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337
추천수 :
4
글자수 :
281,647

작성
24.06.10 20:00
조회
40
추천
0
글자
11쪽

늑대

DUMMY

-분명 사람이라니까요! 그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다른 생존자인가? 그럴 리가···.

지금 이 핵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지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는 거의 없다. 어딜 가나 먼저 반겨주는 건 주체하지 못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사능이니까.

그러나 간혹 생존자들이 나타나는 데 이들의 출신은 정확하지 않지만, 매뉴얼대로라면 핵전쟁의 피폐가 닿지 않은 곳에서 살던 사람이거나 폐쇄적인 지하 도시의 환경을 버티지 못해 도망쳐 나오거나 지하 도시의 체계가 붕괴하여 지상으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상에서 운명을 다하지만, 운이 좋게 살아남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은 끝이 좋지 못하다. 그렇기에 방사능 처리반은 생존자들을 다시 지하 도시로 귀환시킨다. 인류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그나마 남은 인구수를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생존자 귀환 시스템은 방사능 처리반에게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대거 동원한다. 비율로 따지자면 방사능 처리반이 3% 나머지는 로봇이 처리한다. 이 로봇은 생명체가 아직 살만한 곳을 중점으로 생존자를 찾는다. 생존자를 발견할 경우 생존자와 시설까지 동행하여 귀환시킨다.

칼이 야영한 곳을 기준으로 30km 이내 구역은 이미 칼이 정화를 완료한 구역으로 로봇의 수색 지역이다. 어제까지 방사선 피폭 지역에 있다 이곳으로 온 아이 말고는 생존자가 남아있을 리가 없다.

-로봇이 생존자를 놓칠 리가 없는데···. 아니면 아이처럼 귀환 조치가 불가한 상황인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기억나나?

-분명, 동쪽으로 갔어요.

칼은 로봇이 알려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이 저물기 시작해 모닥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속은 그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혀를 차며 칼은 어둠 속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저 쳐다본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러한 막막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칼과 로봇은 주변을 샅샅이 관찰하였다. 하지만 아이를 데려간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은 없었으며 그자를 특정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짐을 뒤지거나 가져간 장비는 없었다. 다만 도끼, 망치가 달린 무거운 방패를 옮기는 시도를 했었는지 방패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약간 움직인 자국이 있었다.

-사라진 물건은 없군. 식량도 그대로다. 약탈자로 보기엔 어렵군.

-의외로 풍족한 삶을 사나 보죠.

-그런데 무기는 왜 가져가려 했을까? 필요해서?

-아니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 사람 막대기 같은 무기로 저를 내려쳤거든요. 무기를 가지려고 하기보단 없애버리려고 그런 거 같아요.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럼 다른 인상착의는?

칼은 일말의 희망을 잡은 듯 그간 찌푸렸던 미간을 풀었다.

-털가죽을 댄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었어요. 키는 약 170cm, 얼굴은 사슴 뼈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골격이나 체형으로 봐서는 여성으로 추정됩니다.

로봇의 말이 끝나자마자 칼은 벗어두었던 외투를 입기 시작한다. 방패에서 도끼와 망치를 꺼내 자신의 벨트에 건다.

-AI, 네가 랜턴이다.

칼은 AI에게 단호하게 말하며 어둠으로 들어갔다.

-가, 같이 가요!

AI는 칼의 왼쪽 어깨 위로 날아들어 그의 앞길을 비춰주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이마에서 느껴졌을 때 아이는 눈을 살며시 떴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말 오랜만에 천장이 보였다.

성인 손목 굵기 정도의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나무 천장은 한눈에 거의 다 보일 정도로 넓지 않았다. 천장의 한쪽 구석에는 양철로 된 관이 지붕을 관통해 있다.

그 관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작고 조잡한 주물 난로가 있었으며 난로 위로 겉면에 녹이 슬기 시작한 양철 주전자가 하나 놓여있다. 주전자의 주둥이와 뚜껑의 구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방 전체의 넓이로 봤을 땐 어른 두 명이 누우면 될 정도였고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는 일반적인 성인 한 명이 눕기에 적당한 폭과 길이를 가졌다.

