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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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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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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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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추모

DUMMY

마넬리는 수색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남문으로 향했다.

마넬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마넬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기다리던 얼굴을 찾아 헤매었다.

마넬리는 멀리서 그 얼굴을 찾았다. 그 사람은 혜와 칼이 먼저 만나고 있었다.

-이런 이미 늦어버렸군.

그자가 혜와 칼에게 냉정하고 매섭게 대하기 전 최대한 빨리 다가온 마넬리는 빌리를 바라보는 와그너의 눈빛을 알아차렸다. 와그너와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내온 마넬리는 와그너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야! 와그너.

방금 와그너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빌리는 그 자리에서 묘비를 세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넬리는 은근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와그너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마넬리의 의도가 통했는지 와그너는 빌리를 한 번 쓰윽 쳐다보고는 곧장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혜는 와그너가 떠나기 전 자신에게 모진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 갈까 노심초사하였지만, 예상과 다른 반응에 그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빌리. 내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나?

마넬리가 바닥에 아직 앉아 있는 빌리에게 말했다.

마을에서 빌리는 그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의 업무 수행 능력은 날이 갈수록 남들보다 뒤처지기 일쑤였다. 물론 재능이 없다는 것으로 그를 나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지만 그의 언행과 태도, 행실이 더해지니 마을 안에서 이리저리 업무를 옮겨갈 때 그전에 가르치던 사람들이 빌리가 쫓겨난 이유를 말할 땐 단지 그가 재능이 없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그의 언행과 태도, 행실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에서부터 비롯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남들도 좋아할 것이다. 내 생각이 옳은 것이다. 누군가 잘못을 하거나 실수하면 비웃음과 야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약자에게 항상 모욕적인 말을 내뱉으며 괴롭히고,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고 재밌어 보이거나 하고 싶은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해야 하며 어려운 일이 있거나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뒤 상황 보지 않고 지금 해야 할 건 꼭 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남들에게 민폐가 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모두가 나를 귀여워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 나는 네 물건을 만져도 되지만 너는 절대로 내 물건을 만지면 안 돼! 내가 남을 무시해도 남들은 자신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남들이 하는 말의 대상이 모두 다 자신인 줄 알고서 모든 대화에 한마디씩 거들어야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할 수 있는 게 제대로 없는, 집중력과 인내심이 매우 부족한 그를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수색대였다.

당연히 와그너는 빌리가 수색대로서 재능이 있기 때문에 인계받은 것이 아닌 마을 내에서 그를 받아줄 곳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었다.

빌리가 입단할 때 와그너는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정말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면 거름을 만들기 위해 똥이라도 찍어내게 하라고 열불을 내며 마넬리에게 말했지만, 사람으로서 그런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빌리가 싼 똥으로 키운 작물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단숨에 사그라든 와그너였다. 와그너는 빌리가 젊으니 짐이라도 옮길 수 있겠지, 하며 속을 스스로 달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를 받아들였지만, 오늘 귀환할 때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오는 길에 무겁다며 짐을 몰래 버려버려 텅 비어버린 가방뿐이었다.

마넬리의 강조된 억양에 빌리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역정을 낸다. 어떠한 교육도 학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빌리는 머리를 앞으로 불쑥 내밀고는 자기 딴은 최대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겨우 살이 붙은 앙상하고 연약한 팔을 힘껏 휘두르며 불만을 표한다. 빌리는 그 하찮은 팔에 어마어마한 괴력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빌리의 얼굴을 달아오르며 코끝에 생긴 여드름이 빨갛게 익는다.

혜는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철없는 행동이나 어리광은 오로지 어린아이들의 몫이다. 그건 어른이 절대로 넘볼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혜는 알게 된다. 그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혜는 그 모습이 루나의 눈에 비칠까 걱정하며 루나가 그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한 손으로 루나의 목덜미를 받친 채 루나를 몸쪽으로 더 끌어안았다.

