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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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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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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밤

DUMMY

하늘의 붉은 띠가 수평선에 걸칠 무렵 마을은 중앙 광장처럼 취급하는 넓은 공터에 모여 있다. 공터의 중심에는 격자로 세워 둔 통나무들이 있었고 그 곁에 마넬리가 서 있었다.

마넬리는 자신의 팔 길이만큼 긴 횃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기름을 묻힌 천을 덧대어 있다.

마넬리로부터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의 무리를 헤치며 와그너가 걸어 나온다. 와그너는 귀찮은 듯,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램프를 흔들거리며 시큰둥하게 나선다. 마넬리의 앞에 도달한 와그너는 램프를 열어 마넬리 쪽으로 들어 올린다.

마넬리는 횃대의 끝을 램프에 넣는다. 램프의 불은 천에 묻은 맛 좋은 음식을 알아차렸는지 게걸스럽게 천으로 옮겨 불타기 시작한다.

마넬리는 횃대를 태양이 있던 곳을 향해 들어 올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을 잠시 감상한다.

그녀의 옆에 쌓인 통나무들의 높이는 족히 3m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불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 옆의 나무들을 고작 정갈하게 쌓인 나무 막대기 정도로 느껴지게 했다. 타오르는 불이 담긴 그녀의 눈망울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녀의 입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감상을 마친 마넬리는 통나무를 등지고 돌며 뒤로 획하고 횃대를 던진 후 곧장 걸어 나갔다. 횃대는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붉은 곡선을 그렸다. 사람들은 불을 앞에 둔 나방처럼 홀린 듯 그 선을 바라보며 그것이 떨어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불이 나무를 완전히 집어삼키며 그 불의 끝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보다 신이 난 건 AI였다. AI는 처음 보는 축제의 현장에 혼이 빠져 사람들 사이에서 축제를 즐기는 척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한나의 존재를 까먹었다.

마넬리는 AI로봇의 존재를 마을 사람들에겐 한나가 새로 발명한 발명품이라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한나가 이렇게 솜씨 좋은 기술자라며 놀라워했지만, 와그너는 의심의 눈초리로 AI를 노려보았다.

AI는 루나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비록 최신 기술의 집결체였지만 실속을 따지자면 아이들처럼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이 천지일 것이다. 칼은 테이블에 앉아 천진한 AI를 보며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새 혜가 칼의 옆으로 와있다. 혜는 칼에게 음식 한 접시를 건네주며 말했다.

-먹어봐.

접시에는 잘 익은 닭고기 한 덩어리에 좋은 냄새가 피어오르는 소스가 둘러 있었다. 칼은 포크로 뼈를 발라내어 살코기를 한 움큼 입에 넣어 씹었다. 퍽퍽한 가슴살이었지만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목 넘김에 있어 어렵지 않았다.

-맛있군.

여러 직접 요리할 정도로 입맛이 까다로운 칼이 인정할 정도다.

-당연하지! 칸나 아줌마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운 닭인데!

-너도 한 접시 들지 그러나?

칼은 혜에게 음식을 권하지만 혜는 손사래를 치며 허허실실 거절했다.

-난 괜찮아. 요리하며 옆에서 계속 주워 먹어서.

사실 혜는 몇 없는 닭고기를 어렵게 구해내어 칼에게 대접한 것이다. 그녀는 곁눈질로 닭고기를 보며 곯은 배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 사람에겐 그럴 자격이 있지.

요리 책임자 격인 칸나에게 부탁한 결과 혜가 칸나에게 들은 말이다.

-그러니까. 남김없이 먹어. 우리 마누라가 그 녀석들을 보낼 때 얼마나 침울했는지 아나?

혜와 칼 사이로 후안이 술잔을 들고 끼어들었다.

-그 녀석들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방목해서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싹 먹어 치워.

그리고 술잔을 들고 들이마신다. 시원한 술에 대한 보답으로 속 시원하게 숨을 내뱉은 후 말한다. 그리고 칼의 접시에 있는 닭 다리를 잡으려 한다.

