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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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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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갈량 – 4

DUMMY

실제로 고니시 유키나가는 소 요시토시와 만나기 전에 패전 소식을 들었다.

조선 땅에서 승승장구만 해서였을까? 유키나가는 몇 번이나 장계를 들여다보며 정독했다.

내용은 변함없었다. 아군의 보급선이 궤멸하였다는 것. 그리하여 초반에 가져온 군량이나 무기 등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

결론적으로는, 이곳 상주를 최대한 빨리 점령하여 병참의 연계를 이어가야 했다.

더 좋은 것은 견훤산성에 쌓아놓았을 물자를 빼앗는 것이었다.

잠시 후, 임시로 세워놓은 지휘 막사에서도 그 전략이 흘러나왔다.


“부산과 대구에서처럼 빠르게 밀어붙여서 성을 점령만 하면, 적이 식량 창고를 태울 시간도 없을 겁니다.”

“그렇사옵니다. 더 지체하지 말고, 즉각 출정해야 하옵니다.”


유키나가의 생각도 이들과 같았다.

부산과 대구 등에서의 공성전. 식량 창고를 태울 시간도 없이 점령한 성에서는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밀양에서처럼 적에게 시간을 준다면, 청야 전술이 발동되며 식량을 얻을 수 없었다.

다만, 약간 걸리는 것은 그가 가장 신임하는 요시토시의 의견이었다.


“도노. 아침까지만 참으시옵소서. 지리를 모르는데, 어두울 때 치는 것은 상책이 아니옵니다.”


그 말도 옳았다. 아까 잠깐 만났을 때, 요시토시는 처음으로 적을 경계하는 내용을 읊었다.

김류라는 자를 입에 올리면서, 상주에 모인 적의 병력이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군영에는 요시토시와 상반된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노! 어두울 때는 수성하는 쪽도 마찬가지로 불리합니다! 아니, 더 불리합니다. 우리와 다르게, 저쪽은 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찌 제대로 겨냥이나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렇사옵니다. 더구나 시간을 줄수록 더 단단히 준비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병사들의 사기도 매우 높습니다. 전쟁은 기세 싸움 아닙니까? 지금의 분위기를 바로 이어가는 게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패배를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점령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만 존재할 뿐.

이건 요시토시도 마찬가지라서, 대놓고 반대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자신감은 결코 자만심으로 흐른 것도 아니었다.

원래, 조선 땅에서 승승장구하기 전에도 무수한 전쟁 경험을 쌓았던 장수들이다.


‘변수가 생기지 않는 전장이란 없지.’


마침내 유키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공격하는 거라면, 절대 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전군, 총공격이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호전적인 장수 몇 명이 소리를 지른다. 그게 모든 장수에게 전염되었다. 금세 막사 안이 괴성으로 가득 찼다.

여기서 꺼림칙한 낯빛을 한 사람 딱 하나뿐.


‘김류, 이상하게 걸린단 말이지.’


그가 바로 소 요시토시였다.


* * *


규슈 서부 세력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번대. 대략 18,000명이 선봉 겸 평안도 정벌군으로 조선 땅에 밟았다.

그리고 부산부터 시작하여 이곳 상주까지 오는 동안 피해는 고작 수십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것도 작은 부상까지 합한 수치다. 실제 죽은 사람은 열 명 안쪽에 불과했다.

그래서 장수들뿐만 아니라, 병졸들의 사기도 드높았다.


“와아아아아!”


기습이 아닌 한, 굳이 조용히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병졸들의 함성은 사기를 나타내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


“와아아아아!”


요란하게 몰려오는 일본군과 달리, 짙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견훤산성의 군세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이 침묵 속에는 치밀한 방어 전략이 숨겨져 있었다.

전략의 핵심은 역시 김류였으며, 그는 작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준비는?”

“네, 장전을 마치고, 발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김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명심하라. 적이 출발할 때까지 절대 동요하지 말고 기다려라. 이번 공격은 기습 효과를 최대한 거둬야 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일제히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류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 * *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모르고, 유키나가의 입술 끝이 위로 올라왔다.


‘병력이 없는 건 확실하군.’


개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허세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요란해야 한다.

그래야 더 병력이 부풀려진다. 그래야 높은 승전 의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아군과 다르게 적군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키나가는 적이 숫자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얕본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처음부터 총공격을 명하지도 않았을 터.


척!


그 총공격을 위해서 유키나가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큰 함성이 멈췄다.

순간, 유키나가가 외쳤다.


“철포대 위치로!”

“철포대 위치로!”

“철포대 위치로!”

“철포대 위치로!”


유키나가의 명령에 따라 부하 장수들의 복명복창이 이어졌다.

훈련이 잘 이루어졌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조총을 든 부대가 앞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1번대의 조총병 숫자만 2천 명이다. 그런데 오늘은 지형이 좁고 사거리에 맞추다 보니 천 명만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쉬웠지만, 이 마음은 유키나가와 장수들만 느낄 뿐.

부대의 사수들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총신에 화약을 넣은 뒤에 그걸 다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납탄을 넣고, 탄환을 밀어 넣을 때쯤······.


“궁수대 위치로!”


다시 유키나가의 명령이 떨어졌다. 오늘의 특이점 두 번째. 철포대 뒤에 화살 부대가 자리했다는 것.


“궁수대 준비!”


다시 유키나가의 명령에 따라, 부하 장수들의 복명복창이 이어지자마자 화살촉에 불이 붙었다.

이번 전투에서 첫 번째 화살의 쓰임은 간단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성벽 위를 밝히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 준비까지 다 끝나자.


