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좀 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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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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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당신의 능력 좀 빌리겠습니다.

DUMMY

이태남.

클 태(太), 사내 남(男).

큰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 말로는 당시 유명한 작명가한테 비싼 돈 주고서 받아 온 이름이라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이름을 돈 받고 파는 사람을 작명가라 할 수 있을까?

아마, 동네 이장님이나 아버지 본인이 직접 지었을 것이다.


여하튼.

큰 인물로 자라야 할 이태남의 인생은 한 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바로, 대여(貸與).


“색종이 남은 거 좀 빌려줄래?”


이태남의 학창 시절은 가난했다.

이태남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무렵, 일용직 근로자였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탓에, 이태남의 어머니는 쉬는 날 없이 일하며, 홀로 이태남을 키워야 했다.

정말 간신히.


“또 준비물 안 챙겨왔어?”

“응. 헤헤.”


안 챙긴 것이 아니라 챙길 수가 없었던 것이었지만.

굳이 그 부분을 이태남이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이렇게 빌리는 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이태남에게 빌리는 행위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아니,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하게 된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빌려주면 나중에 갚을게.”

“이거, 쪼가리 남은 거면 돼?”

“응, 충분해.”

“뭘 갚아, 그냥 가져.”


경우가 좋으면, 이렇게 대가없이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좋은 경우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야, 너 저번에 빌려 간 지우개 언제 갚을 거야.”


지우개 귀퉁이만 조금 남은 거 빌린 건데, 새것으로 갚으라던 놈.

가끔, 이런 놈들한테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억울했지만, 별수 있나.

빌렸으면 갚는 게 원칙인걸.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갚아야지.

물품으로 갚을 능력이 없던 이태남은 일주일간 놈의 가방 셔틀 노릇을 해야만 했다.


“다음에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약속한 일주일의 마지막 날.

놈의 탐욕스러웠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제 친구들이랑 시시덕거리던 대화 내용도.


“저 거지새끼는 갚은 능력도 없으면서, 빌려달래. 크큭.”

“야 그래도 못 돌려받으면, 아깝지 않냐?”

“어차피 버리려던 건데 뭐. 덕분에 일주일치 꼬붕도 생겼었잖아.”

“올. 창조경제.”


놈은 기름기 흐르는 볼을 씰룩거리며, 더 크게 시시덕거렸다.


“우리 아빠가 저런 사람들은 평생 저렇게 빌리면서 산대. 갚지도 못하고. 에휴,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13살이 끝나가는 무렵.

이태남은 깨닫게 되었다.

빌리는 행위는 생존 방식이 아닌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태남은 더 이상 빌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된 그는 반대의 입장에서 살 게 되었다.



* * *



딸랑딸랑.


두꺼운 매장 문이 열리며, 문 위에 달린 벨이 울려댔다.

그 소리에 이태남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 세···.”


매장으로 들어선 남녀를 향해 환영 인사를 뱉으려던 이태남이 말을 멈추었다.

서비스 마인드가 충실한 그가 인사를 멈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들의 옷차림.

남자는 깔끔하게 넘긴 포마드 헤어.

여자 또한 깔끔하게 넘겨 묶은 포니테일 헤어였다.

둘 다 공통으로 깔끔한 스타일이었는데, 너무 깔끔하다는 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신흥 사이비인가···?’


이런 의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흰색 정장 세트에, 흰색 셔츠까지.

설마, 안에 입은 속옷까지 흰색은 아니겠지.


그렇게 흰색 구두까지 훑은 이태남이 눈동자를 다시 위로 올리자.

그의 인사가 멈춰진 두 번째 이유가 밝혀졌다.


“빛의 사도···?!”


이태남의 눈동자가 남녀 옷 카라에 달린 배지에서 멈췄다.

가운데 지구 모양의 문양을 휘감는 곡선들.

지구를 감싸는 빛을 형상화한 배지가 영롱한 금빛을 뽐내고 있었다.


‘저 배지라면, 국내 최고 길드 아이테르 길드에서도 가장 높은 직급인 빛의 사도에게만 수여한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놀라움의 감정이 이태남의 커진 눈동자에 가득했다.


“아니···. 두 분이 여길 어떻게···.”


격하게 놀란 이태남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말을 간신히 이었다.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입구에 선 남녀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이 이태남을 향해 걸어왔다.