이 침대는 나무로 만든 뼈대에 나뭇잎들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천으로 덮은 것으로 매트에 비해 투박하고 불편했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침대에 걸터앉았다. 일어나며 이마에서 떨어진 물수건을 주워 침대 위에 올려놓은 뒤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았다. 아이는 열이 떨어졌는지 그대로 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잘 열리지 않는 문이 몇 번 끼익~ 끼익~ 소리를 내더니 퍽 하며 문이 열렸다. 아이는 침대 구석으로 도망갔다.

아이의 눈에 비친 광경은 어느 털북숭이가 뼈로 만든 투구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아! 미안.

그 대상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아이에게 공포감을 유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사과하며 가면을 벗었다.

투구를 벗으면서 그 사람은 고개를 휘저으며 긴 머리를 찰랑 흔들었다. 긴 머리가 어깨 밑으로 떨어지며 윤기를 내고 있다. 그 사람은 투구를 옆에 끼고 아이가 걸터앉고 있었던 자리에 앉아 아이 쪽으로 상체를 돌렸다.

방을 가득 채우는 불빛이 뒤틀려 생긴 벽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일렁거리며 갸름하고 하얀 얼굴에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날카롭고 큰 눈망울에 시선을 빼앗긴 아이는 이내 곧 그 눈동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져 그녀의 눈가에 있는 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

그 사람은 아이를 보고 웃었다. 반달 같은 눈웃음에 아이의 긴장감도 풀어졌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 미숙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그 사람은 코를 찡긋하며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전자 쪽으로 향했다. 주물 난로 위쪽에 작은 찬장에서 컵을 꺼내 주전자에 있던 물을 따라 찬장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사이 찬장 왼쪽 구석에 있던 작은 절구를 꺼내 약초와 어떤 가루를 넣고 빻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을 공들였고 어느덧 뜨거운 물에 아직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있을 즈음에 빻은 것들을 경단처럼 둥글게 빚어 아이에게 건넨다.

-꼭꼭 씹어 먹으렴.

아이는 그것을 양손으로 받아 한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러가며 경단을 꼭꼭 씹었다. 처음엔 쓴맛이 느껴져 거부감이 일었지만 이내 곧 고소한 맛과 은은한 단맛이 입안을 떠돌았다.

거부감이 일 때 아이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가 고소함과 단맛이 느껴져 얼굴이 확 펴질 때 그 사람은 아이가 너무 귀여워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하하, 내가 먹을 땐 그냥 약초만 넣어서 먹었는데 너에게 그렇게 해주면 써서 못 먹을 거 같아서 감미료 좀 넣었어. 열이 나고 몸이 좋지 않을 땐 이게 좋아.

말하고 나서 따뜻한 물을 아이에게 건넨다. 아이가 컵을 받고 나서 다시 그 사람이 말했다.

-따뜻한 허브차까지 마시면 효과가 더욱 좋아지지.

‘허브차’

‘내가 키운 허브를 넣고 끓인 허브차다. 아마 오늘 밤은 푹 잘 거야.’

아이는 칼이 떠올랐다. 아이는 급한 용무가 생긴 사람처럼 집을 나서려 했다.

그 사람은 아이의 팔을 잡고 말렸다.

-안돼, 지금 나가면 위험해. 그리고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이는 그 사람을 보고 울상을 지으며 소리를 낸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는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발버둥 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아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며 막아선다.

그 사람은 아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안고 있기만 해도 데일 듯이 뜨거운 아이의 상태만 봐도 보낼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해가 완전히 저물어 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있는 이곳을 제외하고는 빛이 들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의 발버둥은 끝나지 않는다. 더 막아설수록 아이는 더욱 용을 써가며 발버둥 친다. 자연스레 아이의 체온은 올라가기만 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놓아준다.

