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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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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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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넬리

DUMMY

대장은 칼을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칼은 뒤로 물러서며 곧은 직선의 검의 궤도가 칼의 옷에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역시 칼에게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았다.

-과연···. 이 따위 칼로는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군.

놀란 혜는 대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대장! 지금 도대체···.

대장은 곧바로 칼에게 달려들어 단도를 위에서 아래로 몸을 숙이면서 휘둘렀다. 칼은 몸을 획 돌리며 가볍게 피했다.

대장은 단도를 거꾸로 돌려 잡아 몸을 낮춘 자세에서 곧게 펴며 칼의 눈을 향해 찔렀다. 대장은 어떻게 내질러도 칼의 강철같은 피부를 이 평범한 단도가 뚫지 못할 것을 알고 칼의 눈을 노린 것이다.

눈을 향한 공격에 칼은 뒤로 몸을 빼며 대장과의 간격을 벌렸다. 아이를 만나기 한참 전 피폭 지역에서 조우한 ‘새’들에 의해 눈을 파먹힌 적이 있던 칼은 눈을 재생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바가 있다. 그렇기에 대장의 공격은 칼에게 있어 매우 거슬렸다.

대장은 거리를 두려는 칼의 모습에 눈을 노리는 공격이 효과적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장은 노련하고 집요하게 칼의 눈을 노렸다.

결국 칼은 평화적인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간 오히려 문제가 꼬일 것이라 예상했다. 자신을 향해 내지르는 검의 궤도를 예상하고 검의 쥐고 있던 대장의 손목을 쳐냈다. 대장의 손에서 날아간 단도는 휙휙 돌며 날아가더니 천막의 천장 일부분을 베어내고 땅에 떨어졌다.

칼은 이제 단검이 없는 대장이 잠시 틈이 생길 거라 예상했지만 대장은 손에서 단검이 튀어 나가는 동시에 반대쪽 주먹을 칼의 턱을 향해 올려 쳤다. 직격으로 대장의 주먹이 칼의 턱을 타격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대장은 순간적으로 칼에게 유효타를 날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떠올렸다. 칼의 뒤쪽 구석에 세워둔 나무로 만든 둔기가 보였다. 저 둔기로 칼의 머리를 내려칠까 했지만, 둔기를 가지러 가는 도중 칼에게 공격을 당할 것이라 예상하며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대장은 칼의 아래쪽을 쳐다봤다. 아주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대장은 칼을 향해 앞으로 내디딘 발을 디딤발로 삼았다. 눈으로 목표 지점을 보고 디딤발에 힘을 준 뒤 뒷발을 세차게 앞으로 휘둘렀다.

그런데 대장은 너무 집요하게 목표 지점을 보느라 주위를 살피지 않았다. 아이가 칼의 앞을 막아섰다.

칼은 빠른 속도로 아이를 낚아채듯 안았다. 대장의 어떤 공격에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았던 칼은 아이를 안고선 눈을 꼭 감았다. 어렴풋이 품속에서 폭력적인 장면에 공포를 느끼며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아이가 느껴졌다.

아이 역시 칼처럼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몸이 떨리는 아이는 살의가 담긴 발차기 앞에서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는지 미간을 힘껏 찌푸리며 버티고 섰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칼은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며 상황을 살폈다.

-어서 앉게나.

이 사달을 내놓고 대장은 혜가 앉은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아 차를 훌쩍 마셨다. 혜는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듯 눈썹을 부라리며 대장을 쳐다보았다. 대장은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찻잔을 든 채 혜를 보고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차를 마셨다.

칼을 거의 울뻔한 아이를 안은 채 일어나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대장을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눈길 한 번 때지 않고 혜의 옆에 앉았다. 아이는 칼에게 안긴 채 조용하게 훌쩍였다.

늑대 새끼들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서 꿈나라에 빠져 있다.

아무 말도 없었다. 혜는 대장이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싸움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공격부터 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수색대 사람들과 몇 번 친선을 목적으로 격투를 벌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직관한 적은 없었다. 혜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러한 점을 빼곤 대장은 마을을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대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정의’였다. 누구나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보살피고 마을의 공동체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책정해 주었으며 마을에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게 평등하고 공평하게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쓰고 있다.

혜는 대장의 저런 성격만 버리면 완벽할 거로 생각했다.

-갑작스레 공격부터 한 점 미안하네. 마침, 몸이 근질거리던 터라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옳지 않았어. 나의 실책이네. 못난 나를 용서해 주게나.

칼은 아이를 자신의 다리에 앉혀놓고 차를 마셨다.

자신이 키워 만든 허브차랑 다른 느낌의 차였다. 옥빛의 물에 은은한 향이 올라왔다. 한 모금을 마시자 씁쓸하고 향이 전반적으로 느껴졌던 허브차와 달리 은은한 향에 달콤한 맛이 더해진 매력적이었다. 칼은 지금까지 마셨던 차와 다른 느낌에 눈썹을 움찔거렸다.

대장은 칼의 반응을 보고 말했다.

-허브차에 꿀을 섞었다네. 찻잎의 향과 꿀의 단맛이 어우러져서 일품이지. 꿀은 우리 마을 특산품이거든 근처에 매화와 아카시아 군락이 있고 우리는 감자와 메밀을 심어서 주식을 삼아서 벌들이 꿀을 모으기 적당하단 말이지.

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칼은 혹여나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긴장하고 있었으나 대장은 그런 칼의 의도를 알고 피식 웃으며 찬장이 있는 곳으로 가 새로운 음료를 가지고 왔다.

