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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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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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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

DUMMY

혜는 아이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새 ‘루나’라는 이름이 생긴 아이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웅얼거리며 ‘우나-, 우아, 루-아, 루라’ 거리며 반복하며 말하고 있다. 혜는 말랑말랑한 루나의 손을 꼭 잡고 아직 어색한 발걸음을 내딛는 루나를 바라본다. 5살짜리의 동글동글한 뺨은 그 어느 것보다 유혹적이고 강력해서 꼬집어 보고 싶다.

혜는 길을 잘 가고 있던 루나를 들어 올려 끌어안고 볼을 꾹 눌러본다. 혜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는 잇몸을 드러내고 웃으며 웃는다. 혜는 기쁨과 행복이 섞인 눈동자를 내비치며 아이의 볼을 계속 찔러 본다. 몰랑몰랑한 볼이 탱글탱글하게 떨린다. 동생도 이랬을까?

어린 동생의 뺨도 루나처럼 불그스레 혈기가 떠오르고 동그랗고 부드러웠을까?

혜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이 루나만큼 어렸을 적엔 가족들과 그 험난한 고생길을 겪고 있었고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땐 아이를 안아주고 웃어주기보단,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했다. 동생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혜는 동생이 더욱 그리워져 루나를 다시 내려놓고는 꼭 안아주었다. 루나는 자신을 안아주는 혜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혜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때 루나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귀여운 배를 내밀고는 엉덩이를 뒤뚱거리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루나에게 다가왔다.

그 아이는 루나의 옷깃을 잡고는 두리번거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혜는 그것을 보고 루나를 놓아주며 아이를 보았다. 루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아이는 노아의 아들이었다.

-유다. 엄마는?

유다는 크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위로 치켜뜬 채 혜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만 끔뻑이며 루나의 옷깃을 부여잡고 흔들어 댔다.

그때 멀리서 유다의 엄마, 레나가 뛰어온다. 레나는 유다를 찾아 이곳저곳 뛰어다녔는지 그녀의 머리칼은 땀에 젖어 있었다. 레나는 속도가 점점 늦춰지더니 혜와 아이들 앞에서 몸을 숙이고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헐떡인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하얀 이마를 타고 내린 땀이 푸른색의 눈동자 옆을 지나간다. 유다의 눈동자는 그녀의 눈동자를 빼다 박았다.

-유다! 엄마가 집에 있으랬지! 얼마나 찾으러 돌아다녔는지 아니?

레나는 거친 숨을 한 번에 들이마시고 단번에 말을 내뱉었다. 혼내는 엄마의 어조에 관심 없이 유다는 ‘엄마’ 하며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유다의 갈색빛 곱슬머리는 그의 아버지 노아를 닮았다. 유다의 아버지 노아는 마을 수색대의 일원으로 당연히 마땅한 자원을 찾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간 상황이다.

-혜, 무사히 돌아왔구나.

-응. 안 본 사이 유다가 좀 큰 모양인데. 키가 꽤 컸어.

레나는 싱긋 웃으며 유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나 이내 곧 표정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이도 얼른 돌아오면 좋을 텐데.

혜는 레나를 포근히 안아주며 위로 해주었다.

-금방···. 금방 돌아올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레나는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눈망울을 숨기듯이 몸을 돌려 슬쩍 얼굴을 닦았다. 유다는 입을 빼죽 내밀고 엄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근데 그 아이는 누구야? 처음 보는데.

레나는 루나를 슬쩍 바라보고 혜에게 묻는다.

-아! 아아···. 그···. 이번에 돌아오며 생존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의 조카야. 이름은 루나.

레나는 약간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루나의 앞에 쪼그려 앉아 인사를 했다.

-안녕. 나는 레나 아줌마야. 여기 유다의 엄마지. 보아하니 유다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우리 유다와 친하게 지내주겠니.

루나는 레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멀뚱히 유다를 바라보았다.

레나는 루나의 뺨을 양손으로 쓰다듬었다.

-수색대가 돌아왔다!

어떤 사람의 외침이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혜와 레나가 동시에 바라보았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남쪽 문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레나는 홀린 듯 유다를 둘러메고 사람들의 흐름에 타올랐다.

혜도 따라가려 했으나 무슨 상황인지 모른 루나는 제자리에 선 채 사람들의 무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혜는 루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가볼까?

루나는 석연치 않았다.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과 엄마를 두고 스쳐 지나가던, 아니 도망가던 사람들의 무리가 연상된 루나는 그 검은색 차림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혜는 루나의 눈높이 맞춰 자세를 낮춘 뒤 루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이는 흔들리는 동공을 사람들에게서 혜로 옮겼다. 혜는 잡은 손에 떨림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떨고 있지?’

