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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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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47

작성
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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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부탁

DUMMY

-그러니까···. 여기라고?

혜는 어떤 동굴 앞에서 칼에게 물었다.

동굴의 입구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동굴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깊이가 꽤 긴 모양이다. 동굴에서 불어나 오는 바람의 냉기와 습기로 보았을 때 대충 어림잡아 동굴의 깊이를 재려던 혜는 자기 생각보다 동굴이 더 깊다는 것을 알았다.

-아아아~

아이가 동굴의 입구에서 양손을 입가에 모아 소리를 내었다. 동굴의 벽에 부딪히며 보이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혜는 놀라며 아이의 입을 막았다.

-그러다 다른 늑대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혜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돌려 동굴 안쪽을 보았을 때 아무런 기척이 없어 다행으로 여겼다.

-여기 핏자국이다.

-그렇네.

혜가 땅에 떨어진 핏방울은 굳은 자국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핏자국은 동굴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살아서 도망친 녀석이 이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지.


칼에게 달려든 늑대 무리는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맞았다. 알파로 보이는 늑대를 끝장냈을 때 주변에 흩뿌려진 핏자국들과 늑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널브러진 살 조각들은 더 이상 살아남은 녀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 핏자국이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칼은 살아남은 개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AI, 핏자국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봐 줄 수 있나?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나요?

AI로봇이 땅에 떨어진 피의 양을 추측하며 칼에게 말했다.

-결국엔 쓰러질 겁니다. 출혈량이 이 정도면 오래 못 가요. 뭐 그래도 해볼까요?

로봇은 칼에게 찜찜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칼은 고개를 의연하게 끄덕였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이 동굴이고 여기서 추적을 멈췄다?

혜가 팔짱을 끼고 동굴을 바라본 채로 칼에게 물었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자. 그런데 정말 대단한 녀석인데, 그 상처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혜는 주변의 자잘한 나뭇가지 여럿과 뭉툭한 나무막대를 가져왔다.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나뭇가지로 불을 피운 그녀는 나무 막대 끝에 붕대같이 말아둔 천을 감고 기름이 든 유리병을 꺼내 천에 적셨다. 그리고 방금 피웠던 불을 이용하여 횃불을 붙였다.

-AI 불 좀 비춰줘.

-네

AI로봇의 빛을 발하며 동굴을 안을 비추었다. AI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로봇이 내뿜는 빛이 신기해하며 따라나선다.

-아! 그런 것이 있으면 미리 말하라고!

혜는 횃불을 든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는 칼을 붙잡고 성을 내며 말했다.

-네가 안 물어봤지 않았나?

칼은 천연덕스럽게 말하고선 동굴로 들어갔다.

혜는 피웠던 횃불을 쿵쿵 밝으며 불을 끄고선 횃불을 들고 마지막으로 동굴에 들어갔다.

아이는 그저 신기했다. 로봇이 웅웅거리며 공중에서 돌아다니는 동시에 백색의 불빛을 내는 것이 아이의 눈에는 새롭고 매력적이었다. 따라서 아이는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않고 불빛만 쳐다보며 걸었다.

간혹 아이가 앞에 있는 바위에 부딪힐 뻔했지만, 그럴 때마다 칼이 뒤에서 아이의 어깨를 잡고선 방향을 틀어주었다.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온 정신이 불에 꽂혀 있었다.

혜는 맨 뒤에서 횃불을 이리저리 비춰가며 길을 걷고 있었다. 습기가 가실 기미가 없는 동굴의 벽들은 겉에 남아있는 물기에 빛을 반짝였다.