-꿀을 이용해서 만든 음료야. 우리 마을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지. 아가씨 방금은 정말 미안했어요. 아줌마가 결례했어. 이 아줌마를 용서해 주겠니?

대장은 아이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음료를 권했다. 아이는 칼의 팔과 얼굴에 파묻고 있다가 눈치를 한 번 쓱 살피더니 컵을 양손으로 잡아 꿀꺽꿀꺽 마신다.

아이는 혓바닥을 놀리면서 컵에 남아있는 한 방울마저 남기지 않는다. 입가에 묻은 음료까지 다 핥아먹는다. 아이는 미처 알지 못한 단맛의 세계에 빠져든다. 기분이 좋아지며 해롱해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이는 지금 행복하다.

-통했나 보군.

아이는 컵으로 테이블을 치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대장을 봤다. 아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장은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음료 한잔을 더 따라준다.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가 혀에 닿을 때마다 아이는 목덜미에서 흐르는 전율에 몸을 꿈틀거린다. 아이는 그새 잔을 비원 더 달라고 하지만 대장은 따라주는 척하며 아이를 애태우다 따라주지 않는다.

-오늘은 그만. 단것 많이 먹으면 안 돼. 맛있는 건 적당히 먹어야 맛있어요. 우리 공주님.

아이는 애태우는 대장을 뾰로통하게 바라보았지만, 마지막에 공주님이라는 단어에 풀렸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장은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짓고 헤매게 말한다.

-결국 살아 돌아온 건 너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너에게 그런 일을 맡기다니.

대장은 헤매게 사정을 듣지 않고도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였다. 대장은 늑대의 새끼를 아무 일 도 없이 데려온 것에서 늑대들을 몰살시켰다는 것을 간파했으며 그런데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그들이 그 늑대들에게 당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혜가 데리고 온 ‘사람’은 혜를 도와준 사람 아니 구해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혜 혼자선 그 늑대를 물리치거나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장은 자기 생각이 혜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얼추 맞아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혜는 대장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칼과 아이를 만나게 된 경위를 대충 얼버무리고 칼이 데리고 다니던 AI로봇과 그가 방사능 처리반이라는 사실을 생략하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혜와 대장은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적막을 칼이 깼다.

-혜가 맡기엔 어려운 임무였습니다. 어째서 헤매게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긴거죠?

칼의 말에 대장은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이마를 받쳤다. 잠시 지끈거리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칼에게 말했다.

-우리는 늑대들에 의해 식량이 거의 떨어진 상황이었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작물들이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보다 저장해 놓은 분량은 턱 없이 부족했지.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냥 지역을 찾기 위해 수색대 대부분을 보냈었어.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아무 소식도 없었지.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남아있는 수색대를 이용해 늑대를 몰아내려 했지만 역시 터무니없이 적은 수라 임무를 진행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찰나에 마을 사람 몇몇과 혜가 지원한 거야. 혜는 목숨을 버리더라도 마을에 도움이 되고 싶어 했어. 그래서 결국 혜가 이런 고된 임무를 받게 된 거야.

혜는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혜는 가만히 임무를 수행하며 겪은 일들을 떠 올렸다. 처음 작은 오두막을 지으며 베이스캠프로 삼은 날까지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예는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산재하여 있던 수색 장소에서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갔을 땐 여기저기 혈흔이 그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생명을 유린당했던 동료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간혹 녀석들의 습격이 살아남은 대원들을 괴롭혔으며 쓰러뜨린 늑대들의 수보다 수색 전력의 손실이 더 컸다.

혜는 잡은 늑대의 가죽을 벗겨 몸에 두름으로써 늑대들을 잡아 죽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결국 혜는 마지막에 남은 대원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칼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이는 칼의 팔을 부여잡고는 오는 잠을 애써 벗어나려 얼굴을 비벼대었다. 대장은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혜에게 말했다.

-혜, 아이를 데리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니. 아이들에게 소개도 해주고.

혜는 코를 훌쩍이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이를 들어 안았다. 아이는 ‘이게 뭣이더냐’라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혜의 얼굴을 보고 혜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파토스에 가서 잠시 좀 들으라 하고. 이 녀석들을 키울 수 있을지 말지 알아야 하니까.

대장은 손가락 끝으로 늑대 새끼들을 가리켰다.

-네

혜는 대답하고 천막을 나섰다.

칼은 대장이 다시 혜와 아이가 없는 틈을 타 공격을 해올 것으로 생각했다. 방금의 호전적인 성향 대장의 모습은 정상인 보다는 싸움에 미쳐있는 사람 같았다. 혜가 나가자마자 칼은 대장이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까 봐 반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럼,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

대장은 자리에 앉은 채 기지개를 켜고 등을 활짝 피며 스트레칭하였다.

-내 이름은 마넬리. 마넬리 호넷이야. 반가워. 칼이라고 했나?

대장은 주먹을 쥐고 손목을 돌리고 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다.

-왜 아무 말이 없이 나 혼자서 이렇게 말하면 그쪽에서도 ‘네’라든지 ‘아니요.’ 라든지 간단히 대답이라도 해야지.

스트레칭을 끝난 대장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눈을 뜨고 칼의 시선에 맞추었다.

-응? 방사능 처리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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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을 24.06.13 32 0 12쪽
8 부탁 24.06.13 33 0 12쪽
7 대화 24.06.13 34 0 11쪽
6 오해 24.06.13 32 0 10쪽
5 늑대 24.06.10 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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