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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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갈량 - 5

DUMMY

일본의 <정한위록>에서는 비격진천뢰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당시 경주성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하자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 가루처럼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주변에 있던 자는 폭풍에 날아갔다. 기이하고 놀라서 우리 군사들 모두 서생포로 돌아왔다.


밀리터리 덕후, 김류는 똑똑히 그 글귀까지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쯧쯧쯧, 요시토시, 유키나가, 내가 경고했을 때, 돌아갔어야지.’


물론 진짜 그들이 돌아가길 원했던 것은 아니다.

김류는 보여주고 싶었다. 비격진천뢰의 위력을.

그리고 알려주고 싶었다. 육지에서 조선군이 올린 첫 번째 승전 소식을.

역시나,


“적이 물러간다!”

“이겼다!”

“천세! 이겼다!”


김류의 바람대로였다. 비격진천뢰 아홉 발에 적은 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남기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던 게 아쉽다. 저 멀리 지휘부에서 몹시도 당황한 유키나가 등의 왜장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

재밌는 건, 아군 역시 얼굴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

그중 순변사 이일이 대표적이었다.


‘이럴 수가······.’


처음 일본군이 성 앞에서 진용을 갖추었을 때, 이일은 속으로 탄식했다. 어마어마한 숫자에 압도당한 것.

그다음에는 공포를 불러일으킨 조총의 격발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탄에 맞을까 걱정하면서 성벽 안쪽에 얼마나 몸을 붙였는지 모른다.

동시에 김류를 원망도 해봤다.


‘저, 어린놈의 말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어.’


사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상주에서 이일이 얼마나 좌절했는지······.

부족한 병력. 그나마도 오합지졸. 고장 난 현자총통과 신기전.

그런 상황에서 김류가 반색했던 게 놀라울 정도였다. 무기고에서 세 개의 투석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 이거면 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잘 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수성해야 하는 처지에서 투석기를 사용하면, 막을 수 있다니? 비격진천뢰를 너무 믿는 건 아닐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워낙 김류가 희망의 목소리를 냈던 터라 견훤산성으로 투석기 먼저 옮겨왔었다.

그게, 오늘의 승리를 불렀다. 김류를 원망하던 마음에서 신뢰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쩌면 김류를 믿는 마음은 그전에도 슬슬 생기지 않았을까?

그는 목숨을 걸고 사신으로 가서, 적을 자극하는 서찰을 주고 왔다.

이일이 어찌 그를 중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로 인해, 이번 수성전에 김류가 세웠던 작전을 거의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마침내 적을 뒤로 물릴 수 있었다.

단, 김류는 마지막까지 본분을 잊지 않았다.


“장군! 지금입니다! 퇴각하는 적에게 화살을 쏘셔야 합니다!”


이제야 깨달은 듯, 이일도 소리 높여 고함쳤다.


“준비된 궁수대부터 화살을 쏴라! 어서 화살을 쏴라!”


그러자.


쉭, 쉭, 쉭, 쉭, 쉭, 쉭!


그동안 당했던 패전의 아픔을 오늘 만회라도 할 생각일까?

활을 잡은 조선군은 단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일 각오로 속사에 들어갔다.

이 순간, 북방에서 여진과 맞서 싸웠던 경험이 이일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 전투 중에 가장 사상자가 많이 나올 때는 바로 패전한 쪽이 퇴각하는 시점이다.


그와는 다르게, 김류는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쩝······.’


퇴각하는 적의 후미를 활로만 공격한 것. 기대했던 것보다 적의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성문을 열고 싸울 순 없지 않은가.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김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승리의 선언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왜적을 물리쳤다!”

“이겼다!”

“만세!”


김류의 주변 병졸부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승리의 함성이 삽시간에 성안으로 퍼져 나갔다.


“이겼다!”

“만세!”


참고로 지금 견훤산성 안에는 패전의 아픔이 서린 장졸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부산, 동래, 밀양, 대구 등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패배한 이들. 그러나 언양과 울산, 그리고 경주 등에서 가토 기요마사에게 패배한 병력도 일부 존재했다.

특히, 유키나가보다 기요마사가 훨씬 더 잔인했고 난폭했기에, 오늘의 승리는 후자에게 더 감격스러웠다.

이런 분위기도 잠시였다. 곧바로 이일이 얼른 나섰기 때문이다.


“비록 크게 승리하였으나, 적의 숫자는 오늘 죽인 놈들보다 열 배는 더 많을 거다! 그저, 첫 교전에서 이겼을 뿐이니, 절대 느슨해지지 말도록!”


원래, 이 말은 김류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일이 기강을 세우니, 그를 향한 평가를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이 순변사가 완전히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지.’


그는 임진왜란에서는 워낙 준비가 안 된 초반에 일본군을 맞이했다.

그래서 패배 후 도주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신립과 함께 조선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무장이었다.

심지어 여진도 두 장수를 인정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지.’


지금도 이일은 몇 차례나 장졸들을 단속했다.

조금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새벽을 틈타서 적이 도발해 올지 모르니, 절대 졸거나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이처럼 단단히 일러둔 뒤에 이일은 따로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 모두 고생했다. 다, 그대들의 덕분이다.”

“아니옵니다. 장군께서 앞에서 끌어주고, 김 부위가 기가 막힌 꾀를 내서 오늘 승리한 것 같사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장군과 김 부위가 아니었다면, 오늘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한양을 떠나기 직전, 김류와 몇 명의 유생들이 임시로 벼슬을 받았다. 이들이 비록 과거에 급제한 적이 없었지만, 나라가 비상이었기에 류성룡이 임금에게 청했기 때문이다.

