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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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6

DUMMY

류성룡의 권유를 계속 듣자니, 이항복의 고개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좀 전에 체찰사로 임명된 류성룡. 굳이 지금처럼 세세한 일들을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왜 일일이 자신의 의견을 묻는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좌상도 광해군 저하의 서찰을 받았다.’


못 들은 척했지만, 아까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병조 좌랑 강수남이 전한 서찰은 광해의 손에서 옮겨진 것.


‘만약 이를 주상께서 아신다면, 경을 칠 일인데······.’


은근히 걱정되어, 슬쩍 물었다.


“좌상, 혹시 요즘 저하와 어울리오?”

“요즘은 아니고, 오늘 잠시 말을 섞었소이다. 한데, 그 자리에서 상주로 병력을 모아줄 것과 이순신의 쓰임을 알려주더이다.”

“억! 그게 참말이오?”

“그렇소이다. 내, 저하의 영민함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오늘 또 한 번 놀랐소. 더 놀란 것은 방금 읽은 서찰에 적힌 내용이오. 저하께서는 김여물을 추천하여, 이일과 함께 내려보내라고 하셨소.”


이항복은 좀 전에 광해가 쓴 서찰 내용이 궁금했었다. 한데, 이렇게 바로 공개하다니?

속으로 놀라면서, 이항복은 또 한 번 귀신을 입에 올렸다.


“그거, 정말······, 귀신이 놀라서 오줌을 지릴 일이구려.”

“해서, 또 하나 도승지께 청하겠소.”

“기탄없이 말씀하시오.”

“나는 이번 전란이 심상치 않다고 보오. 한나절 만에 일본군은 부산포와 부산 진성을 함락하고, 동래성까지 왔소이다. 아무래도 왜적이 단단히 전쟁을 준비한 모양이오.”


이항복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황윤길의 말이 옳았던 거요. 왜의 수길이 통일을 이루더니, 그 병력으로 조선을 넘어 대명까지 노리는 게 틀림없소이다.”

“그렇다면 쉽게 막을 적이 아니오. 당연히 사직의 위기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사직의 위기? 어허, 좌상께서는 설마 파천까지도 예상하시는 거요?”

“각오해야 한단 말이오. 더불어 국본을 빨리 세우는 것도 급선무요. 전란을 국본 없이 치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오.”

“그, 그건······.”


류성룡 말이 옳았다. 하지만 이항복은 듣는 내내 주변을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국본, 세자를 뜻한다. 즉, 세자 책봉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임금이 총애하는 대신 둘이 무언가 깊게 논의한다고 생각하여, 아무도 접근하지는 않았다.


“음, 좌상······. 여기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듯싶소.”

“더 꺼내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눈치를 봐서, 주상께 말 좀 잘해주시오.”

“허허허······.”


이항복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미뤘다.


‘좌상 대감이 나까지 귀양보내려고 하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임금한테 세자 책봉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항복은 다른 문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임금 이연이 그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던 것.


“아무래도 안 되겠소. 슬슬 파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전하! 파천이라니요? 통촉하여 주십시오!”


늘 농을 좋아하던 이항복의 얼굴을 굳었다.

이제 국본을 세워야 한다는 류성룡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허, 도승지.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마시오. 종묘사직이 더 중하다는 걸 왜 모르시오?”


임금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항복도 죽을 각오를 하고 입을 열었다.


“전하! 그러면 파천 이전에, 국본부터 세우는 게 옳은 줄 아뢰오.”


뜻밖에, 임금은 국본이란 말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알겠소. 그러면 모든 대신을 서둘러 소집하시오. 내, 오늘 국본을 세우는 문제에 결론을 내겠소.”


이로써, 임금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파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 *


한편, 광해와 김류가 군기시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기발을 발견했다. 그때마다 이혼의 입이 열렸으니.


“저건, 부산 진성이 함락되었다는 장계야.”

“음, 동래성이 위험하다는 소식이겠지.”

“아마 이번엔 동래성도 함락되었다는 급보일 거야.”

