세로 10m의 꽤 큰 규모를 가진다.

-귀환 시설에 생존자 신호 발신! 발신!

AI로봇이 신호를 보내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귀환 시설이 등장했다. 귀환 시설은 우리를 향해 입을 쫙 벌리고 생존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 합니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 합니다!

-자 어서···.

칼은 아이를 향해 돌아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는 밧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그 시설에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했다.

아이를 그렇게 겁을 먹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칼의 뒤에 있는 귀환 시설이 분명했다. 어째서 아이가 저것에 극도로 거부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칼의 입장에서 알 수 없다.

칼은 아이를 직접 시설에 태우기 위해 다가갔다. 이제 아이는 자리에 주저앉고 두 손을 빌며 울기 시작했다. 다가가던 칼은 아이의 그런 모습에 당황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도대체 저 시설이 저 어린 것을 공포에 빠지게 했는가?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방금까지 칼의 머리 근처에서 맴돌던 AI로봇이 아이의 주변을 돌며 말하기 시작한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AI로봇은 시설에 타지 않는 아이를 닦달하고 있다. 이제껏 보지 못한 AI로봇의 모습에 칼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귀환시켰지만, 지능형 로봇이 이렇게 무례하게 생존자들에게 대한 적은 없었다.

아이를 달래도 모자랄 판에 AI로봇은 아이를 겁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은 뒤돌아 시설을 보았다. 입을 쫙 벌리고 있던 귀환 시설도 이제 AI가 그러하듯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빨간 경보음을 울리며 AI가 하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생존자분들은 신속히 시설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탑승 완료 시 바로 지하 도시로 귀환합니다!

칼은 아이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 어째선지 저것들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칼이 아이를 안아주니 AI로봇과 시설이 더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귀환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강제 귀환 조치라니? 칼은 들어본 적도 없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귀환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칼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훌쩍임이 가슴팍을 통해 전해진다. 아이의 떨림이 온몸에 느껴진다. 이대로 아이를 저기에 태워 보냈다간 후회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한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귀환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귀환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귀환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나 로봇과 시설을 보내지 않으려는 칼의 의도를 아는 것처럼 붉은 색의 경고를 더욱 짙게 더욱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강제···.

시설의 울림이 멈추고 로봇의 말이 끊기기 시작했다.

-시설에 탑승하지 않을 경우···. 시설에 탑승···.

공중에서 떠돌며 괴롭히던 AI로봇이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포악스럽게 열린 문을 닫고 다시 땅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영문을 모르는 칼은 주위를 살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칼은 품속에 안겨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시설의 존재가 사라지니 아이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울음을 멈추었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다시 AI로봇의 전원이 켜지더니 다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잠시 쉴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아이와 칼은 긴장하였다.

아이는 다시 그 끔찍했던 일이 다시 일어날까 몸을 다시 떨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칼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방패에서 도끼를 꺼내 여차하면 로봇을 찍어 내릴 작정을 하고 있었다.

AI로봇은 그들의 그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 AI로봇의 얼굴이 나타나는 디스플레이에 로딩 표시가 뜨며 웅웅 거릴 뿐이다.

아이는 칼을 꼭 붙잡았고 칼은 아이를 꼭 감싸주었다.

띠링 하며 로딩 표시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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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수색대 24.06.13 29 0 11쪽
11 후안 24.06.13 32 0 12쪽
10 마넬리 24.06.13 31 0 12쪽
9 마을 24.06.13 32 0 12쪽
8 부탁 24.06.13 33 0 12쪽
7 대화 24.06.13 34 0 11쪽
6 오해 24.06.13 32 0 10쪽
5 늑대 24.06.10 40 0 11쪽
4 납치 24.06.10 45 0 10쪽
3 AI 24.06.10 50 0 14쪽
» 생존자 24.06.10 59 0 13쪽
1 24.06.10 9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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