그중 김류는 무관직 전력부위라는 벼슬을 얻었는데, 이번에 장수급 이상으로 활약했다.

이일은 그를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되면, 좌상 대감이 사람을 잘 본 건가?’


그 역시 좀 전에 부하 장수들이 한 말을 십분 동의했다. 아니, 그들은 이일의 체면을 생각해서, 김류와 함께 입에 올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김류의 공이 훨씬 더, 아니, 절대적이다.’


오는 동안, 지속해서 병력을 모았다. 그리고 이곳 견훤산성에 똬리를 틀자고 주장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사신으로 가서 적장을 만난 것도 김류. 마지막으로 비격진천뢰를 통해서 오늘 승리를 이끌었다.

부하 장수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낄 필요는 없다.

그래서 김류를 칭찬하려던 찰나, 이일이 먼저 한마디를 듣게 됐다.


“장군, 먼저 한양에 장계를 올려야 할 듯싶습니다. 첫 승전보 아닙니까? 성상과 저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장군의 공도 더 돋보일 것이고요.”

“허허허, 자넨 참······.”


이일은 말을 더 내뱉지 못했다. 김류의 짚은 내용이 구구절절 사실이었던 것은 물론, 그의 눈빛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놈은 오늘 결과에 완전히 만족하는 것만은 아니구나.’


어쩔 수 없이, 이일은 우선 장계를 써서 기발을 출발시켰다.

그런 다음 김류를 다시 불러들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자넨, 아직도 우리가 이길 거라고 보나?”


질문이되 질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확답을 받고 싶은 노(老) 장군의 마음이었다.

그 뜻을 김류가 모를 리 있겠는가. 그는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러나게 하는 것만이라면, 아군이 계속할 수 있사옵니다.”

“어떻게? 다음에도 오늘처럼 대응하면, 버틸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그때 다르옵니다.”

“때마다 다르다?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뜻으로 들리네만.”

“그렇사옵니다.”


이일은 백전노장이다. 김류가 이미 말을 뱉기도 전에, 이미 전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계속 생긴다.


“하나, 싸움이 길어진다면? 다른 건 몰라도, 화력이 문제네. 우리는 비격진천뢰가 열한 발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걸 다 쓰고 나면, 밑천이 떨어질 텐데?”

“다 떨어지기 전에, 적은 우회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길목을 놔두고 우회한다? 뒤에 화근을 남기고? 그건, 병가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로다.”

“물론 그렇긴 하겠지만, 후속 부대가 처리할 것으로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들 역시 여기서 발이 묶였다간, 나중에 보급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급 문제라니?”

“잊으셨습니까? 한양을 떠나오기 전, 류 체찰사께서 전라 좌수사에게 기발을 보내셨나이다.”


순간, 이일의 얼굴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이순신과의 악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순신이라······.’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이일이 함경 북병사 자리에 있을 때였다. 당시, 북방은 병력 부족과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여진에게 끌려간 조선의 백성을 끝내 구해냈다.

문제는 이일이 병력 증원 요청을 거부한 상황이었다는 것.

따라서 이순신의 성과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나중에 이일은 병력의 피해를 꼬투리 잡았다. 그리고 이순신을 잡아넣었고 조정에 장계를 보냈다.

내용은 이순신의 처벌.


‘그땐 내가 옹졸했었다.’


이제는 조선의 패장 처리 방식이 낳은 일이라고 더는 핑계 대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만나면, 이순신에게 깨끗이 사과하리라.

이일은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자넨, 좌수사가 적의 보급을 끊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뜻인가?”

“간절히 희망하옵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다만, 거기에만 매달리진 않겠사옵니다.”

“하면?”

“오늘부터 당장 성 앞에 있는 적을 격퇴할 전략과 전술을 세우겠습니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성 밖으로 뛰쳐나갈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첫 수성전에서 아군이 이겼다고 하나, 적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적에게 덤벼드는 만용을 부릴까 염려했다.

다행히 김류는 성안에서 똬리만 틀자고 말한다.


‘제법이로군.’


원래, 그는 김류가 젊은 혈기로만 가득 찬 놈인 줄 알았다. 혹여, 오늘의 승리가 약이 아닌 독이 되면 어쩌나 우려했다. 작은 승리에 도취 되면 이성은 아무 소용이 없는 법 아닌가.


‘아무렴, 그래야지.’


지금은 버티는 것만 잘해도 제 몫 이상을 해낸 것이다. 여기서 왜적의 발목을 붙들고 있어야, 한양에서 방책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그나저나 한양에서는 잘 준비하고 있는 거 맞겠지?’


이일은 조정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무장들을 무시하는 정승이니, 판서니 하는 것들이 문제였다. 그가 내려오기 전만 해도, 병조 판서는 군 편제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하여튼, 이 나라는 문신 이외에 대우를 안 해주는 게 가장 큰 문제란 말이야.’


무관은 물론, 기술직의 대우만 조금 더 높여줬다면? 이번처럼 일본에 쉽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당장 비격진천뢰도 화포장이란 기술직이 만들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왜놈들은 물론 여진한테도 당하게 될 거다.’


그나마 기대할 부분은 금상보다 세자의 혜안이 더 넓다는 점. 더구나 얼핏 느꼈지만, 광해의 품행과 덕망이 더 깊을 것 같았다.

그런 기대에 부합하는가?

같은 시각, 광해는 군기시에서 이장손을 만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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