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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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작품등록일 :
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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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2

DUMMY

광해는 아까보다 더 절실한 표정으로 류성룡을 향해 걸어온다.

마치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반드시 시간을 내줬으면 한다는 듯······.

류성룡은 마음을 굳혔다.


‘그래, 이야기 좀 해봐야겠어.’


문제는 이곳이 사방이 뚫린 대궐 앞이라는 점.

그런데도 남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광해가 입을 열었다.


“좌상,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을 말하겠소. 장수를 가려 뽑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병사를 모집하는 것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오. 하여, 경상 좌·우도에 먼저 전령을 보내시길. 지방 병력을 모아, 상주로 이동하라고 말이오.”


류성룡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음성이 들어왔다.

몇몇 질문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경상 좌·우도라니? 상주라니? 아니, 그보다 부산포 함락을 어떻게 알았지? 누구에게 들었는가? 등등도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한, 이 전쟁은 절대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이오. 중장기를 바라보고 대응하려면, 적의 보급선을 끊는 게 급선무. 해서, 전라 좌‧우수영이 경상도 바다로 출정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생각하오.”


더 큰 질문이 떠오른다.

설마, 지금의 전략을 혼자 세웠을까? 몰래 병법서라도 읽으며, 갈고 닦았을까? 왜? 무엇 때문에?

그러나 류성룡은 수없이 떠올렸던 질문 중에 아무것도 광해에게 묻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대궐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좌상! 전하께서 부르시오!”


류성룡에게 의문을 해결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하여, 광해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뵙겠습니다.”


광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였다.

광해의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00 : 02 : 59


타이머는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 안 남았다.’


과연 저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 *


궐 바깥을 배회하면서, 이혼은 깊이 고민했다. 입궐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변수가 너무 많았다.

선조는 이혼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입김이 강한 신료들은 대부분 정철을 유배 보낸 동인이었다.

붕당이 불꽃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는 분명히 이혼의 발언권을 제어하게 될 것이다.


‘하마터면, 좌상을 보지도 못할뻔했다.’


그랬기에 만나야 할 사람을 좁히고 좁혔다. 나중에는 단 한 사람으로 정했다. 그게 바로 동인이면서도, 왕을 움직일 수 있던 류성룡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이었다.’


기억 저편, 합리적인 류성룡이 떠올랐다. 동시에 과연 그가 자기 말을 귀담아들을지도 궁금했다.


‘그래도 할 건 했다.’


이 와중에 전쟁 극초반 밀양에서 살아 돌아온 부사 박진이 떠올랐다. 왜 하필?

간단하다. 전쟁 초기, 박진은 특별한 장수였다. 일본과 싸울 때, 그는 좁은 지리적 위치를 선점했다. 그러면서 작은 숫자로 큰 숫자를 버텼다.

이 경험은 큰 무기가 되었다. 후에, 박진은 비격진천뢰를 활용했다. 그리고 경주성 탈환이라는 큰 공까지 세웠다.

당연히 이혼의 머릿속에 박진 이름 두 자가 각인되었을 수밖에.


‘이번에도 박진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물론 확신이 들진 않았다. 과거로 돌아와 기억에도 없는 지금의 장면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역사는 변할 수도 있었다.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절대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음‧‧‧···.”


00 : 00 : 03

00 : 00 : 02

00 : 00 : 01

00 : 00 : 00


타이머가 정지했다.

그리고······,


《역사 바꾸기의 클로즈 베타가 시작되었습니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글귀. 이혼의 눈이 커진다.


‘클로즈 베타라니?’


이건 무슨 게임인가? 지금은 꿈인가, 현실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끝이 다가왔다. 이혼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의 의식은 아득한 미래, 아니, 현실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이혼은 깜짝 놀랐다.


‘현실로 돌아왔구나······.’


그것도 한국사 시간. 11번 문제를 풀던 도중이었다.

이렇게 현실로 돌아온 이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미련도 강하게 남았다.


‘내가 광해였다니.’


아득히 멀고 먼 미래에 환생했다. 공교롭게도 이혼이라는 이름으로. 이건 숙명일까?


‘일단, 수능이 먼저다.’


과거를 다녀왔지만, 현실도 중요하다. 이혼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 풀던 11번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았는데.


‘응?’


시험 문제가 바뀌어 있었다.


--------------------------------------------


11. 다음 중 광해군에 관한 내용으로 알맞은 것은?


①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세자에 책봉되었다.

② 임진왜란 중, 분조를 이끌고 크고 작은 야전을 누볐다.

③ 즉위 초, 대동법을 전국으로 실시하였다.

④ 당쟁이 격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인과 서인에게 두루 중직을 맡겼다.

⑤ 명‧청 교체기, 중립 외교를 시도하였다.


--------------------------------------------


그동안 뭔가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문제보다 선택지가 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답을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설마 역사가 바뀐 거야?’


단, 6시간. 그사이 이혼이 한 일. 과거에 머무르면서 궐 앞을 계속 서성댔다. 막판에 류성룡을 만나기 전까지. 그에게는 두 가지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나비효과가 되어 역사가 꽤 변한 모양이다.