와그너는 다시 화가 꿈틀대며 끓어올랐다. 수색 기간 빌리는 대원들과 갈등이 생기며 이런 식으로 화답하였다. 그런 빌리를 못마땅하게 여긴 와그너는 외지로 나온 상황에 힘들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매번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와그너는 빌리를 이해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련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와그너는 빌리를 묵사발이라도 내서 정신을 뜯어고치려 했다. 그러나 먼저 손을 쓴 건 그가 아니었다.

칼은 혜의 팔뚝을 잡고 자신의 뒤쪽으로 혜를 끌어당겼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칼은 빌리의 행동이 공격행동이라 여겼고 빌리의 목을 잡아채어 멀리 던져버렸다. 빌리는 날아가며 바닥에 몸을 3번 정도 튕기고 널브러졌다. 그 행동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막아설 수 없었다. 다행히 날아가는 빌리를 막아서는 건축물은 없었다.

칼과 혜의 품에 안겨있는 루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놀란 눈으로 빌리를 보았다.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이 후안의 작업장 앞에 모여 군중을 이루고 있다. 마넬리는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와그너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땅만 쳐다보고 있다. 칼과 혜를 맞이했던 문지기 마르코와 남문의 문지기도 있다. 수색대원들이 귀환할 때 문지기와 함께 도르래를 돌리던 장정 셋과 배를 만들다 후안에게 쫓겨난 두 명도 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은 수색대원들이 성하지도 않은 몸을 서로 부축하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한 팔로는 유다를 다른 팔로는 레나의 허리를 감싸안은 노아가 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인 대다수의 마을 사람은 대부분 이제 막 자신들의 일을 끝마친 모양인지 땀에 흠뻑 젖은 옷에 여기저기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각자의 연장이나 농기구 같은 것들은 들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던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둘러메거나 손을 잡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늙은 부모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혜와 칼 그리고 루나가 있다.

-자, 이제 옮기도록 하지.

후안이 말을 하자 무리 중에서 4명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튀어나왔다. 그들은 사람이 하나 누울법한 뗏목의 각 꼭짓점 부분에 서더니 일부러 잡기 쉽게 손잡이 대용으로 튀어나온 막대를 잡고 뗏목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갈 수 있게 땅이 갈라지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넬리와 와그너가 그 길을 따라나서고 뗏목을 든 사람들이 두 명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다른 4명의 사람이 다른 뗏목을 방금과 같은 방식으로 뗏목을 들고 선두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둘씩 행렬을 이루었다.

뗏목을 들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씩 무리에서 떨어지며 행렬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행렬의 끝에는 후안과 혜, 칼 그리고 루나가 있다.

하늘은 노을이 거의 다 떨어져 그나마 남아있는 잉걸불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길을 따라 늘어진 횃불이 어두운 저녁 하늘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밝게 비춰주고 있다. 흙바닥뿐인 길은 어디 한 곳 질척이거나 푹 파인 곳 없이 단정하다.

마넬리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시선은 바로 앞에 고정한 채 뒤돌아보지도 않고 길을 걸어갔다. 바로 뒤로 와그너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마넬리의 발뒤꿈치를 쫓으며 걸어갔다.

그 뒤로는 흰 천에 둘러싸인 무언가가 올려져 있는 뗏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각의 뗏목에는 선두의 것과 동일하게 흰 천에 쌓인 자들이 누워 있거나 온갖 잡동사니들이 올려져 있었다.

행렬이 서쪽 문에 다다르자, 문을 여는 도르래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도르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기 시작하며 호수처럼 깊어 보이는 강이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횃불은 강둑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마넬리는 그 횃불이 비추는 길을 따라 강가로 향했다.

마넬리는 길을 비추고 있는 횃불 하나를 들고 강가에 서서 강을 향해 들어 보였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동요 없이 흘러갔다. 주위에는 그 어떤 자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었다.