“철포대 준비!”


곧바로 화승에 불이 붙었고.


“궁수대 발사하라!”


쉭, 쉭, 쉭, 쉭, 쉭, 쉭!


먼저 불화살이 공중으로 향했다.

장관이었다. 대략 천 발의 불화살이 산성 위에 하늘을 수놓는 그 모습이.


“철포대 발사하라!”


그 뒤로 볼품없이 소리만 큰 조총이 불을 뿜었다.


땅, 땅, 땅, 땅, 땅, 땅!


멀리서 들으면, 콩 볶는 소리로 느껴지는 조총의 격발음.

한데, 가까이에서는 귀가 나갈 것 같았다. 실상, 철포대 병졸들이 청력을 잃는 일도 간간이 나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큭.”

“으악.”


지휘관은 그런 사소한 희생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원래 전쟁은 생지옥이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것.


“궁수대 준비!”

“철포대 준비!”

“궁수대 발사!”


쉭, 쉭, 쉭, 쉭, 쉭, 쉭!


“철포대 발사!”


오히려 기선 제압을 위해,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는 것에 더 집중했다.

이 과정이 세 차례 반복되었고, 네 번째까지 끝이 났을 때는······.


“마쓰라! 아리마! 오오무라!”


마쓰라 시게노부, 아리마 하루노부, 오오무라 요시아키. 세 명 모두 유키나가가 아끼는 장수들이었다.

이름이 불린 이유는 드디어 공성을 위해 출격을 기다리라는 뜻.

그 대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진격! 앞으로 진격! 성을 점령하라!”


곧바로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동시에 총 6천 명의 병력이 성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키나가는 또 한 차례 아쉬운 침음성을 내뱉었다.


“음······.”


저 앞에 성은 방어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성문을 제외하고 좌우는 산에 걸쳐있었다. 당연하게도 성문으로 향하는 이 공간이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꺼번에 밀어붙이는 건데.’


철포대와 궁수대를 제외한 병력을 빼면 1만 5천. 일부 기마병이 있으나, 대략 9천이 후속 부대로 공격 명령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먼저 출격한 6천도 성에 달라붙기 시작한 병력을 제외하면, 성 앞에 넓게 깔렸다.


“응?”


유키나가는 여기서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적은 화살도 사용하지 않을까? 설마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겨냥이 힘들어서?


‘그럴 리가······.’


성 앞에는 좁은 공간이라서 화살을 아무렇게나 쏴도 아군의 희생이 불가피했다.

그걸 감수하고 내린 명령이었는데, 적은 요지부동. 단지 성 위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오는 병력만 상대하는 것 같았다.


“도노, 너무 이상합니다. 왜 화살을 쏘지 않는 걸까요?”


사위인 요시토시 역시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모양인지,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차피 대답이 필요 없었다. 곧바로 그 이유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휙! 휙! 휙!


성안에서 무언가가 세 덩이의 물체가 튀어나왔다.


턱! 턱! 턱!


그리고 성 앞에 깔린 병력 틈 사이로 떨어졌다.

한두 명의 병졸들이 그 물체에 맞아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컥!”


하나, 그것뿐이었다.


“뭐야, 이건?”

“헤헤, 고작 이거냐? 이걸 준비하느라고, 화살도 안 쏜 거야?”

“조센징이 뭐 그렇지. 이번에도 싱거워 죽겠네.”


빨리 성을 점령해야 한다고 집단 최면에 걸린 일본군. 고작 한둘의 희생만 발생했던 물체에 크게 관심을 두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지나가다가 조총처럼 그 어떤 심지가 타들어 가는 치지직 소리를 들은 몇 명이 있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화약 냄새도 난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뒤늦게 그걸 깨달았지만,


“······?”


쾅! 쾅! 쾅!

그 결과, 비극적인 참상이 벌어졌다.

조총의 격발음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컸던 우렛소리와 함께,


쉭, 쉭, 쉭, 쉭, 쉭, 쉭!


철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컥!”

“캑!”

“으악!”


한 번에 수십의 병사들을 지옥으로 보냈다.

후방에서 이 장면을 보던 유키나가의 얼굴이 확 굳었다.


“저, 저건?”


불과 세 덩이의 괴물체의 위력. 순식간에 백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요시토시가 말을 더듬으며 유키나가를 불렀다.


“도, 도노!”


그렇지만 유키나가는 요시토시의 부름에 응할 여유도 겨를도 없었다. 또 한 번 성안에서 세 덩이의 괴물체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으악! 도망쳐!”

“괴물 포탄이다!”


아까와 같이 무방비로 당하고 싶진 않았던 병사들이라 얼른 피하려고 했으나,


쾅! 쾅! 쾅!

쉭, 쉭, 쉭, 쉭, 쉭, 쉭!


“컥!”

“캑!”


비격진천뢰의 폭풍과 그로 인한 철편의 속도는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거리도 넓었다. 그리하여 좀 전처럼 비슷한 숫자의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니.

유키나가가 정신을 차린 듯, 재빨리 고함쳤다.


“뒤로 물려! 병력을 뒤로 물려!”


부하 장수들이 그 명령을 따라 반복해서 외쳐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또 날아오는 비격진천뢰는 야속하게도 백 수십의 아군 사상자를 세 번째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유키나가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저게······?’


그의 눈앞에서 수백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쓰러져갔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지휘관은 침착해야 한다. 그러나 유키나가는 지금 내면의 동요를 감추기가 어려웠다.

자책감과 함께, 지금까지의 전과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너무 경솔했나? 요시토시의 경고를 무시한 게 실수였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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