‘어쨌든, 답은 골라야 해.’


뭔가 아쉽긴 했지만, 이왕 돌아온 만큼 지금은 다시 현실에 충실할 때였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성격의 이혼. 그래서 마음을 빨리 수습하며, 오늘 수능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1번은 아니야.’


이혼은 확실한 답이 아닌 걸 제외했다. 과거로 돌아갔어도, 절대 변하지 않았던 것. 이혼은 왜란이 발생하기 전에 세자로 책봉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3번도 제외했다.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대동법을 전국 단위로 실시했다?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부호들과 권세가들이 대동법을 잘도 받아들였겠어.’


특산물을 세금으로 대신 내고 이자를 붙여서 받는 방납만으로 이익이 상당하다. 광해는 그 폐단을 금지하기 위해서, 특산물이 아닌 쌀로만 세금을 내도록 하는 대동법을 시행했다.

양반 지주들의 반대가 들끓었던 건 당연한 일. 시대를 막론하고 기득권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려고 한다. 이에 그들은 대신들과 결탁했다. 동시에 유생을 동원해서 상소를 올렸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이혼은 치가 떨렸다.


‘그럼, 2번인가? 아니면, 4번? 5번?’


답은 하나만 골라야 한다.

그런데 2번의 분조를 이끌고 야전을 누빈 것은 분명 옳은 답이다.

4번도 마찬가지.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한 일도 즉위 초에 했다.

마지막으로 5번인 중립 외교 역시도 광해의 업적 중 하나.


‘모두 다 옳은 답이잖아?’


고심 끝에, 이혼은 그중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5번을 선택했다.


“휴······.”


한숨을 내쉬고 한국사의 남은 문항을 마저 풀어낸 이혼.

풀면서 뭔가 계속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딴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수능 끝날 때까지 생각을 갈무리했지만.


‘역사는 별로 변한 게 없구나.’


수능 고사장을 나오는 이혼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장 11번 문제부터 ‘광해군’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여전히 광해군은 묘호가 붙지 않았다. 이는 나중에 인조반정이 발생했다는 뜻.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계속해서 역사를 바꾸고 싶다. 그런데 과연 그 기회가 또 생길까?

집으로 향하는 이혼은 자기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어쩌면 또 그런 기회가 올 수도.’


클로즈 베타가 시작되었다? 의미심장한 말 아닌가.

기다리자. 기회가 올 때까지.


* * *


집에 들어온 이혼의 표정.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시험, 어려웠니?”

“아뇨. 괜찮았어요. 근데 어제 잠을 못 자서요.”

“아, 그래?”

“저 눈 좀 붙일게요.”


이혼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은 듯해서, 심신이 피로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생생한 시간 여행이 떠오른다.


‘분명, 그건 꿈이 아니었어.’


짧은 순간 잠에 빠져들었을 때, 과거를 엿봤던 이혼.

어쩌면 지금 잠을 잔다면?


‘혹시 그때로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


이혼은 이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피곤했는지, 무리 없이 눈이 감겼다. 그리고 얼마나 잤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음······.”


아침 일곱 시. 무려, 열세 시간 넘게 잔 것 같았다.


‘젠장.’


간절히 그 시대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때의 꿈을 꾸긴 했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찜찜했다. 말년에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휴······.”


한숨을 내쉰 이혼은 아침을 먹고 학교를 향했다.

가는 동안,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혼군이 아닌, 성군으로 살아갈 기회를.


‘도대체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잠시 후,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혼은 지극히 재수 없는 놈과 마주했다.

김류, 성은 김(金)이요, 이름은 류(瑬)였다.

김류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던, 흔히 말하는 찐따였다.

공부는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이혼은 김류와 무려 12년 동안 같은 반이라서 쭉 지켜봤다. 그는 도대체 왜 일반고에 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공부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었다.

가장 싫었던 것은 이름이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김류는 인조반정을 일으킨 원수 중 원수의 이름이었다.


‘저놈, 이름 때문에 놀림 많이 받았지.’


사실 이혼은 예전부터 자신의 이름이 광해군의 본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울고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설명하셨기 때문이다.


- 너는 광해군 임금님의 이름을 물려받은 거란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느껴도 돼.


역사 덕후인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하필이면 광해군의 그것이었다니, 이건 우연인지 숙명인지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의 설명을 들은 이후, 아이들의 놀림을 그냥 당하지 않았다.

최소한 성격이 지랄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제법 덩치도 커지자, 싸움 또한 잘해졌다.

아이들이 웬만하면 이름으로 놀리지 않을 정도로.

그때부터 오히려 이혼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본인이 과거의 광해라는 걸 깨달은 지금. 정체성과 자부심이 더 강해졌다.

역설적으로, 자기를 왕에서 끌어내린 놈과 이름이 같은 김류를 보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밖에.


‘졸업하면, 우리 절대 보지는 말자.’


괜히 한 번 김류를 힘주어 노려본 이혼이 걸음을 빨리한다. 재수 없는 김류를 피하기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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