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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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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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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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DUMMY

긴 아침을 깨운 것은 지금 조악하게 만들어진 나무 벽 틈 사이로 들어와 얼굴을 비치는 햇살이 아니었다. 코끝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가 정신을 깨우며 어서 일어나라고 안달복달하였다. 그 사람은 코를 벌렁거리며 눈을 살며시 떴다. 어젯밤 잠자리에 눕기 전 부어오른 얼굴에 바른 연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부기와 멍이 거의 빠진 상태다.

어젯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임시방편으로 나뭇잎을 채워 만든 침대는 여기저기 나뭇잎이 터져 나온 채 형태가 온전치 않았다. 게다가 기지개를 켜도 개운치 않은 몸 상태가 반증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에 한껏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 앉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오두막 안에 남아있는 어젯밤의 흔적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그 사람은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그 사람은 허겁지겁 나서며 오두막을 나오다 칼이 만든 나무 벽에 머리를 한번 박고 새끼발가락을 한 번 찍혔다.

-악!@

나무 벽을 밀고 한 걸음 나오면서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새끼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아야야~.

-왜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모닥불 근처에서 칼이 꼬챙이에 끼워 구운 물고기를 뜯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와 함께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계곡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아 온 것이다.

그 곁에는 아이가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입맛이 돌아와 전처럼 물고기를 흡입하고 있다.

-하나 들지?

칼이 물고기를 끼운 꼬챙이를 그 사람에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머뭇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받지 못했는데 칼이 손가락으로 오두막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 많이 잡아서 양은 충분하다. 먹지 않겠다면 권하지 않겠다. 뭐 저 정도는 이 아이 혼자서 거뜬할 거 같거든.

칼이 가리킨 방향에 손질되어 줄에 매달아 놓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꼬챙이를 잡고 모닥불 근처로 가 아이 옆에 앉았다.

여전히 먹기를 망설이는 그 사람 옆에서 아이가 물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두 눈을 반짝이며 그 사람을 봤다.

-얼른 먹지 않으면 아이가 그걸 뺏어서 먹을 거다. 얼른 먹어.

그 사람은 덥석 한입 먹었다. 아이는 아쉬운 듯했지만 이내 곧 먹고 있던 물고기를 다 먹어 치우고 모닥불 옆에 세워둔 잘 익은 물고기가 끼워진 꼬챙이를 들었다.

오랜만에 고기가 혓바닥에 닿으니 밤새 쌓인 근육통 따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살코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느낌은 근초목피의 생활을 해오던 자기 신체가 되살아나는 기분을 주었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몸이 살아나는 느낌 자체를 음미하려고 그 사람은 천천히 고기를 먹었다.

-얼른 먹지 않으면 다 뺏길 거다.

칼이 눈을 감고 다양한 표정을 짓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그 사람은 눈을 뜨고 모닥불에 꽂아둔 꼬챙이를 보았다. 물고기를 먹기 전 분명 물고기 12마리 양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단 6마리가 남아있다. 방금 또 아이가 꼬챙이를 하나 들었다.

-괜찮아. 먹다가 가시 찔리는 것보다는 낫지.

라며 그 사람은 천천히 가시를 골라내며 뼈에 붙은 살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다.

-이름이 뭐야?

-나 말인가? 난 칼이다.

그 사람은 끄덕였다. 대답을 마친 칼은 고기를 마저 먹었다.

-난 혜야. 안 물어볼 것 같아서 미리 알려줄게. 그런데 아이의 이름은 뭐야?

칼은 고기를 열심히 뜯고 있는 아이를 쓱 보고 혜에게 말했다.

-이름은 모른다. 아이가 말을 못 한다.

혜는 어렴풋이 아이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젯밤 혼자서 오두막을 나서려는 아이를 막을 때 눈치를 챘었다. 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했다. 아이는 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좋아 웃기만 했다.

-한···. 5살쯤으로 보이는데···.

칼은 아이를 쓰다듬는 혜의 눈빛이 어젯밤 자신에게 보여준 눈치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표독스러운 눈빛이 아닌 온화한 눈빛이다. 칼은 어제와 달리 지금은 혜가 안정된 상태이며 자신에게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로 대화하기가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칼은 혜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제 했던 말 기억 나나?

-무슨 말?

-나에게 납치범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

칼은 혜가 다시 경계를 보일까 걱정했지만 미안해하며 머리를 숙이는 혜의 모습에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왜 칼과 로봇을 보고 납치범이라고 오인했는지, 왜 아이를 오두막으로 데리고 왔는지 칼에게 해명하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야 할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혜는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당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여정은 혼자서 하기에는 매우 벅찬 것이었다. 황폐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피해 목적지를 향한 길을 찾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고된 여정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간혹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가 오히려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는데 변이된 동물들과 약탈자들을 만날 때이다. 눈으로 직접 보이고 살아서 움직이는 골칫덩이들 때문에 사흘을 밤낮없이 움직여야 했던 날을 혜는 가끔 악몽으로 되새김질할 때가 있었다.