아이가 떨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혜는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한번 던지고서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칼에게 가볼까?

혜는 문득 칼이 떠올랐다. 아이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그나마 자신보다 오래 본 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칼이 누구인지는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어눌한 발음으로 ‘할’, ‘할’이라 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선 재촉하였다.

-그래 알았어. 한 번 찾아보자.


레나는 유다를 안고서 벽을 이룬 사람들 틈 사이로 고개를 이리저리 내밀며 마을, 입구를 살폈다. 마을 남쪽 입구의 경비병이 도르래를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 중 여럿이 경비병 옆으로 달려와 그를 도왔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문으로 수색대의 발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박차를 가하여 도르래를 돌리니 수색대의 모습이 완연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동료의 어깨에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고 누군가는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른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몇몇 기다란 뭉툭한 막대로 겨우 몸을 지지하고 있었고 몇몇은 입구 앞에서 주저앉은 채로 있었다. 얼핏 보았을 때 아직 새파란 20대의 청년들이 몇몇 있었고 거칠 대로 세월을 거친 중년들도 섞여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부상이나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고된 여정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들 중 제일 앞에 서서 곳곳이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수색대의 리더로 보이는 자는 왼팔에 하얀 손수건을 매고 있었고 매서운 눈매를 유지한 채 마을로 들어섰다. 그 사람이 마을로 들어서자 다른 수색대원 들도 뒤따라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로 들어왔을 때 그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앞장선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부상들이 더 많은 것이다. 들것에 실려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에는 흰 천으로 얼굴까지 덮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색대를 에워쌌다. 다리가 다친 아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어머니와 아버지,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렸던 연인을 만나 깊은 포옹하는 사람들,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사람들. 고된 여정에 웃음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들은 소중한 인연들과 다시 만나 다시 웃음을 되찾은 모양이다.

-레나! 유다!

그때 레나와 유다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레나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매일 밤 달에게 기도하며 무사 귀환을 바라던 남편의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레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노아! 노아! 우리 여기 있어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도통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요!

그리운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질서에 무지하다. 이곳저곳 산재한 사람들은 레나와 노아에게 둘 사이를 가로막는 벽과 같았다. 노아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열망은 그녀를 더욱 애타게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갈색 곱슬머리와 오뚝한 코, 크고 동그란 눈, 큰 키의 그이만 생각할 뿐이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남편의 모습이 더 선명해질수록 유다를 꼭 붙들고선 내달렸다.

사람들 사이로 그 뒷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은 레나가 애타는 목소리에도 돌아보지 않는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지금 환각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처음 들었던 소리는 거짓이었나? 온갖 의구심을 품으며 의심할 때 그 뒷모습이 확연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가 그 뒷모습을 쫓았다.

조금 더, 조금 더, 더 가까이!

그 뒷모습이 바로 코앞에 있다. 그만큼이나 가까이 왔다. 손만 뻗으면 된다. 이 순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집에서 원수라며 그렇게 모질게 굴 때가 얼마나 미안해지고 처량하게 느껴지던지. 그때!

뒤에서 레나의 어깨를 잡으며 누군가 멈춰 세웠다.

-여보···.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의 콧등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그의 모습이 아니지만 레나를 선명하게 바라보는 큰 눈동자가 노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레나는 숨을 헐떡이며 노아를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노아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다쳤어···. 여보.

그러고선 노아는 유다를 레나에서 받아서 들었다. 레나는 홀린 듯 노아에게 아이를 건네준다. 하지만 여전히 레나는 노아를 보고선 멍하게 서서 숨을 헐떡였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잘 지냈어. 아빠 다녀왔어요.

노아는 유다의 코에 자신의 코를 비비며 말했다. 유다는 처음 울음을 터뜨릴 표정이었지만 싱긋 웃는다. 코를 비비는 행동은 노아가 유다에게 곧잘 해주던 행동이었다.

레나는 노아와 유다를 보며 파란 눈동자에 눈물에 맺힌다. 물에 젖은 그녀의 눈망울은 호수같이 윤슬을 반짝이며 그 깊이를 알 수 없듯이 잔잔하다. 그녀는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내리는 화끈함을 느끼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그에게 안긴다.

-여, 여, 여보 여기서 이러면···.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녀의 체취와 고동이 느껴진다. 헐떡이는 그녀의 숨이 느껴진다.

노아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서방을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아내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는 아이를 안고 있지 않은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그녀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꼭 안았다.

그간 쌓였던 그녀의 울분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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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화 24.06.13 34 0 11쪽
6 오해 24.06.13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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