“저희를 아신다니 소개는 따로 할 필요 없겠군요. 혹시 이태남 대표님 맞으십니까?”


금방 다가온 남녀 중 남자가 이태남을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목소리 톤은 부드러웠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네, 네. 맞습니다.”


위압감에 눌린 탓인지 이태남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표님이 운영 중이신 ‘태남이의 무기 대여소’ 기업을 매각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네?”


간신히 줄어들고 있던 이태남의 눈동자가 다시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 뭐라고···.”

“이곳 본점을 통틀어 전국에 퍼진 50여 개의 분점들, 그리고 대여 사업 전권을 매각하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놀라운 상황에 이태남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빛의 사도가 우리 매장에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갑자기 내 사업을 매각하겠다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6년의 삶 중에서 가장 기이한 날이었다.


딱!


이태남이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굳자,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최면에 풀린 듯 이태남이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좀 옮겨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남자가 문 쪽으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아, 죄송합니다. 놀라서.”


이태남이 괜히 자기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안에 접객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로 가시죠.”


이태남이 매장 좌측에 마련된 작은방을 향해 손짓했다.

이어서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뒤쪽에서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탁.


“뭐, 마실 거라도···.”

“저흰 괜찮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이태남이 음료를 권했지만, 남녀는 거절 후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착석했다.

뻘쭘해진 이태남이 어영부영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자마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이태남 대표님의 무기 대여 사업. 매우 훌륭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태남이 소파 의자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여자의 말에 귀 기울였다.


“약 6년 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게이트와 마수의 존재. 그리고 그들과 맞서기 위한 각성자, 소위 말하는 헌터의 등장.”


여자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급변한 세상에서 제일 먼저 적응한 건 헌터들도, 협회도 아닌 이태남 대표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마수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헌터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를 대여해주는 사업이라니. 저희 길드장님도 이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박수를 치셨습니다.”


이태남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 바닥에 있으면서, 이런 칭찬은 또 처음 들어보네.


“사업 시작 5년 만에 국내 시장 장악에 이젠 해외 시장까지 노리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태남의 반응에 남녀가 슬쩍 시선을 나눴다.

시선을 나눈 후 이번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 사업을 높이 평가하여, 저희 길드장님께서 좋은 조건에 매각하고자 하십니다.”


남자가 말하는 사이 여자가 자기가 메고 온 가방을 뒤적였다.

잠시 뒤적거리더니 하얀색 파일철을 꺼내어, 탁자 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저희 길드장님께서 직접 작성하고, 검토하신 계약서입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이런 걸 주셔도 저는···.”


이태남이 손사레를 치려는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눈동자에서 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하. 일단 한 번 보기라도···.”


이태남이 쓴웃음을 지으며, 계약서를 슬며시 꺼냈다.

꺼내든 계약서는 꽤 두께감이 있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길래···.’


흥미로운 무게감에 이태남이 천천히 계약서를 훑기 시작했다.


두께감만큼 내용이 많았던 탓인지.

이태남이 계약서를 완독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이태남의 맞은편에 앉은 남녀는 그가 완독할 때까지 말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탁.


이태남이 탁자 위에 계약서를 다소 거칠게 던졌다.


“이게 길드장님이 직접 작성하신 계약서라고요···?”

“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저런 질문을 하는 당신들도 참···.”


이태남이 손으로 자기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애초에 사업을 넘길 생각도 없었지만,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진짜 너무하네.”

“···.”

“제 기업 가치 평가액은 확인해 보고, 매각 금액 설정하신 겁니까? 그리고 매각 조건들이 이게 뭡니까?”


이태남이 계약서를 집어 들곤, 종이를 거칠게 넘겨댔다.


“저를 무슨 동네 바보로 아나.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헌터, 게이트 세상이 시작되면서 저도 이 바닥에 바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은 경험이 있는데, 이딴 걸 계약서라고 내밀어요?”


이태남이 남녀를 향해 계약서를 흔들어대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에 비해 남녀는 표정 변화 없이 이태남에게서 시선을 고정했다.


“자기 길드가 소중한 거 알면, 남의 사업체도 소중한 걸 알아야지.”


이태남이 계약서 뭉치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계약서 뭉치의 가운데 부분이 잔뜩 꾸겨졌다.


“대리인 앞세워서 이딴 계약서나 들이밀고. 진짜 어이가 없네.”


이태남이 꾸겨진 계약서를 탁자 위에 다시 툭 던졌다.