깎아지는 절벽 아래 있던 동굴의 입구는 안쓰럽게 작디작은 입을 벌리며 우리는 반겼다. 하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드러나는 동굴의 모습은 그 입구가 그 동굴의 입구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작았다는 것이다. 동굴의 입구에서 30m 정도 들어가자, 동굴의 천장이 높아지더니 동굴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었다.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아득히 높은 천장에는 이 동굴의 나이를 암시하듯 크기가 다양한 종유석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종유석이 그러하듯 석순 또한 하늘을 찌를 기세로 돋아나 있었고 굵고 기다란 석주들이 동굴을 지지하는 기둥처럼 서 있었다.

그중 일행의 시선이 꽂힌 것은 동굴 안을 비추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이었다. 그 빛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싱크홀이다. 그 서슬 퍼런 입을 벌리고 있는 싱크홀을 통해 빛이 들어와 동굴 안 퇴적된 흙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햇살이 드는 곳에는 동굴의 냉기가 접근하지 못해 한없이 따뜻했다.

AI는 랜턴을 끄고 이 광경을 남겨두고 싶은지 동굴 속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도 로봇을 따라 돌아다닌다.

혜는 동굴의 모습에 감탄하며 동굴에 들어온 이유를 망각했다.

그러나 그들 중 칼은 다른 일행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햇살 속으로 걸어간 칼은 자라난 식물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자신이 목표로 하고자 하는 곳에 다다른 칼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혜는 칼이 무엇을 골똘히 바라보기에 궁금하여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헤는 다시 우리가 이 동굴에 들어온 이유를 떠올렸다.

하늘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친절을 베푼 싱크홀은 애써 무시하려는 듯 입만 벌리고 있다. 슬픈 입을 통해 내려다보는 하늘은 햇살을 내려 그 아래의 것들을 애처롭게 어루만졌다. 하늘을 모르고 치솟은 석순에도, 험한 곳에 흘러들어와 살고 있는 꽃들이나 풀에도, 철없이 구는 아이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는 로봇에게도, 자연에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있는 혜에게도, 그리고 죽어가던 도중에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젖을 물린 늑대에게도 말이다.

늑대는 옆으로 누워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이미 숨을 다한 듯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칼이 늑대를 만졌을 때 아직 따스한 온기는 남아있었다.

-‘그럴 리 없어’

이 늑대를 쫓기 전, 칼은 이미 늑대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늑대는 이 동굴까지 도달하여 피를 흘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누우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그리고 인제야 죽었다.

칼은 늑대가 몸을 바닥에 누움과 동시에 죽은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아직 몸에 온기가 남아있는 것을 햇살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설령 그게 아니라면 이 늑대가 꺼져가는 생명줄을 끝끝내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칼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직 눈을 뜨지도 못한 젖먹이들을 보았다. 몇몇 녀석들은 피가 붙은 상태로 굳어 털이 마구 엉킨 상태로 꾸물거린다. 몇몇은 나오지도 않은 젖을 먹겠다고 어미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

칼은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도끼를 들어 올렸다. 햇살은 칼을 주시하듯 칼의 등을 비추었다.

-뭐 하는 거야? 멈춰.

혜가 말렸다.

-이 꼬물이들을 죽이겠다는 거야?

칼은 혜를 보며 말했다.

-그럼 어찌할 건가? 이대로 두면 죽는 건 마찬가지야.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데리고 가서 키울 수도 있잖아?

-불가능하다. 이 녀석들은 오래전 사람들이 키우던 개와 다른 존재다. 지금은 이런 새끼라도 2년 뒤면 다시 사람들을 공격하겠지.

칼은 다시 도끼를 들어 올렸다. 이번엔 아이가 칼을 말렸다. 아이는 칼 옆으로 다가와 칼을 팔을 막아서며 새끼들과 칼 사이에 섰다.

한 녀석이 끼잉~ 끼잉~ 울며 아이의 발 근처로 다가왔다.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은 넘실넘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을 알아채고 움직인 것이다.

아이는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새끼를 품에 안았다. 녀석은 아이의 폼에서 몸을 비비며 끼잉~ 끼잉~ 소리를 낸다. 다른 녀석들도 하나둘씩 아이의 근처로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녀석들이 움직이며 폴폴 날리는 먼지들이 햇살에 비쳤다.