마넬리는 횃불을 들고 강으로 걸어 들어간다. 잘게 부서져 작은 돌 알맹이가 있는 강 가장자리를 지나 주먹 크기의 돌들이 가득한 곳에 이르렀다. 거의 무릎 이상으로 물이 차오르는 그곳은 횃불에 의해 의도치 않게 맑고 청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와그너가 말없이 그녀의 곁에 섰다. 뗏목을 들고 뒤따르던 이들도 물속으로 들어온다. 잘그락잘그락 돌을 밝는 소리만 사위를 채운다.

뗏목을 든 자들이 마넬리의 옆에 도착하니 뗏목을 물에 띄운다.

그제야 행렬의 시작부터 이어지던 침묵이 깨졌다.


-오늘 고생했네.

후안이 다시 작업장에 들어서며 칼에게 한 말이다. 후안은 랜턴의 불을 이용하여 작업실 안을 밝혔다. 칼은 그 말에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후안은 칼에게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그를 작업장으로 데려왔다. 작업장에는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법한 침대와 가구를 빙자하고 있는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비록 누추하지만 나에게 있어 마누라한테 쫓겨났을 때 아주 안락한 공간이지.

후안은 칼을 바라보고 그 침대 쪽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처음 혜가 칼에게 그녀의 집에서 잠시 지내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동생과 자신이 살도록 소박하게 지어진 집에서 칼이 지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침, 칼의 거처를 마땅히 정하지 못해 우려하여 따라온 마넬리와 후안의 말에 따라 후안의 작업장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럼 난 가보지.

후안은 한동안 자신의 작업실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침대가 푹신하다니 천장에 난 창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느니 자기가 만든 난로와 연통이 아주 뛰어나다느니 자신이 만든 가구들과 기구들에 대해 말을 늘어놓았지만, 칼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문 상태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혼자서 뻘쭘하던 후안은 칼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나가기 위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후안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뒤를 돌아보았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응?

후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무덤덤하게 물어보는 칼을 보며 저 자식이 진짜로 나에게 질문을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후안은 고개를 약간 떨구고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털듯이 양쪽으로 흔들고 다시 칼을 보았다. 여전히 그 얼굴이다.

-뗏목 말입니다. 마넬리와 혜가 말하니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군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죽은 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안은 자신의 이마를 짚고 한참을 서 있다. 그리고 칼에게 등을 돌린 채 문을 한 손으로 짚은 채 말했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죽은 이를 추모하는 것은···.

-그러니까 왜-

-자네는 슬프지도 않은가?

후안은 다시 칼에게 몸을 돌리며 외치듯이 말했다. 그러나 칼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이다.

후안은 그런 칼의 모습에 소름을 느꼈다. 칼의 표정에는 어느 슬픔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이제 보니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후안은 눈앞에 서 있는 저것이 사람인지 의심되었다.

후안은 칼과 어느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몸을 다시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정말 칼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칼이 처량하게 느껴진 후안은 툭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떠나보내는 자들의 마음속 무언가 응어리진 것이 있어. 사람들은 그 응어리를 풀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써보는 거야.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것도 그 방식 중 하나겠지.

그리고 후안은 칼을 다시 보며 말했다.

-어디 정답이라도 되었나?

칼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후안을 바라볼 뿐이다. 후안은 흘기듯 땅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작업실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칼은 짐을 침대 옆에 내려두고 후안이 자랑하던 침대에 걸쳐 앉았다.

후안이 가며 다시 깜깜해진 작업실에서 천장에 낸 창으로 들어온 달빛만이 칼을 비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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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 24.06.13 31 0 13쪽
13 와그너 24.06.13 29 0 12쪽
12 수색대 24.06.13 29 0 11쪽
11 후안 24.06.13 32 0 12쪽
10 마넬리 24.06.13 32 0 12쪽
9 마을 24.06.13 33 0 12쪽
8 부탁 24.06.13 34 0 12쪽
7 대화 24.06.13 35 0 11쪽
6 오해 24.06.13 33 0 10쪽
5 늑대 24.06.10 41 0 11쪽
4 납치 24.06.10 45 0 10쪽
3 AI 24.06.10 51 0 14쪽
2 생존자 24.06.10 5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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