이 무기 대여 사업은 이태남의 모든 것이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왔는가.

빌리는 입장이 아닌, 빌려주는 입장이 되기 위해.

이제 진짜로 ‘내 것’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고작 이딴 조건을 들이밀어?

이건 매각이 아니라 강탈하겠다는 거잖아.


이태남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한숨을 푹 쉬어댔다.


“대리인···.”


이태남의 분노를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남자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저희 길드장님이 아닌 저희 같은 대리인이 와준 것에 감사하셔야 할 텐데요.”

“뭐요?”


남자가 꾸겨진 계약서 뭉치를 손으로 쓸었다.


“애초에 이태남 씨 같은 일반인이 저희와 이렇게 마주한다는 거 자체가 매우 희귀한 경험일 텐데. 감히 저희 길드장님이랑 대면하시려고 하다니.”


남자가 계약서를 손으로 쓸어대며, 구겨진 부분을 피워댔다.


“정말 오만하네요.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남자가 이태남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살기도 자기 것에 대한 소유욕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오만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자만심이 넘치는 거야.”


이태남이 남자에게 시선을 똑바로 맞추었다.


“박동팔한테 가서 전해. 정 내 사업 갖고 싶으면, 제대로 된 계약서 들고, 직접 찾아오라고.”


이태남의 말에 남자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씰룩거리는 눈썹.

그것은 분명 분노였다.

억지로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분노.


“감히 우리 길드장님 본명을···.”

“사람 이름 부르는데 ‘감히’가 어디 있어?”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후회는 니들을 이 방에 들인 지금도 뼈저리게 하고 있어.”


남자가 이를 빠득거렸다.

눈동자에서 전보다 짙은 살기가 느껴졌지만, 이태남은 되레 웃음이 나올 뻔했다.

곱상하시던 태도가 점점 일그러지네, 아주.


“이태남 씨 뜻은 잘 알겠습니다.”


남자가 엉덩이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흰 분명히 기회를 드렸습니다. 기회를 저버리고, 후회할 짓은 이태남 씨가 하신 겁니다.”


남자가 거칠게 발을 굴러대며, 방을 빠져나갔다.

여자는 계약서를 급히 챙긴 뒤 남자의 뒤를 따랐다.


“지랄하네.”



* * *



약 한 달 후.


-속보입니다. 헌터 전용 대여 사업을 운영 중인 이태남 대표의 부당거래 내역이 발견되었습니다. 해당 거래 내역이 공개되자 그동안 이태남 대표의 매장을 이용하던 헌터들은 크게 분노하여, 전국 매장을 테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현재까지 책정된 피해 규모는···.


TV 속 여자 아나운서가 심각한 내용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뉴스 내용을 읊었다.

그 차분한 목소리는 이태남에게 더 깊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왔다.


“개같은 아이테르 새끼들⋯.”


이태남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발을 굴렀다.

구른 그의 발끝에 차인 소주병이 바닥을 나돌더니, 다른 병과 충돌했다.

병들끼리 부딪히면서 난 청아하면서, 날카로운 소리가 이태남의 귀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태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소주병을 입에 털어댔다.


“에이, 씨 다 마셨네⋯.”


이태남이 빈 소주병에 한숨을 가득 불어넣었다.


“하⋯. 인생 왜 이렇게 됐냐⋯.”


이태남이 채워지지 않는 소주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술이나 사러 가자⋯.”


이태남이 비틀거리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사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 살이 꽤 빠진 상태였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무거웠다.


쨍그랑쨍그랑.


이태남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주병들을 발로 툭툭 차댔다.

그렇게 소주병을 하나씩 차댈수록 현관문에 가까워졌다.


철컥.


“후⋯.”


이태남이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밖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빌어먹을.


“밖에 나오니까 더 술이 땡기네.”


이태남이 터벅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바닥에 닿는 그의 발걸음에는 그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무력함, 허탈함, 그리고 원통함.


아이테르 길드의 대리인이자 ‘빛의 사도’들이 다녀간 후.

정확히 2주 뒤에 문제가 발생했다.


-“아니, 이태남 대표님 거래를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되지!”


시작은 기존 거래처들과의 작은 마찰이었다.

작은 마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찾아올 큰 문제의 시작이 될 스노우볼이었다.


기존 거래처들과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쓴 적도 없는 이중장부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점점 큰 사건들이 이태남의 사업에 휘몰아쳤고.