아이는 새끼들을 잔뜩 끌어안았다. 녀석들 하나 같이 끼잉~ 소리를 내며 버둥거린다.

칼은 도끼를 집어넣는다. 칼은 늑대의 새끼들을 품고 자랑하듯 보여주는 아이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 이제부터 네가 알아서 해라.

칼은 혜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혜는 자기 외투를 벗으면서 칼의 옆을 지나갔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마을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거든. 뭐, 가령 사육사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혜는 외투로 새끼들을 감쌌다.

-이제 우리랑 살자~ 이런 우선 목욕부터 해야겠지.

새끼들을 품고 쪼그려 앉아 있는 혜는 아직 귀여운 모습의 늑대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녀석 중 혼자 멀리 떨어져 있던 녀석을 데리고 와 새끼들을 안고 있는 혜의 품속에 넣어 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디 목적지라도 정했어?

혜는 늑대를 털옷으로 만든 보자기에 담고 칼에게 물었다. 혜는 손재주가 좋은 터라 단검을 가지고 나뭇가지와 털옷을 이리저리 자르고 묶으니, 새끼들을 담을 만한 보자기를 만들었다. 새끼들도 그 속이 편한지 골골거리며 자는 녀석들도 있었다.

-내가 지내던 곳이 있다. 그곳으로 갈까 한다.

동굴 밖에서 칼은 말하면서 동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이를 한 번 보고는 혜를 보았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겠군. 혜 미안하지만, 이 아이를 맡아줄 수 있겠나?

-정말? 나는 괜찮긴 한데···.

혜는 쉽사리 수락할 수 없었다. 혜는 아이와 칼 사이에 흐르는 묘한 유대감이 느껴져 그 둘을 갈라놓기가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것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늑대 새끼들이 무사한 곳에서 적응하는 것도 보고 싶었고 우연히 들은 생존자 집단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래서 아이는 생존자들이 정착한 마을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칼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칼의 옷깃을 꽉 잡았다. 칼을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나와 함께 다니기보다는 생존자 집단에서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는 아직 자라나는 아이니까. 배우고 먹고 도와주며 자라야 한다. 그러니 이만 우리는 헤어지는 게 맞다.

아이는 칼을, 목을 끌어안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아이가 숨을 몰아쉬며 쉬고 우는 것을 반복했다. 칼은 아이의 팔을 풀려고 하지만 아이는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칼은 어쩔 수 없이 힘으로 아이의 팔을 풀고 일어섰다. 결국 아이는 칼의 바지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굳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합니까? 배우고 먹는 건 우리랑 같이 다녀도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칼에게 물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해.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고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는 거다.

-그걸 잘 아는 분이 혼자 다니십니까?

-나는···.

칼을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나는 방사능 처리반이니까. 지금도 해야 할 일을 두고 온 처지야. 나는 해야 할 일, 아니 사명이 있는 몸이다···. 게다가 그런 곳에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

혜는 칼의 말을 듣고 몹시 곤란했다. 아이와 칼을 떨어뜨려 놓는 게 과연 아이에게 좋을까? 아무리 아이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다고 해도 보호자는 있어야 한다. 혜가 그 보호자의 역할을 해줄 수 있지만 아이가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렇게 생이별을 시키는 것도 보기가 어려웠다.

문득 가족과 헤어진 자신의 기억이 떠오른다. 혜는 더욱더 아이와 칼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혜는 한가지 생각을 한다.

-우선 같이 마을로 가는 건 어때? 아니 가자! 가서 좀 쉬면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아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살아가야 할지 아는 것도 좋지 않겠어?

혜는 칼을 어떻게라도 아이와 함께할 수 있길 원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 좋게 볼지 모르겠다.

분명 좋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래도 혜는 아이와 칼을 마을에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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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늑대 24.06.10 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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