그때 칸나가 뒤에서 후안의 등을 세게 후려친다.

-정말 이 늙은이가 뭐 하는 짓이야? 먹을 게 없어서 남의 것에 손대면 어째?

후안은 반자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닿지도 않는 등을 손으로 더듬으며 몸을 꼰다.

-악! 카나! 이건 너무 아프잖아! 윽!

칸나는 후안이 아프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후안의 귀를 잡고 끌고 나간다.

-어딜 늙은이가 애들 사이에 끼어들어?

-아, 아, 아프잖아. 칸나!

요리를 하는 주방까지 후안을 끌고 간 칸나는 후안의 귀를 놓고 후안에게 몸을 돌리며 말한다.

-정말?

칸나가 후안에게 정말로 아픈지 묻는다.

후안은 자신의 귀를 매만지며 그렇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칸나는 후안의 팔을 잡고 끌며 말한다.

-알겠으니까 남 먹는 거 뺏어 먹지 말고 따라와. 당신 것은 따로 챙겨났으니까.

후안이 눈이 동그래져 칸나에 치근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진짜? 오늘 닭 다리 한 번 뜯나?

-아니, 닭죽.


늑대가 나타나 마을의 사냥꾼들이 실직하기 전까지 마을의 수확제는 다양한 고기와 술로 즐비하였다. 토끼, 사슴, 멧돼지 등 다양한 고기가 주를 이루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던 만큼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져 나왔다. 가끔 다른 마을 사이의 교류에서 얻은 소고기로 만든 음식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이 난리였다.

그러나 1년 전 늑대가 나타나 상황이 나빠진 후로 그 당시 동물을 좋아하는 파토스가 애완 목적으로 키운 닭 몇 마리를 잡았다. 그 닭들은 파토스가 다른 마을에서 겨우 얻은 병아리들을 키운 것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 녀석들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 후 파토스가 칸나에게 다른 닭과 병아리들을 넘겼고 후안이 축사를 만들어 그곳에서 닭을 키우고 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닭고기가 배급될 정도로 많지 않았기에 대부분 마을 사람은 닭을 푹 삶고 살코기를 뜯어 죽을 끓여 나눠 먹게 되었다.

혜가 닭 반 마리를 칼에게 주기 위해 애원했을 때 칸나가 쉽게 받아들인 것은 굴레에 빠진 수확제를 칼이 늑대를 처리해 줌으로써 벗어날 수 있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칼에 대해 감사함으로 혜는 지금부터 나아질 식량 상황과 어차피 나중에 먹을 닭죽을 생각하며 비록 지금은 배가 고프더라도 칼이 권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참는 것을 택했다.


혜가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챈 칼이 혜에게 닭 다리를 권할 때마다 혜는 고개를 돌리며 손사래를 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리던 혜가 무언가를 보더니 뭔가 우울감에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게 아닌가?

-왜 그러나?

칼은 갑작스러운 혜의 표정 변화에 그녀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 아니야. 얼른 먹어. 난 다시 칸나 아줌마를 도와주러 갈게.

혜는 곧장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혜의 행동으로 볼 때 칼은 혜가 무언가를 보고 갑자기 기분이 상했을 거로 생각하고 혜가 바라보고 갑자기 얼굴을 찡그렸던 곳을 쳐다보았다.

빌리다. 빌리가 닭죽이 든 접시를 들고 먹고 있었다. 튀어나온 앞니가 벌어져 있는 빌리의 구강 구조상 입을 제대로 다물 수 없어 입으로 들어가 음식과 침이 다시 새어 나오길 반복했다. 음식을 먹을 때 입을 다무는 법을 몰랐던 그의 모습은 파리가 음식에 침을 뿌려 먹는 것과 비슷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오로지 자신이 중요한 빌리답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오감을 만족시키며 디너타임을 보냈다. 빌리의 미성숙한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빌리의 곁을 떠났지만 파피 혼자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칼이 빌리의 괴기스러운 식사 장면을 확인하는 찰나 파피와 눈길이 맞았다. 참시 스치듯 지나갈 줄 알았던 파피의 눈은 활활 타오르는 불 사이를 두고 정확히 칼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칼은 다시 묵묵히 남은 고기를 먹었다.