사태를 막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이태남은 그간 쌓아온 거래처, 고객, 신뢰를 한 순간에 잃었다.

아니, 빼앗겼다.


“아이테르 개자식들.”


이태남의 사업이 점점 붕괴하는 찰나.

아이테르는 귀신같이 무기 대여 사업을 시작했고, 이태남의 거래처들과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작 한 달.

국내 무기 대여 사업은 완전히 아이테르가 장악했다.


이태남이 경찰과 헌터 협회의 긴 조사를 받고 나온 후.

그에게 남은 것은 두 개뿐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백억의 빚.

그리고, 아이테르 길드의 대리인 남자가 남긴 문자.


- 상황이 이렇게 되어 매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안타깝기는 개뿔이!”


이태남이 자기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스마트폰이 콰직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뒹굴었다.

이제 이태남에게 남은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하⋯. 씨발, 씨발, 씨발⋯.”


이태남이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참을 자책하던 이태남은 바닥을 향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끝이다. 술이나 먹고 끝내자.”


이태남은 다시 걷기 위해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그때, 그의 눈에 익숙한 간판이 들어왔다.


「남이 무 여소」


이태남의 가게 간판.

테러를 당한 탓에 중간중간 사라진 글자가 많았지만, 그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기가 처음으로 갖게 된 ‘내 것’이었으니까.


“개새끼들. 아주 아작을 냈네.”


이태남은 터덜거리며,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난에 대비하여 두껍게 만들어 두었던 철문도.

언제나 고객들을 맞이했던 카운터도.

항상 준비되어 있던 무기들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거 하나 남은 건가⋯.”


이태남은 매장 구석에 홀로 남아있는 가죽 의자로 시선을 옮겼다.

다 타버린 탓에 가죽의 형태는 온전치 않았지만, 그의 몸을 뉘기엔 충분했다.


풀썩.


이태남이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의자에서 전해지는 강한 탄내가 그의 코와 눈을 자극했다.

그 자극에 이태남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개새끼들⋯. 감히 내 사업을, 내 모든 것을⋯.”


이태남이 양손으로 두 눈을 막았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슬픔과 분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 운 좋게 각성했다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그깟 능력 각성이 뭔데. 노력도 없이 얻은 능력으로 세상을 다 가지려고 하는 건데.”


이태남이 이를 빠득거렸다.


“내가 능력자로 다시 태어나면, 박동팔 그 새끼한테 꼭 복수한다. 남의 걸 아무렇지 않게 뺏는 그놈한테 이 무력함과 원통함을 느끼게 해주겠어.”


스스스.


그때, 앞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태남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소리?

아니, 뭔가 달라.


이태남이 두 눈을 가린 손을 천천히 뗐다.

그리고, 정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키에엑⋯.”


지옥의 망령.

어둠 속성 마수 중에서도 상위급 마수.

상위급 헌터도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마수가 이태남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냈다.

서슬 퍼런 손톱을 마주하자, 이태남의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갑자기 무슨⋯. 숨겨져 있던 게이트가 터졌⋯.”


던전 브레이크인가 싶어 이태남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당장 시야에 잡히는 게이트는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 흔적도 안 보이고.

헌터들도 보기 어렵다는 지옥의 망령까지 나타난다고?


‘진짜 이번 생은⋯.’


고통에 대한 인간의 감정 변화는 다섯 단계라 했던가.

아이테르에게 사업을 뺏긴 순간부터 마수를 마주한 고통은 이태남에게 빠른 감정 변화를 일으켰다.

부정, 분노 및 후회부터 협상, 우울감까지.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수용 단계.


“그래, 죽여라. 어차피 죽을 목숨. 혹시 몰라, 희귀 마수에 죽임당하면, 다음 생에 각성자로 태어날지.”


이태남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수용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작은 희망을 품은 채, 두 눈을 고이 감았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인 순간.


“빛의 정화!”


뒤편에서 웬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감은 눈 틈새로 밝은 빛이 비쳤다.

어둠마저 밝히는 강한 빛.


‘무, 무슨⋯.’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태남을 더 당황 시킨 건 그다음이었다.


[능력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대상의 능력을 빌리시겠습니까?]


작가의말

아무리 줄이려 노력해도 이게 최선이네요...ㅎㅎ

제 첫 헌터물 「능력 좀 빌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들어와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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