이렇게 뒤집어진 세상 속에 서혜 혼자서 살아남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녀가 이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약탈자들을 막아서다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는 방사능의 제물이 되었다. 겨우내 동생과 살아남아 생존자들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결국 혜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핏줄, 동생을 맹목적으로 보살폈다. 눈앞에서 생명을 잃어간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로 인한 것이었다. 생존자 무리에 합류하게 된 혜는 소속된 집단 안에서 이 일, 저 일 해가며 동생을 보살폈다. 여정을 통해 박학다식한 부모님에게 이것저것 배운 탓에 어떤 일이든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해가며 조금씩 먹을 것 구해오면 동생에게 대부분 먹이고 남은 나머지를 먹으며 곯은 배를 부여잡고 밤을 보내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애지중지 돌보던 동생이 제 나이 또래 녀석들과 개구멍을 통해 마을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은 아이를 찾아 나서다 몇몇은 산을 타다 비탈길을 굴러 실족하였고 몇몇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수풀을 헤치느라 몸 이곳저곳에 상처들이 남았고 독풀에 찔려 며칠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긴 자들도 있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찾으려다 실종자만 늘어났다.

아이들의 가족은 그곳에 절벽이 있든 그곳에 독풀이 있든 길이 없는 야산이라도 서슴없이 돌아다니며 제 몸을 다치는 것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아이들을 찾아 헤매었다. 저 산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산에서 다른 아이의 이름이 들렸다. 한이 섞인 그 목소리는 절대로 쉬지 않았고 작아지기 커녕 더욱 커졌다.

혜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혜는 운이 좋았다. 동생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혜가 본 것은 칼이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색만 다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동생과 아이들을 끌고 땅에서 튀어 오른 ‘컨테이너’를 타고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혜는 망설였다. 그 검은색 차림의 사람들이 내뿜는 잔혹한 분위기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공포와 두려움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망설이던 그녀는 끝내 두려움을 이겨내고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내달렸지만, 컨테이너가 더 빨랐다.


-난 그 컨테이너가 있던 땅을 미친 사람처럼 팠지.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가족들도 도와주었지만,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어. 무언가 땅을 헤집었던 흔적이 있는데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어···. 정말 미칠 노릇이었지.

칼은 자신의 짙은 녹색의 제복을 내려 보았다. 칼이 알기로는 방사능 처리반은 짙은 녹색 외 다른 색의 제복을 지급받지 않는다. 칼은 긴 세월 동안 돌아다니며 여러 방사능 처리반을 만나보았지만, 검은색 제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매뉴얼에 따르면 방사능 처리반이 지하로 돌아갈 경우 계약 위반으로 엄청난 중죄이다. 만일 그 검은색 제복의 사람이 방사능 처리반이라면 직위의 박탈 및 지하도시로부터 영원히 방출되며 지하도시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사형이다.

-AI, 방사능 처리반에 대한 변경된 사항이 있는가?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칼은 AI가 업그레이드되었듯이 방사능 처리반에 대한 규율 변경이나 달라진 사항이 있는 줄 알고 물어보았으나 AI도 모른다. 칼은 더 이상 로봇에게 묻지 않았다.

-그럼 너흰 도대체 누구야?

혜는 칼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칼은 혜의 눈빛을 한참 바라보다 그녀의 눈에 맺힌 자기 모습을 보며 말했다.

-나는 방사능 처리반이다.

-방사능 처리반?

-세계 곳곳을 돌며 방사능 낙진 및 피폭 구역을 정화하지.

혜는 칼의 말이 진실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특수한 실험을 통해 인체 개조가 된 칼의 사정을 모르는 혜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말을 꺼낸 칼의 얼굴이 그가 내뱉은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칼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손질해서 매달아 둔 물고기를 가지고 와 꼬챙이에 끼웠다.

칼은 혜에게 잘 익은 고기를 주며 말했다.

-이제 양껏 먹어라, 방해꾼도 없으니.

칼은 눈짓으로 혜의 옆에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칼과 혜가 이야기하는 동안 배를 채운 아이는 잠들었다.

주인공은 나뭇가지로 불을 뒤적이며 불씨가 있는 나무를 모닥불에서 꺼냈다.

-천천히 먹어.

-어···. 응.

혜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혜는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 칼을 흘깃 쳐다보았다.

잠시 소강상태다. 꺼져버린 불씨처럼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열기는 아직 남아있었다.

-근데 어제 늑대들은 어떻게 했어?

혜는 어제부터 자취를 감춘 늑대들에 관해 물어보았다. 칼은 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쳐다보았다.

-다 죽였다.

그리고 턱 끝으로 바라보고 있는 곳을 찍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 산 중턱에 있는 늑대들도.

-뭐! 진짜?

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 다행이다. 사실은 늑대들 때문에 내가 여기 왔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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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탁 24.06.13 34 0 12쪽
» 대화 24.06.13 35 0 11쪽
6 오해 24.06.13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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