“휴, 동래성마저 일본에 떨어졌겠다. 빠르네, 빨라.”


김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묻는 말.


“보름 정도 후면, 선조께서 몽진한다고 난리를 치겠네.”

“보름은 무슨, 양산성이 위태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니까, 아마 오늘 밤이 될 거야. 어쩌면 지금 도승지를 만나고 있을지도.”

“정말?”

“그래, 사초에는 기록되지 않은 일이었지.”

“헐······.”


조선의 열네 번째 임금 이연은 붕당을 이용해서 권력을 강화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대신들은 임금의 고단수에 알면서도 당했다.

때로는 그의 정치력을 존중했다. 어느 한쪽에 힘을 싣기보다는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하나, 평시에 잘 발휘할 수 있었던 정치력은 전시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아니, 그 정치력이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견제와 균형에 쓰였다. 그것이 조정 전반에 안이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일본의 침략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수시로 전령이 도착하면서 임금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리라.

마침내 부산포, 부산 진성, 그리고 동래성이 함락되었을 때.

임금은 도승지 이항복을 불러서 파천을 준비하라고 명했으니······.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었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드디어 광해는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내 군기시 앞에 도착한 것. 그중에서도 두 사람이 찾은 곳은 기술직만 있는 곳이었는데.


“그나저나, 나를 알아볼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음, 아랫사람일수록 저하를 모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나서야죠. 이리 오너라~”

“미친······.”


진짜 과거로 돌아와서, 김류는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말리기도 전에 문을 막고 있던 문지기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시오?”

“어허, 이놈들이! 너희가 어찌 장차 국본이 되실 분을 못 알아보고, 이렇게 무례하게 입구를 막는 것이냐? 여기 계신 분이 광해군 저하이시다!”


국본이라니? 저런 망발을? 진짜 막 나가는구나.

그런데 또 이게 먹힌다. 문지기들이 우물쭈물하고, 이 목소리를 안에서 들었는지 누군가가 나와서 광해군과 김류를 들여다보았다.


“정녕, 저, 저하 맞으시옵니까?”

“그렇다. 내가 광해다. 너는 누구냐?”


아무리 깜깜한 밤이지만, 복색이 신분을 말해주는 시대.

광해가 질문에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자신의 벼슬과 이름을 밝힌다.

듣고 보니, 최하위 관리인 종9품 참봉이라서, 광해는 얼른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여기에 화포장 이장손이 있느냐?”

“네? 네네, 있사옵니다.”

“하면, 어서 안내해라.”


전란 소식이 군기시에 안 전해졌을 리 없다.

해서, 오늘부터 밤을 지새워 무기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화포를 담당하는 이장손 역시 마찬가지였고, 귀가를 미루고 현재 무기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그를 광해와 김류가 불러들였고.


“저, 저하? 말씀하신 무기는 소인이 그린 설계도와 일치하옵니다!”

“······!”

“······!”


뜻밖에 이장손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비격진천뢰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거, 최악은 면한 건가?’

‘약간 예측하긴 했는데.’


이혼과 김류는 서로 두 눈을 마주치며, 이곳에 오기 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임진왜란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화약이옵니다!

- 알아. 화약을 다루는 사람을 다시 중용해야, 앞으로 내 시대를 열 수 있지.


조선은 초기부터 화약을 다루는 기술직을 우대했다. 아쉽게도, 그 이후 200년간 이어진 평화로 인해 분위기가 점차 바뀌었다.

특히, 임진란에 그동안 쌓았던 3만 근의 화약마저 선조가 한양을 천도하면서 백성들이 불태웠으니.

광해와 김류는 그 역사를 몸소 경험했다. 그래서 화포장 이장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데,


“조만간 대완구까지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대완구란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화포였다.

비격진천뢰에 이어, 그것까지 만들 찰나였다던 이장손의 말.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 만약 대완구까지 개발한다면, 신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진격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은 승자총통에 더 집중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잠시 대완구 제조를 뒤로 미뤘습니다.”