루나가 깡충깡충 칼에게 뛰어온다. 이제는 완연한 아이의 얼굴을 한 루나는 얼굴에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칼에게 얼굴을 내밀고 눈을 반짝였다. 그 뒤로 넘실거리며 AI가 다가왔다.

-와~ 아이들의 체력은 장난이 아니군요. 저녁때가 되어서도 뛰어놀다니. 물론 이 녀석 빼고. 지금 배가 아주 고픈가 봐요?

칼은 AI의 말을 듣고 루나가 남아있는 고기를 얻어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은 혜에게 주려 빼놓은 닭 다리를 루나에게 주었다.

루나는 닭 다리를 보더니 입을 쩍 벌리며 웃음을 지었다. 칼은 루나가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말했다.

-뼈는 빼고 먹어라.

루나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아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칼은 막상 고기를 주고 나서 루나의 손이 온갖 흙먼지에 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루나는 손가락으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손끝으로 뼈 부분을 잡더니 살코기가 있는 부위를 입에 넣었다 뺀다. 고기가 있던 흔적도 없이 뼈만 남아있다.

-이놈 봐라. 될 놈인가?

AI기 루나의 장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듯 환호하며 말했다.

이 닭 다리는 결국 루나의 배 속에 잠든 악마를 깨운 모양이다. 아이는 배 위에 원을 그리며 쓰다듬더니 입을 삐죽 내밀고 서 있다. 칼은 그 신호가 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혜에게 가봐. 먹을 걸 나눠줄 거야.

아이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달려 나간다. 무작정 달려 나간 아이는 길 한복판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이의 행동을 보고 칼이 말한다.

-오른쪽.

아이는 뒤도 보지 않고 오른쪽으로 달려간다.

-저렇게 보내도 될까요? 저러다 길 잃어버리면 어쩌려고요?

AI기 루나를 걱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칼은 그런 AI를 보며 말한다.

-어차피 마을 안이니 찾기 쉬울 거다.

-뭐~ 아무렴.

AI는 디스플레이를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쪽으로 내비치며 말했다. 시간이 가도 줄어지지 않는 불길은 사람들이 가끔 불쏘시개나 장작을 불 속에 밀어 넣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장의 모습이 따라 하고 싶었는지 어설프게 따라 하다 뒤로 날린 장작에 뒷머리를 맞기도 했다.

-어때?

칼은 AI에게 물었다. AI는 칼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여전히 불을 바라보며 말한다.

-멋지군요. 이런 게 축제인가요?

AI는 불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이 단상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춤을 춘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있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손뼉을 친다. 이미 한껏 취해 술잔을 들고 소리를 치거나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다. 초라한 음식을 먹더라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걱정이나 시름이 없었다. 모여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고 회포를 풀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마치 사람 같군?

-네? 뭐···. AI니까요.

AI는 칼에게 디스플레이로 점이 3개 찍힌 평상시 얼굴을 내비치며 힘이 빠진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네?

칼의 진지한 어조에 AI는 반사적으로 칼을 향해 디스플레이를 돌렸다.

-일반적인 사람의 회복력은 어느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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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추모 24.06.13 30 0 13쪽
13 와그너 24.06.13 29 0 12쪽
12 수색대 24.06.13 29 0 11쪽
11 후안 24.06.13 32 0 12쪽
10 마넬리 24.06.13 31 0 12쪽
9 마을 24.06.13 32 0 12쪽
8 부탁 24.06.13 33 0 12쪽
7 대화 24.06.13 34 0 11쪽
6 오해 24.06.13 32 0 10쪽
5 늑대 24.06.10 40 0 11쪽
4 납치 24.06.10 45 0 10쪽
3 AI 24.06.10 50 0 14쪽
2 생존자 24.06.10 5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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