품에서 벗어난 아이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발버둥 칠 때 몰랐던 두통과 어지러움이 갑작스레 몰아쳐 아이는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깜짝 놀란 그 사람은 아이를 다시 침대로 옮겨 물수건을 아이의 이마에 올렸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아이의 몸에 한기가 돌지 않게 이불로 아이의 몸을 꽁꽁 싸매고 주물 난로에 장작을 더 넣어 불을 더 세게 지폈다.

이제 해줄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그 사람은 아이를 걱정스레 내려다보며 기도 할 뿐이다.


아우우우~


늑대다. 얼마 전 여기 근처에 자리를 잡은 늑대 무리다. 요즘 이 녀석들이 숲속을 갈취하듯 동물들을 잡아먹은 덕분에 토끼나 사슴 같은 동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만족할 줄 모르는 이 녀석들을 드디어 사람을 타깃으로 잡은 것일 것이다.

그 사람은 작은 칼을 안주머니에 꺼내고 끝을 뾰족하게 깎은 나무창을 들었다.

녀석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차츰차츰 가까워진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뭇가지로 세운 벽 너머로 들려온다. 앞에서, 뒤에서, 양옆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 사람은 창을 앞으로 향해 들고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한다.


쿵! 쿵! 쿵!


그 사람은 몸을 움츠리고 지붕을 쳐다본다.

어떤 녀석이 지붕 위로 올라왔다. 녀석이 움직이는 소리가 고스란히 벽을 타고 내려온다. 떨어지는 흙먼지가 녀석이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팍! 팍!


이번에 벽에서 들려온다. 녀석들이 몸을 던져가며 집을 부술 기세다. 녀석들은 난동은 가세가 되어 곳곳에서 우지끈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제 가망이 없다.

이제 그 사람은 창을 내려놓고 외투 같은 털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안았다. 그대로 숨죽이고 있다. 여차하면 달려 나가 도망칠 계획이었다. 외투를 단단히 묶어 한 손으로 들 수 있게 했는데 이는 팔 하나라도 저 녀석들에게 내주고 아이를 들고 도망가기 위함이다.

조용해졌다. 주위가 고요하다.

분명 녀석들은 이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녀석들은 방심시킬 작정으로 합을 맞춘 것임이 틀림없다. 그 사람은 함정에 걸리지 않고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콱!


늑대 한 마리가 벽을 뚫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람은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고 늑대에서부터 멀어졌다. 그 사람은 놀랬지만 여차하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늑대가 흥분하고 고갯짓을 하며 사람을 향해 짖으며 위협을 가할 줄 알았으나 끼깅거리며 공포에 빠진 상태가 역력했다. 그러다 갑자기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고 머리가 뒤로 쑥 빠졌다. 그 사람은 아이를 내려놓고 이제 늑대가 사라져 구멍만 덩그러니 남은 곳을 살폈다. 늑대가 있던 흔적도 없고 어떠한 낌새도 없었다.

그때

한 손이 튀어나와 그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방사능 처리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변이(2) 24.06.13 31 0 11쪽
19 변이(1) 24.06.13 31 0 12쪽
18 그리움 24.06.13 29 0 12쪽
17 축제의 밤 24.06.13 28 0 11쪽
16 문양 24.06.13 30 0 19쪽
15 수확제 24.06.13 29 0 10쪽
14 추모 24.06.13 30 0 13쪽
13 와그너 24.06.13 29 0 12쪽
12 수색대 24.06.13 29 0 11쪽
11 후안 24.06.13 32 0 12쪽
10 마넬리 24.06.13 32 0 12쪽
9 마을 24.06.13 33 0 12쪽
8 부탁 24.06.13 34 0 12쪽
7 대화 24.06.13 35 0 11쪽
6 오해 24.06.13 33 0 10쪽
» 늑대 24.06.10 41 0 11쪽
4 납치 24.06.10 45 0 10쪽
3 AI 24.06.10 51 0 14쪽
2 생존자 24.06.10 59 0 13쪽
1 24.06.10 99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