“아니 되네. 그냥 계속하시게.”


김류가 못 참고 몸을 들썩인다. 하지만 이장손의 시선은 김류가 아닌 광해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유생 나부랭이가 군기시의 윗선 명령을 어기라고 한다?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렇게 하다가는 이장손의 목을 내놔야 했다.

다행히 바라던 말이 광해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내가 책임질 테니, 계속 개발하시게.”

“저, 저하······.”

“이 화포장만 믿겠네.”

“마, 망극하옵니다!”


망극하다, 즉, 고맙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이장손이 그렇게 표현했다.

광해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고맙네. 이렇게 국난이 일어났는데, 비격진천뢰가 벌써 개발되었을 줄이야. 든든하네. 진정, 힘이 되네.”


엎드려 있던 이장손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실은 그 역시 들은 바 있었다. 광해가 세자가 될 거라는 말을. 그래서 더 감격스럽다.

어쩌면 세종 대왕님 이후, 화약을 다루는 관리의 화려했던 시절이 다시 오려나. 어렴풋이 그런 기대도 해봤다.

물론 이것도 잠시였다.


“일단, 지금까지 만든 비격진천뢰를 보고 싶네.”

“네, 저하!”


현재까지 만들어진 비격진천뢰는 열 개. 이미 폭파 시험까지 마쳤으나, 광해가 원하는데 보여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그 이상이다. 어서 보여줘서, 광해를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래, 바로 이거였어.”


뜻밖에 광해는 비격진천뢰를 보더니 눈을 치켜뜨며, 다소 황당한 말을 내뱉는다.


“네, 저하. 똑같네요. 근데 이게 더 많이 개발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마냥 좋아하던 광해와, 그에 동조하는 김류. 마치 비격진천뢰를 이전에 봤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혹시 설계도를 보았을까?’


‘비격’이란 말을 뺀 진천뢰는 이미 문종 시기에 개발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평화의 시기를 맞이한 조선이었다. 해서, 더는 진전이 없었던 게 확실한데.


“그나마 이것도 위력을 시험하고 남은 것들이옵니다. 아직, 제조와 부제조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옵니다.”

“그랬군.”


사람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다. 군기시에 오기 전, 광해와 김류는 생각했다. 비격진천뢰를 단 몇 개라도 완성해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특히, 밀리터리 덕후 김류가 읽은 이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비격진천뢰 몇 개로도 일본군이 혼비백산하며 경주성에서 후퇴했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 견훤산성 방어전에도 적절하게만 사용한다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번 시간만큼 비격진천뢰를 더 만들어 일본군과 싸우는 전장에 투입한다는 시나리오까지 세웠으니.


“아까 그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어.”


군기시를 나오면서 광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류도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파천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옵니다.”


파천을 결정하는 건 왕이다. 다만 임금은 겁이 많다. 이에 그가 겁먹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한양에서 먼 후방에서 일본의 진격을 막아야 하는 게 지상과제.

광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류의 의지에 동조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전략을 짜는 게 급선무겠어.”

“두말하면 잔소리죠.”

“어디서 할까?”

“모르겠습니다. 일단, 소신의 집은 좀 누추해서······.”

“그래도, 거기로 가세. 우리 집은 듣는 귀가 훨씬 많다네.”

“네, 저하.”


지금의 대화. 밤을 새워서라도, 다시 전략을 수정하고 가다듬자는 뜻이다.


‘절대. 파천까지는 막아야지.’


한양을 뜨지만 않는다면, 화약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화력을 갖춘 조선이라면? 해전이 아닌 지상전에서도 꾸역꾸역 일본군을 막아낼 수 있다. 광해는 그렇게 생각했다.

단, 계획을 실현하려면, 손에 힘을 쥐어야 한다. 최소한 군략에 영향을 끼치는 힘 정도는 말이다.

결국, 하루빨리 세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궐내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중신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전란을 대비할 수 있다.


‘부왕께서 그런 나를 싫어하신대도, 어쩔 수 없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이상, 광해는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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